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지 여고 교사가 되어 처음 설악산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교 시절 수학여행을 빠졌으므로) 여고생들의 해방감이야 당연하겠지만 선생인 나 역시 설악산 첫 경험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기껏 충청도 야산 정도나 보아왔던 나로서는 잠시나마 거친 굴곡의 강원도 산세에 푹씬 빠져 들어갔던 것 같다. 등반과 식사 그리고 수학여행의 꽃인 ‘캠프 화이어’를 마칠 때까지 그런 대로 좋았던 같다. 그리고 밤이 왔다. 여고생들은 올 나이트 디스코판으로 광란의 밤을 보내는 중이었고 인솔교사들도 ‘오늘은 그냥 놔 둬야지’ 하면서 불안하게 주시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여관을 빙빙 돌아 온통 남학생들의 숙소라는 점이다. 녀석들은 이미 ‘수학여행 소주판의 뒤끝’처럼 보였다. 대부분이 지쳐 늘어진 채 우리 여관만 호시탐탐 노려보는 어둠 속의 그림자가 얼핏 승냥이 눈빛처럼 이글거리기도 했다. 소나무 아래 웅크려 담뱃불을 나누는 방황의 풍경이 얼핏 봐도 불량과자다. 우리 학교 남교사 규찰대가 위협 주듯 어슬렁어슬렁 다가서면 그림자처럼 슬그머니 피했다가 잠시 후 다시 담벼락 가까이 다가온다. 불안하다.
오픈 게임은 학생부장과의 지하 식당 순찰에서 벌어졌다. 컴컴한 지하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서서 문을 여는 순간 창가에 붙어있던 그림자 몇 개 ‘흡’ 숨을 멈추며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틈입자다. 공포 영화 배경처럼 찬 바람이 ‘쌩’ 스쳐갔다. 으스스 하지만 숙소에 침입한 남학생들임을 직감했으므로 겁이 나진 않았다. 우선 불을 밝힌 다음 위압적으로 선수를 친다.
“일어섯! 쥐새끼들!”
날카롭게 소리 지르자 잠시 늪 같은 정적에 빠진다. 그러더니 식탁 아래에 납작 엎드렸던 떠꺼머리 고등학생 네 명이 파랗게 질린 채 일어선다. 어떻게 숙소까지 침투했을까? 둘은 장대처럼 키가 크고 둘은 작달막하다. 먼저 덩치 큰 놈을 제압하는 게 순서다. 귓바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아야야’ 인상을 찡그리며 질질 끌려나온다.
학생부장이 플래시로 놈들의 얼굴을 비친다. 휘황한 조명 아래, ‘독사 눈빛’ ‘사슴 눈빛’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은 독한 눈과 맑은 눈 모두 플래시에 오버랩된 채 발발 떨고 있다. ‘까치독사’ ‘밤송이’ ‘날쌘돌이’ ‘꺼벙이’ 대략 그렇게 명명할만한 몰골들이다.
“차렷!”
표범처럼 날렵할 아이들이 장난감 병정처럼 ‘오똑’하니 부동자세를 취한다. 아이들은 매타작쯤이야 얼마든지 받을 테니 제발 학교에 연락만 하지 말아달란다. 제압이 너무 쉽다. 막대기로 배를 몇 번 찌르다가 표정을 바꿔 어른다.
“제발 가라. 큰일 난다.”
“…… 예.”
“느이 숙소에서 놀아라. 어슬렁거리지 말고.”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반성의 자세를 취하는 중이었다. 딱 한번 작달막한 아이가 슬며시 눈을 치켜뜨기에 하마터면 수비 자세를 취할 뻔했다. 그러나 다시 날카로운 눈빛이 잦아들더니 금세 이슬이 잘람잘람 넘치려 한다.
“사춘기라 여학생들한테 관심이 많아 그랬습니다.”
그뿐이었다.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맑은 눈’을 인정해주면 우리가 불리하므로 일부러 차가운 표정을 짓는다. 이 질풍노도의 사고뭉치들을 예방하는 방법은 기세(氣勢)를 빼내는 게 우선이다.
“어쨌든 나는 문을 열어놓을 수 없다. 너희들은 여학생 숙소에 들어와 객기 부리는 것도 학창시절의 추억이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막을 수밖에 없다.”
‘모두들 조용히 들어가라.’고 목에 힘을 준 다음 본부 숙소에 들어갔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사내놈들이 그냥 근방 솔숲에서 어슬렁거리며 우리 아이들 광란의 밤을 훔쳐보며 심드렁히 지낼 줄 알았다.
