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어빵에 관한 시모음 ]
※ 붕어빵 / 김옥진
과거엔 밀가루였어
더 과거엔 밀밭이었고
그 이전엔 밀알이었어
밀한알 땅속에 묻혀
빵되고 수제비 되고 칼국수되고
밤이 되고 추억이 되고
추억속 밀밭에서
빵,
한입 베어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어느 강에서 온 붕어일까
※ 알고보니 스파이 / 다서 신형식
골목길을 돌고돌며
꼬리치며 냄새내며
노릿노릿 속태우는 추억팔이 붕어빵은
그대가 그대가 보낸
미끼일세 스파일세
그대가 줄을 서면
나도 따라 줄을 서고
가슴팍에 멍이 들면 뒤집고 또 뒤집고
추억은 쌍둥이로다
오늘이나 어제나
※ 천원의 행복 붕어빵 / 평보
길모퉁이 철거덕 철거덕
붕어빵 돌아가는 소리
추위를 녹이는 화덕 위로
인정이 피어나는 붕어가
태어난다
종이봉투에 담아 건네는
아낙의 손이 두텁다
천원에 세마리
외투속에 넣으니 가슴이
따듯하다
천원의 사랑을 건네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를
보며 1억원의 행복을 느낀다
※ 붕어빵을 굽는 여인 / 정유광
노을 진 좌판의 뱃머리에
석양의 삿대를 걸고
물고기를 낚는 그녀
더위에 지쳐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손바닥 뒷면에 가리어 있는
절반의 은혜를 되찾고 있다
인적 한적한 골목 모퉁이
따스한 햇볕
고독한 마음 어루만지고
철새들이 날아오니 다정하기만 하다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을 위한 양식을 구하는 낚싯줄 드리우고
세월을 낚고 있다
미끼도 없는 바늘에 끌려 나오는 붕어들
은혜로 건져 올리는 양식이다
※ 붕어빵 / 석우 윤명상
따끈따끈한 붕어가
회귀성 연어처럼
다시 돌아왔어요.
팥과 슈크림으로
속을 채우고
가을로 헤엄쳐왔어요.
강도 냇가도 아닌
동네 골목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황금 붕어로 돌아왔어요.
※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
/ 조효복
그늘진 탁자에는 표류 중이던 목조선 냄새가 비릿하게 스친다
구운 생선을 쌓아두고 살을 발라낸다
분리된 가시가 외로움을 부추긴 친구들 같아 목안이 따끔거린다
흰 밥 위에 간장을 붓고 또 붓는다
짜디짠 바람이 입 안에 흥건하다
훔쳐 먹다 만 문어다리가 납작 엎드린 오후
건너편 집 아이가 회초리를 견딘다
튀어나온 등뼈가 쓰리지만 엄마는 버려지지 않는다
매일 다른 가족이 일기 속에 산다
레이스치마를 입은 아이가 돈다
까만 유치幼齒를 드러낸 아이가 수틀을 벗어난 실처럼 돌고 있다
귀퉁이를 벗어난 아이들이 둘레를 갖고 색색으로 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뱃구레 속에 고래가 산다
골목은 높낮이가 다른 파동들이 그려놓은 바다 놀이터
제자리가 두려워 아래로만 내달리는 모난 고래들
풍덩 골목 아래로 제 몸을 던진다
가라앉은 먼지위로 고래가 헤엄친다
팥물 묻은 고래 비탈을 구른다
천막 아래 등이 굽은 엄마가 붕어빵을 굽는다
※ 붕어빵을 사러 갔다 / 다서 신형식
내가 생각했던 목적지보다
조금 더 가봐야겠다
그곳에는 그대 있을지
그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그리워 해야겠다
그러면 붕어빵이 익고 있을지
눈 내려 하얗게 덮히고
그 다음에
꽃 피는 게 순리라면
