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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 영원한 현재진행형! 원문보기 글쓴이: 動友齎
이야기와 시, 시조가 있는 풍경(2)
( 목차1. - 19. 이야기와 시, 시조가 있는 풍경(1) )
( 목차20 - 34. 이야기와 시, 시조가 있는 풍경(2) )
목차
1. 울밑에 선 봉선화 1
2. 난의 향기 1
3. 매화가 있는 풍경 3
4. 풍물치는 여울목 5
5. 우주와의 깊은 숨쉬기 6
6. 인생은 외로움이라 8
7. 평안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 11
8. 무채색 경전 14
9. 아름다운 한의 덩어리와 검은 소 16
10. 삶의 곡진함 20
11. 입명을 따르는 시심 24
12. 무욕빈자의 시 28
13. 적출적멸의 도 31
14. 여유와 여백의 자유로움 35
15. 허허진경의 세계 39
16. 무위. 사랑. 삶 43
17. 눈물은 슬플 때 할 수 있는 큰 말 46
18. 백아절현과 용담지촉 50
19. 무릉도원 이야기와 어떤 가난 54
20. 산낙을 배우다 59
21. 술과 시조에 깃든 풍류 63
22. 깊이를 없앤 고요와 도가의 미학 67
23. 미늘 없는 시조의 낚시를 읽다 72
24. 눈. 달 77
25. 시조 속에서의 사랑 81
26. 허구의 아름다움 86
27. 사색의 깊이에 빠지다 91
28. 매화를 품다 96
29. 소인배는 체념을 군자는 달관을 100
30. 평범해 보이는 듯 하지만 104
31. 가을에 생각나는 월산대군의 시조 107
32. 천년 학이 춤을 추고 111
33. 봄빛 머금은 시조 114
34. 바람소리와 흰 달빛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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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산낙山樂을 배우다
※ 張二斗의 ‘山人’
도시에서 서로 어울려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통 세속의 삶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부귀와 빈천이 다투고 명예와 치욕이 어울려 산다. 반면에 도시를 떠나 홀로 산속에서 자신에 대한 탐구와 세상의 참다운 이치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山人, 道人이라고도 하고 禪客이나 仙客 또는 衲子라고도 부른다.
도시에서 살다가 산으로 가는 사람들은 대개 일상의 삶이 크게 요동칠 때이다.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았을 때에 일부의 사람들은 산을 찾는다. 이율곡은 어머니를 여의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다. 매월당 김시습은 세조가 왕위 찬탈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젊은 그들이 찾은 곳은 산속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사랑에 실패 했다던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했던가 하면 산을 찾는다.
지난 번 텔레비전에서 한 노인이 산속에 사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는 산을 찾아가서 혼자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줄곧 생활하고 있었다. 연유를 물어보니 사업 실패에다 어린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 그의 방황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산으로 들어와 살았다. 맑은 바람의 부드러움과 날마다 뜨는 태양의 아름다움을 그때에야 느꼈다고 한다.
산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은 방황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산은 사람들의 진정한 벗이다. 사람을 만나면 피로가 쌓이지만 산을 만나면 새로운 힘이 쌓인다.
나도 자주 산을 찾아간다. 산을 찾으면 산은 말이 없어도 내 옆에 조용히 다가앉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작년 9월 9일에는 사랑하는 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지난 6월 27일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마음 둘 데가 없어 틈만 나면 산을 찾았다. 산과 함께 있으니 조금은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산의 침묵도 따뜻한 벗이 되었다.
말 건네면 멀찍이 강만 보고 앉았더니
외로워서 이제는 산이 먼저 다가오네
내 옆에 숨 쉬고 있는 넓고도 깊은 도반
미소를 보내도 언제나 묵묵부답
그 고요, 외려 좋아 마음으로 듣는 언어
오늘은 산 옆에 또 하나 침묵이 와, 벗 하네
- 남진원의 ‘벗(朋)’ -
지난번에 타계한 법정 스님은 산중의 오두막집에 살면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 하였다. 철 따라 피는 꽃소식을 듣는다고 했다. 신문과 방송을 듣지 않는단다. 정치는 없고 온갖 비리의 부정과 싸움만 지속되는 너절한 정치 집단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는 일반 속인들도 진저리가 나는데 하물며 山人이야 오죽하랴. 그는 가끔 집을 비웠다가 오랜만에 돌아와 군불을 지피고 물을 데워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고 하였다. 산중의 빈 집에 군불을 지피는 일은 얼마나 운치가 있는 일일까?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마음이 배부를 것이다. 물을 끓여 더운물에 걸레를 헹구어 구석구석 먼지를 닦는 기쁨도 클 것이리라. 산은 봄이 되면 어디나 꽃이 무리져 모양을 뽐내고 가을이면 단풍이 골골이 자태를 드러내며 정취를 자아내니 산에 사는 이야말로 淸福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산중에서 살아가는 한 시인이 있다. 張二斗 시인이다. 나는 가끔 지면을 통해 그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였는데 요즘에는 통 보이지 않아 서운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 문학잡지에 그의 글이 실린 것을 읽고 반가워 서신을 올렸다. 정말 오랜 만에 마음이 맑아지는 시를 대했다.
