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차(덩어리 차) 사진 보기 - 덩이차(덩어리차)
단병차(團餠茶)=병차(餠茶, 떡차)=단차(團茶)
기록상 3세기 초에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차는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의 주요 차였습니다. 찻잎을 따고 증기로 찐 후 압착하여 떡으로 만들고 불에 쬐어 말려서 메주같은 덩어리 모양으로 만든 것이며 단차(團茶)나 병차(餠茶, 떡차)라고도 합니다.
처음 나온 단병차는 여러가지 파나 생강 등 여러가지 양념을 넣거나 소금 등으로 간을 하였습니다. 차 덩어리를 불에 구운 뒤 식혀서 가루를 내고 끓인 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가루차를 넣어 우려내어 마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티벳이나 몽고 등 중국 변방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차를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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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중국의 삼국시대를 말하는 것 같음: 220-265년)에 이르면 비로소 찻잎에 일정한 제다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차를 음용하였다.
최초의 기록은 기원 230년 전후인 삼국시대 ‘위’나라 ‘장읍’의 <광아>에서 발견되는데 내용인즉 “형주와 파주 일대에는 찻잎을 따서 덩어리차(병차)로 만드는데 쇤 찻잎인 경우에(접착력이 떨어지기에) 쌀죽을 찻잎과 섞어 차틀에 찍어내어 덩어리차로 빚는다. 차를 마실 때는 우선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병차를 빨갛게 구워 가루를 내어 끓은 물을 부어 마시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파’ ‘생강’ ‘귤’ 등을 넣어 끓여 마시기도 한다. 이러한 차탕을 마시면 숙취가 제거되고 또한 흥분이 되어 잠이 잘 오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찻잎 제다법 및 음용법 짱유화/한국다도대학원 교수/다인 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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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대 당나라 이전엔 덩어리 형태인 긴압(緊壓茶. presed tea). 즉 떡차가 있었는데 음다법이 시대에 따라 상이하나 당, 송, 명 초기까지 병단餠團 덩어리 차가 주종을 이루었다.
오늘날의 긴압차는 대부분 전차(煎茶)종류로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서 녹차로 만든 녹차긴압차와 홍차로 만든 홍차긴압차, 청차로 만든 청차긴압차, 흑차로 만든 흑차긴압차(보이차)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떡차가 매우 성행하여 조선 말기, 즉 근대 초기까지 이어져왔었다. 소위 청대전靑台錢 또는 돈차(錢茶)라 불리워져 약차로서 대구 약전시장에서 발물장수들이 다약茶藥으로 팔아 서민들이 마셨던 것이다. 황차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다산 초당에서 제자들과 찻잎을 그늘에 시들게 하여 띄워서 만들어 마셨던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일부 황차라고 하는 것은 녹차를 만들다가 떠버린(부분 발효) 것을 잘못 알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 차문화에는 녹차긴압차를 다마茶痲에 섬세하게 갈아서 차선으로 풀어 마시는 가루차인 말차가 있다.
여연스님/일지암 주지(다인 19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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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나라(618-907년)-병차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한 시기. 육우의 <다경, 삼지조>에 보면, “맑은 날에 찻잎을 따서, 찌고, 찧고, 두두리고, 불에 쪼이고, 꿰고, 밀봉해서 차를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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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법에서 사용되던 찻 가루와 암다법에서 사용되었던 찻가루는 다르다, 자다법에서의 찻가루는 솥에 끓여지면서 마실 때 찻가루의 떫고 쓴 맛이 사라지고 새로운 맛과 향이 우러나게 되지만, 이 찻가루를 암다법에 사용하게 되면 뜨거운 물을 차호에 함께 넣어도 끓이지 않은 찻가루는 마실 때 떫고 쓴 맛이 유지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암다법의 차 마심을 위해서는 제다과정에서 시루에 찻잎을 쩌낸 다음 절구통에 찌지 않은 계피나 박하, 산수유, 생강, 파 같은 첨가물을 함께 넣어 찧은 뒤 건조시키고 구워지면서 첨가물과 함께 가루로 된 차는 향과 맛이 혼합되면서 떫고 쓴 맛은 사라지며 맛있는 차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당말기에 이르러 차호를 사용하지 않고 차완에 찻가루와 탕수를 넣어 마시는 점다법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송대의 크게 유행했던 점다법의 모태가 되었다.
암다법의 또 다른 방법은 자다법에서 사용하던 병차를 가루 내지 않고 쪼개어 조각들을 차호에 뜨거운 물과 함께 넣어 우려 마시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은 일종의 포다법에 해당되기도 한다.
단단하게 구워진 병차의 조각들은 쉽게 풀어지지 않아 차호가 막히지도 않았고 또한 잘 구워진 찻 조각들이 뜨거운 물에 맛과 향이 우러난 차맛은 식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또한 가루를 내는 어려움이나 솥에 끓이는 번거로움도 덜어주었다. 자다법에서 끓여진 찻가루를 마시던 탁했던 맛에 비교하여 향기롭고 맑은 찻물의 매력은 분명 크게 애호되었을 것이다
/혼란기에 태동하는 당의 차문화 - 김성태/도예사 연구가.다인200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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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明, 1368-1644)
명나라에 접어들면서 단병차(團餠茶)의 결정들이 점차적으로 다인들에게 인식이 되었는데 제다(製茶)상 지나친 시간과 인력의 낭비,또한 찻잎이 물에 의한 세척,착즙으로 인해 차맛과 향기의 손상 등 요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점차 잎차를 선호하게 한다.
잎차로 우려 마시는 포차법(泡茶法)이 기존의 점다법보다 간편하고 차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되었다.
특히 명나라 건국 태조(太組) 황제인 주원장(朱元璋, 1368-1398)이 핍박을 받던 다농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1391년 9월 16일 단안을 내려 단차(團茶)를 폐지시켰으며, 이 칙령으로 인해 근 400년동안 중국 차문화를 이끌어 왔던 연고차의 점다법은 중국 차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포차법(泡茶法)시대가 열렸다.
포차법시대가 등장함으로써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우려내는 다기인 다호(茶壺)가 출현하여 명나라를 지나 오늘날까지 크게 유행한다. 명나라의 잎차 시대가 열리자 제다법의 연구개발이 급속토록 발전이 되어 덖은 형식인 초청녹차(炒靑綠茶) 제다법이 출현하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홍차(紅茶, Black tea), 황차(黃茶, Yellow tea), 흑차(黑茶, Dark tea). 백차(白茶, White tea),등 새로운 차들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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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덩이차[단병차(團餠茶)=병차(餠茶, 떡차)=단차(團茶) ]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