처음에는 실제로 그랬다. 사내놈은 그늘아래 웅크린 채 이따금 창문 쪽으로 음습한 휘파람만 불어댈 뿐이었다. 그런데 2층에서 발광으로 춤을 추던 소녀들이 자꾸 바깥을 힐끗대는 것이다. 천사처럼 예쁘다. 형광등 불빛 탓일까? 부나비들은 불빛의 흡입력에 취해 눈이 흐려진 채 자꾸만 앞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사들이 한 술 더 떠 창 밖을 향해 손짓하는 것이다. 우르르 창문 쪽으로 몰려온 천사들이 떼잡이로 소리 지른다.
“얘들아, 들어와 놀자.”
순간 쨍그랑쨍그랑 유리구슬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던진 농담들이 서서히 진담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진짜 들어갈까?”
“못 들어와. 에이 사내들이 배짱도 없나? 빙태들.”
이쯤 되면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사내놈들은 죽을 때 죽더라도 천사들과 한 바탕 춤을 추며 뒤집어지고 싶었을 것이다.
“에잇! 죽기 아니면 살기다.”
먼저 까치독사가 뜀틀 운동하듯 사뿐히 담을 넘자 나머지 조무래기들도 담배를 비벼끄고 따라붙었다. 사내놈들은 순식간에 거미처럼 담벼락을 기어올라 드디어 방 안까지 완전 입성했다. 떠벌이던 계집아이들은 막상 사내아이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긴장감으로 자르르 떨었다. 어쨌든 일은 벌어진 것이다. 그제서야 여자 대장이 나와 협상을 벌인다. 미술부 미숙이다.
“딱 이십 분만 놀고 헤어지는 거야. 소리 지르면 선생님들이 우르르 올라오거든, 그럼 너희들은 모두 잡히게 되어 있어.”
“그 대신 화끈하게 ……”
“이십 분만이야.”
그쯤으로 타협이 되어 남녀 혼성의 신나는 디스코 타임이 벌어진 것이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헤이헤이헤이 뷰티풀 선데이 ……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하필 그 때 내가 문을 두들긴 것이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후닥탁 방으로 잡아당긴 다음 담요를 뒤집어씌우고 몰매를 때릴 줄 알고 조심하는 중이었다.(그 당시 여고생들은 수학여행 때 선생님들에게 ‘담요 씌우고 난장 치기’가 유행이었다.) 이재문 선생도 그렇게 당했고 최세정 선생도 그랬다. 처녀 교사 최선생은 캄캄한 담요 속으로 빠지는 순간 너무 놀라 대성통곡까지 하는 바람에 ‘스승과 제자’ 모두가 대략 난감해지기도 했다.
“왜요? 남학생이라도 불렀을까 봐서요? 들어와 보실래요.”
그런데 나를 끌고 가기는커녕 오히려 우르르 문을 가로막는 것이다. 모두 방글방글 웃으면서 몸을 밀착시켜 출입문을 막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다. 아무튼 끌려 들어가지 않아 섭섭하기도 했지만 짐짓 다행인 척 내려왔다.
그런데 이번엔 인형처럼 팽팽한 김희빈 선생이 올라간 것이다. 김선생의 까진 밤톨처럼 다부진 품세에 밀린 아이들이 차마 저지하지 못하여 그대로 방 안까지 입성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 역시 문을 열었다가 무심히 방 안에 들어섰을 뿐이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와 - 달려들어 끌어당겨야 할 텐데 순간적으로 늪 같은 정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장롱이 들썩들썩하며 숨소리를 ‘색색’ 일으키는 것일까? 갸우뚱과 긴장감으로 문을 열었다.
아, 사람이 있었다. 남자들이다. 장롱 속에서 꼭대기까지 들어올린 담요 위로 눈동자 열 개가 끔먹끔먹 드러난 것이다. 김선생의 기절할 즛 놀란 가슴이 그대로 고함으로 이어졌다.
- 나와아아앗.
잠깐 고요에 빠졌다. 여자아이들은 벌써부터 사시나무 떨 듯 발발 떨며 끄으윽 울음을 삼키는 중이었다. 그러나 침묵의 순간도 잠깐.
- 시발, 나가라면 못 나갈 줄 아나?
까치독사가 튀쳐 나오며 김선생을 그대로 밀어제끼자 나머지 사내놈들도 짚토매 쏟아지듯 우르르 튀쳐 나와 복도를 치달리기 시작했다. 이판사판 도망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김선생은 날쌘돌이의 바짓가랭이를 잡고 미끄러지면서 질질 끌려 나갔다. 여자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터지자 1층 본부에 있던 남선생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새 신랑 박선생이 맨 앞 사내놈 허리를 껴안았다가 후닥탁 뿌리치는 바람에 주춤 밀렸는데 그 순간 날쌘돌이는 2층에서 홍길동처럼 뛰어내렸다. 1층 창고 슬라브 지붕이 깨지면서 징검다리 완충 작용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장 허리나 늑골이 나갔을 것이다. (사춘기들은 발자국마다 온통 살얼음판이다.) 체육과 이선생님은 40대였지만 럭비 선수 출신의 천하 장사였다. 당장 두 녀석의 멱살을 잡고도 나머지 한 명의 다리 걸어서 넘어뜨린 것이다. 김선생은 어느 새 슬리퍼를 뒤집어 넘어진 아이의 어깨를 팡팡 때리며 엉엉 울어댔다. 아무튼 날쌘돌이만 그렇게 2층에서 뛰어내려 창고 슬라브를 타고 빠져나갔고 나머지는 모두 붙잡혀 무릎을 꿇었다.
