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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떠날 준비
가을 여행에서 돌아온 인야에게 남은 일은 이제 떠나는 것뿐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아마 그해 연말 전후가 될 터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밤, 그는 작업방에서 멍하니 밤을 보냈고, 잠을 잤다.
어머니께서는 인야가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으시고, 몇 번이나 문밖에 나와서 인야를 기다리셨다고 조카녀석이 귀띔해 주었다. 사실 인야가 여행을 떠나면서, 홀로 계실 어머니를 위해 조카 녀석을 불러와 어머니를 보살펴드리게 했기 때문에... 녀석이 며칠간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그 조카가 있기도 해서, 전날에 인야는 작업방에서 잠을 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다시 먼 타국으로 떠나야 하는 자기 자신이 안타까워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며칠 사이 항동의 들판은 이미 추수가 끝나 있었다.
노란 빛이 사라진 황량한 들판을 보며 인야는 가을이 깊어짐을, 그리고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갈 데까지 다 가버려 더 이상의 여지도 남지 않은 들판의 풍경은 인야의 마음속 아쉬움과 닮아 있었다.
인야는 여행 중에 구상했던 그림 하나를 마쳤다. 지리산 외딴집에서의 밤을 떠올리며 그린 그 작품에 그는 ‘한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며 그는 묘한 희열에 젖었다.
여행의 성과는 그 그림 한 점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여행 전부터 망설여왔던 G의 편지에 답장을 보냈다.
이 답장이 두 사람을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이제야 무거운 마음 한 조각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작업방의 전화기는 비정상적일 만큼 고요했다.
바르셀로나 시절, 고장 난 수화기를 의심하며 한숨짓던 기억이 떠올랐다.
외국에서야 그렇다 쳐도, 한국으로 돌아와 있는 지금의 침묵은... 기계의 고장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을 찾는 이가 없다는 고독의 증명이었다. 외국에서나 이곳에서나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자 외톨이일 뿐이었다.
부쩍 나빠진 몸 상태 때문에 인야는 이따금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연결된 독일인 피터 씨는 미안한 기색으로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독일로 가져간 그림들에 대한 소식을 기다려왔던 인야는, 연락이 없었던 이유를 짐작하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일요일 밤, 성공과 실패라는 갈림길에서 인야는 실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독일로 건너갔던 자신의 슬라이드 필름과 그림들은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독일인이 굳이 미안하다고 했던 것도, 그리고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한 것도 그들이 시도했던 그 어떤 일도 안 됐다는 말이었고, 그런 인야를 위로하기 위해 억지로 그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게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주변 다른 일들이 다 부정적으로 진행될 때도 내심 이 일만 잘 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끝내 이 일마저 인야의 기대와는 어긋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독일의 화랑가에서 자신의 그림이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인야는 신라 호텔의 화려한 음식 앞에서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다.
서툰 영어로 멕시코 행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그는 눈을 꼭 감았다. 비참함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는 스스로를 이 세상의 패배자라 불렀다.
그러나 비통한 현실을 도망치듯 떠나는 것이라 해도, 그에게는 멕시코라는 미지의 탈출구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야가 세들어 살고 있는 이 집 주인인 ‘항동 할아버지’의 아들이 의사라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주인 영감님이 인야를 잘 보았는지, 그리고 이미 자기 아들과 얘기를 다 해두었던지...
요근래 인야더러 자기 아들 병원에 가서 검강검진을 한 번 종합적으로 받아보라고(무료로) 권해서,
인야는 검진 차 ‘안성’에 갔다.
그 제안을 듣고 처음엔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평소에 영감님(그리고 할머니 역시)이 인야를 아주 호의적으로 보시기에(인야는 오며가며 인사를 드린 것밖에 없는데), 그리고 진실로 인야의 건강을 염려하시며 본인의 자식에게 특별히 일러두기까지 하셨을 터라,
게다가 어머니도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그 병원이 있다는 안성으로 갔던 것이다.
어차피 멕시코로 가더라도, 가기 전에 한 번은 건강을 점검해야 할 테니까.
하룻밤을 입원한 상태로 받았던 병원 검진 결과가 긍정적이라서 마음이 일단 가볍긴 했다.
인야 뱃속의 통증은 여전하지만, 병원에선 큰 일이 아니라고 해서 병원의 말을 믿기로 했던 것이다
날이 조금 쌀쌀해졌다.
