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현
하늘 호수 외 1편
하늘 호수는 높고 외롭지
시인은 높고 외로운 사람인지
밤이면 하늘 호수를 산책하지
하늘 호수에 고인 물은
천 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고
시인의 가슴을 적셔 주지
하늘 호수는 외로워도 푸르고
시인은 외로울수록 하늘 호수를 시에 담지
하늘 호수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는
시에서도 깊어지지
하늘 호수는 높고 외롭고 깊어서
시인의 눈으로만 볼 수 있지
시인의 가슴에는 하늘 호수가 늘 고여 있지
시인은 시를 쓰기 전에는 하늘 호수를 산책하지
시인을 보면
하늘 호수는 더 높고 더 외롭고 더 깊어지지
하늘 호수는 시인에게만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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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서기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 그리우면 물구나무서지
물구나무는 뿌리가 없지
손이 뿌리지
높은 하늘은 온통 발아래 둥둥 떠 있지
몇 걸음 걷는 발길이 공기처럼 가볍지
반대편은 독처럼 신선할 때가 있지
몸이 불편하면 독이 그리워지기도 하지
그럴 때 영혼은 발끝을 지나 천상에 이르지
오오, 억눌리기만 했던 발바닥의 자유
자유를 위하여 손은 뿌리처럼 땅에 단단히 내려야 하지
자유의 배면은 구속인지
하늘을 걷고 싶지만 뿌리가 된 손이 단호하게 만류하지
피도 때로는 거꾸로 흘러야 선명해지지
선혈을 향한 꿈
구속에서 벗어나면 다시 자유가 회복될까
그리운 하늘은 늘 머리를 위에 두어야 하나
연기 같은 기운이 몸의 내부에 자욱해지면
발을 내릴 때지
하늘이 그리울 때마다 물구나무서지
하늘이 그리울 때마다
김윤현
1984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계간지 《사람의 문학》 공동 창간 및 편집위원이다. 시집으로 『반대편으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 『들꽃을 엿듣다』, 『발에 차이는 돌도 경전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