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보수의 선거 연패 원인
“이성의 시대여 안녕. 혼돈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 일간지에 정치인구학의 대표적 학자인 에릭 카우프만의 말을 인용, 소개했다. 지난 4.10 총선 결과가 정치인구학적 불균형이 가져온 서막에 불과하다며 밝힌 말이다.
“진보 진영에서 범죄 혐의를 벗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후보나 상상을 초월하는 막말로 논란을 빚은 후보조차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분개했을 보수 성향 유권자에게 전한다”며, 정치인구학을 지금의 정치 현실로 지적했는데, 사실 정치학적으로 정치인구학은 아직 논란이 많은 편이다. 본래 정치는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는 좋고, 나쁨의 선택이다.
물론 정치 윤리가 분명하고, 정치 도의가 필요하지만 정치 행위는 정염적으로 흐른다. 이성이 정염의 노예라고 하듯이 정치 행위 역시 예측 불가능하게 감성적으로 진행된다. 마치 인간의 ‘자기 부정적 예언’과 같다. 그래서 정치인구학은 공감스럽지만 동감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공학적으로는 정치인구학이 설득력이 있다.
지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결과는 상당히 의외였다. 아무리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무서운 민심으로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모든 선거가 항상 구도만 가지고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정권심판론 프레임이 아무리 거세도 국민의힘 나경원과 안철수 후보 등 일부 후보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는 후보자의 경력과 실력이 선거 구도와 프레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후보자의 인물론이 선거 구도를 극복한 것인데, 여기에 주효한 것이 선거 조직론이다.
선거 운동 조직은 선거의 기본이다. 본래 선거는 조직과 바람 그리고 돈이라는 정설이 있다. 요즘 선거에서 돈 선거는 거의 사라진 셈이지만 조직과 바람은 아직도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조직이 튼튼하면 바람을 막을 수도 있고, 반대로 조직이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만큼 선거 조직은 선거 승리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승패는 선거캠프 조직에서 판가름났다는 것이 정평이다.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후보에게 5천여 표 차이로 참패한 것은 선거캠프 조직에서 졌다는 것이다. 법원장과 감사원장을 지내고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섰던 최재형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일개 정치 무명 신인 곽상언 후보에게 패한 것은 야당의 정권심판론이라는 바람 이전에 선거 운동 조직의 열세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거의 이변에 가까운 최 후보의 패배 원인을 최 후보 선거캠프 운동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국민의힘 당원들은 이구동성 선거 조직의 노령화를 손꼽았다. 기득권에 빠진 구태의연한 조직 구성이 결국 패배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선거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을 비롯해서 모두가 노인들 판이었다고 지적한다. 80세가 넘은 고문단과 70대 후반의 노인들이 선거 운동 사무실에 진을 치면서 60대 이하 중장년 운동원들이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는 평가다. 젊은 세대 운동원들은 그 자리에 끼지도 못했고, 그들의 의견은 완전 무시를 받으며 오히려 의견을 내면 싸우려 들거나 호통만 치는 형세여서 정치인구학 차원의 불균형은 물론 선거공학적 차별과 불통이 심각했다는 평가다.
사실 이러한 국민의힘 종로구 당원협의회 난맥은 비단 이번 선거뿐만이 아니다. 멀리는 지난 2012년 선거에서부터 시작됐으며, 가까이는 2020년 제21대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그 당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후보자가 더불어주당 이낙연 후보자에게 패할 때도 비슷한 경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10년 종로구청장 선거에서 김영종 후보가 당선된 이후 당원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정세균 종로구 국회의원 시절부터 인적 쇄신을 강화시켰다. 노인 당원들을 고문 등으로 일부 후퇴시키면서 젊고 새로운 인사들을 영입하여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 외연 확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항상 그 인물이 그 인물이었고, 나이는 어느새 70세를 넘어 80세까지 넘어가는 초고령화를 보이면서도 항상 선거 중책을 맡아 선거를 치뤘다. 그 결과 모두 선거에서 패배를 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단지 지난 202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구청장 선거를 겨우 이겼는데, 그 이유는 대통령 선거 여파와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국회의원 선거 패배 원인에 대해 국민의힘 당원들은 한결같이 선거 운동 조직에서의 인적 구성을 문제로 삼았다. 그러니까 선거인구학의 불균형이 비로소 드러난 셈인데, 이는 종로 보수의 고질적 병폐다. 수십년 간 기득권을 유지한 채 어른 행세만 하면서 절대로(?) 후배들을 안 키우는 그들의 권력 안주가 심각한 상태다. 그들은 새로운 후배 육성도 안한다. 정치에서 후배는 스스로 크는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절대로 자리를 양보할 생각도 없다. 10년 만에 겨우 종로 국회의원 자리를 찾아왔는데 2년 만에 다시 빼앗기는 상황이 바로 그런 노인들의 기득권 탓인 셈이다.
종로구 보수는 앞으로도, 그 고질적 병폐를 쇄신하지 못하면 매번 선거가 위태로울 것이 명약관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