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말했다 “최경주, 네가 최고다”
경향신문ㅣ김경호 기자ㅣ2007년 6월 4일
“이 벅찬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최경주(37·나이키골프) 골프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잭 니클로스(67·미국)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탱크’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붙였고, 마침내 5타차를 뒤집는 대역전 우승으로 ‘황금 곰’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들었다. 20년 전 아무도 제대로 골프를 가르쳐주지 않던 까까머리 고교생 시절 ‘책 속의 스승’이었던 니클로스의 축하를 받은 최경주는 “내 골프 인생은 당신의 책을 보고 시작됐다”며 화답했다.
최경주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5승째를 거둬들였다. 최경주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뮤어필드빌리지 골프장(파72·7366야드)에서 열린 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1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를 몰아쳐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라이언 무어(미국·272타)를 1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시즌 첫 승이자 최근 3시즌 연속 우승.
최경주의 쾌거는 특히 메모리얼 토너먼트가 세계랭킹 50위 이내의 강호들이 총 출전한 메이저급 대회라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비롯해 ‘빅 5’의 일원인 어니 엘스(남아공)와 비제이 싱(피지)은 나란히 최종 합계 9언더파로 공동15위에 그쳐 최경주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했다.
통산 5승 가운데 우즈가 출전한 대회에서 거둔 우승은 처음이었다. 미국 진출 이후 가장 많은 108만달러의 우승상금과 함께 시즌 상금 랭킹이 8위(216만3629달러)로 30계단이나 껑충 뛰어오르는 소득도 얻었다.
최경주는 3라운드까지 선두 로드 팸플링(호주)에 5타나 뒤진 공동 7위여서 우승은 버거워 보였다. 1번홀(파4)과 3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은 최경주는 5번홀(파5)에서 세컨드샷을 물에 빠뜨리고도 파를 잡으며 상승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6번(파4) 7번(파5) 8번(파3) 9번(파4)홀에서 4연속 버디. 최경주는 단숨에 단독선두로 뛰어올랐고, 끝까지 리드를 뺏기지 않았다.
마지막 16~18번 3개 홀에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환상적인 벙커샷과 퍼팅으로 파 세이브에 성공, 역전극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조가 경기를 끝내기 전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은 최경주는 18번홀 그린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니클로스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다가와 악수를 청하자 화답한 뒤 대화를 나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니클로스는 “당신이 최고다. 자랑스럽다”고 칭찬했고, 최경주는 “어릴 때 당신이 쓴 책을 보고 골프를 배웠고, 당신의 샷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끊임없이 연습한 게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완도에서 보낸 고교시절 체육교사를 통해 얻은 니클로스가 지은 “골프, 나의 길”이란 번역서를 보고 그립쥐기, 백스윙 및 팔로스윙하는 법 등 기본기를 익혔다.
1999년 일본 골프투어 우베 고산오픈 우승으로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초청돼 3라운드에서 니클로스와 함께 라운딩, ‘책속의 스승’과 첫 대면한 최경주는 마침내 그가 건네주는 우승컵을 받아들며 기적 같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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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에 진로를 바꿔줄 수 있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 위대하다.
위대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힘겨워도 굴하지 않고 궤적을 따르며 마침내 맞대면을 이루는 사람,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골프, 나의 길'이란 책을 보며 골프 동작에 관해 하나씩 배워나가던 시절, 최경주는 잭 니클로스를 실제로 만나게 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전설 속의 위대한 인물과 같이 라운딩을 하게 되었을 당시만 해도 운이 좋다고, 열심히 하니까 우승도 하고 결과에 따라 토너먼트에 초청돼 니클로스와 함께 라운딩까지 하게 되었구나... 기분이 무척 좋았을 것이다.
마침내 잭 니클로스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을 달성하고, 악수를 청하는 책 속의 스승으로부터 "당신이 최고다, 자랑스럽다"는 찬사를 받았다.
헛된 꿈을 가지면 과욕 같아서 그댄 꿈조차 꾸지 않으려는가?
시공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꿈꾸되 망설이지 말고 현재에 행동하라.
주변 사람들의 충고에 맘 쓰지 말고, 자신을 믿고 끈질기게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라.
기필코 당신도 꿈을 이뤄낸 벅찬 감회를 느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 날을 맞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