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능엄경 강해] 4. 마음이 몸 안에 있다?
4. 마음
〈원문〉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음은 모두 몸속에 있으며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은 부처님 얼굴에 있습니다. 저의 부근사진(浮根四塵)은 제 얼굴에 있으니 이처럼 인식하는 마음은 실로 몸속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서 기타숲을 보나니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강당은 급고독원에 있고 기타숲은 강당 밖에 있습니다.”
“네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 먼저 무엇을 보느냐?”
“먼저 여래를 보고 다음에 대중을 보고 밖으로 내다보아야 기타숲과 급고독원을 봅니다.”
그때 부처님이 금색의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고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대불정수능엄왕이란 삼마제가 있다. 만행을 갖추고 있으며, 시방의 여래가 한 문으로 나와서 미묘하게 장엄하는 길이니 잘 들으라. 네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 창문을 통하여 기타숲과 급고독원을 본다 하니 누구든지 강당 안에 있으면서 안에 있는 여래를 보지 못하고 밖을 보는 이가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강당 안에 있으면서 안에 있는 여래는 보지 못하면서 기타숲이나 샘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난아, 너도 그러하니라 너의 신령한 마음이 온갖 것을 아는데 이 아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면 몸속의 것을 먼저 보아야 할 텐데, 어떤 중생이 먼저 몸속을 보고 나중에 밖을 보는 이가 있느냐?”
〈강해〉
불교 수행을 마음 찾는 공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는다(以心修心)”고 보조국사의 어록에도 있다. 마음이 어디 있느냐는 부처님의 물음에 아난이 몸속에 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부근사진(浮根四塵)이란 색향미촉(色香味觸)의 사진인데 눈, 코, 혀, 몸의 촉감을 통해 상대하는 경계를 말하는 것으로 눈이 얼굴에 있다는 말이다. 부처님과 아난이 급고독원 강당에서 묻고 답한다. 강당 밖으로 기타숲이 보이고 경내의 풍경이 보인다. 쉽게 말해 방안에서 방밖의 것을 보느냐고 물은 것이다. 이렇게 물은 것은 마음이 몸속에 있다면 왜 몸속을 보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방 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방 밖의 것만 볼 수 없듯이 마음이 몸속에 있다면 몸속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하는 아난의 말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 버리는 내용이다. “마음은 있는 곳이 없다(心無方所)”는 말이 있고 “마음은 없는 곳이 없다(心有一切處)”는 말도 있다. 마음 그 자체는 물리적인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것도 아니다. 달리 말해 시간적인 것도 아니고 공간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정한 처소가 없고 시각이 없다. 시공을 초월한 것이므로 있고 없고 유무(有無)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든 시간과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다. 있다고 보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보면 없는 것이다.
불교의 논리를 세울 때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 없는 것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관점이 있다. 유(有), 무(無), 비유비무(非有非無)인데 이것을 종(宗)으로 법을 설할 때는 상종(相宗), 공종(空宗), 성종(性宗)이라 한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대불정수능엄왕’이라는 삼마제를 소개한다. 삼마제(三摩提)는 일반적으로 삼매(三昧)라고 하는 것인데 samadhi의 음사어로 삼마지(三摩地)라고도 표기한다. 사마타, 삼마발제, 선나라고 원각경에서 말하는 삼관(三觀)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 삼마제다. 이 삼마제를 대불정수능엄왕이라고 이름한 것은 가장 높고 큰 선정법임을 나타내는 말로 부처님 정수리가 워낙 높아 사천왕까지 올라가서도 보지 못했다는 설화에서 비유를 들어 말한 것이다. 모든 보살들의 만행이 이 삼마제에 들어 있으며 시방 여래가 이것으로 인해 생사를 뛰어넘어 미묘하게 장엄하는 것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