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정 김소희 선생(중요무형문화재), 박귀희 선생(중요무형문화재) ,
오정숙(중요무형문화재), 안향년, 남해성 명창
- 농부가 (중모리)
후렴 : 두리둥 ~둥둥 두리둥~둥둥 캥갱매 캥매 캥 어럴~럴럴럴럴 상사듸야
여허 여~여~여허여허루 상사듸이여
1.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어~나 농부들 말들어요
남훈전 달 밝은디 순~임금의 노름이요 학창의 푸른 대소리는
하나님의 노름이요 오뉴월이 당도하면 우리농부 시절이로다
패랭이 꽂지에다 개화를 꽂고서 마구잽이 춤이나 추어보세
2. 여~여여여~루 상사듸여 어럴~럴럴럴 상사듸여
여보시오 농부님들 이네 말을 들어보소 어~라 농부들 말들어요
캄캄한 어두운 밤은 멀~리 멀얼리 사라지고 삼천리 너른 땅은
새빛이 밝았구나 산명수렴 이 강산은 우리농부들 차지로세
3. 여~여여여~루 상사듸여 어럴~럴럴럴 상사듸여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어 ~허와 농부님 말들어요
패랭이 꽂지에다 개화를 꽂고서 마구잽이 춤이나 추어보세
여~여여여~루 상사듸여 어럴~럴럴럴 상사듸여
4.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농부님 말들어요 전라도라 허는디는 신산 빛친 곳이라 이 농부들도 상사소리를 상사맺이는디 각기 저정거리고 더렁거리세 여여 여흐어 여루 상사디여 이리 한참 맥이더니마는 해가 살풋이 넘어가니 자진농부가로 해보는 것이었다.
ㅡ 자즌 농부가 (중중모리)
후렴 :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1. 여보소 농부들 말듣소 어화 농부들 말들소
운담풍경 근오천으 방화수류하야 천천히 내리소서
후렴 :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2. 여보소 농부들 말듣소 어화 농부들 말들어 고대광실을
부러 말소 오막살이 단칸이라도 태평성대가 제일이라네
후렴 :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3. 어 ~~화 농부님 어~~화 농부님
서마지기 논빼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내가 무슨 반달이야 초생달이 반달이로다
후렴 :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4. 여보소 농부들 말들소 어화 농부들 말듣소
내렸단다 내렸단다 전라감사가 내렸단다
후렴 :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5. 우리남원 사판이다 어이하여 사판인가
부귀와 임금은 농판이요 장천태수는 두판이요
육방관속은 먹을 판 났으니 우리 농부들 죽을 판이로다
후렴 :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떠들어온다 점심바구니 떠들어온다
어화~어화 여어루 상~사~듸이여
* 남도민요
▣ 여류명창 김소희, 박귀희, 안향년 등의 소리가 만나,
민요에 담긴 삶의 이야기가 꾸미지 않은담백한 맛으로 표현된다.
▣ 남도민요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더욱 단단하게 흥하게 들리며, 이들 명창의 소리는 더욱 빛이 난다.
"남도민요"는 지역적으로 충청이남과 전라도,
경상도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의 민요를 일컫는데
이 지역의 민요는 대개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육자백이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떠는 목, 평으로 내는 목,
꺾는 목의 3음을 중심 으로 선율이 구성된다는 점이고
화사한 경기민요나 애수에 젖은 듯한 서도민요와는 달리
굵고 극적인 목구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며,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인상을 주며 구성진 멋을 풍긴다.
대표적인 민요로는 <육자백이>, <새타령>, <흥타령>, <농부가>,
<진도아리랑> 등이 있고 장단은 판소리나 산조의 장단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 등이
가장 많이 쓰인다.
이 음반에서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김소희 선생과,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 박귀희 선생의 소리가 있다.
이 두 명창이 가장 절친한 사이었던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이들의 국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인지 남도민요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더욱
단단하게 흥하게 들리며 두 명창의 소리는 더욱 빛이 난다.
또한 김소희 선생의 후계자로 지목 받을 정도로
그 소리의 음역을 인정받았던 안향년과
동초제 판소리의 인간문화재 오정숙, 힘이 있고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숨어 있는 남해성 명창의 소리가 만나,
민요에 담긴 삶의 이야기가 느린 노래는 슬픔을
빠른 노래는 경쾌함을 주며, 꾸미지 않은 담백한 맛으로 표현된다.
▶ 연주자 소개
1. 김소희(金素姬)
판소리 명창인 김소희는
1917년 전북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에서 내어났다.
