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1
1984년 4월 21일 - "초라하게 맡겨진 내 두 주먹. 그리곤 어둠. 칠흙 같은…"
빛.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러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익숙함…그래,
링 위의 조명은 그렇게 나를 비추었지. 가끔 링 위에서 쓰러질 때, 그땐 나는 저런
빛을 볼 수 있었어. 수 십개의 백열등이 하나의 빛이 되어 나의 눈을 찌르고, 그리고
나는 곧 일어섰어. 그런데 지금 나에게 비취는 이 빛은 무엇일까. 마치 나를 벌거벗
기려 듯 달려드는 수 많은 하얀 불빛……수 십대의 경찰차가 나를 에워싸고 나에게
수많은 조명을 비춘다. 힘들게 눈을 뜨는 수간 엄청난 거구의 경찰이 내게 달려들어
와 내 손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운다. 챔프의 영광을 누렸던 나의 손은 그렇게 초라
하게 맡겨진 채 주먹을 쥘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곧 칠흙 같은 어둠은 나를 삼키고……
독백 2
1979년 6월 23일- "세상은 노을에 물든 빨간 바다처럼 붉게 물들어만 가고 있었다"
불꽃인가……내가 보고 있는 것은 불꽃인가……눈을 떠도 보이는 것은 온통 붉은 색
뿐이었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나는 타 들어가고 있는가……그래, 불꽃이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뜨겁기만 했던 나의 갈증을, 타는 목마름을.
붉은 피사이로 상대방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인다. 눈을 뜰 수가 없다. 아니 눈은
떠있지만, 내 눈을 덮으며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지금은 시계 제로. 그래, 나는 지금
눈을 감고 링 위에 서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먹이를 찾은 맹수처럼 달려드는 도전자
가 서 있다. 묵직한 주먹이 또 내 눈을 향해 들어왔다. 찢긴 곳이 또 찢겨서 이제 그
살 안으로 주먹이 파고들어올 것 같다. 피는 하염없이 흐른다. 다시 칼날 같은 주먹
이 쉴 새 없이 나의 눈과 복부를 때렸다……흐르는 피 사이로 나는 보았다. 나를 밟
아야만 한다는 절박한 슬픈 도전자의 눈빛. 그 뒤로 보이는 내게 손가락질 하며 야유
하는 관중들. 그들의 차가운 눈빛. 그래, 난 챔피언을 향해 달릴 때부터 이런 허무함
을 느꼈었다. 예상했던 바…… 이제 떠날 때가 온 것일까? 아, 아버지가 보고싶다.
독백 3
1977년 11월 26일 - "이 영화의 각본은 누가 쓴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로 예상은 했었다. 수 많은 꽃가루와 풍선. 3년 전 공
항 활주로까지 나온 인파에는 못 미쳤지만 뜨거움은 그때보다 더 했다. 만나는 사람
마다 나의 이름을 외치고 악수를 청하고 기뻐했다. 나의 경기 장면은 일주일이 넘도
록 TV 프로그램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4전 5기… 나의 그 경기를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것은 어떤 감독에 의해서 연출된 영화라는 것이다. 난 누군가에 의해
열심히 acting을 했고, 난 그 분의 연출대로 극적인 효과를 남긴 채 영화를 마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이것은 영화의 결말 부분이 아닌 듯 하다. 오히려 시작인 것
같다… 영화의 도입 부문…이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아버지…두렵습니다……
누가 불꽃을 얘기하는가.
홍수환. 그는 불꽃이었다. 1970년대의 초라한 대한민국의 화려한 불꽃이었다. 그의
불꽃의 화염은 짧았지만 그 섬광은 아직도 남아있다. 강렬한 불꽃은 뜨겁게 타오르다
사라져도 그 섬광은 망막에 남아 있는 법. 초라했던 우리의 1970년대. 그 시절 그를
보았던 대한 민국 국민의 망막에는 아직도 힘차게 타오르던 그의 불꽃의 잔상이 맺혀
있으며, 그 아름다운 시절 그를 느꼈던 대한 민국 국민의 가슴에는 그의 불꽃에 데인
화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누가 승리를 얘기 하는가.
홍수환. Champion. 세계 챔프. 그의 나이 24살. 아프리카의 끝. 남아프리카 공화국까
지 외롭게 찾아갔다. 그리고 링 위에서 누구나 절대 강자라고 인정했던 세계 챔프를
4번 다운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 챔프가 되었다. 이것이 행운이라고, 단지 운이
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사람들의 말처럼 그는 곧 챔프의 자리를 내어 주었고, 3년
뒤. 또 혼자 아메리카 대륙. 파나마로 외롭게 찾아갔다. 그리고 링 위에서 3년 전,
쓰러진 챔프처럼 4번 다운을 당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 4번의 다운이 불운이라고 말
해주지 않을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 불꽃 처럼, 허리케인 처럼, 타오
르며, 몰아치며, 상대방을 캔버스에 눕혔다. 다시 찾은 챔피언 타이틀. 그의 승리는
그렇게 극적이었고 항상 화려한 드라마였다. 그는 1970년대 대한민국 국민이 자랑스
럽게 흔들었던 승리의 깃발이었다.
누가 패배를 얘기하는가
홍수환. 전직 세계 챔프. 택시 운전사. 마약 딜러 누명. 접시 닦이, 신발 장사, 폭력
연계 해결사 누명… …그는 전직 세계 챔프가 겪을 수 없는 낮은 바닥 까지 미끄러졌
었다. 아니, 일반 사람들이 겪기에도 힘든 비탈길의 벼랑 밑으로 떨어졌다. Loser…
그의 승리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이제 열광하듯이 그를 비난 했다. 정상에 올라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의 열등감의 발로인가. 정상에서 내려온 그의 몰락에 모든 사람들은
잔인한 비판과 손가락질로 그를 후려쳤으며 쓰러져있는 그에게도 거친 발길질을 해대
었다. 그는 쓰디 쓴 패배의 블랙 홀에 빠졌던 잊혀진 챔프였다.
누가 홍수환을 얘기하는가.
우리는 홍수환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창조해 낸 극적 승리의 희열의 한 조각과 그가 겪은 실
패의 껍데기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승리까지 그가 걸어온 길과, 패배까지 그가 겪어
온 필연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그 영광의 승리를 쟁취했는
지, 그가 어떻게 그 좌절을 극복했는지, 그의 목마름의 근원은 어디이고, 그의 오아
시스는 어디였는지, 우리는 너무도 몰랐다. 우리는 너무도 무관심했다. 우리가 알기
원했던 것은 단지 그가 만들어낸 승리의 쾌락이었을 뿐 승리에 이를 때까지 그가 겪
은 인내와 고난은 아니었다. 우리가 알기 원했던 것은 단지 그가 빠져버린 실패의 반
전이었을 뿐 실패에 빠질 때까지 그가 겪게 된 필연과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는 '과
정'을 모른 채 그의 승리를 즐겼고, '상황'을 모른 채 그의 패배를 웃었다. 과정을
모른 채 우리가 즐겼던 그의 승리는 진정한 그 가치가 '과소' 되었고 상황을 모른 채
우리가 즐겼던 그의 패배는 그 사실이 '과장' 되었다.
맞으면서도 이기는 것 같았고 패배도 승리처럼 화려했던 챔프, 홍수환.
초라했던 그 시절,우리의 좁은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뜨거운 화상을 남긴 불꽃 홍수환.
이제 우리는 알고 싶다. 그의 승리까지의 숨겨진 고난과 인내, 그리고 그의 패배에
얽힌 수많은 날조와 과장들. 그의 꿈. 그리고 그의 끝나지 않은 승부를.
대한 민국 야성의 흔적. 홍수환. 그가 링 위에 다시 오르고 있다.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홍 수환의 4전 5기
국내 총 생산(GDP)이 불과 370억에 머무르던 1977년 한국.
그 시절 우리는 참으로 왜소했다. 몸도 작기만 헀고 마음도 유약했다. 그때 그 시절
울 아버지의 일상은 너무도 조용했다. 꿈을 꾸기엔 주위를 에워싼 장벽들이 너무도
많았다.모두들 유신의 통치권에 짓눌려 목소리 볼륨을 MIN으로 줄이며 살았다. 예나
그때나 통치권은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었고, 우리들의 행복은 우리들 일상에서 스스
로 만들어 내었다. 우리들 행복의 연기는, 가족이 둘러 앉은 저녁의 식탁, 늦은 겨울
밤 아랫목에 둘러쌓고 앉아 나누는 대화, 함께 웃으며 울며 넋 놓고 보았던 TV 연속
극, 그리고 가슴 치며 주먹을 쥐고, 소리지르며 박수 쳤던 스포츠 중계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세계' 무대라는 것이 왠지 낯설고 두렵게 느껴질 때, 우리가 '세계 무대를 평정' 했
다는 소식은 우리들의 촛첨 없는 눈동자를 또렷하게 했고, 늘어진 어깨의 근육을 강
하게 해주는 일상의 스테로이드였다. 세계 기능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한국 청년 음
악가의 세계 무대 데뷔 등 세계를 향한 많은 우리의 쾌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직접 느끼고 직접 흥분할 수 있는 희열의 체감도가 가장 높은 것은 '스포츠
경기'였다. 스포츠 경기는 항상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되어,
직접 코트 위에서, 링 위에서, 트랙 위에서 선수들과 같이 뛰는 마음으로 함께 승리
를 기뻐하였고 함께 패배를 슬퍼하였다.
'세계 챔피언'
그때 그 시절 이 말 만큼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우리들을 꿈꾸게 했던 말이 있
었는가. 지친 일상 속 어느 날, 우리처럼 왜소한 우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장면을 볼 때면, 그 날 만큼은 울 아버지와 형들은 예의 좁았던 어깨를 떡 벌리며 버
스 안에서, 택시 안에서, 안방에서, 자신의 경험담 처럼 '세계 챔피언'의 활약을 목
에 힘 주며 얘기 했다. 세계 타이틀 경기가 생중계 될 때면 모든 국민의 시선은 TV
수상기로 향했다. 거리는한산했으며 버스, 택시 조차 거리에 세워진 채 모두 들 집으
로, 인근 다방으로, 식당으로 모여서 목이 터져라 고함 치며 우리의 아들을, 우리의
동생을, 우리의 형들을 응원하였다. 하나의 경기에 온 국민의 시선이 그렇게 집중되
었던 것 만큼 그 경기의 승패가 가져다 주는 의미는 너무나 컸다. 승리의 희열이 컸
던 만큼 패배가 가져다 주는 실망도 너무나 컸다.
