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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의 기원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대답이 있다. 하나는 창조론 이고 또 하나는 진화론이다. 사람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의 기원부터 알아야 하겠다. 1. 생명의 기원 옛날 사람들은 대체로 造物主가 생명을 만들었다는 막연한 원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옛날부터 모든 생물들이 저절로 생긴 것이라는 자연발생설을 믿고 있었다. 먼지나 진흙이나 썩은 물질에서 벌레나 곤충이 나오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발생설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석학이 자연발생설을 주장했으니 감히 반대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박물학자이며 진화론의 시조인 뷔퐁(1707-1788)은 약 2만년 전에 원시 바다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우연히 생겨나서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그후 동식물 학자 라마르크(1744-1829)의 「동물 철학」이나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도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기초로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세균학자인 파스퇴르(1822-1895)는 공기 중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을 발견해서 벌레나 곤충 등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실험을 통해서 증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생명은 오직 생명에서만 생겨났다」는 주장을 함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정면으로 공박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세상에는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2. 사람의 기원 첫째로, 사람이 원숭이의 후손이냐? 하나님의 자녀냐? 하는 문제를 놓고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간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만약에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인간은 짐승에 불과하며, 가정은 작은 동물원과 같고, 이 세상은 거대한 동물원과 같다. 그래서 약육강식의 원리를 따라 상대방을 잡아먹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과 자연도태라고 하는 동물적인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 사상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가 필요 없고, 진선미를 추구하는 문화생활도 필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다윈의 진화론 위에 세워진 인류 문명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의 허구성과 거짓됨이 만천하에 속속 증명됨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이것을 바로 고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당장 무너뜨리면 현대 사회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 중에서 소진화(小進化)는 인정하되, 대진화(大進化)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소진화는 같은 種안에서는 진보라는 개념은 발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진화는 種에서 種에로의 탈바꿈도 뜻하는 것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개들 중에 여러 종류가 있고, 소중에서 여러 종류가 생기지마는 개가 소가 되고 소가 개가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대진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먼지에서부터 우연히 자연 발생한 생명체가 진화해서 된 존재라고 하는 진화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둘째로, 사람은 창조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사람의 기원에 대한 근거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생명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특별히 사람을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26-27, 2:7). 즉 성경에서는 ①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것과 생명은 생명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②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전에 계획하셨다는 것과 ③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닮게 지으셨다는 것과 ④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3. 하나님의 형상 1.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성경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중요한 기록들이 많다(창 1:26,27 9:6 고전 11:7 약 3:9 골 3:10). 특별히 창 1:26에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누구누구이며 [형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복수로 나타낸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서로 서로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되어 계신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존엄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을 택할 때 복수를 사용하는 히브리인들의 언어 관습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일컫는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성, 자유, 사랑을 말하는 능력, 양심, 판단력, 정의감, 용기, 선함 등등을 말한다. 최근의 신학자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의 관계]로 혼연일체가 되셔서 존재하심과 같이 인간도 사랑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등 세 가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관계가 사랑으로 유지되면 번영과 행복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하며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나 종래 이 세 가지 사랑의 관계를 바로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실낙원이라는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2. 타락한 인간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 그렇다면 타락 이후의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졌을까? 아니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을까? 조금 남아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자연 은사(이성, 양심, 분별력, 정의감, 사랑, 용기 등)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반해 초자연 은사(神知識 神意順從 영생 얻을 가능성등)만 상실했다고 한다. 둘째로, 개혁 교회는 대체로 사람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고 본다. 마르틴 루터와 그의 제자들은 전적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요한 칼빈과 그의 제자들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의 형상]이 거의 파괴되었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형상의 조각이 남아 있어서, 거기서 하나님의 지식이나 영광이 나타나며 그것이 또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죄를 통해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창9:6 고전11:7 약3:9). 