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치료의 독보적 명의 최선길 박사
/보리화보살
최한의원은 어디에 있나?
L.A. 코리아타운내 올림픽과 웨스턴 한 불럭 동쪽 상가내에 위치해 있는 최한의원은 사실은 불치.난치로 고생고생하다가 최원장의 탁월한 의술 덕분에 소생한 사람들 각각의 가슴가슴마다에 뚜렷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익스피어는 번쩍거리다고 다 금이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L.A.에는 크고 작은 개업 한의원이 600군데가 넘고 나름대로 성업중이다.
그러나 진유(眞鍮)로 불환금(不換金)이로다.
진짜 놋쇠가 비록 진짜이긴 하나 순금에 비하면 오히려 가짜 보배이듯이 이 간판도 작고 광고선전도 하지 않는 최한의원을 사람들이 찾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병이 낫고 싶어서고 병이 차도가 있어서고 머잖아 병이 나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보통 중풍으로 쓰러져 여기저기 다니던 환자가 돌고 돌아 최한의원에 오기까지는 보통 3년 걸리는 것이 통례다. 그러니 중풍치료는 빠를수록 효과적이라는데 이미 악성으로 굳어진 불치의 병을 어디가서 구완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런 환자나 환자의 가족입장에서 보면 최원장은 참으로 만나보고 싶은 허준선생이 아닐수 없다.
최한의원 원장실에는 보통한의원 원장실에서 볼 수 있는 전통한약장이며 경락이 표시된 인체모형등등 이외에도 좀 다른 점은 천여권이 넘는 중국한의학 원서가 책장에 가득찬 것과 공로패, 감사패, 자격증 등 16가지 증패가 벽에 걸려있는 것 말고도 방의 제일중심 가장 높이 자리하고 있는 태극기가 있어 이 방주인이 애국애족하는 한국인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매년 10월 3일 새벽에 헐리?L 산 정상에서 지내는 개천절 개천대제를 주관하는이가 바로 최원장이다.
<LA인물도보>에도 올라있는 LA유명인사이기도 한 최원장은 학력과 경력이 다채롭다. 한국, 대만, 미국의 여섯군데 대학을 졸업하였고 한의학박사를 비롯 12가지나 되는 다양한 자격증을 소지한 점 외에도 시조로 한국명창반열에 올라 있는 예인(藝人)이며 국제법사자격증이 있는 LA금강사 상임법사이면서 유인대학에서 박사만 지도하는 침구교수등등 해서 경력이 40종류가 넘는데 참으로 존경심이 가는 이 시대의 사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최원장의 친필적은 스승의 필체로서 요즈음은 보기 어려운 명필이다.
1991년 말에 도미한 최원장은 원래 고향이 대구이고 살기는 예향(藝鄕) 진주에서 살았다.
불교에 입문은 언제 어떻게 하셨어요 하고 묻자 그는 구수한 경상도 억양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민족의 피속에는 전부 부처님이 흐르고 있는데 입문이 뭐 따로 있나. 쌀한되 택미하여 절에가서 등키고 부처님께 절하고 절밥 맛있게 먹고 하는 것이 자연스레 면면히 내려오는 역사이고 민족혼인데....... 요즘 한국의 기독교인 피속에도 예외일 수가 없으나 사탕주는데 안 먹을 사람없고 이익주는데 다 따라가는 현상이지. 나는 늘 사람들 보면 이렇게 말합니더. 지수화풍으로 돌아가기전 살아있을 때 열심히 수행하라고."