1977년. 늦가을. 11월 26일. 일요일 오후.
온 국민은 TV에 모여 앉았다. 일주일 전엔 승리를 확신했던 세계 타이틀 매치에서 우
리의 김 태호 선수가 허무하게 무너졌던 패배의 아픔을 맛 보았지만, 다시 모두 TV
앞에 모여 앉았다. 상대방 선수가 너무나 강한 것을 알면서도, 그때 우리는 뜨거운
'기대'를 갖고 다시 한번 모두 모였다. 그리고 4번의 다운……
그가 쓰러질 때, TV 앞에 모인 우리 모두는 함께 쓰러졌다. 그가 턱을 얻어 맞고 괴
로워 할 때, TV 앞에 모인 우리 모두 괴로워 했다. 두번, 세번. 그가 쓰러질 때마다
우리는 모두 쓰러졌다. 그리고 4번째 다운……이제 우리 모두는 쓰러진 채 일어나지
않았다. 포기했다. 체념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혼자 다시 일어났다. 온 국민은 쓰러진 채 경기를 포기했지만, 그
는 혼자 외롭게 일어섰다. 그리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며 외치듯 고함 치듯 주먹
을 뻗었다. 우리 모두 그만 두자고 그대로 쓰러져 있을 대 그는 혼자 일어나 불꽃처
럼 타올랐다. 우리는 그의 승리에 당황했다. 갑자기 링 위에 곱게 누워버린 그토록
강했던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잠시 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두 손을
번쩍 들고 링 위를 포효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 모두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때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패배의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섰을 때의 희열을. 그
리고 믿을 수 있었다.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능력을……
언제 우리가 이렇게 또 다시 모여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그 어떤 의식 개혁
운동도 이렇게 극적으로 단시간에 모든 국민에게 이처럼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었다. 수 십년 동안 수많은 사회 운동을 통하여 '새마을'을 강조 하였고 할 수 있
다는 '정신력'을 강조 했지만, 결국 우리가 그것을 진실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한 권투 선수의 작은 경기에서였다.
힘든 시절……흐르지 않았던 우리의 피를 다시 흐르게 했던 4전 5기의 신화. 그것은
차갑게 식었던 우리의 피를 끓게 했던 불 같은 메시지였고, 온 국민이 함께 한 '같
은 느낌 '이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언제나 영화 같았던 그의 경기들
Movie Title: "흑백 모노 톤. 아프리카의 끝. 승리의 시작"
Plot Synopsis
주인공 (홍 수환)은 '코리아'라는 낯선 이름의 작은 나라의 작은 청년이다. 그는 세
계 챔프가 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최종 목적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의
남쪽 끝. 그 곳에서 그는 24살의 운명을 내 놓으며 승부를 건다. 비행기는 타이완을
거쳐서 아름다운 인도양의 한 섬에 내리게 되며, 그는 그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
름다운 노을'을 바라본다. 석양이 주는 메시지였을까…… 그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
한다. '이 경기에서 지면 나는 모든 것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다. 아름다운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목신의 오후를 즐기리라…'. 그는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
랜 비행 끝에 마침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세계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 홍수환은
그의 경기 조차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차피 맡긴 운명,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고통… 그것 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운명을 걸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두려운 외로움이었다. 시합 4일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늦은 밤. 누군
가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검게 그을린 한국의 젊은 청년. 그는 원양 어선의 선원이
었고, 항해 중 잠깐 들른, 이역 만리 남아프리카에서 우연히 보게 된 권투 경기 포스
터. 그 포스터에서 젊은 선원은 도전자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도전자는 배를
타기 전 그가 부산 체육관에서 보았던 그 선수였다. 청년은 택시 기사들에게 수소문
하여 동포의 젊은 청년 도전자의 호텔 숙소 까지 찾아 온다. 손에는 작은 술 병 하나
를 들고……가난한 나라의 두 청년은 그렇게 이역만리 호텔 숙소의 밤에서 함께 밤을
지샌다. 서로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나누며 그들은 혼자서는 그렇게도 외로웠던 이국
의 밤을, 격려와 위로, 그리고 같은 핏줄의 동포애로서 하얗게 지샌다. 외로움에 찌
들은 젊은 선원은 수줍게 술 한잔을 권한다. 홍 수환은 술 한잔으로 인한 피나는 감
량의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때는 피가 끓는 젊은 날. 그는 항해에 지친 조국의 외
로운 청년과 건배하며 서로의 앞날을 축복한다……그리고 그는 새벽에 다시 로드웍을
위해 침대에서 홀로 일어난다.
시합 이틀 전. 트레이너가 허겁지겁 그에게 달려온다. 그리고 그를 데려간 곳은 호텔
의 어느 방. 그 방 안 한 쪽 구석에는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트레이너는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한다. 챔피언 쪽에서 내분이 일어나 트레이너가 바뀌고 이
전의 트레이너가 홧김에 네게 챔피언 테일러의 경기 녹화 필름을 주었다고. 호텔 주
인의 도움으로, 홍 수환은 영사기를 통해 까지 챔피언 테일러의 경기 장면을 처음으
로 보게 된다.
운명의 결전. 주인공의 마음은 차분하다. 며칠 전 챔피언 측의 전 트레이너가 몰래
건네 준 그의 경기 필름을 함께 보며 테일러의 전 트레이너는 주인공을 격려하며 말
한다.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조심하라. 몸을 많이 흔들어라……이제 챔피언 테일러는
홍수환에게는 어둠 속에 묻힌 두려운 맹수가 아니었다. 그는 주인공의 '운명을 건 주
먹'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었다. 1회가 시작되자 마자 도전자 홍 수환은 레프트 훅
으로 테일러의 턱을 강타 첫 다운을 빼앗는다. 2,3 라운드에서 도전자의 집중 강타를
얻어 맞은 테일러는 4라운드에 불안한 스텝을 밟으며 위청거리기 시작했다. 5라운드.
도전자 홍 수환의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테일러의 턱에 작렬, 이제 챔피언은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이 후, 코리아에서 날아온 무명의 도전자는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가드를 풀고 춤을 추듯 경기를 주도해 나간다. 8라운드 이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안
챔피언 테일러는 일발 장타를 노리며 파고들었으나 도전자 홍 수환은 기민한 푸트워
크로 그의 주먹을 피하며 송곳 같은 스트레이트로 챔피언의 턱을 가격한다. 11라운드
에서 홍 수환은 테일러의 라이트 훅에 귀가 찢어졌다. 그러나 피를 흘리는 도전자는
더욱 더 거세게 몰아붙여 테일러를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간다. 14라운드. 홍 수환의
주특기인 라이트 어퍼커트가 작렬하여 테일러는 3번째 다운을 당하지만, 때맞춰 울리
는 공 소리에 라운드가 끝나고 15회로 이어진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챔피언은 최소
한 KO는 당할 수 없다는 듯 로프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기에 급급하지만, 도전자의 독
기어린 라이트 어퍼는 다시 한번 챔피언을 쓰러뜨리고, 결국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
을 이끌어 낸다. 107-89, 100-94, 100-95. 완승이었다. 누구도 예상 하지 못했던 완
벽한 승리였다. 홍 수환의 주먹은 자신이 걸고자 했던 '목신의 운명'을 깨뜨리며 챔
피언의 운명, 복서로서의 운명의 길로 자신을 이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숙소에는 한 장의 엽서
가 와 있다. '축전' 발신인: 대한민국의 외로운 젊은 선원. 내용: '인도양을 지나면
서 배 안에서 라디오로 중계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대가 승리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외로운 내 젊은 날. 그대와의 만남을 평생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챔피언 홍수환.
자랑스럽습니다. 내 조국이, 내 젊음이, 그리고 나의 친구 그대가…. 이 축전은 주인
공이 챔피언이 된 후 가장 처음 도착한 전보였다. 그 다음으로 김 종필 국무총리에게
서 축전이 오고……
Movie Title: "허무한 퇴장……"
Plot Synopsis:
정상에 오르면 어쩔 수 없이 몰려드는 쓸쓸함. 정상을 오르기까지 주인공이 걸어온
길은 급경사의 비탈길이었다. 그 비탈길을 외롭게 걸어 올랐을 때는 아무도 없었지만,
정상에 오르고 나니 많이 사람들이 그를 둘러싼다. 기자, 프로모터, 매니저, 심지어
소속 부대장까지, 그들은 승리의 몫을 나누고자 덤벼드는 하이에나였다. 결국 홍수환
의 승리의 몫을 도둑질 했던 무리들은 챔피언의 승리에 대한 순수한 정열에도 생채기
를 내며, 챔프 홍 수환은 정상에서의 허무함과 허탈감에 빠진다. 허무함에 빠진 챔피
언과 그 주위 하이에나들은 엄청난 대전료를 목적으로 2차 방어전으로 21전 21승 21
KO의 화려한 전적의'자모라'라는 최강 도전자를 선택한다. 그것도 적지나 마찬가지인
로스엔젤레스에서……
승리의 허무감에 훈련이 부족했던 홍 수환은 계체량을 실패 끝에 간신히 통과하여,
몽롱한 상태로 링에 올라, 4회 2분 37초 만에 도전자의 강력한 레프트 훅을 맞고 링
에 쓰러진다. 그는 일어설 듯 상체를 일으켰지만, 그대로 일어나지 않고, 체념한 듯
아니 원망 섞인 표정으로 도전자와 주위를 둘러보며 주심의 10을 세는 소리를 끝까
지 듣는다.
