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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비전(2) “비전은 모든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 본문 : 창 세 기 39장 7절 - 19절(구약성경 60쪽)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아멘!
늘 예배하기를 기뻐하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중국 선교의 문을 처음으로 열고 들어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에는 피아노를 조율하지 않습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조율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당신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새벽제단에서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당신의 몸과 마음과 영을 조율하십시오. 그러면 아름다운 삶의 노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덧붙여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 주일을 시작하는 주일에,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율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시작이든지 하나님 말씀으로, 기도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 뜻에 맞게 조율되어서, 축복 받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지난 예배시간부터 꿈쟁이 요셉에 대한 말씀으로 비전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하고,
오늘 두 번째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대로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이 꿈쟁이 목사와 함께,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꿈을 꿉시다. 그리고 새로운 꿈과 비전을 잉태합시다.
꿈이 있는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꿈을 확장시키십니다.
꿈쟁이 요셉은 자신이 꾸었던 모든 꿈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에 따라 움직였던 꿈쟁이,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바로 이 꿈쟁이 요셉을 그의 형들도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고 요셉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꿈쟁이 요셉의 꿈을 그의 형들은 시기했고, 마침내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립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했고,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됐습니다.
17세의 소년이 노예의 신분으로 살았으나, 그의 성실한 비전의 삶이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10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엉뚱하게도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가 그에게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추파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눈짓을 합니다. 이 눈짓이 어떤 눈짓입니까? 요셉을 유혹하는 눈짓이었습니다.
이 땅에는 참으로 엉뚱한 유혹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 생각이 미처 따라가기도,
어려운 유혹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결혼한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그런 유혹의 눈빛을 기대하는 남성들도 수없이 많은, 음란이 판치는 죄악된 세상입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유부남과 유부녀가 자신의 부인과 남편을 두고서 서로 사랑합니다.
한 남자를 두고, 한 여자를 두고 막장 사랑을 합니다. 모든 내용이 그야말로 막장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사랑이 멋있게 보이도록, 막장 드라마를 통해서 유혹하는 세상입니다.
처녀 같은 유부녀를 미시족이라고 합니다. 유부녀가 처녀처럼 보이려고 엄청 투자합니다.
물론 깨끗하고 아름답게 다듬는 것과 유혹하려는 의도에서 다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만,
아무튼 우리는 이런저런 유혹, 상상할 수 없는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깨어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그 세상 유혹에 파묻혀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보디발의 부인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자라는 게 없는 여인입니다.
그의 남편은 바로의 시위대장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경호실장 정도 됩니다.
신체 건장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권력도 누릴 만큼 누리는 자리에 있는 권력가였습니다.
바로의 측근이기에 출세하려는 사람들은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잘 보이려 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부인도 시위대장의 권한을, 아니 보디발보다 더 높은 권한을 누렸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남편이 별 하나면, 부인은 별 둘의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찮은 직장에서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부인끼리도, 남편들보다 더 서열이 분명하답니다.
보디발의 아내,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도대체 모자랄 것이 없는 행복한 부인이었습니다.
이런 여인이 요셉에게 유혹의 눈짓을 보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오늘 주제입니다. '그러나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그 어떤 유혹도 이깁니다.‘
이 제목에 따라 결론을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은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이 마음에 사무쳐있는 사람은, 유혹을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현재의 쾌락 때문에 미래의 영광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 없다는 확고한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상 유혹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유혹이 특별히 더 많이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꿈과 비전을 따라 사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멋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접근하고 싶어 합니다. 가까이서 함께 지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냥 좋습니다.
성공적인 사람에게도, 열심히 비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게도 함께 해서 더 큰 성공을,
더 큰 비전을 이루게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성은 주의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걸림돌이 될 확률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도움도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도움보다는 올무가 되기가 더 쉽습니다.
오늘 요셉에게도 세상적으로 보면, 주인의 부인은 좋은 원군이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오늘 본문에 의하면, 믿음의 사람 요셉에게는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론은 정돈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유혹의 특징을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세상적인 악한 유혹의 특징은, 그 유혹의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오늘 본문의 이 말씀에서 보면, 눈짓에서 어디로 발전합니까? 동침까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리고 밖으로 나가.” - 처음 동침의 요구는 말로 했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합니까? 옷을 잡고 행동으로 나서는 유혹입니다. 아주 적극적이 됩니다.
