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가 묻고 교무가 답하다] 마음이 가난할 땐 어떤 공부를 해야할까요?
김인서 교무
Q. 어릴 때부터 생계 걱정이 커서 꿈보다 직업을 우선시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돌아보니, 평생 ‘돈’을 위해서만 일을 해온 것 같아요. 덕분에 살림은 궁핍하지 않게 됐지만, 정작 마음이 가난해진 것 같아요. 막상 다시 공부를 시작할 엄두는 나지 않고 괜히 쓴 생각만 듭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 시점일까요.
A. 먼저, 젊은 시절 꿈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힘들게 버텨온 정토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꿈꾸던 ‘관심 분야 공부’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교사를 하다가 공부를 하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하고, 졸업 후 강사를 하다가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은 넘치는 에너지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입니다.
하루는 그 사람에게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좌우명은 ‘저수지’입니다. 저지르자, 수정하자, 지속하자의 줄임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사람이 하던 일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과 취미 생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좌우명처럼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꾸준히 채워가는 모습에 감탄이 일었습니다. 정토님과 반대의 성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은 사실 중도(中道)를 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의 진리를 공(空)·원(圓)·정(正)으로 요약해 주시면서 마음이 한편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바르게 판단하며 중도행을 하는 것이 정”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산종사님도 “수도인이 정성스럽게 수행을 계속 하다 보면 마침내 영문(靈門), 혜문(慧門), 도문(道門)이 열리게 되는데, 도문은 육근 동작을 중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작업 취사로 실천력을 얻어 중심, 중도, 중화의 꽃을 피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취사함으로써 어긋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 상태에서 질문하신 정토님과 제가 언급한 분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두 분 모두 한쪽으로 치우쳤던 생각이나 행동에서 중도를 잡아 중화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도 독선기신(獨善其身)에 빠지지 않고 영육쌍전(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竝行) 등 치우치지 않는 공부를 강조하셨습니다.
이제는 한 번쯤 생각을 접어두고 떠오르는 것을 바로 실행해 보면 어떨까요. 더 도전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토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반송교당
[2024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