가방 하나 둘러 메고 낯선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니, 인야는 마치 어딘가 멀리 떠나는 여행객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자신은 맨날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차피 건강검진을 끝내고는 군산에 한 번 들렀다 돌아갈 계산이었던 터라, ‘평택’으로 갔고... 거기서 ‘군산’에 가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로 떠나기 전에 군산에 가서 작별인사를 할 참이었다.
군산의 형님 역시 인야의 멕시코 행을 만류하고 나섰다.
남들 살아가는 대로 맞춰 살아가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부정했다.
형님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자신의 생을 이제 와서 다른 식으로 맞춰갈 수는 없다고.
군산에서 1주일 정도 지내다 작업방으로 돌아온 그는 이곳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라울에게서 온 편지는 차가운 달빛 아래 따스한 정을 전해주었다.
인야는 주변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우려 섞인 말들이 쏟아졌지만 그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사람들이 새삼 소중해졌고, 가까운 사이인데도 아직 인야의 그림 한 점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다못해 조그만 종이 그림이라도 한 점씩 선물로 남기기 시작했다.
스페인 '살라망까(Salamanca)'에서 귀국했던 K씨가 작업실에 왔다 갔다.
그런데 그는 돌연, 실연했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동안 늘 같이 했던 여자가 갑자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척해진 그의 모습에 인야는 화가 치밀었다. 박사학위를 따고도 시간 강사로 전전하며 결혼의 꿈마저 깨진 K 씨의 처지가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 견딜 수 없었다.
하늘은 그런 착한 사람에게 고통만을 안겨주는 것 같아 인야가,
"이런 걸 보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만약 있다면 아주 불공평한 것 같아요!" 하고 하늘을 원망하자,
'성당에 다니는 그'는, 인야를 나무랐다.
그런 K 씨를 보며, 인야는 그가 자신과는 결이 다른 선한 사람임을 다시금 느꼈다.
스페인에서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항동의 허름한 슬레이트 가옥에 셋방을 얻어 독립한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지나고 있었다.
비록 간이 건물에 가까운 초라한 집이었으나, 갑자기 귀국해 마땅히 갈 곳 없던 인야에게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인야는 오늘 그 집을 떠나 사당동 형님 근처의 다른 셋방으로 이사했다.
호구지책 삼아 하던 '00빌라' 부인들의 미술 수업 일터와 가까워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지만, 이제 인야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겨울이면 뼛속까지 추위가 스미는 이 항동 집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더 고생시켜 드리는 게 늘 죄송했다.
그래서 인야는 비록 자신이 떠날 때까지만의 짧은 기간일지라도,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겨울을 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의 형제들과 상의해 서둘러 이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지난 1년 반의 시간이 결코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허름한 문간방 셋방살이를 시켜드린 불효가 가슴 아팠지만, 어머니와 보낸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단출하고 오붓했다.
다만, 연세가 비슷한 주인집 노부부의 아들은 의사인데, 자신은 이름 없는 가난한 화가로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인야를 늘 괴롭게 했다.
그럼에도 주인인 항동 할아버지 부부와는 참으로 다정하게 지냈다.
동네에선 구두쇠로 소문난 영감님이었으나, 이북 고향을 둔 이의 근면함이 빚어낸 오해일 뿐 인야 모자에게는 참으로 따뜻한 분이었다.
이틀 전에는 아쉬움을 표하며 식사 초대까지 해주었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성당을 함께 다니며 이미 각별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용달차에 이삿짐과 조카를 먼저 실어 보낸 뒤, 인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어머니를 모시고 택시에 올랐다.
길모퉁이를 돌아가며 뒤를 돌아보자, 여전히 대문 앞에 서서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정경은 인야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새로 옮긴 사당동의 방은 항동의 두 칸짜리보다 좁은 단칸방이었다.
어머니가 장남인 형님 댁보다 자신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머니와 한방에서 지내야 하는 미안함은 여전했다.
그래도 더 추워지기 전에 이사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떠날 준비를 하나 더 끝냈다는 후련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사 후, 추질추질 비가 내렸다.
화선지를 사러 나간 안국동 길에는 비에 젖어 떨어진 노란 은행잎들이 길바닥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풍경만큼이나 인야의 마음도 젖어 들었다.
그는 곧장 항동의 작업방으로 돌아와 남은 잡다한 일들을 정리했다.
