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텟 엑스는 지난 2000년 결성된 현악 사중주단이다. 이들이 꾸미는 무대는 한눈에 봐도 기존의 실내악 연주회와는 다르다. 악기와 마이크를 번갈아가며 잡고, 한 편의 뮤지컬처럼 콰르텟 엑스만의 연주회 스타일을 만들었다. 하루에 두 번씩 무대에 서기도 하며 연간 250회 이상의 일정을 소화한다. 이것은 콰르텟 엑스가 가진 철학에서 비롯된다. 청중에게 클래식 음악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면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콰르텟 엑스가 현악 사중주단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게 된 것도 이렇듯 목숨 걸고 음악에 임하기 때문이다.
콰르텟 엑스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36) 씨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다음 일정이 강의인데, 눈이 와서 길이 막힐까 걱정이다”라며 웃는다. 콰르텟 엑스의 인터뷰가 진행된 카페는 시끌시끌했다. 제2 바이올린의 박소연(29) 씨, 비올라 김희준(34) 씨, 첼로 임이랑(31) 씨가 서로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하” “호호” 분위기를 띄워 편안한 촬영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김희준 씨의 넥타이가 비뚤어지자 박소연 씨와 임이랑 씨는 바로 넥타이를 바로잡아준다. 콰르텟 엑스 멤버들이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벌써 11년이 되었네요. 저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실내악 잘하는 팀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마침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콰르텟 엑스를 창단했죠.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연주회부터 시작하지 말고, 일단 연습만 죽도록 해보자는 거였죠. 창단 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주회는 하지 않고 기량만 연마했지요. 우리가 해보고 싶었던 모든 현악 사중주 레퍼토리를 연습했어요. 물론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요.”
조윤범 씨는 “실내악 팀은 대부분 연주회를 위해 조직되고, 연주회 이후에는 소홀해진다. 이러한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정반대의 노선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들은 대중 앞에 나서기 위해 충분히 준비했고, 드디어 2004년 <거친 바람 성난 파도>라는 제목으로 콰르텟 엑스의 첫 작품을 공개한다. 이 무대에서 그들은 무려 2시간 20분에 걸쳐 어렵기로 유명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베토벤의 〈대푸가〉를 악보 없이 외워 연주했다.
“개성이 강한 네 명의 음악가가 모인 단체가 오래 지속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웃음). 제가 팀을 만들 때 고민스러웠던 것도 이 점이고요.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우리와 같은 현악 사중주단이나 음악 단체가 아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조직을 벤치마킹해보자는 거였습니다. 우리 팀도 하나의 기업이니까요. 특히 미국 애플사의 경영철학을 주의 깊게 읽고, 관찰했어요.”
조윤범 |
그들은 연주회 포스터를 만들 경우 포스터가 가장 발달한 분야인 영화 포스터를 분석했다. 콰르텟 엑스의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지금까지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포스터를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독특하다. 최근 공연 중인 <콰르텟 엑스와 세 개의 방> 포스터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신비로운 분위기가 배어난다. 연주단체에게 정말 중요한 홍보와 마케팅도 혁신적인 효과를 내는 기업에서 배울 점을 찾았다. 이렇게 콰르텟 엑스는 성공한 분야의 노하우만 골라 흡수했는데, 결과는 무척 좋았다. 연주할 기회가 점점 많아졌다.
“본격적으로 연주 활동이 많아진 것은 2004년부터예요. 2005년에는 바흐의 음악을 담은 음반 〈샤콘느〉도 출시했고, 통영국제음악제와 일본 초청 연주회도 가졌고요. 총 12회로 기획한 〈히스토리〉와 베토벤의 작품만을 다룬 〈비나인〉 등 콰르텟 엑스의 기획 연주회도 많이 열었습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현악 사중주 팀으로 출연하기도 했고요.”
콰르텟 엑스가 여는 수많은 음악회에는 소외계층을 위한 무대도 포함된다. 이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 음악의 즐거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간다.
우리가 주인공인 음악영화 만들 거예요
박소연 |
현재 콰르텟 엑스의 멤버 중 리더 조윤범 씨와 함께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사람은 박소연 씨다. 햇수로 5년째 제2 바이올린의 역할을 센스 있게 맡아온 그는 “현대의 클래식 연주자는 음악뿐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원 재학 중 강의 시간에 콰르텟 엑스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우연한 기회에 멤버 충원 오디션에 응시해 단원이 됐다 한다.
“공연의 기획이나 홍보가 특이한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디션에 참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이러한 매력에 끌렸고요. 오디션 때 멤버 그리고 매니저들과 나눴던 인터뷰가 상당히 까다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음악가로서의 꿈과 팀원들과 조화롭게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죠.”(박소연)
팀원 모두의 찬성으로 팀원이 된 박소연 씨는 생각지 못한 곤란에 처한 적도 있다. 워낙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팀인데다, 2집 녹음을 앞둔 상황이어서 몇 십 곡의 작품을 완벽히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타고난 근성으로 그는 모든 숙제를 잘 마쳤다.
김희준 |
“팀이 잘 운영되려면 리더의 의견을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독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느 정도 서로 맞춰주는 분위기가 필요하죠.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힘들지만, 갈수록 팀원 간의 유대감이 더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어요.”(박소연)
비올리스트 김희준 씨는 지난 2008년부터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고, 첼리스트 임이랑 씨는 1년 전부터 종종 연주를 함께 해왔다. “무엇보다 전업실내악단이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는 김희준 씨. “우리나라에서 연주로 먹고 살 수 있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 더군다나 현악 사중주 팀이 이렇게 많은 연주회를 하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다”고 말한다. 같이 음악을 공부한 주변 친구들도 이들의 활동을 내심 부러워할 때가 있다고 한다.
“한번은 지방 연주를 마치고 기차 시간 때문에 급히 역으로 간 일이 있었어요. 그때 어떤 팬이 커다란 보온병을 건네주며 마셔보라고 하셨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차를 맛있게 나눠 마셨어요. 재미있었던 일은 그 팬이 팬클럽 게시판에 보온병을 꼭 돌려달라고 했던 거예요. 특급 우편으로 보내드렸죠(웃음).”(김희준)
임이랑 |
콰르텟 엑스는 팬클럽과의 친목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방학을 이용해 MT도 가고, 공연이 끝난 후 술 한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여성 팬에게 인기 많은 사람은 리더”라는 다른 멤버들의 농담에 조윤범 씨의 얼굴이 발개졌다.
“대중은 수준이 높습니다. 클래식을 쉽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청중을 낮게 보는 데서 출발하면 안됩니다. 교향곡부터 세미 클래식, 영화음악 등 저희가 연주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음악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 진심 어린 노력이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음악으로 한 걸음 더 가깝게 이끌 수 있으니까요.”
이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우리를 주인공으로 한 음악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클래식 연주단체의 목표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튀는 대답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습이 밉지 않은 것은 공연장이나 스크린이나 그저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