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세계연방은행'을 상상한다⑬ ㅡ인류의 기후이주에 기여할 수 있는가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돈은 무엇에 기대어 만들어지는가.
이 연재가 묻고 있는 것은 그것 하나다.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대부분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서 생긴다. 그리고 은행이 대출해줄 때 들여다보는 것이 땅값이다. 그래서 물었다. 땅값 대신 지대를 보면 어떤가. 땅값은 사고파는 가격이고, 지대는 그 땅에서 해마다 나오는 흐름이다.
이 생각을 세계 단위로 밀고 나간 것이 제2부다. 지대를 담보로 삼아 세계가 함께 쓰는 돈을 찍는 기구를 상상했고, 그 이름을 세계연방은행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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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승복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일을 나가야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대를 담보로 삼으면 전쟁이 어려워진다고 적었다.
그런데 떠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면 과제의 방향이 달라진다.
세계은행이 2021년에 내놓은 추계가 있다.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최대 2억 1,600만 명이 살던 곳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라 전체가 거주 불능이 되는 경우, 그리고 국경을 넘는 이주다.
엄청난 해동의 땅을 보유한 러시아 정부는 2019년 말에 승인한 기후변화 적응 국가행동계획에서 작물 재배와 가축 생산의 확대를 '긍정적 효과'로 열거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기후 피해는 배출한 쪽이 아니라 다른 쪽에 닥친다. 저위도는 잠기고 마르는데 고위도는 땅이 넓어진다. 그러면 떠나는 나라의 지대는 마르고 받는 나라의 지대는 오른다. 지금의 설계를 그대로 두면 담보도 그 역진을 따라간다. 가장 돈이 필요한 쪽의 몫이 깎이는 것이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이주를 막는 방법이 아니라, 이주로 생기는 지대를 어떻게 다루는가다.
먼저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파를라 ㅡ 지대를 재지 못한 이주도시
이주도시는 새로 지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다.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21킬로미터 떨어진 파를라라는 도시가 있다. 1960년에 1,809명이던 마을이 2025년에 13만 7,471명이 되었다. 65년 사이에 76배다.
두 번의 물결로 만들어졌다. 1960~70년대에는 안달루시아와 엑스트레마두라에서 국내 이주민이 마드리드로 통근하기 위해 들어왔고, 1996년부터는 모로코·루마니아·에콰도르·중국에서 국제 이주민이 들어왔다.
지금 주민등록 인구의 25퍼센트가 외국 출신이고 출신국이 115개국이다. 외국 출신의 72퍼센트가 40세 미만, 평균 연령 31세다. 유럽평의회의 상호문화도시 네트워크가 통합 정책의 사례로 꼽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가 왜 생겼는지는 한 줄이면 된다. 땅이 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지대를 재지 않았다. 사람이 76배로 늘었으니 그 자리의 입지가치가 엄청나게 올랐을 텐데, 그 상승분을 누가 가져갔는지는 어느 장부에도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그 도시의 폭발적 성장기가 하필 스페인 부동산 거품 기간과 겹친다.
둘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넷째가 설 자리도 없었다. 빠진 것은 회계뿐임에도 성공적 사례가 되지 못했다.
지금도 이주민이 오면 집세가 오른다. 집 가진 쪽은 벌고 세 든 쪽은 잃는다. 그런데 그 화가 집주인이 아니라 이주민에게 간다. 둘은 같은 처지인데 서로를 적으로 본다.
한강 하구에서 세우는 설계의 전략
그렇다면 성공할 방안은 없는가.
제2부에서 세계연방은행이 들어설 자리로 한강 하구를 꼽았다. 핵심은 한 줄이었다. 땅의 소유는 그대로 두고 지대만 치르는 땅. 어느 쪽도 가지지 않되 함께 쓰는 자리다.
토지는 그 나라가 소유하고 장기로만 임대한다. 조성은 들어오는 쪽이 한다. 그러면 조성과 입주로 지대가 오르는데, 그 상승분을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가가 설계의 핵심이 된다.
상승분은 출처가 셋이고, 셋은 주인이 다르다.
하나, 입지 자체의 값.아무것도 안 해도 그 자리가 가진 것. 땅 주인의 몫이다.
