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상처를 감싸고 도는 깊고 따듯한 시선...
살다보면 가끔씩, 꿈처럼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낡은 필름처럼 머리 속에서 맴돌 때가 있다. 정말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상상 속에서 그냥 떠오르는 일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일이었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상처받은 일들 일 경우가 더 많다.
상처는 앞을 내다보게 만들기보다는 늘 뒤를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내면의 거울이다. 때론 투명한 유리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으면서 늘 머물게 하는 그늘 같은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기욤 뮈소의 소설 「사랑하기 때문에」는 상처 입은 이들이 과거의 상처로 인해 자신을 파괴하며 스스로 죽음과 복수의 길로 달려가는 절망의 이야기를 희망의 이야기로 바꾸어 가는 마술과도 같은 이야기 책이다.
소설의 배경은 뉴욕이고 시점은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에 둔 어느 날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물론 소설은 플래시 백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5년 전 사랑하는 딸 라일라의 믿기지 않는 실종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포기하고 노숙자의 삶을 살아가는 전도유망한 정신과 의사 마크, 억만장자의 상속녀이면서 온갖 일탈행위와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앨리슨, 장기 이식수술을 눈앞에 두고 담당의사의 계책으로 이식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엄마의 복수를 위해 뉴욕의 밤거리를 떠도는 에비. 이들 모두 과거의 삶과 상처는 다르지만 지난 상처로 인해 절망과 포기, 복수라는 길옆에서 서성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은 마크의 딸인 다섯 살짜리 라일라가 로스앤젤러스의 한 쇼핑몰에서 실종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결국 미해결 사건으로 종료된 딸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선 마크는 뉴욕거리의 지하로 들어간다. 삶에서 실패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살고 있다는 지하에서의 삶은 막다른 인생들에게 있어서는 보금자리와도 같은 곳이다.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어느 날, 앨리슨과 에비는 커너의 환자로 만나게 된다. 같은 날 절친한 친구 마크 역시 그의 환자로 오게 된다. 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커너는 이들 모두가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성껏 치료한다. 이른바 최면요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하고 과거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최면요법이 다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커너는 정성껏 치료한다. 소설은 커너의 희망처럼 세 사람이 각자의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주인공들의 새로운 삶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참 복잡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와 시선이 함께 한다면 복잡하고 골치 아픈 세상살이 일지라도 한결 사는 맛이 있을 것이다. 기욤 뮈소의 소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