셋째로, 최근의 신학자들이 [관계]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을 보면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됨으로써 모든 관계가 잘못되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곧 낙원에서의 추방이요 온 인류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관계가 끊어지거나 잘못되면 불행이 따른다고 한다. 신인 관계가 잘못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계는 맺고 있기는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고 아우를 죽인 카인에게 표를 주셔서 생명을 보존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카인 속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정하시고 아무도 카인을 죽이거나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 [사랑의 관계]이든 [미움의 관계]이든 아직도 관계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리해 보면 ①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다. ② 인간은 타락하여 신의 형상을 거의 잃고 말았다. ③ 아직도 남아 있는 신의 형상만으로도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존귀하다. ④ 그러므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짓밟아서는 안된다. 인간을 짓밟는 행위는 하나님께 그같이 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4. 罪에 대하여 1. 죄의 개념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나쁜 짓을 많이 하길래 항상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며 울고, 만나기만 하면 회개하라고 다그치는 것일까? 기분이 나빠서 교회에 나가기가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죄]에 대한 개념과,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죄]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면 법률을 위반했다던가 윤리, 도덕상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죄]를 범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에서의 [죄]개념은 그 종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자주 말하는 [죄]의 뜻은 무엇인가? 구약과 신약에서 [죄]라는 뜻으로 쓰여진 단어는 여럿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하말티아]라는 히브리말이다. [하말티아]라는 말은 활을 쏘아서 과녁을 적중시키지 못하고 빗나갔다는 뜻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신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인간이 신의 뜻을 반역하는 일, 그 다음에는 악을 행하는 일 등을 [죄]라고 했다. 영어 성경에는 [죄](sin), [죄과](罪過)(transgression), [허물](iniquity), [범죄](fault)등으로 달리 구분해서 쓴다. 마음이 머물러 있는 악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나쁜 행위, 그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들 등이 모두 [죄]라는 말로 표현된다. 2. [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첫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다 선하였다(창1:31). 그러므로 죄의 기원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천사들 가운데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자들이 있어서(유 1:6) 그 천사들이 타락하여 악한 세력이 되었고, 그 타락한 천사가 인간을 유혹해서 사람이 범죄 하게 되었다고 하나, 이것 역시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천사에게 전가시키는 경우가 된다. 셋째, 우리는 죄의 기원을 하나님에게나 천사에게서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죄의 근원]은 인간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이 범죄한 것은 아담과 하와의 자발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인간이 범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이라는 말은 창조주가 아니라는 뜻이요 [피조물]은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상대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의 죄는 바로 인간의 [불 완전성]에서 나온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인간이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완전한 존재 인양 착각하여 창조주와 같아지려고 한 것이 죄의 근본이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피조된 인간이 창조주와 같아지고자 한 행동이었다.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자신에게나 모든 피조계에 불행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3.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 죄는 피조물의 불완전성에서 파행된 곰팡이와 같은 것이며,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인 자신의 자유의지를 남용한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망각하고 창조주만이 앉을 수 있는 우주 만물의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고 한 노력이 곧 죄가 되는 것이다. 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①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교만]과 ② 피조물이 창조주의 통치를 거부하는 [불순종]과 ③ 자식이 아버지를 불신하는 [불신앙]을 뜻한다. 인간이 신을 거부하고,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선언한 아담과 하와의 행위야말로 죄악의 기원이 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피하여 굴레 벗은 야생마처럼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의 욕망을 아무도 다스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 욕망이 안으로는 부패를, 밖으로는 갈등과 전쟁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 사람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고 개인과 인류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5. 원죄(原罪)에 대하여 1. 원죄(原罪)란 무엇인가 ? 원죄(原罪)라는 말은 인간의 처음 조상 아담의 범죄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기독교적 죄관(罪觀)이다. 원죄에 대한 사상은 구약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사상(창 6:5, 시 53:3, 사 53:6, 시130:3, 시143:2) 즉 죄의 보편성에 대한 내용이 그것이며, 모태에서부터 죄를 얻었다는 사상도 있다(시51:5). 그러나 이 원죄 사상이 본격적으로 정립된 것은 사도 바울에게서 부터이다. 바울은 한 사람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한다(롬 5:12-21). 바울에서 태동된 원죄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신학적으로 확립되었다. 2. 원죄라는 말의 문자적 뜻은 [죄의 원뿌리]라는 뜻 죄의 원뿌리가 무엇이며 그리고, 그 아담의 죄가 어떻게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선 대체로 인간이 가진 [자유의 남용]에서 죄의 원뿌리를 찾는다. 인간은 어떻게 그 고귀한 자유를 남용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였다. 자유는 그래야만 참 자유이다. 그 자유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었을 정도로 완벽한 것이었다고 본다. 이 [자유]를 남용했다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었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선택을 통해서 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자유] 자체가 죄의 원뿌리가 아니고 그 [자유의 남용]이 죄의 원뿌리이다. 