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레벨3 자율주행, 혼다 센싱 엘리트조현규 입력 2021. 04. 06. 16:31 댓글 351개
혼다가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이 가능한 신형 레전드를 출시했다. 양산차가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을 인증받은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혼다 센싱 엘리트’를 통해 자율주행 시대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글 | 조현규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0부터 레벨5까지의 단계가 있다. 레벨0은 비자동화, 말 그대로 주행과 관련하여 아무런 전자장비가 개입하지 않고 운전자가 모든 조작을 해야 한다. 레벨1은 ‘차선 이탈 방지’처럼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이며 레벨2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같은 부분 자동화에 해당하는 단계다.
레벨3부터는 다른 차원에 해당한다. 여기부터는 주행의 책임이 자율주행 시스템에 있다. 시스템이 운전의 주체이며 운전자는 보조 역할을 하게 된다. 레벨4와 레벨5는 각각 ‘고등자동화’와 ‘완전자동화’로 불리는데, 업계에서는 레벨4가 자율주행 택시, 레벨5는 무인 자동차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인간이 운전석에 앉지 않아도 되며 모든 작동을 시스템이 스스로 하게 된다. 이제 자율주행 시대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혼다는 신형 레전드를 발표하면서 레벨3 자율주행 장치인 ‘혼다 센싱 엘리트’를 탑재하여 출시했다. 혼다는 새로운 ‘전설’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율주행 레벨3을 실현한 ‘트래픽 잼 파일럿’
일본의 국토 교통성이 처음으로 형식 인정한 자율주행 레벨3 장치인 ‘트래픽 잼 파일럿(정체 운전 기능)’은 한정된 영역에서의 자동운전을 지원하며 작동 중에는 시스템이 운전자 대신 전체적인 조작을 하게 된다.
고속도로 주행 중 정체를 만나 시속 30km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 통상적인 ACC 기능은 RES 버튼을 누르거나 별도의 가속 페달 조작이 필요하지만 트래픽 잼 파일럿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자동 운전이 시작되면 운전자는 센터페시아의 디스플레이로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등 다른 동작을 수행해도 된다. 이것이 완전한 의미의 자율 주행은 아니다. 차의 속도가 시속 50km를 넘으면 트래픽 잼 파일럿은 종료되고 시스템은 운전자에게 다시 제어권을 넘긴다. 그다음은 차선 유지 지원 시스템(LKAS)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이 작동된다.
트래픽 잼 파일럿이 작동하는 조건을 시속 50km 이하로 설정한 것은 고속도로 사고의 70% 이상이 시속 50km 이하 속도에서 발생한다는 통계 결과에 따른 것이다. 추돌사고의 대부분은 정체에 의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부주의한 운전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따라서 혼다는 고속도로 사고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 이러한 기능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시스템에 의한 자율주행이라면 인간이 행하는 오류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 혼다의 판단이다.
이러한 자동운전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제법 까다로운 조건들이 필요하다. 우선 고속도로 주행 중 차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하며, 앞뒤에 다른 차가 주행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강한 비 혹은 눈이 내리는 악천후가 아닌 상황이어야 하고, 안개나 강한 역광 등 시야가 방해받는 요소 또한 없어야 한다. 혼다는 비록 지금은 많은 제약이 붙지만 앞으로 하나씩 제약을 정복해나갈 것이라 말한다.
이 기능에는 많은 센서가 사용된다. 앞 유리 상부에 2개의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고 레이더는 차의 프런트에 3개 리어 부분은 좌우로 두 개가 탑재된다. 라이다는 프런트에 2개, 리어 측에 3개를 탑재했다. 시스템이 차를 제어하고 있을 때는 3차원 고정밀 지도와 위성 시스템(GNSS)의 정보를 이용해 자동차의 위치와 도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탑재된 다수의 센서로 주위를 탐지하며 제어한다.
자율주행은 라이다에 의한 주변사물의 입체 데이터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을 시험하는 자동차들은 루프에 회전식 라이다를 탑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디자인 혹은 실용적인 영역에서 살펴보면 양산차에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라이다 센서와 이를 보조하는 카메라 센서까지 함께 포함한 것이다.
여러 센서를 통한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메인 ECU가 인지·예측·판단을 통해 가속, 감속, 조향을 제어하며 레벨3 자율주행을 지원한다. 이러한 구성은 비용보다 신뢰성을 우선시한 형태다. 물론 현재는 높은 비용이 투입되지만, 시장이 확대되고 장비가 보급되기 시작하면 시장 원리에 따라 비용은 자연스레 내려오게 되어있다.