두 번째 악한 유혹의 특징은, 시기를 너무도 적절하게 잘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려고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사람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언제 유혹했습니까? 그 집에 아무도 없을 때입니다.
나의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반드시 주의하셔야 합니다. 나의 주위에 남편이 없을 때,
나의 주위에 내 아내가 없을 때, 나의 주위에 나를 보는 자녀가 없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혹의 특징은, 유혹은 결국 올무를 위한 거짓으로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 14절, 15절입니다.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 거짓으로 올무를 걸어 씌웁니다.
이렇게 교묘하고도 치밀한 유혹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다가와 눈짓하며 동침을 요구했을 때, 요셉의 대처방안을 정확하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대처방안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유혹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입니다. 단순하게 거절하십시오. 오늘 본문 8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말씀에서 보면 "요셉이 거절하며..." 단순하게 거절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유혹이 있을 때, 요셉처럼 단순하게 거절하십시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십시오.
단순한 거절은 대부분의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복잡한 내용으로 설득해가면서 유혹을,
이겨내려 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아니요 하시고, 예면 예라고 단순하게 거절을 하십시오.
결혼하셨으면 결혼하셨다고 하시면 됩니다. 더 이상의 긴 설명이나 설득이 필요 없습니다.
결혼하셨으면 결혼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시고, 결정하시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을 하나님의 원칙에서 잘라서 말하십시오. 세상은 그렇게 말합니다.
결혼했으면 어때? 유부녀면 어때? 유부남이면 어때? 라는 사고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틀린 기준입니다. 원칙에 충실하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원칙을 어기면 말이 길어집니다. 사설이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거절하십시오.
두 번째입니다. 유혹에 맞부딪치면 연결된 관계를 정확하게 재정립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은 유혹을 받았을 때, 금방 생각해 낸 것이 주인과의 관계였습니다.
'주인이 나를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주인의 신뢰에 걸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인이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위임했지만, 내 주인의 아내인 당신은 아닙니다.
만일 이것을 파괴하면, 나와 주인 보디발과의 관계는 완전히 허물어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이렇게 관계범위를 정확하게 설정해 버림으로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의 아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나의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연결된 고리는 함부로 잘라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취급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결과를 잘라버린 뒤에 오는 것이 관계사슬입니다. 유혹을 만나면 관계를 묵상하십시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의 가치 기준은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 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처럼 하나님 사람의 가치 기준은 '사람 앞이 아닌 하나님 앞' 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전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환경에서도 지켜본다는 엄연한 사실을 간직하면 유혹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영위하면,
마주칠 유혹의 도전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집니다.
보는 곳에서는 다 그럴 듯하게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에게는,
하나님은 보인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가치기준을 낮게 잡아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찮은 도덕적 가치든지, 하찮은 분노든지, 천박한 그런 것에 자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고귀하게 자신을 만드십시오. 자신이 주님으로 인해, 구별된 사람임을 만방에 알리십시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과감하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비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 구별된 사람임을 정확하게 알리십시오. 그러면 유혹은 물러갑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유혹은 처음부터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입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처음부터 유혹의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삼십육계 들어보셨지요? 제서 왕경측전에 '왕경측왈 단공삼십육책 走爲上計' 라 했습니다.
유혹을 피해야 할 여러 계책이 많이 있지만, 불리하면 달아나는 것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쓸데없이 어슬렁어슬렁 유혹 주위에 있으면 안 됩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기회도 마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혹과 대결해서 이기는 것도 멋지지만 상황을 피하면, 훨씬 간단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유혹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잔 고생하지 않고, 유혹으로 인해서 작은 상처조차 입지 않고,
이런저런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유혹거리와 함께 있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과 세상의 집요한 유혹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면, 우리의 미래의 모든 비전까지도 허물어뜨릴 수 있기에 공격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가치기준으로 삼고 유혹을 대적하십시오. 그리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의 가치를 고귀하게 만들어 가기 위해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의 마음을 주님 위해 구별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정열을 구별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눈과 귀를 구별하길 원합니다. 나의 모든 몸의 지체를 주님 위해 구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악한 사탄과 세상의 이런저런 모든 유혹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결코 유혹에 빠질 수 없습니다.
유혹은 현재의 쾌락에만 매달리게 하지만, 꿈과 비전은 미래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에 빠져 비전을 망가트리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갈구하십시오.
비전은 유혹을 이깁니다. 비전의 사람으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