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테오서 사목서간 입문 - 2
18세기 초엽 이후 이 서신들은 전통적으로 ‘사목 서간’이라고 불린다. 사실 이 명칭이 근본적으로 교회의 원로 ‘사목자’가 젊은 사목자에게 보내는 지침을 담고 있는 이 문헌들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1. 수신인
가. 디모테오 : 디모테오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루가가 사도행전에서, 그리고 바오로가 자기의 서신에서 직접 우리에게 자료를 제공해 준다. 바오로는 장차 자기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가(사도 19,22) 될 디모테오를, 소아시아 리카오니아 지방에 있는 리스트라 고을에서 처음으로 만난다(또는, “그는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이라는 1고린 4,17의 말에 따라, 바오로가 그 이전의 제1차 선교 여행 때에 이미 디모테오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디모테오는 기원전 6년경에 아우구스토 황제가 건설한 이 로마 식민시의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리카오니아 사투리를 쓰던 본토인들과 달리 그리스 말을 모국어로 하는 이른바 “그리스인”이었다(사도 16,1). 디모테오는 태어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는 유다교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그의 아버지는 유다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교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반면에 그의 어머니 유니게는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다(사도 16,1). 디모테오는 어머니와 또 신앙심이 깊은 할머니 로이스에게서(2디모 1,5) 어릴 때부터 성서를 배웠다(2디모 3,15).
이러한 디모테오는 바오로와 함께 일하기 시작할 때에 상대적으로 젊었다.1) 그래서 열다섯 해쯤 뒤에도,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이런 말을 써 보낸다: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1디모 4,12. 그리고 5,1; 2디모 2,22 참조).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인 그는(1고린 16,10; 2디모 1,8 참조)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자주 아프곤 하였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의 건강과 관련하여 애정어린 말투로 타이르기도 한다: “이제는 물만 마시지 말고, 그대의 위장이나 잦은 병을 생각하여 포도주도 좀 마시도록 하십시오”(1디모 5,23). 바오로는 유다교를 고집하는 자들과 불필요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이미 다 자란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다(사도 16,3). 디모테오는 또한 우리로서는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기에 교회 원로들에게서 안수를 받기도 한다(1디모 4, 14; 2디모 1,6). 바오로 사도의 제자가 펼친 사도직 활동은 자연히 스승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는다. 스승 바오로는 이 제자를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라고 정답게 부른다(1데살 3,2). 이는 바오로가 선교 여행을 할 때에 자주 디모테오를 데리고 다녔음을 뜻한다(사도 17,14-15; 18,5; 20,4; 2고린 1,19 참조). 사도가 서간을 쓸 때에도 디모테오가 곁에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곧 데살로니카 1서와 2서(1데살 1,1; 2데살 1,1), 고린토 2서(2고린 1,1), 로마서(로마 16,21), 필립비서(필립 1,1), 골로사이서(골로 1,1), 필레몬서이다(필레 1). 바오로는 이러한 디모테오에게 특수 임무를 맡겨 마케도니아로 보내기도 하고(사도 19,22),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걱정 속에 지내는 데살로니카의 신자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기운을 북돋게 하고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게도 한다(1데살 3,2.6). 그리고 고린토 신자들에게 파견하여, 자기가 어디에 가든지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 하는 원칙들을 상기시키게도 한다(1고린 4,17. 그리고 16,10 참조). 신약성서가 전해 주는 이러한 증언들을 종합할 때, 바오로와 디모테오의 선교 협력이 특별히 밀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디모테오에 대한 바오로의 애정은 끝까지 이어진다. 생애의 막바지에 다다른 바오로는 “믿음으로써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디모테오”를(1디모 1,2)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2디모 4,9.21).
나. 디 도
디도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루가가 사도행전에서 그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도는 ‘그리스계’ 가정 곧 유다교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으로(갈라 2,3), 틀림없이 바오로의 인도로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였을 것이다(디도 1,4 참조). 바오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그를 데리고 간다(갈라 2,1-3). 이러한 디도는 디모테오의 경우와 달리, 바오로에게서 할례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할례를 강요받지 않는다(갈라 2,3 참조). 바오로와 고린토 신자들 사이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디도가 결정적 구실을 한다. 고린토 신자들에게 호감을 얻고 중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것이다(2고린 7,7 참조). 바오로는 고린토 신자들에게 서간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디도를 높이 평가하는 증언을 한다: “그가 여러분의 그리움과 여러분의 한탄, 그리고 나를 위한 여러분의 열정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기뻐하였습니다.……우리가 받은 이 위로 외에도, 디도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욱더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이 여러분 모두의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디도는 여러분이 모두 자기를 두려워하고 떨면서 맞아들여 순종한 것을 회상하며, 여러분에게 더 큰 애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2고린 7,7.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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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0일- 디모테오서-사목서간 입문- 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