레벨 2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ACC와 같은 레벨 2 자율주행과 무엇이 다른가? 간단히 말하자면 운전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레벨 2와 레벨3는 경계가 명확한데, 레벨 2는 차가 스스로 달리고 조향도 하지만 운전의 주체는 엄연히 사람이다. 운전자는 전방을 주시해야 하며 돌발 상황에 대비해 언제나 조작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반면 레벨3부터는 시스템이 주도권을 가지고 주행한다. 따라서 운전자는 시선과 행동에 자유를 얻는다. 트래픽 잼 파일럿은 정체 상황이 펼쳐진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운전자 대신 자동차를 조작한다. 만약 자동차가 정상적인 자율 주행을 실시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하면 운전자에게 알려 주도권을 다시 넘긴다.
만약 운전자가 시스템이 요구하는 대로 주도권을 넘겨받지 않는다면 차는 스스로 정차한다. 정지까지의 과정은 계기판 혹은 디스플레이에 운전자에게 보내는 경고 알람이 표시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스템이 보내는 알람을 받고도 운전자가 별도의 조작을 하지 않을 경우 알람은 빨간색으로 바뀌고 안전벨트를 가볍게 조여 다시 한번 알린다. 그런데도 운전자가 반응이 없다면 차는 스스로 안전한 갓길로 주행하며 시스템을 멈추고 정지한다.
트래픽 잼 파일럿의 목적은 운전자의 안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혼다는 자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지구 30바퀴 이상에 해당하는 약 130만km를 실제로 주행하며 검증을 거듭했다. 시뮬레이션의 횟수는 약 1000만 회로 실제 도로 주행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혼다는 ‘자동’에 가치를 두지 않고, 사고 제로 사회와 자유로운 이동의 기쁨을 운전자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레벨 2에 존재하던 기능도 있다. 혼다 센싱 엘리트에는 다양한 운전 지원 기술이 탑재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의 핸즈 오프 기능이다. 이미 몇몇 제조사가 선보였던 이 기능은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놓고 있어도 방향 지시등을 조작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차선을 변경한다. 또한, 고도 차선 변경 스위치를 작동하면 전방에 차속이 느린 선행 차를 감지하고 시스템이 상황을 판단해 운전자에게 알린 다음 스스로 추월 후 차선 복귀까지 실행한다.
세상에 호소하는 기술의 혼다
혼다의 발표에 시장이 놀란 이유는 그간 자율주행 기술 평가에서 혼다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자율주행 기술 순위를 발표하는 미국 네비건트 리서치의 발표에 따르면 구글 웨이모와 GM, 포드, 바이두 등이 최상위권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분류됐다. 현대차는 6위에 올랐으며 의외로 테슬라가 취약하게 평가됐다. 이 평가의 순위권에 혼다의 이름은 없다. 물론 혼다가 갑자기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인 것은 아니다. CES에서 꾸준히 자율주행 로봇을 선보였고 2018년에는 GM과 기술 개발을 제휴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레벨3 시판에 성공한 비결엔 일본 정부의 조력도 컸다. 제조사가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만들어도 관련법을 정비하지 않으면 시장에 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도로운송차량법 개정을 통해 공공도로에서 레벨3 자율주행을 허용했다.
혼다 레전드는 우선 100대 한정으로 임대 판매를 할 계획이다. 우선 높은 수준의 유지 보수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 혼다 레전드를 구입하면 반드시 정기적으로 대리점에 입고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항상 완벽한 상태로 이용할 수 있게 보장하기 위함이다. 또한 레벨3 자율주행부터는 시스템이 작동 중일 때 문제가 발생하면 운전자가 아닌 제조사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있어 혼다의 부담이 더욱 클 것이다.
혼다의 테라 가이 일본 본부장은 3월 4일에 실시한 온라인 발표회에서 “레벨3를 이용한 기술을 탑재한 플래그십 세단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혼다가 목표로 하는 자동차 사고 제로 사회의 실현을 향한 매우 중요한 단계다”라고 말했다. 또한 “혼다라는 브랜드가 우수한 기술을 가졌다는 것을 세상에 호소한다는 것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놀라운 자율주행 기술이 시장에서 평가받을 시간이다. 혼다는 이번 센싱 엘리트를 통해 자율주행 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