그로부터 1년 7개월이 지난다. 챔프의 자리를 내주고 링에서 내려온 홍 수환은 그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자모라는 최고의 복서라는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홍 수환은 그를 챔프로 인정할 수 없었다. 허술한 턱, 텅비어 있는 그의 복부, 그가
아무리 강펀치라고 해도 충분히 피하며 카운터를 날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붙
고 싶어 한다. 그러나 챔프 자모라는 25전 25승 25KO 의 역대 최강 챔피언이 되어있
고, 홍 수환의 승리를 기대하기 힘든 상태에서 아무도 스폰서로 나서지 않는다. 마침
내 주인공 홍 수환은 불꽃 같은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자신이 챔프가 되어 얻은 건물
을 팔고,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자신의 돈으로 자모라와 재경기를 추진한다.
1976년 10월 16일밤. 인천 선인 체육관. 25전 전승 KO의 챔피언 자모라는 이제 홍 수
환의 독기어린 주먹의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1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홍 수환
은 예상을 뒤엎고 접근전을 시도하며 좌우 연타를 주고 받는다. 경쾌한 푸트워크로
자모라의 돌진을 피하면서 강렬한 좌우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홍 수환은 3라운드에서
자모라의 강타를 맞으면서도 강력한 훅으로 그를 맞받아쳐 자모라를 궁지에 몰아넣는
다. 당황한 '세계 최강' 자모라는 더욱 더 홍 수환을 몰아붙이려 혼신을 다해 파고
든다. 5,6회 강력한 챔피언의 인파이팅으로 홍 수환은 오른 쪽 눈에 가벼운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7회부터 다시 홍 수환은 날카로운 카운터 펀치를 자모라의 턱에 작렬
시켜, 마침내 9회에는 그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자존심이 상한 자모라는 10회에 모든
것을 걸 듯 미친 듯이 파고들었고 9회의 선전에 힘을 소모한 홍 수환은 로프에 기대
어 비오듯 쏟아지는 자모라의 펀치를 받아들인다. 힘이 빠진 홍 수환은 완전한 아웃
복싱을 하면서, 코너에 기대어 카운터의 기회를 노린다. 12 라운드. 홍 수환은 다시
로프에 기대어 자모라의 소나기 같은 훅을 이리저리 피하며 카운터를 노린다. 그 때,
챔피언과 같은 국가인 멕시코 주심은 돌연 경기를 중단 시키며 카운터도 세지 않은
채 자모라의 승리를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일부 관중들은 링 위에 뛰어올랐으며, 객
석의 관중들은 야유와 고함 속에 방석과 물병을 링위로 던진다. 홍 수환은 주심의 부
당 판정에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링 위에서 격렬한 울분을 토한다. 홍 수환은 링 아
래의 기자들에게 예전에 태국 복서 수코타이와의 경기에서는 이 경기보다 더 맞았으
나 결국 이겼다면서, 내가 만약 그로기 상태라면 지금 어떻게 이렇게 또렷하게 인터
뷰를 할 수 있냐며 강변한다. 의자 던져지는 소리, 물병 떨어지는 소리,격렬한 항의,
고함……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판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억울한 판정. 그 동안
복서로서 쌓아온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 승부였지만, 이번에는 불운이라는 암초에 걸
려 그는 승리가 그를 비켜가는 것을 바라보아만 했다. 격정의 울분을 뒤로 하고, 링
에서 내려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들의 원망과 손가락질……
홍 수환은 사람들을 피해 홀로 하와이로 떠난다...
Movie Title: "푸른 파나마. Happy End"
Plot Synopsis
주인공 (홍 수환)은 끝내 재기한다. 하와이 해변을 달리며 그 누구의 위로도 없이 그
는 다시 일어난다. 고국으로 돌아와 국내 라이벌 염 동균을 판정으로 누르고, 77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벌어진 WBA J 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 나선다. 아무도 그
의 승리를 믿지 않는다. 상대는 11전 11승 11KO의 17살의 천재 복서 '카라스키야'.
국내 방송 중계 취소까지 거론 될 정도로 아무도 그의 승부에 기대가 없었다. 그의
경기 일주일 전에 김태호와 세라노의 세계 타이틀 전이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김 태
호가 패배하자, 방송국은 국민의 반응을 고려하여 '어차피 깨질 경기'인 홍 수환 경
기를 취소하려 하였으나, 한 기업인의 결단으로 중계는 취소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자신에 대한 차가운 평가 속에서 그는 3년 전처럼 다시 태평양을
건너 적진으로 뛰어든다. 파나마 시티는 벌써부터 '카라스키야'의 세계 챔피언 등극
을 미리부터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이다. 파나마는 물론 한국에서조차 홍 수환의 승리
를 점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시합 며칠 전 들렀던 파나마 시티의 한 이
발소 주인도 그에게 말한다. "넌 4회를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홍 수환은
자신의 주먹을 믿었다. 3년 전 아프리카에서처럼……경기 며칠 전 로드웍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홍 수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백인과 마주친다. 제이 에디슨. 홍수
환 대 카라스키야의 주심. 그는 홍 수환을 알아보고 말을 건다. 어릴 적부터 평택 미
군 부대 주변에서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며 영어를 익힌 그는 곧 잘 영어로 대답화며
대화를 이어갔다. 뚱뚱한 그 주심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왔지만 '영어까지 할 줄
아는' 권투 선수 홍 수환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영리한 도전자'……그리고 빛
나는 그의 눈빛.
한편, 호텔에서는 차편과 함께 운전사를 제공해 주었다. 순박해 보이는 운전사 파나
마 청년은 동양에서 온 왜소한 도전자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절하게 그가 운동 장소
로 이동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던 어느날 운동하던 홍 수환을 보더니, 그는 홍 수
환의 승리를 장담해 준다. 홍 수환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것은 그가 시합
전에 들었던 자신의 승리에 대한 유일한 장담이었기에……
경기장은 총소리와 함성이 어우러진 한마디로 광분의 용광로였다. 그들은 동양에서
온 왜소한 전 챔피언에 대한 '도전자에게의 최소한의 관심'조차 없었다. 오직 몇 분
후면 이루어질 천재 복서의 챔피언 등극을 축하하기에 바빴다.
1라운드. 쉴새 없이 뻗어대는 카라스키야의 잽은 화려했지만 실속이 없었다. 기계처
럼 정확했던 그의 잽은 한번도 홍 수환의 얼굴을 가격하지 못한다. 경쾌한 푸트 웍과
화려한 더킹 모션으로 상대방의 잽을 번번히 허공으로 보내자 광분 하던 관중들의 함
성이 차분해진다
2라운드……첫번째 다운..
카라스키야의 짧은 레프트 훅이 더블로 작렬한다. 아차 싶은 순간에 엉덩방아를 찧은
홍 수환은 곧바로 일어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다운, 링 바닥에 주저 앉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홍 수환은 관중석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한다. 순진한
표정의 파나마 운전사 청년. 그토록 홍 수환의 승리를 장담하며 그를 격려했던 그가,
관중석에서 펄쩍 펄쩍 뛰며 홍 수환의 다운을 기뻐 했다. 그 장면을 보고 홍 수환은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지며 가슴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는 다시 벌떡 일어났다. 이겨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 다운, 네 번째 다운. 몸은
자꾸 쓰러졌지만 정신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주심 제이 에디슨씨가 묻는다.
'Are you OK?'홍 수환은 고개를 끄떡거린다. 주심은 며칠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 영리한 도전자의 눈빛을 신뢰하며 경기를 중단 시키지 않는다. 다시 일어선 홍 수
환은 로프에 기대어 무수한 매를 맞으나, 한번만 더 다운되면 경기는 끝이라는 생각
에 죽을 힘을 다해 버틴다…
3라운드……공이 울리자마자 홍 수환은 무섭게 코너에서 튀어나와 카라스키야의 양쪽
옆구리를 양 훅으로 두들겨 중심을 잃게 한다. 카라스키야는 당황하며 난타전을 벌이
지만, 홍 수환의 특기인 송곳 같은 라이트 어퍼커트에 턱을 내주며 뒤로 물러선다.
로프에서 홍 수환은 폭풍 같은 연타 끝에 레트트 훅 한방으로 마침내 그를 캔버스에
누인다.주인공은 승리 후 누군가에게 말한다.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 연출된 드라마라
고……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심, 호텔 운전사, 모든 것이 각본에 짜여진 드라마였다
고……드라마 같은 승리. Happy End.
홍수환의 화려한 권투
얼마 전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국 최고의 복서를 토너먼트 형식으로 뽑은 바 있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세대들이 주로 10, 20대인 만큼, 그들이 알고 있을 법한 유 명우
나 장 정구가 뽑히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웬걸, 자그마한 이변이 일어났다.
홍 수환.
그가 이 토너먼트의 승자로 뽑힌 것이다. 그것도 한국 복싱 사상 최고 방어 기록인
17차 방어 기록의 유 명우를 제치고 말이다. 놀라운 일이다. 홍 수환의 전성기 때 그
복싱을 보았던 10,20 대들은 당시 많아야 10살 내외의 나이였을 텐데, 그들이 보기에
재미있는 해설가나 헝그리 정신 강조하는 명 강연가인 그를 왜 최고의 복서로 뽑았을
까? 아마, 형이나 아버지에게서 유산처럼 내려 오는 4전 5기의 신화. 그 유명한 화려
한 승부의 이미지 때문이리라. 그러나 드라마 같은 4전 5기의 이미지 말고도, 그는
최고의 복서로 선정될 충분한 기량을 갖고 있는 복서이다. 화려했던 그의 복싱을 분
석해 본다.