1930년부터 송만갑, 정정렬, 박동실, 정응민 등
당대의 명창들을 차례로 사사하며 소리를 익혔는데
이 중 정정렬과 박동실은 김소희의 소리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김소희는 타고난 목이 곱고 청아할 뿐만 아니라
서정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는 명창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부르는 소리는 장단, 부침새의 운용에 있어 변화가 많고
매우 기교적이며 또 거친 성음이나 고음처리 역시 깔끔하게
구사하여 소리에 부담이 없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1934년 콜롬비아 레코드에 춘향가를 취입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타계하기 전까지 많은 레코드 취입을 하였으며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을 비롯해, 민속예술원 설립원장,
국립창극단 부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음악활동 을 벌였다.
또한 그의 문하에서 많은 명창들을 길러냈는데
그 중에서도 안향연, 김동애, 안숙선 등이 손꼽힌다.
2. 박귀희(朴貴姬)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귀희는
본명이 오계화(吳桂花)이고 호는 향사(香史)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병창 기예능보유자를 지냈으며
일찍이 박기홍, 강태홍, 유성준, 오태석 등의 문하를 거치며
소리와 가야금, 병창 등을 두루 공부 하였다.
화사한 가야금소리에 잘 어울리는 구성지고 시원한 목청을 갖고
있어 가야금병창으로 이름이 매우 높았으며
<꽃타령>을 비롯한 많은 창작 성악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1943년에 설립한 동일창극단을 설립하고
그 창립 단장을 지낸 이후 타계하기 전까지 한국민속예술원장,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악꿈나무의 양대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국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과 서울시 문화상등
굵직한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오늘날 제자인 안숙선 명창이 그 뒤를 잇고있다.
3. 안향련
그 이름 앞에 흔히 "요절한 천재 명창"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안향련은 1944년 지금의 광주 부근에서 태어나 부친이었던
안기선 명창에게 11살 때부터 7년간 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부친 타계 후에는 보성의 정응민, 정권진 등에게서
소리를 배웠기 때문에 보성소리 강산제의 맥을 이은 여류 명창이다.
1970년 상경하여 김소희 명창에게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절묘한 성음과 기량으로 인해 김소희의 수제자로 손꼽혔으나
아쉽게도 1981년 요절하였다.
일필휘지의 붓놀림처럼 거침없이 격정적으로 쏟아내는
그의 소리는 수많은 애호가 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따라서 그의 돌연한 죽음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4. 오정숙
오정숙은 1935년 경남 진주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판소리에 입문하여 14세부터는 "우리 국악단"의
단원으로도 활약하였다.
오정숙이 활동한 이 단체에는 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등도
함께 활동했다고 하며 23세에 상경해서는 김소희로부터
심청가 중 범피중류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정숙을 알리게 된 계기는 1962년
동초 김연수의 전수생이 되면서부터이다.
김연수에게서 춘향가, 흥보가를 비롯한 판소리 다섯 바탕을
공부한 오정숙은 1972년부터 매년 한바탕씩 의 완창 발표회를
가진바 있으며 1977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오랜 동안 창극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전주대사습 1회 장원, 남도 판소리 명창부 1회 장원등
일찍부터 명창의 면모를 과시했고 199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제
제 5호 김연수제 춘향가의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오늘날 동초제 판소리의 맥을 잇고 있다.
5. 남해성
남해성은 1935년 전남 광양에서 출생하였으며
김소희에게서 춘향가를, 그리고 박초월에게서 수궁가를 사사하였다.
1985년 남원 춘향제 명창부 장원을 수상하며 명창의 반열이 올랐고
198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준보유자로 지정 받았다.
여성국극단과 국립창극단원으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의 이사로 있으며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6. 성창순
성창순은 1934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6세에 동초 김연수 창극단에 입단했다.
김소희·정권진·정응민·박녹주 등 여러 명창들에게서
소리를 배우고 1977년에는 판소리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1978년 전주대사습에 입상하여 명창의 반열에 올랐으며
1991년에는 정권진의 뒤를 이어 심청가로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가 되었다.
화관문화훈장, 문화훈장 동백장,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방일영국악대상 심사위원,
한국 전통예술보존회 이사장과 광주시립 국극단장을 겸하고 있다.
7. 신영희
신영희는 1942년 전남 진도에서 출생하여
부친 신치선에게서 처음으로 소리에 입문하였다.
그후 안기선, 장월중선, 김중섭, 박봉술, 강도근, 김상룡 등에게서
소리를 배웠으며 아세아 민속예술제 창악부 최우수상 수상,
남원 춘향제 전국 명창대회 신인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 춘향가 완창 발표회를 가진바 있고, 1975년 상경하여
김소희에게서 흥보가, 춘향가, 심청가 전 바탕을 배웠다.
또한 1976년에 국립창극단 단원이 되어
활발한 창극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92년 김소희 문하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준 보유자가 되었고,
현재는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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