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스케치, 피아노 그리고 문학
『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컷,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이 책의 강점은 동일시이다. 80년대 다리 네 개 달린 흑백TV에서 형용색색이 나오는 칼라TV를 보면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의 기억이 떠오른다. 구멍가게에 들어가 초코파이를 사서 아껴먹던 시절,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외국만화를 기다렸던 한국의 꼬마숙녀들. 핑크빛으로 부푼 소매와 레이스 달린 드레스, 잘 가꿔진 장미정원, 동양인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금발의 머릿결 을 보면서 꼬마들은 어서 커서 서양아가씨처럼 되기를 꿈꿨다.
『작은 아씨들』은 자전적 소설로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도 네 자매 중 둘째딸이었다고 한다. 1868년에 출품됐고 19세기 미국의 모습과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마치가문의 네 자매의 일대기를 그렸다. 올컷은 여성인권가, 노예해방가, 교육자였다. 숙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제도와 타협 앞에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의 문학적 원천과 우상은 아버지의 서재와 괴테였다고 후에 밝힌다.
메그, 조, 베스, 에이미라는 네 자매는 각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와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다. TV를 보면서 누가 더 자신과 닮았을까 동일시했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작은 아씨들』을 다시 읽다보면 더욱 네 자매의 독특성에 빠지게 만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계기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더라도 각 인물의 성격을 고스란히 알게 된다.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야.” 조가 양탄자 위에 드러누워서 투덜거렸다. “가난한 건 너무 지긋지긋해.” 메그는 자신의 낡은 드레스를 내려다보며 한숨지었다. “흥, 다른 소녀들은 예쁜 것들을 많이 가질 수 있는데 나처럼 가난한 애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니 불공평해.” 어린 에이미가 상처받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또 우리 자매들이 있잖아.”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던 베스가 만족스럽다(p45).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조, 화려함을 동경하는 메그, ‘상류사회’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컸던 에이미, 연약한 새처럼 둥지를 지키는 베스를 보면서 말이다.
작가는 『작은 아씨들1, 2』에서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소녀들의 수줍음, 희망과 두려움, 불행과 고난, 아름다운 삶을 통해 우리는 형제와 우애, 부부의 사랑, 이웃과의 애정을 깨닫게 되고 만다. 지금 슬프고 외롭다면 각자의 둥지를 떠나 씩씩하게 삶을 꾸려가는 우리의 영원한 작은아씨들을 추천한다.
<서평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