초당草堂
장이두
내 집 앞뒤로
초목이 푸르른 계절
꽃도 피는데
약속한 옛 벗은
오지를 않고 철새가
먼저 와 운다
냇물이 항시 홍건히 흐르고
초당 앞은 버들 숲에 푸르니
나는 인제 陶淵明
나 홀로 한가한
삶의 맛을
누가 알으리
斜陽 속 草堂
깊이 잠들고
내 뜻을 아는 산새
창문 밖에서
운다
* 나는 풍문에 몸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시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어도 그 분의 시심과 시가 무척 마음에 끌렸다. 속진에 티끌이 묻어도 전혀 그렇지 않은 분 같은 俗氣가 없어 보이는 시인, 그분이 장이두 선생이라고 나는 믿었다.
이번에 발표하신 시를 읽어보고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한 시인이 자신의 삶에 위안을 주는 시를 평생에 몇 편이나 쓸 수 있을까? 나는 장이두 선생의 시를 읽으며 삶의 위안을 느꼈다. 그분의 작품 ‘草堂’을 읽고 또 읽었다. 쉽게 쓰여진 시이면서 누구에게나 소탈하게 다가가는 시였다. 마지막 연은 가히 손을 모을만하다. 삶과 시가 하나가 되어 사는 시인! 장이두 시인! 그분의 탈속한 기품이 전편에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감사의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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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장이두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진작부터 선생님의 존함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조와 비평/ 시와 비평’지에 실린 선생님의 시 ‘초당’을 읽으며 한 번은 고개를 숙이고 또 한 번은 뒤돌아 앉아 힘껏 무릎을 쳤습니다.
詩선생님의 시 경지가 신선의 경지에 오르셔서 절로 존경의 念이 일고 마음에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간,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이리 초연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 진정한 한국의 시인을 뵙는 듯 감개가 무량합니다.
남은 여생, 구름처럼, 바람처럼, 뜻을 아는 산새를 벗하시는 선생님께 두 손을 모읍니다.
참 시인이신 선생님! 시를 읽고 기뻤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찻물을 끓여 차를 마시며 선생님의 시를 다시 또 감상하겠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2010년 9월 26일 밤 10시에 남진원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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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택배 하나를 받았다. 열어보니 장이두 선생께서 쓴 작품집 네 권을 보내주신 것이었다. 약력을 보니 강원도 김화 출생으로 금오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지금은 청주의 관음사 회주로 계시는 조계종 禪門의 선사였다.
보내주신 그의 시조집(별처럼 흐르는 가을 하늘: 토방, 2007년)을 읽다가 시조 ‘山人’에 눈길이 갔다.
산인山人
장이두
세월은 내 힘에 겨운데 내 맘처럼 우짖는 산새
산골은 세속을 막아 유슈(流水)또한 고요론데
내 홀로 지은 초막에 사시사철이 엉긴다
산에 살면 산객이 되니 가나오나 산이다
하늘이 드높으면서 산도 따라 깊은데
어느듯 산인이 되어 꿈도 삶도 산 냇물소리.
장이두 시인은 원래 자유시를 쓴 분이다. 그런데 시조 쓰기를 권유한 분이 백수 정완영 시인이다. 그 연유를 시조집 서문에 보면 ‘스님의 詩質이 유불선 그 깊고 아득한 사유의 기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말하고 있다.
위의 시조를 읽으면 산에 사는 仙人의 기풍을 느낀다. 산새의 자유로움, 물의 고요함, 사계가 찾아드는 초막 등이 한 편의 그윽한 묵화를 보는 느낌이다. 또한 꿈과 삶이 산의 냇물소리로 化한 인간과 자연의 합일된 모습에서 名技의 深谷처럼, 산이 간직한 깊은 즐거움을 無明居士인 나 또한 배우고 있다.
21. 술과 시조에 깃든 풍류
※ 왕방연, 이항복, 김창업, 윤선도, 임제 등의 고시조
김준의 ‘술에도 길이 있어’
옛날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바쁘게 지내다가 힘들고 어렵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한 잔의 술과 한 편의 시조로 마음을 풀어놓는 일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시와 술은 대체로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물론 술을 먹지 않고도 시를 쓰는 문인은 옛날에도 지금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왕방연은 폐위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의금부도사가 되어 호송해 갔다. 그는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아픈 마음을 한 잔의 술로 달래며 냇가에 앉아 ‘천만리 머나 먼 길에’라는 주옥같은 시조로 아픔을 털어놓았다. 슬픔이 클 때에는 슬픔을 함께 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다.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은 금부도사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 같도다 울어 밤길 예놋다.
