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남극 세종기지에서 숨진 전재규 대원.
그 아버지 전익찬(55)씨는 강원도 영월중학교 기능직 직원으로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학교 시설 관리나 사무보조가 그의 업무다.
왜소한 체구에다 깊이 주름 패인 얼굴…,
외양만 봐도 호강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가 요즘 매스컴을 피하고 있다.
아들과 인연 있는 영월고, 해양연구원, 서울대에 1억원씩
그가 기부 약속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아들의 보상금과 조의금 등을 몰래 내놓았다.
그러면서 “외부에는 제발 알리지 말아달라”며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XXX기자입니다”라고 걸려오면 즉각 전화기를 꺼버릴 정도다.
숨진 아들로 인해 자신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을 그는 결코 참을 수 없었는지
모른다.
서울대를 다녔던 외아들은 힘들게 살아온 그의 존재 이유였다.
그런 아들의 죽음을 접했을 때 “
남극에 간다고 했을 때 가지 말라고 끝까지 말렸어야 했는데 논문준비에
꼭 필요하다고 해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런 뒤 아들의 사진 액자를 끌어안고 굵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슬픔 속에서 숨진 아들의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국가에 온몸을 던져 헌신했다고 평가받아야 한 평의 땅을 얻을 수 있는
국립묘지에 아들도 묻힐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나랏일로 남극 가서 하나뿐인 목숨 바쳤다면 국가유공자 아니고 무엇이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국립묘지에 누가 묻힐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여론이 일자, 국립묘지 업무를 주관하는 국방부는 ‘국립묘지령’를
펼쳐놓고 남극에서 숨진 이 젊은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따졌다.
현역군인은 순직하거나, 20년 이상 군에 몸담은 예비역이면 대부분 국립묘지에
묻히는 명예를 누리게 되지만, 남극에서 숨진 아들은 통과하지 못했다.
검토작업에 참여했던 국방부의 한 영관급 장교는
“안타깝지만 이 젊은이는 자격 조건에 미흡했다”고 전했다.
요즘 세상에 총을 서로 겨누고 있는 전선만 어찌 험난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게 어찌 제복을 입은 군인만의 전유물이겠는가.
그러나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만은 군인 신분이 아니라면 일찍 단념하는 게
좋을 듯하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5만4460위 중에서 일반인은 모두 74명에 불과하다.
화학자 이태규 박사와 여객기 조종 중 납북기도에 대해 수류탄에 몸을 던져
승객을 구한 전세명 기장만이 일반인에게 좀 낯설 뿐 대부분 손기정·주시경·
안익태씨 등 쟁쟁한 유명 인사들이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숨진 아들을 실은 영구차의 행선지는 국립묘지가 아니었다.
아들의 유골은 화장돼 충북 충주에 있는 한 절에 봉안됐다.
그날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법 조항을 일일이 따지며 이 젊은이의
국립묘지 안장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나 그 뒤로 소식이 없다.
아직도 법 조문을 주물럭거리고 있거나,
대통령이 좋아하는 토론회나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영결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가족을 위로하고 추모객들에게는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슬픔을 안으로 삭였던 것 같다.
남극에서 숨진 한 젊은이가 잊혀져 갈 즈음 그 아버지는 몰래 아들의 명예로운
죽음이 헛되지 않게 혼자서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