나의 작가
노트
金宇鍾
내
책상 정면의 벽에는 8호
유화 연꽃 그림이 있고 이보다 작은 백장미와 붉은 장미 그림이 또 한 점씩 좌우에 걸려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작은 글씨들로 촘촘한 A4
용지나
메모지들이 덕지 덕지 붙어 있다.
그것은
하숙집 광고와 쪽방 광고 등으로 꽉 차 있는 대학교 주변 담벼락처럼 어지럽지만 화사한 꽃 그림 때문에 나머지 공간의 덕지덕지들은 오히려 액자 속
그림을 위한 장식적 효과를 내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꽃 그림 옆의 공간에 바늘로 꽂아 놓은 A4
용지들
중에는 가끔 수필 원고도 있다.
완성한
후 이 메일로 보내기 전에 잠시 인쇄해서 붙여 놓고 보는 버릇 때문이다.
딸자식
다 길러 놓고 당장 시집보내기 아까워 잠시 붙들어 놓는 심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붙여 놓으면 그날 밤이나 다음날 아침에 다시 고칠 일이 생길 때가 많다.
완성해
놓고도 내가 만든 그 글 속에서 내 마음이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시 쓰다듬으며 옷 고름 하나라도 다시 풀었다가 매 주는
꼴이다.
이렇게
열흘 이상 발송 유보 상태로 바늘에 꽂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 동안에 한 두 번 더 수정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림도
그렇다.
남의
부탁을 받아서 작업하고 사인까지 마쳤는데 아까워서 못 주고 며칠 걸어 놓는다.
그리고
또 손을 대게 된다.
수필이든
그림이든 이렇게 완성품이라고 벽에 매달아 놓고도 또 손질을 가하니 마지막 사인까지 마쳤다고 집필 완료는 아니다.
자동차를
완성해 놓고도 당장 내다 팔지 않고 몇 차례 드라이브를 즐겨보기도 한 후에야 내다 팔게 하는 것이 원칙인 것과 꼭 같다.
이것이
나의 창작 마지막 단계다.
그러데
그림과 수필은 다 같이 예술이지만 언어나 색채 등 표현 매체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꼭 같이 아름다운 꽃을 그리더라도 글과 그림은 본질적으로
다른 데가 있다.
그림은
못 그려도 재미 있고 그 나름대로 가치 있을 때가 많다.
어느
여자 수필가에게 자동차를 그리게 했더니 꼭 오징어 같아서 포복절도지경으로 데굴데굴 구른 일이 있는데 나는 잘 그린 그림보다 그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글은 그렇지 않다.
단어
몇 개를 오용하고 조사 하나 틀려서 주어가 목적어로 바뀌어도 그 글은 쓰레기가 되고 만다.
이런
오류 없이 연꽃을 정말 연꽃처럼 잘 표현한 수필이라 해도 그것은 그림의 경우와는 다르다.
사실적인
그림은 그 나름대로 명화가 될 수 있지만 수필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사실처럼 표현해도 그림만큼 미적 감동을 주기 어렵다.
사실성
구체성 정확성을 위해서 말이 많으면 오히려 읽기에 번거롭기만 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핸드 폰으로 찰칵 해서 사진 한 장 만들고 친구들에게도 송신하며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문학은 언어 예술로서의 가치가 따로 있지만 꽃을 꽃으로만 표현하고,
산과
들을 산과 들로서만 읽게 만든 것은 문학 이전이다.
나는
중학생 때 <딱따구리>를 쓴
일이 있다.
작문시간에
이영철 선생님(동화작가)이
시험지 한 장씩 돌려 준 후 50분
내에 아무거나 써내라고 해서 썼던 작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의외로 ‘명작’처럼
되고 교지에도 실려서 내 인생 최초로 활자화된 발표작이 된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칭찬을 받은 이유를 먼 훗날 기성문인이 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무렵에 나는 개성 변두리 운학동이라는 곳으로 하숙집을 옮겼었다.
이성계가
지은 궁궐이 있고 큰 고목들이 우거진 곳이었는데 연두빛 딱따구리가 많았다.
내가
쓴 그것은 이들을 며칠간 쫓아다니다 나중에는 책까지 뒤져 가며 관심을 가졌던 그들에 관한 관찰기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는 그 글 끝 부분에 내 얘기를 조금 덧 붙였었다.
나는
그 무렵에 상급생들의 폭력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고 너무 외로웠었다.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어진 것이다.
‘저
딱따구리는 생존을 위해서 자꾸 변화고 진화해 왔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꼭 하나 있다.
아무리
변했어도 아름다움 만큼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가?
애초부터
그렇게 아름다웠었고 그것을 그대로 지켜 왔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나도
생존을 위해서는 자꾸 변할 수 밖에 없을 터인데 그래도 저렇게 아름다움만은 오래도록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먼
옛날의 기억을 더듬은 것이니 표현이 이와는 다르겠지만 내용만은 꼭 이대로다.
