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바와 같이.. 중펜은 제 탁구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었습니다. 몸에 익숙한 펜홀더. 또 다시 돌아온 고향이었지요. 어깨가 깊이 돌아가지 않아 포기했던 백핸드 쪽의 공격은 이제 이면 드라이브와 이면 펀치가 다 해결해 주니까요. 너무나 기뻤습니다. 사실 제가 중펜을 처음 잡은 건 까마득한 예전입니다. 어깨 부상에 대해 기술했던 그 편에도 잠깐 중펜이 언급되었죠? 그거 기억 안 나시는 분들은 정독 안 하신 거..ㅋㅋ 시험봅니다~ 잘 읽으세요.^^ 80년대 중후반 세계랭킹 1위였던 장자량의 포스가 멋있었고, 일중호와 임파샬로 나도 늘 해오던 그 전진 플레이를 그가 중펜을 들고 하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북한의 펜홀더 선수 김성희도 탁구 참 잘 쳤었는데 어느 기간동안 중펜으로 플레이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후 일펜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 모습도 멋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저렇게 펜홀더를 쓰는군. 저도 바로 동대문을 뒤져 중펜을 두 개 샀었죠. 야사카의 히노끼 3겹 합판 중펜과 버터플라이의 순수목재 7겹합판 중펜. 둘 다 뒷면에는 검은 색이 칠해져 있었습니다. 중펜도 단면만 쓰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중국에서는 이미 양면에 러버를 붙이고 플레이하던 수비수들도 진작부터 있었고 변칙적인 선수들이 꽤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이면타법이 시도된 것은 장자량과 류궈량의 간헐적인 시도를 거쳐 드디어 왕하오에 이르러서였죠.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펜홀더 뒷면을 쓰는 게 상식 밖의 일이던 시절, 저는 그 두 자루의 중펜에 앞뒤 러버를 붙었더랬습니다. 하나엔 페인트 롱 OX, 다른 하나엔 가벼운 평면러버. 그거 들고 연습하고 게임할 때도 이면을 가끔 썼지요. 특히 페인트 롱을 붙인 중펜은 백 쪽 리시브와 보스커트 시 종종 이면으로 블록과 커트를 구사했습니다. 페인트 롱은 제가 잘 쓰던 러버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동호회와의 교류전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게임 후 회식 자리에서 제게 진 상대쪽 한 사람이 저를 걸고 따지는 겁니다. 펜홀더 뒷면 쓰는 건 반칙이다. 제가 답했죠. 러버가 없으면 반칙이지만 러버 붙이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이도 지긋했던 그분은 끝내 반칙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제가 라켓을 꺼내 들고 시연까지 했습니다. 펜홀더로 잡고 이면 치는 시늉. 이게 반칙이라구요? 반칙이지! 그 면과 스윙 그대로 셰이크처럼 그립 잡고 다시 스윙 시늉. 그럼 이거는요? 그건 괜찮지. 셰이크잖아. 헐~ 제가 펜홀더도 아니고 셰이크도 아닌 중간 정도의 어정쩡한 그립으로 잡고 휘두르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이건요? 에이~ 그렇게 잡는 게 어딨어! 말이 통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놀라운 것은 주변의 거의 모든 분들이 그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 허걱~ 이건 도대체 무슨 이론? 같은 라켓을 이렇게 잡으면 반칙이고 요렇게 잡으면 괜찮다구요? 그 자리에서 제일 젊었던 저는 그냥 네네~ 하고 끝냈고 반칙패를 인정해야 했으며 그날 이후로 중펜을 쓰지 않았습니다. 한 자루는 제 친형에게 줬고 문제가 됐던 페인트 롱 붙였던 다른 한 자루는 러버를 떼어내고 서랍속에 던져넣어 두었지요. 옛날 얘기가 길어졌네요. 결론은.. 어린 왕하오가 탁구를 이면으로만 백핸드 치는 스타일로 시작할까 말까 하던 시절에 대한민국의 공룡은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잘 다루던 롱 핌플도 주변 사람들의 짜증 때문에 접었고 중펜 이면타법도 주변의 무지로 인해 접어야 했던 불쌍한 선각자 공룡입니다.ㅠㅠ 둘 다 지금 했으면 잘 친다 소리 들으며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 텐데요. 시대를 조금 잘 못 태어난 공룡이죠.^^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저는 다시 중펜을 잡고 이면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칭찬이 뒤따르더군요.ㅋㅋ 가티엥 엑스트라로 기초를 잘 잡고.. 이런 저런 셰이크들 참 많이 개조해서 중펜으로 써보고..ㅎㅎ 한.. 이삼십 개는 그립 개조했나 봅니다. 결국 제가 한동안 주력으로 사용한 중펜은 '발트너 센소카본' 개조품이었습니다. ST 그립 개체를 그립을 개조해 만든 건데 헤드 크기가 딱 일중호와 똑같이 나오더군요. 앞 스라이버 가와츠키, 뒤 스라이버 EL 붙여서 잘 썼지요. 펜홀더 기본 스타일 그대로 하면서 백 쪽 찬스볼이나 원하는 공 선택해서 이면 쓰는, 마린 스타일이로 했습니다. 왕하오 스타일은 힘들기도 하고, 썩 좋았던 백쇼트를 굳이 버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어깨 걱정 없이 높은 공을 이면으로 치니까 참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니타꾸의 명품 '바이올린'이 출시되었고 저는 자연스럽게!ㅋ 바이올린 중펜으로 옮겨갑니다. 바이올린 중펜은 참 좋은 발란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어쩔 수 없는 일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셰이크를 잡게 됩니다. 큰 키에 이면을 지나치게 사용하다가 손목을 다친 거죠. 아이고.. 다사다난한 공룡의 탁구 인생이여~
첫댓글 원래 선구자는 외롭고 힘든법이죠...^^ 잘읽었습니다...
대선배님이셨군요!!
저도 탁구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소리 주변에서 많이 듣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난 공룡님에 비하면 아마추어네요.
글도 참 재미나게 잘 쓰십니다.
엄청 달리셨네요~^^ 8편이나 단번에...놀랍습니다.
대작이 되겠어요. 재미있게 읽겠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