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에 희생했던 의정부… 미군공여지 개발위해 정부가 나서야”
“8곳 대형 개발사업 추진 주변 낙후지도 발전할 것”
가용 예산 한 해 500억에 한 곳 토지비용만 4000억
장시간 방치땐 주변 슬럼화 정부 특별 지원책 절실
조철오 기자
입력 2022.04.06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 앞 최근 모습을 담은 전경사진. 이곳은 오랫동안 미군기지였던 캠프 홀링워터가 있던 부지로, 지난 2007년 반환됐고 지난 2017년부터 시민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공원에는 베를린 장벽, 안중근 의사 동상 등이 마련돼 있다. /의정부시 제공</figcaption>
경기도 의정부시는 과거 ‘군사도시’로 불렸을 만큼 주한미군과 관계가 밀접하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미군이 먹다 남기거나 보급품에서 빼돌린 재료를 활용한 부대찌개가 처음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6·25전쟁 직후 미군 주둔으로 기지가 생겨나고 기지촌이 형성됐다. 그러나 전국의 미군 기지들이 지난 2017년부터 순차적으로 평택에 조성된 캠프험프리스로 이전하면서 의정부에서 미군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의정부에는 8개의 미군기지가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었다. 미군 기지가 들어섰던 곳을 미군공여지라 하는데, 이곳은 지난 2006년부터 시행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공여지특별법)에 근거해 개발이 가능해졌다. 의정부시는 지난 10년 동안 이를 근거로 지역발전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으로 지역을 개발한 선례가 많지 않아 일부 사업이 실패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있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의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했던 지역”이라며 “정부는 공여지 개발을 위해 재정적으로 특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에 희생된 의정부, 특별법으로 보상받는다
1953년 7월 휴전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의정부 전체 면적(81.98㎢) 중 7%(5.7㎢)에 미군기지가 자리잡았다. 기지의 숫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의정부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한미군은 만약 북한이 남침할 경우 의정부가 진입로로 쓰일 가능성이 높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국군 306 보충대·군수지원사령부 등도 함께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군부대가 자리잡자 보안을 이유로 주변 토지 이용에 제약이 생겨나면서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를 불렀다. 특히 피난민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무분별하게 건물을 지었고, 지금은 제대로 손보기 어려울 정도로 슬럼화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도시 정비는 의정부시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의정부시는 미군공여지 8곳이 문제 해결책이라 봤다. 이곳에 대형 개발사업을 추진하면 주변 낙후지역도 함께 발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지난 2007년에 반환된 캠프 홀링워터·에세이욘·시어즈 등 3개는 현재 개발이 완료됐다. 캠프 카일의 경우 2007년에 반환됐고 당초 법원·검찰 신청사로 유치하려 했지만 2017년 6월 계획이 무산됐다. 의정부시는 2019년 도시개발사업으로 계획 변경했다. 카일에는 경기연구원 등 공공청사와 창업혁신센터 등이 들어선다. 캠프 잭슨·레드클라우드는 지난 2020년부터 반환 절차를 거치고 있다. 캠프 라과디아는 공원이 조성중이다. 캠프 스탠리는 아직 반환되지 않았다.
◇돈 없는 기초단체, 사업 추진에 걸림돌
현행법상 미군기지는 땅 주인이 주한미군이다. 국내로 반환 시 우선 국방부로 잠시 귀속되고, 약 2~3년간 환경정화 사업을 거친다. 관할 시·군이 유일한 우선협상 대상자이자 최종 귀속자인데, 국방부는 이를 반납하듯 반드시 넘겨야 한다. 그러나 서울 용산을 제외한 타 시·군의 경우 미군기지가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사업성이 낮다. 이 때문에 관할 시·군들은 개발 의사가 있어도 막대한 땅값을 지급할 수 없다. 그래서 전국의 상당수 미군공여지가 중간 대리인인 국방부 소유로 장기간 방치되는 상태다.
과거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 인근에 주둔하던 캠프 홀링워터의 모습. 캠프 홀링워터는 경기북부지역에 주둔하던 미군들에게 군수물자를 보급하던 역할을 했다. /의정부시 제공</figcaption>
특히 재정자립도가 21% 밖에 되지 않는 의정부의 경우 재정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의정부시는 한 해 예산이 약 1조2000억원이다. 이중 약 60%인 7300억원은 복지예산 등 고정비로, 약 32%인 3800억원은 공무원 월급 등 일반적 경비로 쓴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실제 쓸 수 있는 재원은 4% 정도인 평균 500억원 정도다. 약 10년 전 의정부시는 캠프 레드클라우드의 토지비만 약 4000억원으로 추산했는데, 단순하게 계산해도 의정부시 8년치 가용 총 재원에 맞먹는 수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의정부시는 공여지 일부에민간사업자가 개발에 참여하도록 대안을 구상했다. 민간업자가 전체 땅 중 일부 구역에 아파트 단지를 짓고,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상당수 남은 땅을 원하는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반환부지가 장기간 방치되면 주변 일대가 슬럼화된다”며 “시민 편익을 위해 개발이 절실한데, 민간투자가 사실상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정가 “정부가 현실 전반을 살펴야”
공여지특별법에는 특례 조항이 있다. 보통 수도권 규제법에 따라 의정부는 대학 유치가 안 되는데, 특별법으로 대학 유치가 가능하다. 동두천 동양대, 파주 폴리텍대학 등이 유치됐다. 각종 특혜에도 불구하고 절차가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민간이 투자를 꺼린다는 분석이 있다. 과거 광운대와 건국대가 스탠리와 레드클라우드에 각각 부속 캠퍼스를 짓겠다고 의정부와 투자양해각서를 맺었지만, 사업이 도중 중단된 사례도 있었다.
레드클라우드의 경우 당초 안보테마타운으로 개발하려 했었다. 그러나 막대한 부지비 때문에 지역에서는 반환돼도 의정부시가 개발할 돈이 없어 결국 사업이 실패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최근 정부가 국비 일부를 투입해 e 커머스 물류단지로 조성한다고 밝히면서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특히 현행법의 개발 절차가 현실과 괴리감이 있어 이를 감안해 제대로 운영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미군공여지 개발은 여러 난관이 많아 선뜻 운영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며 “성공적 안착을 위해 정부가 현실적 난관들을 살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