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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지난 8일 오후 충북도청 공무원들은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인사발령이 담긴 내용이었다. 등산길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휴대폰을 흩어보더니 "지사님은 도무지 주말도 없는것 같다"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자치단체장을 맡으면 게으른 사람도 부지런해 질 수 밖에 없다. 어디 챙길게 한두가지 인가. 전에 모 청주시장은 겨울에 눈이 내리면 새벽에도 산성올라가는 고개길로 올라가 직접 제설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바람에 참모들이 곤혹을 치렀다. 하지만 부지런하기는 이시종지사를 따라갈 정치인이 흔치않다.
이 지사는 지난주말 공무원 인사발령에 이어 일요일인 9일에는 청원군 기업인등반대회 개막식에 참가한뒤 바로 미국으로 출국해 10일 미국 코네티컷주 교육위원회와 교육기관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어 11일에는 뉴욕을 방문해 코오롱그룹의 미국 현지법인 티슈진을 상대로 비즈니스외교를 펼쳤다. 이 지사에게 주말에도 강행군하는 것은 흔한일이다. 이전 지사들이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기시간을 가진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지사가 '일벌레',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업무에 매달리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취임직후엔 퇴근시간 이후에도 저녁약속을 마치면 집무실에서 일하는것이 다반사였다. 이때문에 비서실 직원들이 덩달아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요즘엔 그의 행보가 더욱 분주해졌다. 한동안 오송뷰티박람회 때문에 때로는 간부회의를 행사장에서 할만큼 거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지만 박람회가 끝났다고 한가해진것은 아니다. 요즘엔 행사에 협조한 기관·단체에 인사하러 다니는 것은 물론 군단위 행사에도 가급적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경조사 자리에서 이지사를 봤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를 만나려면 20명이상 모인 자리에 가면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다. 물론 도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다양한 여론을 듣기위해서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지사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살려 선거전략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도 많다.
이 지사의 분주한 행보가 도정에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리더가 앞장서서 도정을 챙긴다면 공직자들에게 경각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리더가 모든 업무를 세세하게 관여하며 지나치게 몰아부친다고 업무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조직원들은 팔짱만 끼고 리더만 홀로 독주하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리더의 유형은 흔히 네가지로 나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 똑똑하고 게으른 '똑게', 멍청하고 부지런한 '멍부', 멍청하고 게으른 '멍게'다. 이중에서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좋은 유형은 '똑게'다.어려움이 닥치면 바로 해답을 주지만 평소엔 잘나서지 않고 부하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지사는 전형적인 '똑부'타입이다. 행시를 패스하고 시장, 국회의원을 거쳐 도지사를 하고 있으니 '행정의 달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천성이 부지런하니 말할것도 없다. 그러나 '똑부'는 '똑게'를 넘어서지 못한다.
비단 공직사회뿐만 아니다. 리더십 전문가 닐스 플레깅은 저서 '언리더십'에서 경영자만 주인인 기업을 알파기업이라 부르고, 경영자와 함께 조직원도 주인의식을 갖는 기업을 베타기업이라 분류했다. 베타기업은 경영자만의 리더십이 아닌,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스스로 결정권자가 되고 책임자가 돼 조직을 이끌어가는 기업을 말한다. 공무원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자율성과 창의력을 끌어올리려면 이 지사의 리더십도 달라져야 한다.
이 지사에겐 '선거불패'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내년 선거는 녹록치않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 바람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민주당인 한범덕 청주시장이 최근 공무원의 수뢰혐의로 타격을 받고 있는것도 악재다. 도지사-청주시장은 지방선거에서 러닝메이트같은 역할을 한다. 이기용 교육감의 출마설도 심상치않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최근 실시한 광역자치단체장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다시 지지하겠다' 32.7%, '다지 지지하지 않겠다' 32.7%로 재지지 지수 1을 기록, 충청권 광역단체장중 가장 낮았다. 재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것이다.
이 지사는 취임후 3년간 숨가쁘게 도정을 이끌어왔다. 이에대한 평가는 꼭 1년뒤 도민들이 내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직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내년 선거는 힘겨운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