홍수환이 위대한 이유 하나 - 최초의 2체급 석권 챔피언
1966년 김기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눌러 버리고 WBA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언
이 된 이래 현재까지 모두 42명의 한국인 세계 챔피언이 탄생했다. 세계 챔피언. 말
그대로 그 체급에 있는 전 세계 모든 선수들과 싸워 이긴(직-간접적으로) 선수만이
챔피언에 오를 수 있는 자리. 랭킹 1위와 2위는 단순히 상위 랭킹과 하위 랭킹의 관
계지만 챔피언과 랭킹 1위의 관계는 그 정도가 아니라 챔피언과 도전자란 양 극단의
관계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사각의 링인 것이다. 그만큼
복싱에서 챔피언이란 의미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존귀한 존재인
셈이다. "세계 최고의 노력, 세계 최고의 기량, 세계 최고의 정신력,세계 최고의 인
내, 세계 최고의 땀".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챔피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런데 하물며 이런 챔피언 벨트를 체급까지 바꿔가며 차지한 선수들은 그 얼마나 위대
한 선수들인가?
최점환 , 최희용 , 이열우 , 문성길 …..홍수환
42명의 한국인 세계 챔피언 가운데 단 5명의 선수만이 체급을 바꿔가며 2체급 제패를
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찬란한 역사 속 가장 첫 자리에 홍 수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홍 수환은 한국 복서 사상 최초의 두 체급 세계 챔피언이었다. 홍 수환은 1990
년 문 성길이 자신의 두 번째 타이틀을 차지할 때까지 24년 동안 단 한 명의 두 체급
세계 챔피언으로서 존재했다. 그는 24년 동안 한국에서의 유일한 슈퍼 챔피언- 외국
에서는 두 체급 챔피언을 Super Champion 이라고 존칭한다- 이었다.
홍수환이 위대한 이유 둘 - 무한 경쟁의 밴텀급 챔피언
홍수환을 다른 세계 챔피언들 보다 더 하이 레벨의 선수로 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체급이 밴텀급이란 점이다. 복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급은 중량급에선
헤비급이고 다음이 미들급 일 것이다. 그럼 경량급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급은 무엇
일까? 바로 밴텀급이다. 밴텀급 한계 체중이 118파운드 즉 53.6kg 정도인데…이 정도
면 복싱 강국 중남미 계통의 선수들이나 탄력 좋은 아프리카 선수들 그리고, 아시아
권 선수들까지 등 그 층이 굉장히 넓고 두텁다. 이런 선수들 사이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타 체급과 비교해 볼 때, 무한 경쟁을 뚫어야만 했던 멀고도 험한 길이
었다. 밴텀급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살펴 보면 이 체급이 얼마나 살벌한 체급인지 알
수 있다. AP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밴텀급 챔피언 중 한 명이자 필살 스트레이트
를 지녔던 아웃 복싱의 달인 카를로스 사라테 (64전61승 58KO 4패)
역시 사라테와 마찬가지로 AP에서 선정한 위대한 복서로 뽑혔었고 역대 인파이터 복
서 베스트 10에 들어 가는 "괴물 복서" 루벤 올리바렌스 (104전88승 78KO 13패3무)
사라테와 평생의 라이벌이자 가장 극렬한 인파이팅 복서라는 평을 들었었고 역대 인
파이터 복서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미니 탱크" 알폰소 사모라 (38전 33승 32KO 5패)
이렇게 역사적으로 볼 때 경량급 사상 최강의 복서들이 모여 있는 체급이 바로 밴텀
급이었다. 그 중에서도 홍수환이 뛰었던 1970년대에 이 세 명의 선수가 다 등장 했었
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가장 치열한 체급 밴텀급에서 , 가장 치열
했던 1970년대에…, 대한 민국의 건아 홍수환은 저 3명 중에서 그 전설적인 사모라와
사라테도 하지 못한 2체급 석권을 해낸 것이다. 그것도 한방의 펀치력도 약했던, 통
산 34%의 KO율을 가진 동양인 복서가 말이다.
홍수환이 위대한 이유 셋 - 적진에서의 타이틀 쟁취
홍수환의 세계 챔피언 획득이 위대한 이유는 또 있다.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선 50프로
는 먹고 들어간다……굳이 이런 진부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프로 스포츠에서 Home
Court Advantage의 중요성은 경기 결과 데이터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특히
권투는 스포츠 중에서도 시합장의 분위기를 아주 많이 타는 심리적 스포츠이다. 어느
종목 보다도 기와 정신력의 싸움이 강조되는 종목임을 감안 하면 Away 경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얼마 전 타이틀을 상실한 전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최용수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최용수는 일본의 하다케야마와 6차 방어전과 8
차 방어전에서 두 번 싸웠는데 승패는 1승 1패였다. 6차 방어전에선 다 진 경기인데
도 불구하고 홈의 이점을 살려 무승부로 만들어 방어에 성공했지만, 8차 방어전에선
일본에서 경기가 열리는 바람에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방어에 실패.. 타이틀을 상실
했다. 이 두 경기에서 승패를 뒤집어 놓은 요소는 바로 Home Court Advantage였다.
이런 눈에 보이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외국 원정 경기에서의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익숙하지 못한 음식과 물, 단 시간에 이뤄지기 힘든 시차 적응,
여기다 홈 팬들의 노골적인 적대감, 자국 국민들의 기대감 등 외국 원정 경기에 나서
는 선수들을 시합 외적으로 괴롭히는 요소는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럼 홍 수환은 어떠했는가? 그는 두 체급 타이틀 모두 최악의 조건에서, 최악의 적
진에서 따냈다. 1974년 WBA 밴텀급 타이틀은, 당시 수교도 맺지 않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아직 인종 차별 정책을 하고 있을 때다)으로 장장 20여 시간이 넘도록 비행기
를 갈아 타고 날아가서 따낸 승리였고, 1977년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은 광적인
응원으로 유명한 중남미 파나마로 날아가서 쟁취하였다.
다른 한국의 세계 챔피언들과 비교해 보자. 모두 42명의 세계 챔피언 가운데 원정 경
기에서 타이틀을 빼앗은 선수를 살펴 보면 고작 7명 밖에 없고, 그나마 일본-필리핀
등 우리와 시차가 비슷한 나라를 제외하고 완전히 밤과 낮이 바뀌는 나라에 날아가서
챔피언을 뺏은 선수는 홍수환 외에 단 한 명 최 용수(아르헨티나)밖에 없다. 모두 42
명의 챔피언 가운데 달랑 2명 뿐이다. 여기서 추가로 생각해야 할 점은 홍 수환이 타
이틀을 따내던 1970년대의 교통 사정과 숙소 시설등은 현재에 비해 훨씬 열악했다는
것도 감안 해야 하며 그가 이러한 일을 2번에 걸쳐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홍 수환 복싱의 특징
앞에서 설명한 세가지 이유는 홍 수환을 한국 최고의 복서로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그의 복싱은 어떠했길래, 위와 같은 업
적을 이루어냈는가? 그의 기량은 어떠했길래 KO율도 높지 않은 펀치로 그렇게 경쟁이
치열했다던 밴텀급과 주니어 페더급 두 체급에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의 연습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홍수환 복싱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 본다.
1. 힘(Power)의 복싱
파워? KO율 34% 밖에 안되는 선수가 무슨 파워?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파워는 강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파워는 집중적이며 반복
적인 훈련에 의한 체력 50% 와 링에 올라가기 전까지 자신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
는 정신적인 힘 50%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의 '힘'을 말한다. 홍수환의 경기 중 가장
극적이라고 생각되는 대 카라스키야 전에서는 3회전 KO를 거뒀지만 그 경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홍수환이 승리한 게임에서 승패는 8회 이후에 갈렸었다.
1972/06/04 알 디아즈 12R판정승 (OPBF 밴텀급전)
1974/07/03 아놀드 테일러 15R 판정승 (WBA 밴텀급획득)
1974/12/28 페르난도 카바넬라 15R 판정 (1방)
1976/05/30 빈스 보크호소르 12R판정 (OPBF 밴텀급전)
1978/02/01 유타가 가사하라 15R 판정 (1방)
1980/12/19 염동균 10R판정승
홍수환 복싱의 특징 중 하나는 역전의 힘에 있다. 가드를 내리고 로프에 기대어 상대
방의 펀치를 무수히 맞아도 아무도 당장 그의 패배를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리
맞아도 힘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8회전 이후의 장기전에서 그의 파워는 결국 승리
를 이끌어 낸다. 장기간의 라운드에도 지치지 않는 가공할 체력과 아무리 어려운 상
황에 몰려도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정신력, 그 두 가지 힘이 조화된 '파워.
그것이 홍 수환 복싱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2. 감성의 복싱
홍 수환의 복싱은 감성의 복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감성이 앞선다는 이야기가 아니
다. 기량의 바탕을 이룬 후에는 그의 타고난 승부사 기질은 그의 복싱의 커다란 특징
으로 꼽힐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홍 수환이 진다고 이야기 해도 자신은 절대로 이
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세뇌 시키는 마인드 콘트롤, 여기다 수코타이, 사모라와 같이
KO율 90%의 강타자들을 상대로 뻔뻔하게(?) 가드를 내리고 플레이 할 수 있었던 배짱
과 아직 수교도 안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중남미의 변경에 있는 파나마 같이 완전
한 원정 경기에서 경기를 치뤄도 자기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똑같이 플레이 할 수 있
었던 경기에 대한 집중력, 그리고 아무리 충격이 큰 펀치로 다운을 당하더라도 큰 대
자로 누워 본적이 없고, 늘 엉거주춤 주저앉아 있는 자존심, 그리고 몇 번의 다운 끝
에도 다시 일어서는 오기와 근성, 이런 것들이 모여서 홍 수환 만의 뜨거운 감성의
복싱이 이루어졌다.
