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전국민학교 4
동대전 2년째도 6학년을 맡았다. 학교 체육부장도 맡았고....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육상부도 꾸준한 발전이 이어졌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방학 때는 전교생이 컵라면을 걷어줘서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간식으로 먹다먹다 다 못 먹을 정도였지. ‘이 걸 어떡하나 ?’ 흥룡 앞 문방구에 갔더니 조금 싸게 해서 사준단다. 컵라면을 판 돈으로 삼겹살을 사 먹일 수 있었다. 내 운동지도 경력 중에서 제일 풍족했던 때였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희영이와 기자네 집에 가끔씩 쌀이나 고기도 사다 주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행복했었지.
육상부 유망주였던 소아네 집이 청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소아도 떠나기 싫어했고, 나도 더 키우고 싶은 욕심에 전학을 보내지 않고, 우리 집에서 데리고 다녔다. 아산 동덕에서 높이뛰기를 하던 미경이가 천안의 중학교를 갔는데, 학교 육상부가 없어져 운동을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양중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우리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운동을 가르치다가, 체육고등학교로 진학을 시켰다. 워낙 공부를 싫어해서 운동 길밖에는 없는 아이였으니까....
나는 육상부 선수가 졸업을 할 때, 운동에 특별한 소질이 있어 우수선수로 성장할 재목인 아이가 본인이 희망을 할 때는 기꺼이 특기자로 진학을 시켰지만, 부형이나 본인이 운동을 그만 하겠다면 일반 학생으로 공부를 하도록 했었다.
대전에서 가장 우수한 장거리 선수였던 식연이와 선옥이도 특기자로 가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일반 학생으로 진학을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가양중학교 선생님이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해마다 학교간경기에만 출전하는 조건으로 특기자로 보내 달라더라. 특기자로 진학을 하면 수업료와 급식비가 면제되므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권했지.
둘 다 승낙을 해서 가양중학교로 진학을 시켰는데, 얼마 후 전학을 갔단다.
‘이 게 웬일이야 ?’ 사정을 물었더니 처음 약속과는 달리 중학교에서 계속 운동을 시키려고 해서, 거절을 했더니 특기자입학을 취소했단다. 이럴 땐 자동으로 전학이 이루어져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 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중학교 선생님이 철석같이 했던 약속을 져버려 학교를 옮기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고, 가난한 집에서 두 번이나 교복을 맞추게 했다니.... 이 놈들이 나한테 얘기라도 했더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굉장히 속이 상하더라.
내 제자들에게 눈물이 나게 한 사람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지. 톡톡히 갚아주었다. 두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전여상에 진학하고, 취직을 잘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까지는 속에서 무거운 납추가 매달려 있었다.
9월 인사이동이 발표됐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중앙으로 발령이 나셨단다.
‘이 게 웬 일이냐. 갑자기 떠나신다니 청천벽력이 아닌가 ? 이렇게 서운할 수가....’ 소식을 듣자마자 교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교장선생님 정말 떠나셔요 ?”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그래. 이건표한테는 미안하구나” “교장선생님. 두 번씩이나 저를 데려다 놓으시고 먼저 떠나시면 어떻게 해요”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서운함이 치밀어 오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연신 “미안해. 사정이 그렇게 됐어”만 하신다.
‘이젠 더는 교장선생님을 만나 뵐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 부모님이 떠나시는 것처럼 서운했었다.
“교장선생님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건강하세요 자주 뵈러 가겠습니다” 인사를 했지. 그런데 그 걸로 마지막이었다. 내 교직생활 전부를 통해 가장 존경하고, 지금도 항상 뵙고 싶은 분인데....
“어이 육상부 수철이 교장실로 와” 운동 중에 방송이 들린다. 수철이는 육상부 중에 가장 가난한 아이였다. 가양천 가의 쪽방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사는데 방문이 없어 천을 늘어트려 가리고 살던 형편이란 소리를 들으시고는, 교장실로 들어 온 떡이라도 있으면 불러서 먹이시곤 했던 분이셨으니까....
새로운 교장선생님께서 오시고, 변함없는 생활은 계속 됐다.
그런데 새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이선생, 앞으로 육상부 지도를 한선생님과 함께 해요” “예,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 “하라면 해요” “알겠습니다”
‘한 몸뚱이에 대가리가 둘이 달린 뱀이 되겠네’ 그래도, 하라시는 대로 했지.
그런데 뭔가 불만이 있으신가 보다. 또 부르신다. “이선생. 육상부 지도를 특권이라 생각해 ?” “예, 무슨 말씀이신지....” “왜 경영록 지도안 안써 ?”
“그건 지난 교장선생님께서 저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 데요” “안돼. 써서 결재 받어” “예, 알겠습니다. 그 거 쓰는 거야 뭐....” 그러나 기분은 상당히 나빴지. 그러나 육상부 지도에 모든 것을 바친 나였기에 눌러 참았지.
그러나, 거기에 또 참을 수 없는 일이 겹쳐졌었다.
얼마 전 기자를 전학 보내야 했었다. 아버지가 임종 전에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우리 기자 끝까지 부탁합니다”하셨었기에 그 후 내가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가르치던 아인데....
“아버지가 죽고, 가정이 어려워져 시골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하시는 기자 엄마의 말을 듣고 할 수 없이 전학을 보냈었다. 많이 서운했었지.
그런데, 그 때쯤 사실과 달리 기자 엄마가 다른 학교 코치의 꾐에 넘어가 대전 시내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배신한 거지. 하늘까지 노래지더라. 그동안 어느 학교에서나 학생들에 최선을 다해왔던 나였기에 이런 배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은 나를 철석같이 믿고 맡겨왔었기 때문에 이런 배신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그동안 뭘 했나 ? 이런 꼴을 당하려고.... ?’
갑자기 모든 것이 싫어지더라. 가슴이 미어졌지..
“교장선생님 저 육상부 지도 그만하겠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지.
“선생님 마음 돌려주세요. 제발” 하시며 따라다니시는 학부모님들도 뿌리쳤다.
그 후론 몇 년간 운동지도를 떠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