그래 그대가 옳다
매번 돌아 돌아서 오는
그대가 옳았다
※ 붕어빵에게 묻는다 /다서 신형식
얼마나 더 가슴 태워야 하기에
추억과 기억은 그렇게
소실점 근처에서 서성거리나요
이별의 순간도
뒤집고 뒤집다 보면
때깔 곱게 환생할 수 있을까요
쓰라린 기억들도
돌리고 돌리다 보면
뜨거운 장면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요
※ 손맛 / 다서 신형식
입질이 오면 냅다 잡아채며
딸랑 손맛 한번 보겠다고
목숨 걸고 버티는 저항의 리듬을
그때가 그립다는 진저리로
안녕하지 못하다는 부들거림을
그대가 보고싶다는 고해성사로
반찬삼아 겉바속촉 추억하던
그대 손끝은 여전하신가
늙어간다는 건
입맛도 변하고 손맛도 깊어가는 것
노련해진다는 건
두근거림을 참아내고 참아내다
애매하게 포커페이스가 되는 것
단 한번의 입질에
손맛 보려고 대들지 않는 것
빈 낚싯대 던져놓고
물살의 흔들림도 허투루 보지 않는 것
바람의 속삭임을
귀 기울여 들어줄 지 아는 것
미미한 미끼의 무게마져도
중하게 받아들이는 것
숱하게 쌓아놓은 선입관을
툭 털어버릴 줄 아는 것
파르르 떨리는 팽팽한 번뇌의 낚싯줄을
툭 끊어버릴 줄 아는 것
잡은 고기 다 던져주고
털털하게 돌아올 줄 아는 것
몽고간장에
가난을 막 뚫고 나온 날계란 하나
얹어주시던 그 손맛,
그 손맛 추억하며
붕어빵 한 봉지 사서 돌아갈 줄
아는 것
※ 붕어빵 / 정 호 승
눈이 내린다
배가 고프다
할머니 집은 아직 멀었다
동생한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었다
동생이 빵은 먹고
붕어는 어항에 키우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 복효근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 붕어빵을 굽는 동네 / 이화은
달아오른 철판 위에서 붕어들이
몸부림칠 때쯤 귀가길의 남편들
산란의 따끈한 꿈을 한 봉투
가슴에 품어 안는다
아파트 창의 충혈된 불빛이
물풀로 일렁이고
아내들의 둥근 어항 속으로 세차게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밤의 한가운데를 직진하는 숨소리
파도소리, 비명소리, 도시는,
한여름 서해바다처럼 질척거린다
한바탕 아내들의 뜨거운 빵틀 속에서
남편들은 모두
잘 익은 붕어가 되어 또 한 번
꿈결로 숨결로 돌아눕고
붕어빵 같은 아이들의 따스한 숨소리가
높다랗게 벽지 위에 걸린다
※ 붕어빵 / 성명남
몇 차레 입질 끝에 와 닿는
팽팽한 손맛 월척이다
지느러미 쭉 편 실한 붕어가
미끼를 꽉 문 채
찬찬히 그녀를 살핀다
그녀가 틀을 접었다 펼 때마다
앞 다투어 입질한다
그녀가 붕어를 낚는지
붕어가 그녀를 낚는지
덥석 미끼 물고
뛰어올랐다
오후 다섯 시 그녀의 저수지는
만원이다
낚시대만 던지면 냉큼 낚여 올라오는
그놈들 물좋다
※ 붕어빵의 꿈 / 신장근
옻칠처럼 시커먼 무쇠알 속에서
가스불로 부화한 내 몸통 안에도
부드럽고 뜨거운 붉은 심장들이 있다.
알을 깩고 나와 찬바람 맞으며
지느러미와 꼬리 차갑게 식었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남극 빙하도 녹일
뜨거운 심장들이 힘차게 박동친다.
누런 황금빛 내 몸 구석구석에는
초콜릿보다 더 짙은 화상자국 투성이지만
난 아직도 녹두빛 금강물에 몸을 담가서
선홍색 아가미로 숨을 쉬며
황금빛 모래바닥 위를 마음껏 휘젖고 다니는
간절한 꿈을 차마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