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국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그 동안 역사의 수례바퀴에서 여유를 찾지 못하고 5천년을
살아온 우리네 조상들,
숨 가픈 역사 속에서 잃어버리고 없어진 찬란한 문화유산의
발굴에 억겁의 일조를 위하여
우연히 들러 본 고령의 대가야 문명을 보고 1500여년
전의 우리 조상들의 삶을 체험하고 한번쯤은 우리들의
삶에 투영해 보고 싶어 이글을 올립니다.
경북 고령군은 옛 대가야의 맹주로써 김해의 금관가야와 함께
3세기부터 신라에 패하여 멸망할 때까지 562년 약 250여년 간
가야 문화를 꽃피운 경상도 일대의 고대 국가로써 왜구의 약탈과
신라의 문화 말살정책으로 우리 역사상에서 지워져 가든 가락국들의
그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찬란한 전성기의 문화가 재현되는 것 같다
여기서 가야국들의 역사를 만들어 보자
.........가야산 정견모주(正見母主)설....................
천칠백 년 전, 가야산 깊은 골에 한 여신이 살았는데,
성스런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 착한 마음을 지닌 산신
' 정견모주'의 소원은 인간이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는 것인데
밤낮으로 지극정성 기도하자 이를 가상히 여긴 천신 '이비가(夷毗訶)'가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중턱 '상아덤(일명 가마바위)'에 내려앉는다.
산신과 천신은 산속에 감응하여 옥동자 둘을 낳았는데
형은 대가야의 1대왕인 이진아시왕 뇌질주일이고
아우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인 뇌질청예.라----
가야 영토는 경남 가야지역은 물론 장수 남원 구례 순천 여수까지
세를 확장했으며 3세기 이전에는 삼한의 하나인 변진(변한) 12국
이들이 통합을 거듭하면서 4세기 이후에는 6가야만 남았다는 설
금관가야(김해),
대가야(고령),
소가야(고성),
성산가야(성주),
비화가야(창녕),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함창).,
총 7 가야 연합 제국 이름 중에서
금관가야 아라가야는 동명 이칭 설
비화 가야가 있던 창녕과
고령가야가 있던 함창읍에서는
가야토기는 나오지 않고 신라토기만
나온 걸로 보아., 신라 속국이라는 학설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6가야가 동시에 건국됐다는 설화
김해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개국신화,
허왕후의 도래신화,
고령가락국의 시조 이진아시왕의 개국신화 등
결국
서기 522년 이뇌왕는 신라의 법흥왕과 혼인 정책으로
금관가야를 신라에 합병하니 초기 맹주의 패망과
함께 562년에 신라장수 이사부에 의하여 대가야까지
망하자 가야국의 찬란한 역사는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러나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형왕의 손자인 김유신은 패망
가야국의 왕족으로 신라의 장수로써 삼국 통일을 이루고
신라를 다스리게 되니 이는 역사의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망가진 가야문화는 도굴과 약탈로 일본의
도기 문화와 철기 문화를 꽃피우게 하고 우리네 역사 속에서는
소외된 문화로 남아 있었는데
대가야의 문화는
백제의 우아함이나
신라의 화려함과 다르다.
각종 철기 장식품과 토기류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
철기 문화가 발달은 고령군 야로면(철을 녹이던 로)이 아직도
남아 있는 대가야의 철조화로의 유래지와 거창과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 있는 대장간과 화로의 유물 흔적은 철기문화 ,토기문화 의 진수
특히나 6세기 초 가실왕이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금을 제작하고
12곡의 가야금 산조를 짓게 한 것은 오늘 날 가야금의 찬란한
문화유산임엔 틀림없다.
한반도에서 궁궐 시종들까지 생매장한 순장무덤은 고령에 있다.
'전설 속의 나라' 대가야의 각종 토기와 금관이 출토된 순장 무덤
고령의 70기 고대 순장무덤은 슬픔으로 가득한 여인을 연상시킨다.
고령의 진미는 산등성이에 즐비한 고분 군들의 역사 유물
크고 작은 약 1000기의 고분들 중 약 200기가 도굴 또는
발굴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역사적인 고분으로는
대가야 왕릉전시관에 실물크기로 재현한 왕궁을 보면
고령 지산동 44호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다곽 순장묘.
무덤방은 신분에 따라 여러 개의 무덤방에 30명을 함께 매장.
전시관에는 왕이 묻힌 주실 외 32개의 소형 무덤이 원형 재현.
순장무덤 안 22개 인골에는 머리를 둔기로 때리거나 묶인 흔적
부부, 부자지간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있다.
살아 누린 부귀영화를 죽어서까지 영원히 누리고 싶었던 흔적이다.
순장에 순순히 응하지 않은 사람도 꽤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미망인의 유래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죽은 사람의 부인을
미망인이라 한다.
미망인(未亡人) 이란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죄인'이라는 뜻.
'미망인은 한반도 부계사회에서 순장 풍습의 상징.'
한반도 고대국가 왕이 죽으면, 후궁들까지 생매장하던 풍습.
과거 중국에서 남편이 죽을 때 그 아내를 함께 묻는 순장 풍습.
(순장풍습은 신라 지증왕이 금지시켰다 한다.)
전시관 뒤편 돌계단 따라 하늘을 향해 굽이 굽이 봉우리 고분들.
하늘을 향해 봉긋 솟은 무덤들의 형태는 달을 순장한 듯..'
달은 '여인의 상징'이자 인류의 조상이 유래된 곳이라도 한다.
고창 고분군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토기와 철기문하의 찬란한
대가야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장신구, 토기, 전투용품들.
전시실 절반이 토기류.,목 짧은 항아리,
뚜껑이 있는 항아리, 굽다리가 있는 접시,
손잡이가 달린 잔 등이 다량 전시되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왕관과 귀걸이 같은 장신구들이 전시
왕관은 금동관으로 아래 받침에 둥근 관(冠)이 있고
사슴뿔 모양 장식이 신라금관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그리고 금에 푸른 녹이 있어 더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금귀걸이는 귀에 거는 둥근 환에 줄을 매고 장식이 있다.
요즘의 화려한 귀걸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공간에는 전투용품 투구와 갑옷이 전시되어 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현대의 철모와 비슷하다.
갑옷 형태가 이웃 신라보다는 일본과 가깝다
그러므로 가야는 일본과 교류가 많았고 약탈도 많았다
황토 흙으로 만든 일종의 고로에 철광석을 넣고
숯(木炭)으로 이것을 녹여 철을 생산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유산을 가진 우리들 지만 망각의 세월동안
일본인 들은 매년 천왕제를 지내기 위해 고천원지를 찾는다
고령이 일본 황실 선조의 고향이라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개나리 만개한 4월의 어느 날 고령을 찾아 옛 조상들의
지혜와 문화를 유산을 맛보며 여행을 떠나자
-2010년 4월10-11일 역사탐방의 여유로움을 찾아서-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