3. 공격형 가드
토마스 헌즈를 기억하는가? 미국 복싱의 메카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웰터급(1980), 슈
퍼웰터급(1984) ,미들급(1987) 슈퍼 미들급(1988), 라이트 헤비급(1984) 5체급을 석
권한 위대한 챔피언. 이 선수의 5체급 석권의 가장 큰 공헌자는 바로 "Hit Man "스타
일이란 독특한 파이팅 포즈 였다. 오른손을 턱 쪽에 바싹 붙이고 왼손은 완전히 내린
채 자신의 장점인 긴 리치로 상대가 파악할 수 없는 각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잽은 그만의 장기였다. 헌즈와 맞붙은 상대들은 이 전혀 맞을 것 같지 않은 거리에서
나오는 잽에 대부분 무너졌었다.수비력은 약했지만 그 약점을 공격력으로 보완 할 수
있었고 또 부족한 수비력을 빠른 풋 워크로 커버해서 헌즈의 5체급 석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홍수환의 시합 테이프를 보면 이와 유사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아니
다. 오히려 더 위험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양 팔의 가드를 완전히 내린 채 상대방
의 펀치를 오직 스탭과 위빙(복싱 선수가 좌우로 몸을 흔들며 펀치를 피하는 것),
더킹(복싱 선수가 위 아래로 몸을 흔들며 펀치를 피하는 것) 그리고 스웨이 백(상체
만을 뒤로 기울여 펀치를 피하는 것)으로만 상대 선수의 소나기 같은 무수한 펀치를
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드에 의존 하지 않고 말이다. 헌즈 처럼 한 손이라도 올
린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다 축 늘어 뜨린 채 말이다. 하지만 이 자세야 말로 홍수환
복싱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허허 실실(虛虛實實) 작전같이 홍수환
은 빈 성에 들어오는 적군을 특유의 밑에서 나가는 훅이나 어퍼컷으로 요리 했으며
그와 상대 했던 상대 선수들도 이 예기치 않았던 각도에서 나왔던 펀치에 서서히 침
몰했다. 또 이 수비가 부실해 보이는 양 팔 내리는 가드 자세는 공격해오는 상대방에
게 쉽게 반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서, 종종 멋진 크로스 카운터를 날릴 수 있었다.
이런 화려한 자세가 홍 수환에게 가능 했던 배경에는 특유의 복싱에 대한 재능(감각),
밴텀급으로선 상당히 컸었던 172cm라는 신장과 긴 리치가 있었다.
4. 끊임 없던 위빙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홍수환의 가드 자세는 상당히 공격에 치중해 있었다. 그런 부
족한 수비력을 보완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끊임 없는 위빙(상체를 좌우로 흔들
어 상대편 펀치를 피하는 것)이었다. 경기 중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 편의 거리
조정을 방해하는 그의 위빙은 정말 지금도 한국 복서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멋진
모습이었다. 홍 수환의 조련을 받았던 전 세계 챔피언 장 정구의 그 독특한 위빙도
홍수환 트레이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위빙의 바탕에는 뛰어난 유
연성과 엄청난 복근력, 마지막으로 허리 힘이 기초적으로 밑받침 되어야 했다.
5. 필살 라이트 어퍼컷
홍수환의 복싱을 이야기 하면서 이 어퍼컷을 이야기 하지 않고는 말을 꺼낼 수 없다.
일반적으로 동양인 복서는 어퍼컷을 잘 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신체적으로 팔이 짧
고 하체가 부실하기 때문에 좋은 어퍼컷을 치기 위한 베이스(Base)를 갖지 못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지만 홍수환은 달랐다. 이미 말 한대로 172cm라는 좋은 신체적인
조건과 특유의 위빙을 펼칠 수 있는 좋은 유연성 그리고 매일 아침 한강 중학교 근처
를 달리며 단련한 강인한 하체가 홍수환 복싱의 필살기, 라이트 어퍼컷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홍수환은 자기 나름대로 어퍼컷을 치는 요령을 알고 있었는데 이 어퍼컷
훈련을 위해서 오른손과 옆구리 사이에 수건을 한 장 낀 채 샌드백을 쳤다고 한다.
이런 훈련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하체가 못의 나사 방향처럼 약간 비틀리게 되
고, 그 비틀린 하체의 모든 힘을 어퍼컷에 전달 할 수 있게 되어 엄청난 파괴력을 지
닌 펀치를 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복싱 역사상 에델 조프레(브라질 출신 세계 챔피언)의 어퍼컷을 최고의 것으로 치는
데, 홍수환의 어퍼컷은 그 "에델 조프레의 어퍼컷"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명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현란한 스탭, 경쾌한 푸트웍
거리 조정. 복서에게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을까? 상대방의 거리에서 싸우지
말고 자신의 거리에서 싸워라. 복서라면 이 말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행
동에 옮길 수 있는 선수는 몇 안 된다. 그 이론을 실제로 옮기는데 필요한 행위가 바
로 스텝 워크(Step Walk)다. 특히 상대방의 강펀치를 피해 다니며 공격과 수비를 해
야 하는 아웃 복서에게 있어서 현란하면서 빠른 푸트워크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봐야
한다. 홍수환 자신이, 자신은 펀치를 발로 피하던 복서였다고 말한 것처럼 전후 좌우
로 움직이며 상대방의 펀치를 피하던 그의 모습은 흡사 투우 경기장의 투우사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우리 나라 선수들에게 부족한 뒷발을 약간 드는 스텝(우리 나라 선
수들도 기본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시합에서는 체력의 한계 때문에 좀처럼 지속하지
못하는 점이다. 뒷발을 약간 들면 발 움직임이 빨라지고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좋은 펀치를 칠 수 있다)이 홍수환은 기본적으로 되어 있었고, 또 자신이 철도 침목
을 넘어 가며 연습한 언제 어느 때에도 힘을 모을 수 있는 발 자세 때문에 홍수환
복싱의 강점 중 하나인 상대방 펀치를 피하면서 바로 반격 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이
현란하면서도 충실한 스텝이야 말로 홍수환 복싱의 시작이라고 말 할 수 있다.
7. 경기 운영 지능
아무리 게임을 잘하고 내용에서 이겼어도 결국 승부에서 진다면 다 소용 없는 일이다.
몇 회쯤 힘을 비축했다 언제쯤 이 힘을 터뜨려서 챔피언을 이기겠다. 이런 시합 운영
능력이야 말로 챔피언이 되는데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자신이 예측하
지 못한 방법으로 나오더라도 상대편 페이스를 내쪽으로 끌어 갈 수 있는 지능적인
플레이. 이런 것들을 가장 잘한 복싱 선수를 역사적으로 꼽아 보라고 한다면 모든 복
싱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첫 마디가 바로 홍수환이다. 홍수환 복싱이 역전이 많
고, 그래서 재미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면에는 그의 화려한 플레이나 강인한
정신력도 있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높은 지능에서 나오는 완벽한 시합 운영
능력이었다. 아웃 복서임에도 아놀드 테일러의 라이트 훅을 피하기 위해 중간 거리를
피해서 적극적인 접근전을 했던 것이나 , 카라스키야의 펀치를 맞아 주다 카운터 펀
치로 라이트 어퍼를 날리고 이후 승기를 잡는 모습, 태국의 강타자 수코타이 전에서,
무거운 펀치들은 숄더 블록(Shoulder Block)이나 위빙-더킹으로 피해버리고 잽만 선
택해서 맞는 복싱에 대한 놀라운 감각 등은 모두 그의 영리한 게임 조절 능력에 의해
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8. 양보다 질, 집중적이고 과학적인 연습
예전 신문 기사에 보면 홍수환이 시합을 대비해서 80라운드를 뛰었다(심지어 대 사모
라 2차전에는 150라운드를 뛰었다는 기사도 있다)고 적혀 있다. 이런 신문들의 기사
는 사실이 아니다. 홍수환 본인이 밝혔듯이 그는 아침에는 한강 중학교에서 러닝, 쉐
도우 복싱 등 기초 체력 훈련을, 저녁에는 스파링 위주의 실전 훈련 위주로 각각 1시
간 정도 훈련을 했으며 대신 그 1시간 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훈련에만 몰두 했었다
고 한다. 또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강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썼었다. 중심
이동 및 스텝을 위한 기차 침목 뛰어 넘기 훈련, 어퍼컷의 정확한 훈련을 위한 옆구
리에 수건을 낀 채 샌드백 치기 , 최대의 약점이던 펀치력 보강을 위해 8파운드짜리
(약 4KG) 아령을 든 채 200회의 펀치 연습 등은 이 후 홍수환 복싱을 만들어 가는 핵
심 바탕이 된다. 당시 무조건 '많이', '열심히'를 외치던 것이 복싱 트레이닝계의 현
실이란 점을 감안하면 홍수환의 이런 복싱 훈련 방법은 상당히 선진적인 것이었다.
크게 스포츠 지도자가 갖춰야 하는 자질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선수를 발굴하는
안과 그 선수를 육성하는 능력이다. 진흙 속에 묻힌 진주를 발굴해내는 안목과 발굴
된 선수를 키워내는 육성 능력을 함께 갖춘 지도자야 말로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
다. 홍 수환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능력을 겸비했던 훌륭한 트레이너였다.
유명 선수 출신의 명감독- 일본의 유도 감독 야마시타 야스히로,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 몬트리올 엑스포스 감독 펠리페 알루,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룡 감독, 독
일의 베켄바우어,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디노 조프 - 처럼 그 또한 유명 선수 출신
명 감독의 계보에 적힐 만한 훌륭한 지도자였다.
지도자로서 홍수환의 가장 큰 장점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제
자의 스타일을 인정한다는 것. 둘째는 2체급 석권의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그만이 가
진 경기의 맥과 상대방의 허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이다. 세 번째로는, 시대를
앞서 갔던 그만의 이론화되고 선진화된 트레이닝 방식이다.
첫번째 포인트는, 많은 화려했던 현역 선수들이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갈 수 있느
냐, 없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스타 선수들은, 자기
들이 그렇게 해서 성공했기에, 지도자로 변신했을 때 자신들의 제자에게, 그들이 가
진 스타일을 발전시키며 키워 주기 보다는, 자신이 성공하게 된 그 스타일을 강요하
기 마련이다. 그러나, 홍 수환은 발굴한 선수의 주 특기를 그만이 가진 기술로 발전
시키며 키워왔다. 김 철호, 장 정구, 이 일복 등 그가 키운 복서들은 다 스타일이 독
특했다. 트레이닝 방법에서도 그는 확실이 달랐다. 다른 여타의 지도자들같이, 피를
깎는 혹독한, 계속되는 연습을 주문하지 않았다. 단지, 오전/오후에 각 한 시간씩 만
이라도 집중하고 몰두하는 연습을 시켰다. 지금에 와서는 연습의 양보다 질을 우선시
하는 추세이지만, 당시 '헝그리 정신', '뼈를 깎는 노력'을 우선시하던 풍토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어퍼컷을 칠 때 수건을 끼고 팔을 붙여서 원심력
과 중심이동을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법, 샌드백을 칠 때는 꼭 백장갑을 끼게 하는
등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축적된 과학적인 트레이닝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지도자의 자질로 홍 수환은 3명의 선수를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어 낸다. 김철
호, 장정구, 그리고 이일복.