인간이 왜 그 자유를 남용할 수밖에 없었는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간의 불 완전성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원죄는 인간 자체의 불완전성과 그 불완전성에서 발생하는 죄된 성품을 말한다. 원죄 교리를 통해서 가르치려는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은 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과, 인간은 죄를 피해서 살 수 없다는 것과, 죄는 사회성과 연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3. 죄가 어떻게 전해져 내려왔는가 ? 고대 신학자들(이레나에우스, 터툴리아누스)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막연히 바울의 원죄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아우그스티누스는 아담의 죄가 인간의 정욕(특별히 性慾)을 통해서 임신과 분만의 방법으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이와같이 죄의 유전성(遺傳性)과 모방성(模倣性) 등이 있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러한 이론보다는 인간 존재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며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담의 죄가 생물학적인 유전법칙과 같이 후손들에게 전해져서 우리 모두가 원죄를 타고났다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인간 존재 자체가 죄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부패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 것이다 더욱 옳다고 본다. 4. 원죄와 자범죄 인간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본성을 원죄라고 말한다면 어떤 죄의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원죄(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이 결과로 나오는 죄의 행동을 자범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기 때문에 죄인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원죄와 범죄의 관계를 설명한다. 원죄는 모든 사람이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인간은 스스로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으며,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죄에 대한 형벌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6.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存在) 이와 같은 인간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 온갖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노력이 있었고 의학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죄와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다. 1. 罪와 罰 7. 총체적(總體的) 인간 인간은 개인이면서도 사회인이요, 영적인 존재이면서도 육신을 가지고 사는 존재이다. 우리 인류는 기나긴 역사의 여정을 탐구해 왔지만 인간 스스로가 풀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어 생각하는 二分法과, 靈과 魂과 肉으로 나누는 三分法이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영과 육을 억지로 나누지 말고 통일체로 보자는 총체적 인간이해론이 있다. 우리가 사물을 연구할 때 분석적인 방법도 있지만 종합하는 방법도 있다. 지나치게 분석하다가 보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때도 있다. 특별히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분석적인 태도보다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욱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창1:28)는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자료가 창세기 2장 7절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생명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육체와 영]을 지으셨다는 것을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을 [영]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힘을 [육체와 영]에 함께 주심으로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히브리인들은 [영과 육]을 나누지 않고, 전인적으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영과 육은 분리될 수 없고 서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이다. 육이 없는 영은 생각할 수 없고 영이 없는 육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범해 온 오류 중에 육신을 저급하고 죄악된 것으로, 영혼은 고결하고 거룩한 것으로 생각해 온 전통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성서적인 것이라기 보다, 이교 적인 요소가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것일 뿐이다. 사람이 죄를 범한다고 할 때 육체만이 죄를 범하거나 육체만이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육체보다는 오히려 [마음]에서 일만 악한 생각이 나오고, 그 생각이 죄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육체는 어떤 의미에서 중성적이다. 고대로 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간 이해를 쉽게 돕는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기본 구성 요소를 [영혼과 육신]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거나 [영과 혼과 몸]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따로 따로 나누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고, 이어서 향락주의나, 고행 주의가 다시 나올 수도 있으며 영혼 지상 주의의 신비주의가 성행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였다는 말씀 안에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똑같이 포함되어 있다. 영혼이나 정신이나 마음이나 육신이 구별되기는 하지만 이 모든 표현들은 全人的 표현이지, 인간의 구성 요소를 나누겠다는 의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명기 6장 5절 말씀이나, 마태복음 22장 37절 말씀이나,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모든 표현들이 인간의 구성 요소를 구분할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 또는 [영과 혼과 몸]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전 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함께 구원하신다. 이 세상을 다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영과 육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는 인간,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인간, 땅위에 살면서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시간 속에 살면서도 영원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8.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救援 1.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구원]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족할 만한 상태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고침을 받는 것, 가난하게 살다가 부유해지는 것, 속박의 상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포로 중에서의 석방, 전쟁의 참화 속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 파멸의 위기에서의 재건, 죽음의 자리에서의 구출 받음, 좁은 길이 넓어지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의미하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류나 모든 피조물을 창조 당시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에는 [회복]의 의미와 [완성]의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2. 