그날 밤은 이곳 작업방에서 눈을 붙일 터였다. 다음날이 될지 다다음날이 될지 모르지만, 곧 인야는 어머니가 기다리는 사당동의 좁은 셋방으로 아주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독일인 부부가 인야의 방을 방문하기로 했던 날, 차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그들은 대신 인야를 장충동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인야는 곧장 식탁에 앉게 되었는데, 그때 미소를 머금은 피터 씨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인야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나지막이 외마디 감탄사를 뱉었다.
“아!”
일전에 팔렸던 ‘목련’이 걸려 있던 자리에, 이번에는 인야의 자화상 두 점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얀 액자에 정갈하게 끼워진 채였다.
인야는 한동안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액자라는 옷을 입은 그림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집 곳곳에는 팔려나간 그의 자화상 네 점이 제각기 액자에 담겨 붙어 있었다.
순간, 인야의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저런 작품들을 헐값에 팔아치우다니!’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액자 없이 종이 상태로 넘겼던 그림들이 제 짝을 찾은 듯 당당하게 빛나는 모습에 그는 도무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럴까’ 싶을 정도였지만, 인야는 감탄 섞인 눈으로 한참이나 자기 작품들을 응시했다.
피터씨와의 그림 거래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투명인간 식의 자화상’만은 끝내 팔기를 거부했다. 독일 전시가 무산된 마당에 그 그림까지 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차선책으로 20호 유화인 ‘평면식 자화상’에 미련을 보였고, 일단 집으로 가져가 벽에 걸어보고 결정하기로 한 상태였다.
인야는 지난번 그림값을 500으로 제시했었으나, 오늘 식사 자리에서는 더 이상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는 입장에서는 비싸다 느낄 법한 눈치였지만, 인야에게는 그마저도 헐값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처분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들은 부부끼리 상의를 마친 뒤 다음 일요일에 인야를 다시 찾겠다고 했다.
그림을 사기로 결정하면 대금을 바로 송금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돌아오는 길에 그림을 실어올 터였다.
인야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멕시코 행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그림이 반드시 팔려야만 했다.
그런데 독일인 부인은 식사 도중 또다시 영국 화가 ‘데이빗 호크니’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작정한 듯 책 한 권과 잡지를 챙겨와 인야에게 선물로 건네며 물었다.
“인야, 당신 그림이 데이빗 호크니와 뭔가 비슷한 것 같지 않나요?”
“그런가요?”
인야는 어색하게 웃어 넘기려 했으나 부인은 진지했다.
“내가 보기엔 두 화가 사이에 상당히 가까운 점이 느껴진단 말이에요.”
인야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순수한 칭찬인지, 아니면 자신의 그림이 개성 없는 아류로 보인다는 뜻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호크니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부인의 말은 그냥 흘려듣기엔 뼈가 있었다.
결코 모방한 적이 없는데 결과물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즐거움보다는 묘한 불쾌감을 남겼다.
프란시스 베이컨과 일맥상통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었는데......
거장들의 그림과 비슷하다는 것은, 대중들이 인야의 그림을 보고 그저 ‘누구 류’의 그림이라 치부해버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야는 스스로 떳떳했으나, 세상이 자신을 ‘모방이나 하는 화가’로 낙인찍을까 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부부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인야의 그림을 사 모으고 있었고, 지금도 자화상을 두고 흥정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어찌 됐든 이 그림이라도 팔려야 멕시코 행이 탄력을 받을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어머니께서도 다소 안심하고... 아들을 먼 길로 보내실 수 있을 것이기에 인야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어느 하루, 인야의 옛 직장 동료(교사)들 넷이 항동에 와서 놀다 갔는데, 그들은 인야의 멕시코행에 대해,
“왜 가느냐?” “가면, 묵을 곳은 있느냐?” “뭐 해서 먹고 살 거냐?” 하는 질문들을 퍼부어 댔다.
인야의 입장에서는, 그런 원론적인 물음엔 특히 대답하기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간다는 생각 뿐, 구체적으로 준비된 건 하나도 없는 막연한 상태였으니까.
다만,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인 그런 일에, 인야 자신은 크게 겁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미덥지도 못하고 또 우습기까지 했지만......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차로 같이 시내로 나갔다가, 인야는 사당동에 들러 어머니와 하룻밤을 자고 다시 또 도심에서 이것저것 일을 한 뒤 작업방에 돌아왔다.
그리고 멍- 하니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자정 가까이에 옷을 훌훌 벗고 비쩍 곯은 자신의 몸을 그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