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번의 실패가 큰 교훈, 이젠 벤치마킹 대상 0 순위 기업됐죠” - 국내 최초의 35~60세 여성 공략 패스트 패션 SPA 브랜드 완성 - ‘유니클로’ 부럽지 않은 생산 배송 물류 글로벌 브랜딩 파워 구축 - 국내 45개점 비롯 美 350곳 수출, 베트남 중국도 석권 초읽기
지난 4월 22일 중국 상하이의 한 의류 박람회장. 비교적 한산한 주변과 달리 유독 한 부스만큼은 발디딜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상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해당 부스에 마련된 상품브로셔를 찾아 주문하고 싶은 제품들을 체크했고 담당자와 상담하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보였다. 해당 브로셔에는 제품 이미지컷과 함께 상품 코드, 납기일, 가격, 사이즈스팩까지 수출 거래에 필요한 모든 사항이 기입돼 있었다. 이곳 부스에 유독 눈에띄는 한 여성이 있었다. 훤칠한 키와 출중한 미모를 가진 그녀는 직접 브랜드 브로셔를 나눠주고 보여주며 바이어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지난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상해에서 열린 프리뷰인상하이 전시회에 첫 참가해 유수의 대기업을 제치고 가장 높은 실적을 달성한 (주)린애스앤제이 '몬테밀라노'의 오서희 대표였다. 오서희 대표는 제대로 된 기본기를 갖추고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모든 성공노하우를 갖고 있어 국내 패션업체들의 벤치마킹 대상 0순위다. 그의 성공비결을 오서희 대표의 인생관과 함께 낱낱이 파헤쳐봤다.
“너무 어린나이에 겪은 실패와 좌절이 내겐 값진 경험 그렇게 힘들게 했던 의류업 내공 쌓아 다시 뛰어들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성공하는 방법 따로 있었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 하지만 오대표의 숨은 이력은 실로 화려했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그녀는 미국 오클라호마 유니버시티에서 파인아트(Fine Art)를 전공하고 이후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며 작품 활동에만 매진해왔다. 하지만 예술을 전공한 탓일까. 남들보다 탁월한 컬러감과 디자인력을 가진 장점을 살려 평소 좋아하던 의류업에 취업했다. 이태리 유명브랜드 '레오나드'와 '아이스 버그'에서 MD 팀장으로 활약하며 나염에서부터 소재개발, 디자인, 선진형 판매시스템 노하우 등 최고의 실력을 축적한 이후 2001년 2월, 드디어 자신의 브랜드 몬테밀라노 사업에 본격 뛰어들게 된다. 이태리 현지에서 역수입해 한국의 명품브랜드로 런칭해 공격적인 브랜드 전개에 나서지만, 수입관세와 상품 회전율, 비싼 소비자가격등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면서 결국 사업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이후 다른 사업으로 외도를 해보지만 결국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패션사업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몬테밀라노'를 재런칭, 컨셉과 디자인력을 크게강화하고 명품 브랜드 생산공장과 계약에 성공해 완벽한 상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009년 몬테밀라노는 국내 45개 알짜 백화점과 미국 350개점에 수출하며 최고의 명품 SPA 브랜드로 그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오대표에게 있어 사업실패의 경험과 재기의 시간들은 가장 값진 경험이자 다시 재기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당시 어린마음에 마음이 많이 앞섰던건 사실이에요. 명품브랜드의 SPA라는 개념도 당시 국내 마켓에서 생소하기도 했구요. 게다가 버는 족족 투자했던 탓에 자금 유동성이 어려워졌죠. 많이 힘들었던 만큼 재기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어요. 지금껏 제가 인생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첫번째는 제가 좋아하는 의류업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너무 어린나이에 크게 망해본것. 그리고 다시 의류업을 시작한 것이에요." 오 대표가 다시 몬테밀라노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가장 주안한 점은 '부채는 제로, 풍부한 현금 유동성'이라는 경영 철칙이었다. 즉, '절대 가진 돈 안에서, 없어도 되는 돈만 투자하자'는 것이다. 다시 새롭게 시작한 (주)린애스앤제이는 '몬테밀라노'의 기본기를 새롭게 다져 재출발하기 위한 토대를 닦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해 낸 것이 고객의 니즈를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몬테밀라노는 한마디로 트랜디하지만 합리적인 대한민국 아줌마를 공략하는 브랜드에요. 키 162센티미터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전문대학을 졸업했으며, 남편은 대기업 과장급 이상, 또 한두번 외국에 나갔다와서 해외브랜드에 대한 지식도 높은 편인 중상층 여성이죠. 수입명품 옷을 입고 싶지만 막상 구입할 돈은 없고 약간 허영심은 있어서 싸구려 옷은 사입기 싫고, 또 드라이클리닝값도 아낄 줄 아는 합리적인 소비자죠" 고객을 정하고 나니 그들에게 입힐 가장 좋은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오 대표는 그동안의 모든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패턴과 소재개발에 차별화를 생각해냈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대개 소재팀과 디자인팀이 별개로 돼있는데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소재를 모르고 부자재를 모르더군요. 미술도 신체와 머슬, 누드등 순수미술이 기본이되어 그위에 색깔과 기교가 입혀지듯이 옷도 기본인 패턴과 소재에서 제대로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완벽한 편안함을 위한 패턴개발과 신축성 높은 스판소재를 모든 제품에 응용하자였다. 몬테밀라노의 제품은 거의가 니트류인데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저희 타깃인 주부들이 가장 원하는 부분이 활동성이에요. 