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MBC ‘내조의 여왕’의 평균 시청률은 21.5%(TNS미디어코리아). F4 열풍을 일으켰던 KBS ‘꽃보다 남자’(28.5%)에 살짝 못 미치네요. 연초 종영된 ‘너는 내 운명’(KBS1, 39.9%)과 ‘막장드라마’ 논란을 불렀던 ‘아내의 유혹’(SBS, 34.6%)이 올 상반기 최고 인기작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대 최고 인기 드라마는 무엇일까요. 본지가 언론 사상 최초로 공식 집계했습니다. 더불어 TV 시청률은 어떻게 조사하는지, 그리고 왜 요즘 시청률은 예전만 못한지 알아봤습니다.
시청률을 기준으로 요즘 가장 뜨는 TV 프로그램은 SBS주말극 ‘찬란한 유산’이다. ‘찬란한 유산’은 6월 첫 주간(6월 1~7일) 기준 31.2%(AGB닐슨미디어리서치, 이하AGB닐슨)를 기록해 2주 연속 왕좌에 올랐다. MBC 아침 드라마 ‘하얀 거짓말’(22.9%)과 KBS2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22.4%)이 뒤를 이었다. 주간 시청률 상위 10개 프로그램 가운데 무려 7개가 드라마였다.
한국인의 드라마 사랑은 유별난 편이다. 지난 1월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은 “지상파 방송 3사를 통해 주당 5520분, 하루 약 13시간씩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주간 드라마 편성 비중은 2006년 14.3%(4750분)에서 2007년 16.8%(5620분),2008년 17.8%(5980분)로 계속 증가해 왔다. 편성 비중이 큰 만큼 인기도 높아 올 상반기(1월 1일~5월 31일) 전체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 집계에서도 상위 10위권에 드라마가 8개나 포함됐다. <표1 참조>
그렇다면 역대 가장 사랑받은 ‘완소(완전 소중) 드라마’는 무엇일까. 본지는 시청률 조사 회사 AGB닐슨에 의뢰해 1992년 1월 1일부터 2009년 5월 31일까지 방송된 모든 드라마의 평균 및 회차별 시청률을 조사했다.
결과 97년 4월 20일 방영된 KBS2 주말극 ‘첫사랑’이 65.8%로 가장 많은 시청자를 TV 앞에 불러 모았다. <표2 참조> TV가 있는 열 가구 중 여섯 가구가 그날 저녁 ‘첫사랑’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조소혜 극본의 ‘첫사랑’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의 갈등을 중심으로 70, 80년대 도시민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65.8%의 기록은 마지막 회에 나온 것으로 자체 최고 시청률이기도 했다. 4개월여 방송 기간의 전체 회차를평균 낸 시청률은 47.1%로 해당 부문 5위였다. <표3 참조> 전체 평균 시청률 1위는 MBC 주말극 ‘사랑이 뭐길래’(59.6%)가 차지했다. 지금도 맹활약 중인 김수현 작가의 대표작으로 보수적인 가부장(이순재)이 이끄는 대가족내 신·구 갈등을 코믹하게 다뤘다. 시청률 조사 전인 91년 11월 30일부터 방송되기 시작해 엄밀한 의미에서 전체 평균은 아니지만, 2위 ‘아들과 딸’(49.1%)을 여유 있게 앞섰다. 회차 시청률에서도 92년 5월 24일 방송분이 64.9%를 기록해 역대 2위에 올랐다. 평균 시청률 상위 10편 중 4위‘첫사랑’과 5위 ‘모래시계’(SBS)를 제외한 8편을 MBC가 휩쓸어 ‘드라마 왕국’ MBC의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국내 시청률 집계는 92년 AGB닐슨의 전신인 미디어 서비스코리아(MSK)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식 자료도 이때부터가 기준이다. 70년대 TBC ‘아씨’, KBS ‘여로’ 등이 방송될 땐 길거리 인적이 끊길 정도로 인기였다고 전해지지만, 공식 시청률은 확인할 길이 없다. TV 수상기 80만 대 시대와 2000만 대 시대(2006년 기준)의 시청률을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시청률 순위표를 보면 2000년대 이후 드라마가 거의 없는 게 눈에 띈다. ‘허준’(2000), ‘태조 왕건’(2001), ‘대장금’(2004) 등이 이례적으로 선전했다. 여가 활동이 TV 시청에 집중됐던 90년대 이전과 달리 옥외 활동이 늘면서 시청률 50%를 넘나드는 ‘국민 드라마’가 나오기 어려워진 것이다. 역대 시청률 상위권을 주름잡았던 주말 연속극이 예전만큼 가족 시청자를 결집시키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다.