해방
후 2학년
때 미술반에서 활동하던 나는 어느 날 오후에 상급생 미술반장에게 끌려서 미술실 건물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더 크고 힘이 센 상급생 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엉뚱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터무니
없는 시비를 걸며 컴컴한 지하실로 나를 끌고 간 것으로 보아서 그들이 당장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리 선수를 쳐 버렸다.
‘기왕에
맞아 죽을 바에는 내가 먼저 한 대라도.....’하고
생각하며 먼저 주먹을 날렸다.
그런
후 축축한 콘크리트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가 정신 차리고 밖으로 기어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들
둘이 나를 치고 짓밟고 떠난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경례를 안 붙이고 건방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상하급생 관계는 군대조직 같은 주종관계가 아니며 경례는 학교를 군영화한 일본의 군대식 교육의 잔재이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안 한다고 버티고
있다가 그렇게 맞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건 후에도 그들에게 굴복해서 경례를 부친 일이 없었다.
나는
그 후 미술반을 떠나고 혼자가 되면서 하숙집까지 옮겼다가 그 동네에서 딱따구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애한테 반해서 작문 쓰고 칭찬 받다가 그림 대신 문학 지망생으로 바뀐 셈이다.
딱따구리는
겨울에도 두껍고 단단한 나무껍질을 두드려 부수고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잡아먹고 산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머리와 부리가 뾰죽 망치 구실을 하도록 진화했고,
혓바닥도
실처럼 길게 늘어져서 애벌에가 숨은 자리까지 뻗도록 기형화 되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진화 발전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살아남기 위하여 혀를 고무줄처럼 늘어지게 만들고,
부리와
머리통은 뇌진탕을 안 일으키면서 뾰죽 망치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바꿔 나갔는데도 왜 그렇게 아름다울까?
온몸을
반짝이는 연두 빛 비로드의 원피스로 감싼 그의 몸매는 날씬하면서도 정말 아름다웠다.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바꾸며 현실에 적응하면서도 아름다움 만큼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반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쓴 것이다.
나는
상급생들에게 맞은 다음날 방과 후에 또 그들 반에 자진 출두하도록 지시를 받았었다.
교내에서도
이름난 깡패의 지시였다.
내가
상급생을 먼저 때렸기 때문에 상급생 구타죄란다.
얼굴과
온 몸이 멍들고 상처 투성이인 피해자인데도 내가 가해자라니?
이런
일들로 나는 학교 생활이 힘들어지고 그들을 피해 다니며 살았지만 절대로 그들에게 경례를 부치지는 않았고 그들도 내게 대해서 그것만큼은 포기한
눈치였다.
그것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나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딱따구리가
아름다운 원피스를 끝내 벗지 않았던 것도 그의 소중한 자존심 때문이었듯이.
내가
쓴 <딱따구리>의
글쓰기에서 이 부분은 두 번째 단계가 된다.
제2의
소재로서 나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작문은 관찰기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주제를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소재의 주제화에는 이르렀더라도 수필의 문학성,
예술적
감동을 위해서는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학생 때의 이 작문을 다시 찾고 싶지만 휴전선 북쪽에 있는 나의 모교 송도중학교까지 찾아 갈 수도 없고,
찾아
가더라도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이 글은 기억을 더듬어 가며 다음 셋째 단계로 넘어가서 완성시키고 싶다.
셋째
단계는 독자들도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만 하는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
글에서 딱따구리와 나는 서로 비슷한 공통성이 있다.
그래서
양자는 서로 비유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비유는 직접적 비유이기 때문에 직유법이다.
‘따따구리처럼
나도 그렇게.....’라는
것은 직유다.
그리고
이것도 상상 작용에 의한 창작이지만 은유법처럼 독자와 함께 날아가야 하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문학은
상상의 세계다.
그리고
그 상상의 세계는 직유보다는 은유가 훨씬 더 감동적 기법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만일 이 작문을 다시 고친다면 ‘나도
딱따구리처럼’이라는
형식 대신에 그냥 자연스럽게 내 얘기로 넘어가면서 인간이면 누구나 생존을 위한 부득이한 자기변신을 강요당하더라도 아름다운 자존심만큼은 끝까지
구기지 말고 살아야 함을 암시하며 딱따구리를 연상하게 만들면 은유법이 되겠다.
또는
처음부터 나의 얘기를 주된 소재로 삼아 나가다가 제2의
소재로서 딱따구리를 말한다.그리고
딱따구리의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임을 상상을 통해서 감지하게 만드는 것이 은유법이다.
이것이
나의 창작 노트의 제3
단계가
되고,
그렇게
끝낸 원고는 잠시 벽에 붙여 두었다가 혹시 한 두 자라도 고칠 일이 생기면 고치는 것이 마지막 마무리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