그는 대학을 6개월 빠진 10년을 다니면서 전공도 한가지만 한 것이 아니다. 동서양 철학을 꿰고 국어국문학과와 정식 불교학과를 다니면서 해인사 강원의 변월주스님으로부터 사교과를 이수하였다. 그리고 1996년도에 국제법사 자격증을 따고 이절 저절 다니며 법사로 법문하다가 금강사와 숙연이 있어 잠시 풍파를 맞았다가 현재는 아예 절살림을 도맡아 보게 되었다. 한때 국어선생을 하면서 시조를 사사하였다. 석암 정경태씨를 위시하여 여러 수십명의 스승으로부터 시조 지도를 받았는데 1986년도 남원 춘향제 경창대회에 나가 시조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명창을 땄다. 그가 말하기를 소리 중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정악과 잡악이다. 가사, 가곡, 시조는 궁중아악으로 전자에 속하고 잡가, 판소리, 민요등은 후자에 속하는데 정악은 단전호흡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소리가 길고 오팔박으로 나가니 길게 뽑는 호흡은 웬만한 사람은 못따라하나 정악을 하면 정신도 맑아지고 사물을 보는 눈이 밝아지기 때문에 바를 정(正)자를 써서 정악(正樂)이라고 말하는 그는 대학에서 국악과 강사, 지도사범 및 시조 경창대회 심사위원등을 하였으며 그가 배출한 후배 명창이 십여명에 이른다.
또한 해군 출신으로 해군동지회 이사장도 역임한 최원장은 1970년도에 일등항해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해군 복무시절 출정가면 거의 모든 해군이 춤 못추고 놀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락을 즐겼으나 이때 최원장은 촌음을 아껴 책을 보았다. 어릴 때부터 사행적인 것 도박, 장기 바둑, 당구 등은 일체 안했다. 언덕 무너지면 길 된다고 삼갈 할 것은 삼가고 외면할 것은 철저히 외면하던 그 습관은 지금까지도 라스베가스 같은데 가서 기웃거려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조경사 1종 자격을 위시해서 과수원예 분재 및 사서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미국와서는 한미TV홈닥터 방송출연, 한미신문편집위원, 주간현대신문편집위원으로 칼람을 연재하기도 한 최원장은 이제는 의사만 하려고 이 모두를 정리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이 예술은 철로 된 칼날같아서 쉬임없이 갈고 닦아야 녹슬지 않은데 요즘은 명창반열에 올랐던 그 시조도 지인의 팔순잔치에 수연축가를 불러주는 정도로 의사로서의 직분이외의 것은 모두 접었다고 한다. <若要天下行인댄 無過一藝强이니라 만약 천하에서 행하고자 하면 한가지 재주를 뛰어나게 할지니라> 이런 말씀이신 것 같다.
NCCA(국제침구사회) 정식회원이며 1978년도에 중국에서 침구사 자격을 얻은 최원장이 침술을 배운 것은 약관 18세 때였다. 그는 말하기를 의술의 술은 기술이니 선습자에게 배워 익혀야 한다. 그래서 어디 누가 잘한다 하면 불원천리를 마다않고 다니면서 배웠으며 일곱분의 스승을 모셨다고 한다.
그는 또 말하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료해야 한의사다. 눈,코,귀,입,치아,인후 다 침으로 치료하는데 보통 안과가면 20일 걸리는 눈병도 한두번 침으로 치료되고 갑상선 이상으로 안구가 튀어나오는 것도, 풍치로 이가 흔들리는 것도 침으로 4-5회 치료하면 완치가 되고 양방에서 못고치는 정신질환도 침,약을 쓴 한방치료로 낫고 고혈압정도는 병축에 넣지도 않는다. 요즘 의술의 사대주의에 젖어서 등하불명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정이다."
(天錐***地가 _____ld로다)
천개의 송곳으로 땅을 파는 것이 무딘 괭이로 한번 파는 것만 같지 못하다.
전문성이 결여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송곳으로 땅을 파고 있는 격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홍익한의회는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한의사들의 동아리이다. 본인은 힘들게 터득했으나 비방들을 후학들에게 편하게 다 전해주고 가지 절대로 무덤까지 가져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최원장은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한 단계씩 제자들을 업그래이드 시키는 일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석.박사를 배출하는 대학설립을 신청하여 임시허가가 나온 상태고 개강은 오는 7월중이 될것이라 한다. 그러면 최원장의 긴 이력에 <홍익인터네셔날 한의과 대학교 총장>이라고 한줄 더 붙게 될것이고 지극한 불자인 그가 베푸는 이익과 혜택을 사람들은 누리게 될 것이다.
[2005년 5월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