김철호. 전 WBC 슈퍼 라이트 급 챔피언. 5차 방어. 전호연 프로모터 소속의 선수로서,
정확히 말해 홍 수환이 만들어낸 챔피언은 아니었다. 홍 수환은 1차 방어전부터 그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복싱 팬이라면 김 철호가 오로노를 이길 때의 그 복부 럭키 펀
치를 기억할 것이다. 기량면에서 불안했던 그가 5차 방어까지 가리라고는 아무도 예
상하지 못했다. 여기에 가려진 홍 수환의 지도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김 철호는 19
81년 1월 24일 라파엘 오르노를 9회 KO로 눕히고 챔피언이 되었다. 하지만, 전호연
프로모터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다음 1차 방어전 상대로 내정된 선수는 일본의 지로
와다나베였던 것이다. 후에 '일본의 권웅'으로 불리는 바로 그 와다나베… 그래서 전
호연 프로모터는 홍수환 선수에게 김철호를 지도해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홍수환은
이를 흔쾌히 수락. 김철호를 지도하게 된다. 홍수환이 바라보는 김철호는 세계 챔피
언 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디었다(물론, 시합에 들어가서는 근성이 아주 좋았던 장
점이 우선 꼽히는 선수였다). 그래서 사이드 스텝, 선제 타법 등 기술적인 면을 중
점적으로 소화했고, 결국 3차방어까지 성공하게 된다. 특히 3차 방어전 대 마루야마
전(81년 11월 18일). 경기 얼마전까지 사랑니 통증으로 얼굴이 퉁퉁 붓고, 양쪽 다리
에 생긴 근육 이완증으로 고생하던 김철호는 경기 시작 후, 상대에게 조금 밀리는 양
상을 보인다. 상대의 주먹이 센 걸 간파한 홍수환 코치는, 라이트를 받아 치지 말고
가볍게 원, 투 연결타를 지시했고 3회부터는 왼쪽 잽을 던지라고 지시했다. 결국 7회
에 마루야마는 눈 부상에 코피까지 터지게 되고 결국 9회에 TKO 승리를 거두게 된다.
경기의 맥을 적절하게 짚어내는 홍수환 트레이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그 후, 4차 방어(82년 2월 10일)에 들어가기 직전, 전영호 프로모터와의 사이가 벌어
져서 김철호의 트레이너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82년 1월 26일) 그 후 김철호는, 5차
방어전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하고, 6차 방어전에서 자신이 챔피언이 될 때 물리쳤던
라파엘 오르노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82년 11월 18일).
장정구.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15차 방어후 챔피언 벨트 반납. 현재
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유명우와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챔피언 중 한 명이다.
그 현란한 기량을 가진 파이터 장 정구를 키워낸 코치가 바로 홍수환이었다. 장정구
가 무명인 시절, 호된 훈련에 질려서 짐을 챙겨서 부산으로 내려가버린 적이 있다.
당시 홍수환은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저 놈이 작아도 크게 될 놈이니까 데리고 오
라'고 전호연 프로모터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싸가지 없는 놈은 필요없다'며 그를
거절했다. 이에, 홍수환은 직접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 그를 데리고 와서 다시
권투 글러브를 끼게 했다. 그리고, 그가 챔피언이 되기 직전(힐라리오 사파타와의 첫
번째 시합. 82. 9.18)까지 그를 지도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그의 임기응변 강한 권투는, 물론 장정구가 워낙 센스가 좋은 선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홍수환의 영향이 컸다. 사이드 밟고 원, 투.. 또 사이드 밟다가 흔들고.. 장
정구의 권투에서 홍수환의 권투와 닮은 꼴이 무척 많았다.
지도자로서의 홍 수환은 분명 권투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말한다.
아직 제2의 홍수환을 키우지는 못했다고… 코치 홍수환의 야망을 기대해 보고 싶다.
프로 모터, 해설자
홍수환이 프로모터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에, 그 마약 사건을 겪
은 후 LA에서 신발 장사를 할 때의 일이다. 전부터 알고 있던 일본의 가네꼬 체육관
관장의 부탁으로 멕시코 출신 선수들을 데려다 일본에서 시합을 한 것이 그의 프로모
터 일의 시작이다.
그 후로도 그는 양국을 오가며 매치메이킹을 하며 프로모터로서의 역량도 키워나갔다.
그러나, 사실 홍수환은 프로모터라는 직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의 돈 킹,
밥 애럼 처럼, 자기의 돈 만으로도 능히 큰 타이틀매치를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모터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모터로서는 한계를 느낀 듯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장정구와 유명유의 시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했던 매치 메이커의 기질이 다분했다.
그는 또한 KBS 권투 해설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아마도 젊은 복싱 팬들은 해설자로서
의 홍수환의 모습이 더 친근할 듯 하다. 그는 경기의 큰 그림 뿐만 아니라 작은 부분
까지도 세밀히 해설하는 명 해설자였다. 특히, 흥분하기로는 축구의 신문선보다 한
수 위였고, (해설 도중 마이크 벗고 주심에게 항의……) 할 말 다하기로는 타의 추종
을 불허 했다. (홈 어드밴티지의 무승부 경기를 사실상 진 경기라고 표현……) 그의
해설은 매니아 층이 생길 정도로 독특하고 스타일이 있는 해설이었다. 만약 권투가
인기 스포츠로 부흥한다면 그는 해설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힐 것이다.
결국 은퇴 후 홍 수환은 링을 떠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늘 링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의 꿈은 복싱에 관련된 모든 부문에서 성공하는 것이
라고. 그의 꿈대로 그는 대부분 성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제 2의 홍수환'을 하나 만들어놓고 죽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며 복싱이 살아나
야 우리가 선진국이 된다고 미소 짓는 그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권투인 홍 수환은 아직도 링 위에 있고 그의 꿈은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을 것이라는 것을.
인생 극장 - Live and Kickin 배경 음악 - The boxer : download
1막2장: '최익수 대 마에미조'
“I am just a poor boy
Though my story is seldom told
I have squandered my resistance
For a pocketful of mumbles,
Such are promises, all lies, and jest
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Mm mm....“ Simon & Gafunkel, ‘The Boxer’
배구장 안 특설 링에 자리잡은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오프닝 매치를 끝내고
이제 곧 한국의 강호 최익수가 일본의 숙적 마에미조를 불러서 한판 승부를 벌이기
직전,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인파를 헤치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선 꼬마를 비롯한 많은
국내 팬들은 최익수의 낙승을 전망했다. 이미 최익수에게 참패를 당했던 강세철이
한차례 물리친 바 있는 일본의 마에미조는 결코 최익수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믿었
던 것이었다. "홍~~코나~~" 링 한복판에서 양 선수의 매서운 기 싸움이 끝나고 드디
어 1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당초 가벼운 탐색전으로 끝나리라 믿었던
1라운드부터 마에미조는 무서운 기세로 최익수를 몰아 부친다. 마에미조의 저돌적인
공격에 당황한 관중들, "어??" 하는 순간에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최익수. 결국 1
라운드 종료 1분을 넘기지 못하고 마에미조의 '융단 폭격'에 최익수의 얼굴은 캔버스
를 향해 내리 꽂힌다. "…Eight…Nine…Ten!!!" 팬들은 주저 앉고 만다. 방금 눈
앞에서 벌어진 믿기 지 않는 광경에 한숨, 그리고 욕설이 이어진다. 한,일 복서 간
의 메인이벤트를 즐기러 모처럼 체육관을 찾은 관중들은 하나, 둘씩 씁쓸하고 허망한
가슴을 달래면서 출구를 나선다.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은 자세로 계속 링을 바라보
고 있는 아버지, 그의 옆을 말 없이 지키고 서 있는 꼬마… 그렇게 단둘이서 텅 빈
체육관을 지킨다…
홍수환의 복싱 세계는 그렇게 문을 연다. 삼척에서 탄광업을 하시며 유복한 가정을
이끌어 가시던 아버지 홍경석씨 의 손을 잡고 하루가 멀다 하며 그는 체육관을 찾는
다. 이북 신의주에서 마라톤 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무엇보다도 좋아하시던 스포
츠가 바로 복싱이었다. 푸근한 벗처럼 느껴지던 아버지는 홍수환이 열 네 살 되던
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시며 유명을 달리 하시게 된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후 얼마 안되어 홍수환이 중앙고등학교 재학 시절, 수송국민학교 때부터 가까이 지내
던 전 복서 김준호 씨의 아들 김택구 군과의 친분 때문에 김준호 씨가 운영하던 남영
동의 동신 체육관에 문을 두드린다. 형, 누나, 그리고 어머니 황논성씨에게 마저 철
저히 비밀로 한 채 홍수환은 복싱 글러브를 낀다. 하염없이 솟구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그토록 복싱과 어린 수환을 사랑하셨던아버지에게 '뭔
가'를 보답하기 위해서 말이다. 집안 식구들이 홍수환의 복싱 입문 소식을 접하자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형들은 몽둥이를 들며 홍수환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고
어머니 역시 '내 눈에 흙이…' 운운하시며 아들 홍수환의 복서 생활을 결사 반대하셨
다. 하지만, 복서 홍수환의 운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지 오래 였다.
부족함 없이 가정을 가꾸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경기도
부 평 미군 카투사 부대 안 식당에서 쟁반을 나르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홍수환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유일한 희망의 불꽃은 '세계 챔피언 벨트'였다.