결국 포로로 남은 아이 네 명만 남아 ‘독안의 쥐’가 되어 발발 떨었다. 그 때부터 무서운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오로지 때리면 맞고 또 맞으며 몸으로 때울 뿐이었다. 까치독사건 제비족이건 모두 ‘매 맞는 아이’로 돌변하였다. 이번에는 수학여행 관광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우르르 올라와 매 타작에 가세했다. 비명 소리에 놀라 선생님들과 기사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줄 알고 쫓아왔더란다.
‘이러니 나라가 개판이지’
기사들은 세상을 개탄하는 척 싸대기를 날리며 이 우발적 사건에 동참했다. 그러나 솔직히 운전대 잡던 근육질 싸대기를 맞고도 질기게 버텨내는 고등학생들의 맷집이 더 신기에 가까웠다.
사내놈들의 학교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 쪽 선생님들과 통화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태권도부 아이들에게 경비를 맡기고 횟집 시찰 중이었단다. 그런데 규율 책임자인 태권도부 아이들이나 일반 아이들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 일탈의 기회만 찾는 것이다.
나는 그 때 정난희 선생과 1층에 있었다. 그런데 여관 정문 앞으로 남학생 대여섯 명이 무법자처럼 어깨를 건들대며 우르르 몰려온다.
“누구야.”
정난희 선생이 팔을 벌려 막아서자 그대로 밀치고 들어온다. 여선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기세다.
“친구들을 구하러 왔소.”
“너희들이? 의리의 사나이 돌쇠냐?”
“풀어줘요.”
“눈에 힘 뺏.”
또 옥신각신 험악한 사태가 연출되기 직전이다. 여관 남자 종업원들이 아니었더라면 혹시 봉변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가 중재에 나서는 도중 아이들이 곁눈질하더니 갑자기 우르르 도망치는 것이다. 횟집 순찰 중이던 남학교 선생님들이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 몰려온 것이다.
또 귀싸대기다. 그 학교 덩치 큰 중년의 교사는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즈이 학교 아이들에게 싸대기 한 대씩 선물했다. 그랬다. 사춘기 남학생들은 단지 여자 아이들과 춤을 췄다는 이유 하나로 수학여행 내내 자기 몸을 샌드백으로 내놓았다. 우리한테 맞고 운전기사에게 맞고 또 뒤늦게 몰려온 즈이 학교 선생님한테 맞았다. (알고보니 남자아이들은 30분 거리의 이웃학교였다.)
착한 인상의 안경잡이 선생님 혼자만,
“수학여행 와서 마음이 들떠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며 달랬지만 이미 극도로 흥분된 상태라 그런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꿇어앉은 아이들 머리만 ‘으이그’ ‘으이그’하며 쿡쿡 쑤셔대었다. 그러다가 ‘도대체 얘들이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거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긴 했다. 특히 착한 안경잡이 선생님이,
“이웃 학교라 반가웠던 겁니다. 애들이 그렇게 크는 거지요.”
하는 것이다. 소용돌이가 그쳤고 나는 그제서야 시린 가슴을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차, 하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사소한 사건’에도 난리라도 터진 듯 악을 썼던 나 자신이 절망적으로 안쓰러웠다.
귀로.
낙산사 휴게소를 통과할 때다. 맞은 편 버스 대열에서 와- 함성이 들렸다. 그 때 나는 보았다. 사내들 무더기에 섞인 ‘사슴눈빛’과 ‘까치독사’다. 뷰티플 선데이의 ‘제비족’과 무릎 꿇린 채 싸대기 세례를 감수하던 맺집 좋은 ‘밤송이’ 그리고 창고 슬라브를 홍길동처럼 뛰어넘던 ‘날쌘돌이’의 스쳐가는 화면이 순간적으로 정지하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춤을 추다가 일제히 파도처럼 손 흔들며 쏟아지는 사내놈들의 화면이 물찬 생선으로 겹쳤다. '쏴 - ' 동해안 파도소리가 스피커 소리에 섞여 시퍼렇게 쏟아지고 있었다. '애들이 그렇게 크는 겁니다' 하시던 착한 안경잡이 선생님도 틈새에 끼어 흘흘흘 웃는 풍경으로 딱 멈추는 것이다. 미안하다. 우리 학교 소녀들도 하얀 치아를 내밀며 일제히 손을 흔드는데 나는 자꾸만 눈시울이 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