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남경에 갈 일이 생겨서, 중국의 초고속열차 CRH(China Railway
High-Speed)를 타게 되었답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는 TOEFL대란과 ETS의
황당한 일처리 때문에 말이 많았지요? 중국 ETS도 거의 비슷한 분위기 입니다.
TOEFL 등록을 언제하냐는 문의에 ETS가 띄운 공지는 "언제일지는 모른다.
수시로 ETS 관련 사이트를 확인해 달라" 였다는... 상해에 자리가 꽉차서 GRE 시험
보러 남경까지 가게 된 HL, 그래도 간만에 장거리 여행(?) 한다고 위안을 삼았다지요...
중국의 초고속 열차 CRH, 중국어 로는 動車組 라고 합니다. 중국은 지난 4월 18일
전국 범위에 걸쳐 열차 속도 업그레이드(列車大提速)를 했습니다. 1997년 이래로
6번째 속도 업그레이드였지요. 그 전까지는 가장 빠른 기차 이름 앞에 T(特快)라는
영문 이니셜이 붙었는데, 이제는 D 라는 영문 이니셜이 붙은 기차가 가장 속도가
빠른 기차입니다. 상해-북경간 운행 시간은 약 10시간이라고 하네요.
상해-남경 간 원래 T기차로는 3시간이 넘게 걸리고 보통 기차로는 4시간 넘게,
가장 느린 건 8시간도 넘게 걸렸었지요. 이번 CRH로는 약 2시간이 걸렸습니다.
혹자는 이번 CRH의 등장 덕에 상해와 그 주변 절강성, 강소성을 포함하는,
중국의 3대 경제권 중 하나인 양쯔강 삼각주 경제권 이 드디어 일일 생활권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기차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53분. 상해역을 출발해서 남경역에 도착하는 기차로,
전체 하얀색에 유선형으로 날렵하게 생겼습니다. 옆면에는 CRH라고 적혀 있고,
콧등에는 和諧號라고 적혀 있네요.
"허씨에(和諧)" 라는 말은 후진타오 지도부가 내세운 정치 선전 구호로,
"조화로운 사회, 화합하는 사회-갈등과 충돌 없는 사회 건설"을 말하지요.
CRH는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도 따로 있었습니다. 대합실 안에는 주로 외국인과
말끔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지요.
상해-남경간 편도 기차표의 가격은 84위엔, 기존에 가장 빨랐던 特快기차가 40위엔이
조금 넘었으니, 약 2배가 넘는 가격입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일반 대합실에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은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사람들이 가득 했습니다. 중국의 기차 승객들 간에도 이제 경제적 지위에 따라
계층이 나뉜거겠지요.
그러고 보니 지도교수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상해에는 內環(내부순환도로),
中環(중부순환도로),外環(외부순환도로) 이렇게 3개의 순환도로가 있습니다.
내환 안에서는 사람들이 영어를 쓰고, 중환 안에서는 상해말을,
외환 근처에서는 표준말(보통화)를 쓴다고 하네요.
즉, 상해의 CBD와 고급 주택지역에는 주로 외국인이 거주하고, 그 주위에는
상해 토박이들이 거주하고, 외부 변두리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지요.
대합실에는 바리바리 짐을 싸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독특한 체크무늬를 가진
가방은 중국 인민들이 널리 애용하는 장거리용, 일회용 짐가방입니다.
주로 민공(民工)들이 주로 애용하기 때문에 민공가방 이라고도 하지요.
재미있는 건, 얼마전에 루이비통(LV)이 유럽의 한 패션쇼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가방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때 LV의 그 가방과 민공가방 비교사진이 인터넷에
쫙~ 퍼졌었지요. 민공 가방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가방이라,
한 블로거는 LV이 민공 가방 카피했다!! 라고 조소하기도 했었지요.
전 중국인들이 은연 중에 LV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했던 그 가방. 상해에서 가끔
분위기 파악을 못한 외국인들이 이 민공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중국에서는 아무리 LV가방이라도 부작용 날 수 있습니다.(-_-;;)
CRH의 대부분의 시설이 매우 깨끗했습니다. 기차에는 식당칸도 있고, 대형 짐을
보관하는 곳도 있고, 화장실도 매우 좋더군요.
HL 말고도 사진을 찍는 승객들이 많았습니다.
이 의자 한쪽에 뿔 처럼 붙어 있는 건 무엇 일까요? 승무원 한테 물어보니,
손잡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2시간 내내 입석 승객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찐계란 먹는 건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 인 듯 합니다. 상해에서 소주까지
약 30분도 안 걸리더군요. 2003년에 기차표 잘 못 사서 소주에서 상해까지 7시간 걸리는
잉쭤(딱딱한 의자) 탔었 던 가슴 아픈 기억이..... 감회가 새롭더군요.
간단한 스낵류나 음료수도 팝니다.
드디어 남경 도착!!
중국의 기차는 중국의 경제 발전 정책과 발 맞춰서 단계적으로 속도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중앙 지도부의 추진력과 지도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