그 누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홍수환의 성격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2막1장: '세이첼스 (Seychelles) 섬' 간이 비행장
얼마나 왔는지 이제 날짜마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홍수환 캠프 (Camp)' 일행들
은 그저 생소하기 짝이 없는 남아공화국의 '더번 (Durban)' 이란 도시에 도착하기만
을 기다릴 뿐이다. 서울을 떠난 지 이제 이틀쯤 되었을까? 남아공과의 수교가 없었
던 이유로 일본에서 어렵게 남아공 비자를 발급 받아 대만, 인도의 실론을 거쳐 이곳
'세이첼스' 섬까지 날아왔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홍수
환은 잠시 바깥 바람을 쐬러 대합실을 빠져 나온다. 푸른 바다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
는 이 작은 섬… 인도양 한 복판에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 태양 사이로 간간히 시원한
바다바람이 홍수환의 얼굴을 스친다. 대한민국 복서 최초로 적지에서 세계 타이틀
도전이란 '민족적 거사' 만 홍수환의 몫이 아니었더라면 며칠쯤 이 아름다운 백사장
을 걸으며 몸과 정신을 달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서울을 떠날 때 어머니에게
한 약속이 떠오른다. "꼭, 챔피언 돼서 돌아올게…" 측근들에겐 자신감 넘치는 모
습을 보이며 서울을 떠났던 홍수환이었지만, 본인도 내심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듣도 보도 못한 나라의 맷집 좋고 주먹 세다는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에게 내미는 도
전장이 이리도 힘들고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더번까지는 아
직도 반나절을 더 가야 한다니… 홍수환은 기다린다.
길고도 길었던 도전의 길… 66년 김기수 선수의 초대 세계 챔피언 등극 이후, 8년 만
에 다시 대한의 품에 챔피언 벨트를 안겨 준 홍수환의 귀향 길은 분명히 훨씬 더 길
게 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남아공에서의 승전보… 그리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한마디로 당시 '스포츠 머리 수방사 군바리' 홍수환
의 인생은 영영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한국이 배출한 수 많은 세계 챔피언 중에서
가장 두뇌 회전이 빠르고 명석했다는 홍수환은 이역만리 고향 땅에서 아들의 이름을
외치시던 어머니와의 짧은 국제 전화에서도 특유의 위트 (Wit)와 임기응변 실력을 발
휘하며 곧바로 '한반도의 영웅'이 되어 버린다. 쓸쓸하게 남아공으로 향했던 출국
길과는 달리, 세계 챔피언 홍수환의 귀환 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열렬한 국민들
의 환호 속에서 이루어졌다.
공항 활주로까지 마중 나가셨던 어머니가 아들 수환이를 반기자 아들은 '백만불 짜리
미소'와 거수 경례로 답했고 카 퍼레이드, 시청 앞 광장 환영식, 그리고 청와대 대통
령 영접 등의 '국보 대접'으로 이어졌다. '홍수환의 시대'가 열렸다. 국민들의 사
랑과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25살 짜리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급작스럽고 부담
스러운 일의 연속이었다. 아놀드 테일러를 4차례나 눕히며 거머쥔 세계 챔피언 벨트…
그 벨트 하나로 홍수환의 이름은 더 이상 홍수환의 것이 아니었다.
3막4장: 79년 2월 영동의 청하호텔 커피숍
~ When I left my home and my family
I was no more than a boy
In the company of strangers,
In the quiet of a railway station
Running scared, laying low,
Seeking out the poorer quarters
Where the ragged people go
Looking for the places only they would know
Lie-la-lie…" Simon & Gafunkel 'The Boxer"
혹독한 79년의 한파도 이젠 한풀 꺾인 듯, 외출 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부쩍 늘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홍수환은 커피 잔에 입을 댄다. 서너 테이블 건
너 앉아 있는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 친다. 여인은 곧바로 합석하고 있던 친구들
에게 귓속말을 몇 마디 나누더니 등지고있던 여인들 서너 명 역시 일제히 홍수환 쪽
을 바라본다. 그리곤 다시 숙덕거리며 홍수환 쪽을 가리킨다. 마시던 잔을 테이블
에 놓고 홍수환은 자리를 일어선다. 호텔 문을 밀고 찬 기운이 도는 바깥으로 나가
보지만, 그곳 역시 마땅히 시선을 놓을 곳이 없다. 홍수환은 생각한다. '그나마 한
적한 장소라고 생각해서 트레이닝 캠프를 쳤건만…' 한 달도 안 남은 재기전이 걱정
된다. 1979년 2월, 리카르도 카르도나에게 '4전5기' 벨트를 빼앗긴 게 78년 5월7일
이니 어느덧 9개월이 다 되어 갔지만, 당시 홍수환의 '타이틀 상실' 보다 더욱 더
장안의 큰 화제가 된 사건은 바로 한달 전 1월에 있었던 '인기 가수 옥희 (본명: 김
광숙) 폭행 사건' 이었다. 홍수환과 옥희, 옥희와 홍수환… 이 두 사람의 소설과도
같은 운명을 두고 '천생연분'이란 말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질기되 질긴 악연' 이라
고 써야 할런지… 홍수환의 어머니 이상으로 그의 삶에 큰 획을 그었던 여인 옥희.
그런 옥희의 얼굴에 '세계의 철권' 홍수환의 '원, 투'가 작렬했다. '전치 6주' 진단
이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조강지처를 버리면서까지 아름답고 다이내믹한 스테이지
매너의 소유자 옥희를 선택할 때는 언제였고, 1년도 못 되어서 그런 옥희를 또 그 지
경으로 만들 수 있나..?' 제 아무리 '홍수환 광신도' 였을지언정 대다수 팬들의 이
런 비난을 대변할 '건덕지'가 궁색했다.
그를 둘러싼 여인들의 이야기는 그 당시 최고의 가십 거리였다. 챔피언 홍수환은 젊
은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인간 관계의 덫에 걸리게 되고 그때부터 그는
사생활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명예를 철거당하기 시작한다.
홍수환이 그의 전 부인 이진희를 처음 만난 것은 홍수환이 복싱에 처음 입문해서 남
영동의 동신 체육관을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가는 할머니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당시 부평이 집이었던 홍수환의 체육관 출입을 수월케 하기 위해서
영등포의 이진희씨 할머니 댁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진희 역시 어릴 때 부모의 이
혼으로 인해 영등포 할머니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던 터라 홍수환과 이진희는 오누이
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73년 홍수환이 수도방위사령부에 입대할 즈음부터 둘
의 관계는 '연인'의 사이로 발전되었고, 곧 홍수환은 부평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
결혼을 뒤로 미룬 채 동거에 들어간다. 아놀드 테일러, 카바넬라, 그리고 자모라…
홍수환-이진희 커플은 함께 이들 모두를 경험했다. 홍정은-지은 자매의 탄생 역시
함께 축복하며 기뻐하면서 말이다.
77년 11월 '파나마의 기적' 소식이 한반도를 덮치기 한달 전, 홍수환의 인생에 당시
인기 여가수 옥희가 등장한다. 그리곤 둘은 그야말로 드라마 '불꽃' 같은 사랑을 한
다. 호탕하고 화끈한 성격의 홍수환, 그리고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남자를 세심하게
챙겨주고 인정이 많은 옥희… 둘은 거침없는 사랑을 나누게 된다. '사랑' 이란 이름
앞에는 그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이 무렵 부인 이진희와 홍수환의 사이는 돌
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부인 이진희는 결국 홍수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미국
으로 떠난다. 카사하라와의 1차 방어전을 적지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마친 홍수환은
이미 옥희와의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녀와의 결혼 또한 '초읽기'에 들어간다.
이별이란 '상처'를 감수하더라도 그들의 사랑엔 '쉼표'가 없어보였지만 78년 5월 리
카르도 카르도나에게 무기력하게 타이틀을 빼앗긴 홍수환에게 또 한번의 '운명의 장
난'이 닥치게 된다. 미국으로 떠났던 이진희가 홍수환의 대를 이어줄 아들 대호를
안고 다시 나타난다. 꿈에도 그리던 손자를 품에 안은 홍수환의 어머니는 옥희와의
'결혼 내정설'을 단칼에 날려버리고 전 부인 이진희와 홍수환의 아들을 후암동 집으
로 다시 들여앉힌다. 결혼을 목전에 두고 버려진 옥희, 아들을 안고 다시 나타난 아
내,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어머니, 이 세 여인이 몰고 온 엄청난 '혼란' 속에서 방
황하던 홍수환과 옥희 '끝'은 둘의 시작만큼이나 감정이 앞설 수 밖에 없었고, 격정
의 소용돌이에 지친 젊은 홍수환은 권투 선수로서 평생 후회할 야만의 주먹을 휘두
르게 된다.
4막1장: 미국 알라스카 주 앵커리지 시내 한 한국식당
“ ~Asking only workman's wages
I come looking for a job
But I get no offers
Just a "come on" from the whores on Seventh Avenue
I do declare there were times when I was so lonesome
I took some comfort there Ooo-la-la ~~” - Simon & Gafunkel ‘The Boxer”
"어이, 홍수환 씨! 잠깐 나와봐요!" 식당 주인은 소리쳐서 수환을 부른다. 아직도
닦아야 할 접시가 주방 안 한쪽 벽으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수환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이, 홍수환씨… 나와보라니까…" 수환의 심장이 또 큰소리로 박동한다.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엔 또 어떤 교포가 접시 닦고 있는 내 초
라한 모습을 보며 동정의 눈길을 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당장이라도 눈 앞에 보
이는 접시들을 모조리 깨부숴 버리고 싶은 화가 목 안으로 뻗쳐올라오지만 수환은
큰 숨을 한번 몰아 쉬고 졸졸 흐르는 수돗물을 잠근다. "예… 부르셨습니까, 사장
님?" 수환은 어깨에 걸려 있는 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으며 식당 홀에 들어선다.