구원받아야 할 세상인가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형편은 어떠한가? 만족할 만큼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겠는가? 병든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만사가 파멸의 길을 달리고 있다. 인간들에 의해서 오염되고 훼손되어 자연까지도 신음하며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3. 누가 구원할 것인가 ? [구원의 주체가 누구냐]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 첫째, 인간 자신이 노력해서 인류나 세상을 구원해 나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무신론적인 인간중심주의에서 나오는 사항이다.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며 역사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으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능력도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인간을 낙관적으로 보면서 유토피아 건설을 꿈꾸고 있다. 둘째, 인간과 神이 함께 구원을 성취해 나간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자보다는 신앙적이다. 인간이 유한하므로 절대자와 함께 손을 잡고 인간의 유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스스로가 구원을 위한 능력의 절반 정도는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구원의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종교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일부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셋째,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서적이며 전통적인 개신교회의 입장이다.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졌고 불행을 자초했으며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죄 아래 있는 인간, 죄 가운데 있는 인간 스스로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에서 구원의 손길을 펴실 때에만 인류의 구원이 가능한 것이다. 누가 구원하는가 ? 이 물음에는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4.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 (구원의 범위) 구원받을 대상과 범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우주 만물과 인류 전체이다. 그러나 그 범위와 수가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원의 범위나 조건이 있다고 한다면 [믿는 자 마다](요3:16) 라는 [믿음]이 될 것이다.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반성하신다 든지, 창조의 상태로 회복하신다는 개념에서 볼 때 구태여 그 범위와 숫자를 제한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창조 질서의 회복을 통해서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는 개인에게서 출발해서 가정과 사회와 자연계 전체를 포함하여 이 땅과 저 하늘과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완성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초점을 한 인간에게 맞추고 계시며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이 인류 구원의 근본이요 시작이요 완성에의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9. 그리스도 안에 창조된 새 사람 1.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새 사람 만들기 계획(구원 계획)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동기가 된다(요 3:16). 인간의 비참함이 하나님의 긍휼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하나님의 인류 구원계획이 세워졌다(출 3:7-10).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입혀 주시고(창 3:21), 살인한 가인에게도 보호의 표로 구원을 약속하셨고(창 4:15),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실 때 방주를 예비해 주셔서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무지개로 구원을 약속하셨다(창 9:8-17).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약을 맺으사 그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나와서 인류를 구원하게 된다고 하셨다(창 12:1-3, 26:3-5, 28:13-15).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출애급 사건은 인류 구원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 유월절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이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2. 구원의 수행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창세기 벽두에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진행되어 오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수행자를 보내신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인류 구원의 대업을 완성하셨다. 성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선포하셨고(요 14:6),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제물로 오셨다](막 10:45)고 증거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해를 이루시고 끊어진 다리를 다시 연결시키사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3. 성령의 구원 역사 성령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실제적으로 활동하신다. 완악한 인간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역사 하신다(롬 8:15-17). 성령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그의 사역을 통하여 2천여년 전에 이루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현재화시키신다.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평안을 누리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4.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인간의 응답 신앙이란 무엇인가? [믿고 맡긴다] [신뢰한다] [의탁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그의 약속을 지킬 만큼 신실하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탄생과, 고난 당하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과 심판 주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이다. 특별히 그의 피의 공효를 믿으며 죄사함을 믿고 영생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롬 1:17). 5. 새로 지음 받은 새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라고 했으며, 거듭난 이 새 사람은 의롭다 함을 받은 자요 거룩하여 지는 사람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증거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새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힘있게 일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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