입어서 가볍고 입어서 편한옷이죠" 활동에 있어서 가장 편안한 신축성 강한 이 니트류들이 우븐에도 완벽히 재현됐다. 특히 활동의 불편함은 앞판과 뒤판, 팔 모두 다른 소재를 믹스해서 사용해 완성시켰다. 많은 패턴개발과 시행착오, 끝없이 지속된 소재 개발 투자로 지금의 몬테밀라노를 완성된 것이다. 만든 옷은 반드시 오 대표가 직접 입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본사 디자이너들에게 현장 판매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매장에 직접 고객이 입는 모습을 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래야 더 나은 제품을 개발을 할 수 있기 때문. 몬테밀라노의 가장 큰 강점은 원단 나염부터 제품 출고까지 그 어느 단계에서도 컨버터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노하우는 생산시스템에 있다. 2006년 6월, 몬테밀라노는 중국 광주에 지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완비시켰다. "중국지사는 생산과 관리를 모두 책임지고 있고 한국은 디자인하우스의 역할만 담당하죠. 제가 원단컨버터 출신이다 보니 디자인의 기본인 소재의 노하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원단의 나염에서부터 모든 걸 진행하고 생산과 관리를 모두 중국 현지화시키다보니까 커미션이 생길수가 없었죠. 특히 비싼 브랜드보다는 많은 이들이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SPA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프로모션을 철저히 배제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었죠." 특히, 중국 생산 시스템은 국내 패션업체들이 가장 눈여겨 볼만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중국 지사는 PM(생산총괄)팀과 QC(검품관리)팀, 기획팀(원단, 부자재, 제품기획)으로 구성돼있으며, 총괄매니저부터 직원까지 모두가 한족 즉, 중국인들이다. 이곳은 철저히 중국 현지화되어있으며, 특히 철저한 책임제로 운영되고 있다. 몬테밀라노의 제품 하나하나 모두가 자신의 이름과 능력에 의해 결과물로 탄생되기 때문이다. 이는 몬테밀라노의 완성품 라벨과 택까지 이어진다. 제품의 케어라벨을 살펴보면 각 PM담당자의 영어이름이 표시돼있으며, 택에는 내부에 각 QC 검품도장 번호가 명시돼있다. 또 A,B,C,D로 나뉘어진 4개의 기획팀의 알파벳도 함께 명시돼있다. 바로 어느 팀 누가 이옷을 만들었는지를 한번에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 덕분에 중국 지사는 특별한 인력관리 없이도 몬테밀라노의 완벽한 상품력을 구현해주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 "프리뷰인상하이에 가보니 20년이상 근무해온 한국지사장들에게 중국 사업을 맡기고 있더군요. 하지만 한족 직원들을 잘못 다루면 한국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는 경우를 자주 보게되죠. 전 매니저들에게 개인대소사까지 모두 잘 챙겨주고 직원들을 항상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직원들의 그 사랑의 보답으로 책임있게 일하게 되죠. " 그래서일까. 중국지사의 아침은 '불량스쓰와(불량은 죽음이다)'를 구호로 외치며 시작된다. 이처럼 몬테밀라노는 옷 하나하나는 수입 명품브랜드의 퀄리티와 로얄티를 느끼게 해주지만 니트웨어에서 트랜치코트까지 모든 제품이 물세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인 브랜드다. 여기에 남들이 못하는 컬러 믹스앤매치와 고급스러운 나염의 니트소재의 티셔츠가 2만9천원, 스커트 4만9천원이라는 상상할수 없는 가격 경쟁력까지 보유했다. 몬테밀라노의 라벨에는 또 한가지 문구가 눈에 띈다. 바로 오 대표의 신조인 "The great goal is not knowledge but action" 이러한 전략 덕분에 매주 수요일이면 국내 45개 몬테밀라노 매장에는 신상품이 입고되는 패스트 패션브랜드를 유지해주고 있다. 최근 국내 대표 여성복 브랜드들은 앞다퉈 몬테밀라노를 벤치마킹 0순위로 선정하고 철저히 연구할 정도다. 2004년 12월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한지 4년반만에 현재 국내 45개 롯데 백화점과 현대백화점, AK 프라자 등에 입점해 있는 몬테밀라노는 이중 반 이상은 동종 PC에서 매출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워낙에 해외에서 쌓아온 실력과 노하우 덕분에 글로벌 브랜드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었다.
"나의 첫번째 고객은 매니저"
린애스앤제이의 또 한가지 전략은 선진형 전산시스템을 통해 그룹웨어로 모든 의사소통을 진행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 지사의 직원들까지도 인터넷 화상 통신을 통해 오서희 대표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매장 역시 매주 수요일마다 입고되는 몬테밀라노의 신상품 공지를 비롯해 많은 업무를 그룹웨어로 소통하고 있다. 특히 오대표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이들 샵 매니저들이다. "저의 첫번째 고객은 판매직원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저의 애정을 전달하고 있죠. 저는 BtoB비즈니스를 그리고 판매직원들은 BtoC 비즈니스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판매직원만큼 더 옷을 잘 알고 잘 만드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판매예측능력이 없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될수 없다고 주장하는 오 대표는 시간만 나면 매장에 나가 늘 새로운 고객들을 유입시키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지금은 한국의 대표브랜드로 세계 진출하는 글로벌 기업의 명성을 쌓고 있다. 2007년 11월 LA지사를 설립후 미국내 350개 매장에 '몬테밀라노'를 수출을 시작해 전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 시장 역시 몬테밀라노의 성공 깃발은 가장 높이 꽂게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몬테밀라노가 세계적인 글로벌SPA 브랜드로 도약해가고 있다. 조정희 silk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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