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름대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다
청주 혹은 대전에 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저사람 들이 어쩌다 철원에 왔을까?
이미 고려시대 에 있었던 집단이주의 역사처럼 철원과 청주에 불가분의 관계맺음이 있었던 것일까?
손바닥만 하다고
시내 몇번 다니면 아까만난 사람 또 만나고 또 만난다던 청주시 형태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통 고향같은 맛이 안난다
고교시절 내 어두운 청소년기의 불운함이 배어있는 곳
하루 한끼의 라면이나 길에서 파는 핫도그 2개로 끼니를 때우며 친구들이 학교 갈때
교복을 입고 청주기계공고 앞 담배소매인조합으로 출근을 하며 겪었던 수많은 창피
굴욕감 조차 그나마 행복이었던 때 였다.
한권의 책도 손에 잡을 시간이 없었으며 근무를 끝내고 늦은오후에 학교언덕을 오르면 중학생 아이들 조차 무슨벌레를 바라보듯 책 걸상을 내어주며 짜증을 부리던 학교생활, 적응이 안돼 날마다 창문가에 기대서서 한없이 흘렸던 눈물 , 눈물이 나를 교회로 불러 들였다 붙잡고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간 청주제일교회
만만치가 않았다
기독교 역사 와 역사를 같이하는 높은 이력 몇개의 학교 학원 사업을 하며 덕망과 학력을 자랑하는 인텔리 들의 교만함이 학생회 깊숙히 까지 자리 잡아 있었다.
가난한 고학생이 다니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 또래 친구들과의 교우를 유지한다는 자체가 호사 이며 사치였다 .
난 가난한 놀음쟁이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내어준 도장 하나를 들고 도시를 기어 들어와 살집이 없어서 가출하여 떠돌이 궃판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의 방귀퉁이 한곳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내가 학교 가고 없으면 할머니가 날마다 상차려놓고 귀신 물리쳐 달라고 푸닥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
사흘이 멀다고 다니는 이사, 덕분에 청주시내 왠만한 지리는 내손안에 있지만 갈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