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일본의 야구
야구는 1873년경에 미국에서 일본에 소개되었으며, 학교들이 부서 활동으로 자체팀을 창단함에 따라 그인기는 급속히 상승하였다. 프로야구는 일본 최고의 관전 스포츠이지만 야구게임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수준의 아마추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또한 많은 대기업들이 아마추어팀을 후원하고 있다. 일본 2개 리그의 게임은 4월부터 10월까지의 플레잉 시즌동안 거의 매일 TV로 방영되며 인기선수들은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을 받는다.
아마추어 야구
참여적인 측면에서 야구는 국민학생들과 중학생들이 가장 즐기는 운동이다.(일반 야구공과 같은 크기의 부드러운 가죽 공을 사용하므로 안전하다) 시합은 일반적으로 지역수준으로 제한된다. 고등학교 야구는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다. 일년에 두 번씩, 봄과 여름사이에 일본 최강의 고등학교팀들이 1915년 이래로 토너먼트 경기가 열렸던 효고(兵庫)현의 코시엔 스타디움으로 모여드는데 4,000개 이상의 팀들이 참가하여 토너먼트 시합을 가진 후 47개 현의 우승팀들만이 전국우승을 겨루게 된다.
코시엔의 토너먼트 게임은 NHK와 라디오를 통해 일본전역으로 방송된다. 팀의 모교 학생들과 선수가족들은 이 게임을 보기 위하여 구름같이 효고현으로 모여들어 경기동안 약100만명의 관객들이 관중석을 메운다. 팀의 결승전이 있을 때에는 그팀의 고장에서는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기 위해 일과 교통이 멈춰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일본의 많은 재능있는 고등학교 선수들은 대학 입학을 일찍하여 곧바로 프로팀에 입단한다. 결과적으로 최고수준의 선수들 대부분이 코시엔 토너먼트의 역들이다.
대학선수들도 큰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빅6’ 라고 불리는 호세이, 게이오, 메이지, 리쿄, 동경, 와세다 대학팀들은 학생들과 동창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게이오와 와세다 대학사이에 매년 열리는 야구시합은 1903년부터 시작된 전통있는 경기로 유명하다. 프로선수로 크게 성공한 대학선수들로는 리쿄대학의 나가시마 시게오, 호세이대학의 다부치 고이치, 같은대학의 에가와 스구로등이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마추어팀을 가지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토너먼트가 매년 열리고 있다. 그들은 금속배트를 사용하며 지명타자제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팀들의 최고선수들은 경기초반에 종종 프로팀들에게 선발되어 다음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기대 받는다. 일본의 아마추어 팀들은 일본과 미국사이에 매년마다 열리는 대학시리즈와 같이 국제적 경기에도 참가한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종목화되자 일본팀은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에도 참가하여 은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프로야구
미국의 올스타팀이 최초로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방문한때는 1931년10월로,뉴욕 양키스의 스타선수인 루 게릭이 이끄는 팀이 일본대학의 올스타팀과 경기를 한 것도 이때이다. 미국팀은 17 게임을 모두 이겼으나 일본팬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으며 팀의 경기수준을 올릴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로 인해 1934년12월에 프로팀이 창단되어 동경 야쿠(野球)클럽이 조직되었다. 2개월후 이팀은 미국으로 순회경기를 떠났으며, 곧 동경자이언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리그경기는 1936년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프로 야구경기는 1936년 2월 9일에 나고야(名古屋)현고의 나루미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골든 돌핀스팀이 10대3의 스코어로 자이언트를 이겼다.
각각6개팀이 있는 2리그제는 1950년에 채택되었다. 이들 중 세 개팀은 철도회사의 소유이며 2개는 신문사, 그 외의대부분은 기업팀이다. 현재 센트럴리그에는 쥬니치 드래곤스(나고야), 한신 타이거즈(오사카), 히로시마 카프(히로시마), 야쿠르트 스왈로우(동경), 요코하마 베이 스타스(요코하마), 요미우리 자이언트(동경)가 있다. 또한 퍼시픽 리그에는 치바 롯데 마린스 (치바),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후쿠오카), 킨테츠 버팔로(오사카), 니폰 햄 파이터스(동경), 오릭스 블루 웨이브(고베), 세이부 라이언스 (도코로자와)가 있다. 타이거즈, 드래곤스, 카프는 열광적인 팬들로 유명하다.
4월초부터 시작하여 2리그의 12개의 프로야구팀들은 135개의 게임을 한다. 홈 경기장에서의 경기와 함께 팀들은 자체적인 프로야구팀이 없는 지방도시에서도 종종 시합을 가진다. 시즌이 끝날 무렵에 각 리그의 우승팀들은 전국우승을 가리기 위해 일본시리즈에서 대결하게 된다. 1996년에는 ‘오릭스 블루 웨이브’가 ‘요미우리 자이언트’를 누르고 우승하였으며, 1997년에는 ‘야쿠르트 스왈로우즈’가 ‘세이부 라이언스’를 이기고 우승하였다.