"봐요, 봐!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맞다고 했지? 인사하쇼, 홍형. 여기 이분들은 우
리 앵커리지에서…" 홍수환은 하는 수 없이 오른손을 내민다. 불과 1-2분 동안의
어색한 만남이지만, 아니 이제 이 짓도 적응이 될 법도 했지만, 새로운 '구경꾼' 들
을 접할 때 마다 수환의 얼굴은 화끈거린다. 주방 쪽으로 돌아서는 수환의 귓가에
속삭이는 '마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쯧쯧… 어쩌다 저렇게… 사장님이 훌륭한
일 하셨네요…" 쌓여있는 접시들을 쳐다보며 수환은 고개를 떨군다.
홍수환은 현역 당시 언론이 만든 '최대 라이벌' 염동균과의 은퇴전을 치른 후 글러브
를 벗는다. 그리곤 김철호, 장정구..등의 선수들을 조련 시키는 트레이너 생활도 해
보지만 결국은 83년 미국 알라스카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재결합한 부인 이진희
씨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난 막내 딸 주희까지 모두 다섯 식구 (부인, 정은, 지은, 대
호, 주희)와 함께. 홍수환의 측근이 미국 영주권을 얻어줄 테니 알라스카로 다 싸 들
고 오라는 말에 그는 '제2의 인생'을 기대하며 낮선 땅 알라스카에 짐을 푼다. 미국
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입'과 '귀', 즉 말이 통해야 했다. 당장 가족들의 '의,식,
주', 그리고 자식들 학비 걱정이 태산 같았던 홍수환이 택했던 직업은 바로 택시 운
전이었다. 평소에도 그 어떤 복싱인 보다도 조리 있게 대화를 이끌어갈 능력이 있었
던 홍수환은 손님들과의 자연스러운 잡담을 통해 '생활 영어'를 배우기로 작심했다.
수당도 나쁘지 않았으니 그에겐 '더 없는 자리' 였다. 하지만, 홍수환에게 이런 '안
정' 이란 단어는 사치와도 같았을까? 택시 기사 일을 시작한지 6개월도 채 안되었을
때, 알라스카 지역 신문을 비롯, LA 지역 한인 신문 그리고 모국의 모든 일간지에 일
제히 대문짝만한 머릿기사가 등장한다.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알라스카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 홍수환은 실제 한달 가까운 시간을 이국 땅의 어두운 감옥 안에
서 보내게 된다.
택시 운전을 하며 알게 된 손님 신사 '로이 (Roy)'는 홍수환의 친절한 단골 손님이었
고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그날도 수환에게 '콜 Call)'을 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전달
해 줄 서류가 있다면서 많은 팁을 제시하며 홍수환에게 심부름을 부탁한다. 홍수환은
지금의 '퀵 서비스' 처럼 택시로 누런 서류 봉투를 원하는 장소에 전달해 주며 일을
한다. 그날 밤에도 아무 생각 없이 홍수환은 로이를 만나러 약속한 장소로 간다. 로
이가 차 안에 타고 그가 전해주는 서류 봉투를 받는 순간,사방은 대낮처럼 밝아진다.
잠복하고 있던 경찰차들이 일제히 헤드 라이트를 켜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십수 명의
경찰과 형사들이 홍수환의 택시를 에워 싼다.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의 두 주먹엔
글러브가 아닌 수갑이 채워지고 그길로 곧장 수감된다. 알라스카에 정착한지 6개월
도 안 된 '촌놈' 홍수환이 연간 200만불 이상 되는 마약 거래 조직의 일원이라는 혐
의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마약 거래 상습범이었던 로이는 이미 체포된 자신
의 부인을 '빼내기' 위해 또 한 명의 마약범을 '만들어야' 했고, 홍수환이 바로 로이
의 덫에 걸려 들었던 것이다. 그 때 홍수환은 마약 밀매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앞서 증명해 주어야 할 조국의 기자들은 일제히 '홍수환 마약밀매로 체포'
라는 기사를 앞다투어 써대기 시작한다. 단 한명의 기자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홍수환에게 직접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미국 변호사 한명이 홍수환이 전 세계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료로 그를 변호해 준다. 우여곡절 끝에 홍수환은 '무죄
판결'을 받아 한달 동안의 '깜방 신세'를 청산했지만, 그의 출감을 위해 보증을 서
준 사람이 바로 앵커리지에서 한국 식당을 경영하던 그 '사장님' 이었다. 그리고
곧장 홍수환은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는 것이다. 신원 보증을 서 준 대가로 수
환은 주방에서 접시를 닦아야 했고 식당 주인은 '챔피언 급 메뉴 (Menu)'를 새롭게
선 보일 수 있었다. 이국 땅 알라스카 주립 형무소에서 외롭고 불안한 나날들을 보
내던 홍수환의 모습과 동포가 운영하던 식당 주방에서 접시를 닦으며 '원숭이 노릇'
을 해야 했던 홍수환의 모습… 어느 쪽이 더 비참했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5막1장: 유경 백화점 내 복싱 체육관
숨을 한번 쉴 때 마다 입 안에선 뽀얀 입김이 흘러 나온다. 밤 새도록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체육관 안의 공기가 뼈 속까지 스며 들어온다. 체육관 문을 열기 위해 아
침 일찍 나온 수환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온다. "형님, 저 지금 천안에 있는데 상
현이 좀 바꿔 주십시오." 순태였다. 순태… 수환이 미국 생활을 하고 있을 때부터
수환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잘 알고 지냈다며 불쑥 어느 날 수환 앞에 나타난 후로 동
생처럼 지내온 사이였다. 한동안 계속 '누구한테 돈을 받을 게 있다..' 라며 수환에
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의 일에 개입하기 싫어하던 수환이었기에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러 버렸던 그 친구가 이른 아침부터 수환의 체육관 동업자 상현을 찾는 것
이었다. "오늘 상현이가 도와주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요…" 상현에게 핸드폰
을 해 보라고 하고 수환은 전화를 끊는다. 얼마 안 있어 나타난 상현에게 순태의
전화 얘기를 해 주며 "순태가 너 찾던데…뭐, 니가 도와줄 일 있음 도와주라' 란 말
을 한다.
1999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이 올라간다. 전 챔프 홍
수환씨 '해결사 노릇'하다 영장 이 사건으로 인해 홍수환은 많은 걸 잃게 된다.
92년 미국 생활 청산 후 KBS 명 해설자로 등장해서 많은 복싱 팬들의 가려운 곳을 제
대로 긁어주던 '차세대 해설가' 자리도, IMF 시절 100여개의 기업체 신입/영업 사원
교육 특강의 주인공으로 명성을 떨치던 '신바람 강사' 자리도… 그리고 전 세계 챔피
언 홍수환의 자존심, 명예, 그리고 그를 아끼던 팬들의 기대마저도… 사건의 현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홍수환은 1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게 되고 지난 10월
있었던 항소심에서 '무혐의'가 아닌 '무죄'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아직도 홍수환
은 자유롭지 않다.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에 대한 늑장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복서가 링을 떠나서 특별히 할 일도 없었을 것이었고, 돈 (2억) 받아다 주면
50%를 떼어주겠다는 제의를 마다했을 홍수환이 아니다' 란 검사의 치졸한 편견, 그리
고 이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 역시 '홍수환 급'의 지명도 있는 사람 하나를 잡아 넣는
다면 난 특진…이라는 사악한 직업의식, 그리고 천박한 추측 기사에 일가견이 있는
기자의 삼류 직업 의식, 이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모여서, 아무 죄가 없던 홍수환을
'폭력 해결사'로 몰고 갔다.
홍수환이 입건 되었을 당시 조서를 작성하던 형사란 작자는 그 후 용산 어디에서 사
창가 운영 배후 세력의 하나였던 전형적인 비리 공무원이었고, 사건 이전까지 '형님,
형님' 하며 그를 따라다니며 돈 받아 달라고 부탁하던 김순태라는 인간은 재판 과정
에서 끝까지 홍수환의 증언 요청을 거절하며 도망 다녔다.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
었던 홍수환은 우연한 계기로 만난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항소심에서 승소하게 된다.
홍수환의 '바닥'은 과연 어디가 끝일까? 링 위에서 보여준 '4전5기 정신'은 실제 그
가 인생에서 극복해 나가는 역경의 나날들에 비하면'장난'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백 1
1984년 4월 21일 - "초라하게 맡겨진 내 두 주먹. 그리곤 어둠. 칠흙 같은…"
빛.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러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익숙함…그래,
링 위의 조명은 그렇게 나를 비추었지. 가끔 링 위에서 쓰러질 때, 그땐 나는 저런
빛을 볼 수 있었어. 수 십개의 백열등이 하나의 빛이 되어 나의 눈을 찌르고, 그리고
나는 곧 일어섰어. 그런데 지금 나에게 비취는 이 빛은 무엇일까. 마치 나를 벌거벗
기려 듯 달려드는 수 많은 하얀 불빛……수 십대의 경찰차가 나를 에워싸고 나에게
수많은 조명을 비춘다. 힘들게 눈을 뜨는 수간 엄청난 거구의 경찰이 내게 달려들어
와 내 손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운다. 챔프의 영광을 누렸던 나의 손은 그렇게 초라
하게 맡겨진 채 주먹을 쥘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곧 칠흙 같은 어둠은 나를 삼키고……
독백 2
1979년 6월 23일- "세상은 노을에 물든 빨간 바다처럼 붉게 물들어만 가고 있었다"
불꽃인가……내가 보고 있는 것은 불꽃인가……눈을 떠도 보이는 것은 온통 붉은 색
뿐이었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나는 타 들어가고 있는가……그래, 불꽃이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뜨겁기만 했던 나의 갈증을, 타는 목마름을.
붉은 피사이로 상대방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인다. 눈을 뜰 수가 없다. 아니 눈은
떠있지만, 내 눈을 덮으며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지금은 시계 제로. 그래, 나는 지금
눈을 감고 링 위에 서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먹이를 찾은 맹수처럼 달려드는 도전자
가 서 있다. 묵직한 주먹이 또 내 눈을 향해 들어왔다. 찢긴 곳이 또 찢겨서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