케이블TV·지상파 DMB·인터넷 다시보기·IPTV 등 신종 플랫폼이 늘어난 것도 시청률 하락을 부채질했다. 이에 따라 지상파TV 시청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2008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98년 하루 평균 3시간을 넘던 것(193.6분)이 2008년엔 2시간이 채 안 되는 116.7분으로 줄었다.
전화번호부에서 뽑은 2000여 가구 리모컨에 달렸다
인터넷 신조어 중에 ‘닥본사’라는 용어가 있다. ‘닥치고 본방 사수’의 준말로, 재방송이나 다운로드가 아니라 ‘본방송을 시청하자’는 뜻이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구호로 활용된다. 하지만 시청률 조사 과정을 알면 아무리 ‘닥본사’해도 실제 시청률 집계엔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국내 시청률 조사기관은 미디어서비스코리아(MSK)를 전신으로 하는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이하 AGB)와 1999년 설립된 TNS미디어코리아(이하 TNS) 두 군데다. 이들은 시청자들이 언제, 어떤 방송 프로그램을 얼마만큼 보고 있는지를 백분율로 측정한다. 전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먼저 기초조사를 통해 인구 분포와 TV 시청환경의 현황을 파악한다. 이를 모집단으로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가구를 대상으로 패널을 선정한다. 패널 선정엔 지역·TV 대수·가구소득·TV 시청량·성별·연령대 등 다양한 요소가 고려된다. 현재 AGB의 패널은 2350가구, TNS는 2000가구다.
조사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양대 기관이 사용하는 것은 피플 미터(People Meter) 방식이다. 패널 가구에 전용 리모컨과 TV 부착용 전자장치를 설치한 다음 누가 언제·어떤 방송을 시청하는지 기록·송신하게 한다. TV를 켜고 끄는 것은 피플 미터가 자동 인식하지만 시청하는 동안은 패널 개인이 누가 시청 중인지 버튼을 눌러줘야 한다. 그 때문에 정확한 집계를 위해 조사기관은 끊임없이 패널을 모니터링·교육한다.
일반 시청자에게 시청률은 화제작의 바로미터 정도로 참고되지만, 여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업계가 있다. 매체 광고 전략을 짜야 하는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다. 이들에겐 시청률만이 아니라 성별·연령대별 시청 행태도 광고를 집행하는 데 중요한 잣대다. 방송사와 제작사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이 높을수록 광고가 많이 붙는 상황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어떤 시간대에 넣고 뺄지 결정할 때 시청률은 가장 중요한 준거 자료다.
이렇다 보니 시청률을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두 기관의 시청률 차이이다. 시청률 1%에 울고 웃는 업계로선 경우에 따라 몇 %씩 차이가 나는 결과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오차 범위(5%) 안의 시청률 격차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하지만 광고주도 방송사도 다른 기준이 없다 보니 0.1%P가 희비를 가르기 일쑤다.
집 안의 TV 수상기만 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시청률 집계 방식을 문제 삼기도 한다. DMB·IPTV 등 신종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찜질방·경기장 등 옥외 시청 양태도 다양해졌는데 시청률 집계 방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AGB닐슨은 실시간으로 분당 시청률을 집계하는 라이브 레이팅(Live Rating)을 도입하고 TNS도 DMB 시청률 측정에 나서는 등 뉴미디어 시대에 대처하는 움직임도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