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왕으로부터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그리고 요아스 왕까지의 이야기이다.
여전히 흥미롭고 생각해 볼 소재들이 많다.
이전 본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을 누리던 여호사밧 왕이
불순한 이스라엘 왕과 손을 잡는 범죄에 연루되고,
선한 예언자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뜻마저
흘려버리면서 균열이 생기는 대목을 보았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 왕은 죽임을 당했지만,
같은 일을 했던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살려 두셨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에게 돌이킬 ‘가능성’을 보신 것 같다.
실제로 이후 여호사밧은 각성하여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변의 제반 일들을 하나님 안에서 바로 세우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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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늘 내가 주의 깊게 보는 부분이다.
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여호람이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너무나 명확하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
이 단정은 단지 한 순간의 평가가 아닐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어진 인생 전체의 결론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가깝다.
여호람은 단순히 몇 번의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죽이고, 우상숭배로 나라를 무너뜨리며,
끝내 하나님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미래형)을
하나님이 보신 것이다.
그 삶의 총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여
‘악하다’라고 단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단정!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분명 시대는 달라졌다.
십자가 이후의 시대는
심판 이전까지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려 있고,
기회가 계속 주어지며,
돌이킬 여지가 끝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정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 측면도 있다.
과정은 극도로 넓어졌다.
그러나 결론은 여전히 분명하다.
하나님은 지금도
끝까지 기다리시고, 설득하시고, 품으시지만,
결국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마지막에는 단정하신다.
심판은 그 단정이 드러나는 공식적인 순간이다.
십자가는
심판을 없앤 사건이 아니라,
심판 이전의 길을 완전히 열어놓은 사건이다.
그래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기회가 많아진 시대이지,
결론이 흐려진 시대가 아니다.
끝까지 열려 있는 은혜 앞에서
끝내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인생을 규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끝까지 품으시지만,
끝내는 단정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