‘빅 에그 (큰 달걀)’ 이라고 불리는 동경 코라쿠엔의 동경 돔은 일본 최초의 원형 지붕 경기장이다. 이곳은 ‘요미우리 자이언트’와 ‘니폰 햄 파이터스’의 홈 경기장이며 후쿠오카, 나고야, 오사카등에도 건설되어 우기(雨期)에는 연기되었던 많은 경기들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경기의 스타들
최근 들어 유명한 일본 프로선수들이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좋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가장 알려진 선수로는 ‘요미우리 자이언트’의 내야수였던 ‘오 사다하루’가 있다. 22년 동안 ‘오’는 총868개의 홈런을 쳐서 베이브 루스의 714개와 미국 메이저리그의 기록보유자인 행크 애런의 755개를 앞질렀다.
‘오’는 현재 ‘다이에이 호크스’의 감독이다. 전쟁전 프로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피처는 정확한 조준과 빠른 스피드로 400회의 경기에서 승리하였던 왼손잡이선수 ‘가네다 마사이치’ 였다. 또 다른 유명한 선수로는 ‘히로시마 카프’의 ‘키누가사 사치오’가 있다. 2,215회의 게임에 연속적으로 출전한 ‘철의 사나이’ 키누가사는 뉴욕 양키스의 루 게릭이 보유한 2,130회의 연속게임기록(지금도 활약하고 있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칼 립켄 주니어가 갱신한이래)을 깼다.
현대 야구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선수는 아마도 前 리쿄대학의 스타 플레이어로 ‘요미우리 타이거즈’의 내야수였던 ‘나가시마 시게오’일 것이다. 야구의 “미스터 자이언트”로 알려진 나가시마는 1965년에서 1973년까지 팀을 9회 연속 전국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현재 이 팀의 감독으로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포츠 인물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오늘날 가장 인기있고 재능있는 선수는 ‘오릭스 블루 웨이브’의 ‘스즈끼 이치로’이다. 이치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퍼시픽 리그에서 4년 연속(1994-1997년) 최고타율을 기록하였다.
최고 강타자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츠이 히데키’가 있다. 겨우23살인 그는 128개의 홈런을 쳤는데 그중 75개가 지난 2년간에 친 것들이다.
‘야쿠르트 스왈로우즈’ 의 후루타 마츠야는 최고의 수비포수일 뿐 아니라 4번 타자로 많은 게임을 승리로 이끌었다. ‘요코하마 베이 스타스’의 ‘사사키 카즈히로’는 일본의 스타 구원투수이며, 많은 해설자들이 그의 힘있는 포크볼은 미국의 메이저 리그수준과 맞먹는다고 말한다.
국제화
1930년대 이래로 미국 프로야구 올스타팀은 친선경기차 일본을 꾸준히 방문하고 있으며, 일본, 한국, 대만 등 프로 야구팀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국가들과의 월드시리즈 가능성에 관해 타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간의 실력과 심판형태 등의 차이로 가까운 미래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모든 일본 프로야구팀에는 외국 선수들이 있다. 그 수는 각 팀당 3명으로 제한되어있지만, 1998 년 시즌부터는 4명으로 늘어날 계획이다. 그러나 ‘외국’ 이라는 말은 ‘수입’ 된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주목해야한다. 즉, 한국이나 중국계로서 일본에서 자라난 외국 국적의 선수들 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일본 프로팀들은 미국, 한국, 대만, 몇몇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카리브해의 국가들로부터 선수들을 스카웃해 왔다. 이러한 많은 외국선수들은 성공적인 성과를 올리며 기록을 세우고 있으며 일부는 계약을 지키지 못하거나, 경기방식의 차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 시즌 후에 떠나기도 한다. 직업으로 야구를 시작한 최초의 일본인이 ‘미카미 고로’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금은 없어진 연방리그의 다국적 팀에서 활약하였다.그는 고국에 돌아와 사업가가 되었지만 일본에 프로야구팀이 창단되기 전, 수 십년간 활약한 일본최초의 프로야구선수로 인정받는다.
현대에 와서는 피처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1960년대 초반에 2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트에서 활약하였다. 그후 20년 후에야 또 다른 일본선수가 미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이전 ‘킨테츠 버팔로’의 스타 투수였던 ‘노모 히데오’ 선수이다.
1995년에 LA 다저스에 입단하고 난 후, 그는 독특한 투구로 “토네이도(폭풍)”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해의 전국리그 루키로 뽑혔다. 1996년에 그는 ‘콜로라도 루키스’ 경기에서 무안타 경기를 하였다.
그의 경기는 NHK 위성채널을 통해 일본에 생방송되며, 미국 야구계에서의 성공으로 노모는 젊은 선수들의 우상이 되었다. 다저스에서의 3시즌 동안(1995- 1997년) 노모는 43게임을 이기고 29게임에서 패했으며 627회에서 703명의 타자를 아웃시켰다. 노모의 성공에 힘입어 보다 많은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의 팀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최근에 몇몇 젊은 선수들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미국 팀으로 스카웃되기도 한다.
<출처 : RealJ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