둘, 조성이 만든 값. 매립과 도로와 상하수도. 돈을 들여 만든 것이고, 그 대가는 지대가 아니라 투자 회수분이다.
셋, 사람이 모여서 생긴 값. 아무도 혼자 만들지 않았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만들었다.
땅의 값은 주인에게, 조성의 값은 조성한 자에게 다만 회수까지만, 모여서 생긴 값은 모인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것은 둘째가 시한부라는 점이다.
지금의 개발에서는 조성자가 땅을 분양받으므로 회수하고도 계속 가져간다. 이 설계에서는 조성비와 약정 수익을 회수하면 끝나고, 그 뒤의 지대는 전부 첫째와 셋째로 간다. 개발자는 지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회수한다. 회수가 끝나면 나간다.
재는 방법도 간단하다. 첫째는 기준선이고 — 조성 전의 지대를 재서 박아둔다 — 둘째는 영수증이고, 셋째는 나머지다. 집적 효과를 직접 재는 것은 어렵지만 뺄셈으로는 나온다.
그리고 이 셋이 서로 다른 것을 가져가므로 제로섬이 아니다.
땅 주인은 조성비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지대를 일시불이 아니라 흐름으로 받는다. 조성자는 토지 매입비가 없으니 훨씬 싸게 들어온다. 거주자는 들어올 때 땅값을 치르지 않는다. 빈손으로 오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결정적이다.
자금은 기존의 세계은행(WB)이 댈 수 있다. 지금 있는 기구이고 자금력과 실무가 있다. 상환을 지대로 받으면 그 도시가 잘되어야 돌아오므로, 대는 쪽이 성공에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그 도시의 지대 계열이 쌓이면, 그것이 뒷날 세계연방은행의 첫 담보가 된다.
이 모델이 수행되기까지 경제적 이치로는 걸림돌이 없다. 정치적인 결정만 남아 있다.
이 국제기구도시의 경영과 같은 방식을 기후이주도시에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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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기후이주도시의 다섯 원칙
한강 하구는 한반도의 자리이지만, 거기서 세운 원리는 한반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국경을 넘는 기후이주의 커다란 원칙을 다섯으로 추려본다.
하나, 소유를 옮기지 않는다. 땅은 그 나라의 것으로 남고, 쓰는 쪽은 지대를 치른다. 영토를 내주는 일이 아니므로 받는 나라의 저항이 작다.
둘, 상승분을 출처별로 가른다. 입지는 주인에게, 조성은 조성자에게, 모여서 생긴 값은 모인 사람들에게. 뭉뚱그리면 힘센 쪽이 다 가져간다.
셋, 조성자의 몫은 시한부다. 회수가 끝나면 나간다. 영구 권리로 두면 나중에 되돌릴 수 없게 되고, 되돌리려는 쪽이 배상을 물게 된다.
넷, 모여서 생긴 값은 모인 사람 모두의 것이다.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온 사람을 가르지 않는다. 자격은 체류 기간으로만 정한다.
다섯, 들어올 때 땅값을 치르지 않는다. 땅을 사야 들어올 수 있으면 돈 있는 사람만 들어온다. 기후 이주에서 이것은 치명적이다.
다섯 가운데 넷째가 가장 자주 깨진다. 그리고 깨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역사에 남아 있다.
세입자와 이주민은 사실 같은 처지다. 둘 다 지대를 내는 쪽이고, 둘 다 그 지대를 만드는 데 보탰다. 그런데 서로를 적으로 보기 쉽다.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보는 쪽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주민은 지대를 만들어 남에게 주고, 그 대가로 집세를 더 내는 사람이 된다.
정리하면
요는 이주도시다. 긴급을 요하는 이주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데에는 본고가 규정하는 지대본위의 개념 그리고 세계연방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주후 정착이 이행되면서 지대가 정상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 이주도시는 세계연방은행의 담보를 얻을 자격이 생긴다. 그 경제적 활동에 의한 지대의 수취도 기여도를 공정하게 평가해줄 수 있다. 양자간의 중재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셈을 바로잡는 일을 통해서 말이다. 이주민이 만든 지대가 이주민에게도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케 한다.
그것이 되는 순간, 기후 이주는 재앙의 관리가 아니라 지대의 재배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