- 왕방연王邦衍 -
조선시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이항복은 북청으로 유배를 가는 도중 철령을 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이항복은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시조라는 마음의 술잔에 담아 높이 들어 올렸다.
철령(鐵嶺)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 삼아 띄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 이항복李恒福 -
그가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대북파의 미움을 사서, 끝내 광해군은 이항복을 북청으로 귀양 보냈다. 귀양길에 오른 이항복은 철령 높은 재에 올라 대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시조 한 수를 술처럼 올렸던 것이리라. 마음의 소통이 시조라는 그릇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는 북청에 가서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는 한 촌로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자신이 기거하는 집은 강윤복이란 촌로의 집이었다. 강윤복은 평생을 그 마을에서 살았는데 아무 벼슬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노인이었다.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친구를 만나면 약간의 술을 들며 세상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안을 잘 다스려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부드러운 마음과 행동으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항복은 그 노인의 삶을 보고 느꼈다. ‘아! 내가 그동안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욕(榮辱)에 묻혀 어찌 이리 분주하게 살았던고! 한 잔의 술에 인생을 풀어 넣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여기 이 노인의 삶이야말로 평생 부러워할 일이구나.’ 이항복은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하면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란 것은 동서 고금의 역사를 통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 다음에는 싸늘한 재가 남게 되는 것과 같이 부귀와 영화 뒤에는 쓴 맛을 보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더러 술은 약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성당(盛唐)시인 왕유는 평생을 조용하고 기품 있는 생활을 했지만 그 역시 술을 많이 하지는 안 해도 즐겼던 것 같다. 친구가 오면 술을 대접하고 속상한 친구가 있으면 술을 건네며 달래려고 한 것이 시에서도 나타난다.
그가, 친구인 배적裵迪에게 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酌酒與裵迪(친구 배적에게 술을 권하며)
酌酒與君君自寬 작주여군군자관 마음을 상심하지 말고
친구여, 술한 잔 어떤가
人情翻覆似波瀾 인정번복사파란 뒤집혀 지는 게
세상의 인정 아니던가
白首相知猶按劍 백수상지유안검 오랜 친구도 이욕 앞에서는
칼을 겨누고
朱門先達笑彈冠 주문선달소탄관 고관대작도 제 욕심 때문에
젊은이의 앞길을 막지 않던가
草色全經細雨濕 초색전경세우습 비에 젖어 온통
잡초만 무성하고
花枝浴動春風寒 화지욕동춘풍한 향기 나는 꽃은
봄이 되어도 찬 바람에 피지 못하니
世事浮雲何足問 세사부운하족문 뜬 구름 같은 세상사
말 해 무엇하리
不如高臥且加餐 불여고와차가찬 차라리 높이 오르려 하지 말고
술 한잔에 고기 한 점,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며 편히 지내 보세.
왕유는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일찍 벼슬길에 올랐다. 그의 관직은 날로 순탄하였고 세상 풍파에 시달리지 않았다. 다만 안록산의 난 때에 그에게 끌려가 일한 것이 연루되어 곤욕을 치를 뻔하였다. 그러나 그가 읊은 시 중에 충성의 뜻이 담겼다고 주위 친구들이 상소를 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요직에 앉았으니 관운은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종남산 근처에 별장을 지어 기거하였다. 그곳에서 시를 쓰고 친구도 만났을 것이었다. 또 30을 전후하여 상처(喪妻)를 하였는데 그 후 평생 독신으로 지낸 걸 보면 꿋꿋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오랜 관직 생활을 하였기에 권력의 생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배를 쓸면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상책이라고 다독거리고 있다.
이런 생각은 비단 중국의 왕유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선비들도 술을 좋아하고 한 생을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여유와 풍유로 살아가려고 했던 인물들이 있다. 김창업은 조선 후기의 문인인데 벼슬은 하지 않고 도학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시를 잘 써서 서포 김만중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술과 관련된 시조 한 수가 있다.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하리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 김창업 -
얼마간은 기개가 넘치는 시조이다. 역시 술을 먹으며 자유롭게 사는 도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조이다.
시조 문학의 큰 봉우리를 이룬 고산 윤선도 또한 술과 관련된 명시조를 남겼다.
잔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임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
- 윤선도 -
혼자서 잔을 들고 산을 보고 있으면 그리운 임 보다도 반갑다고 하였다. 술도 먹는 방법에 따라 품계가 있다. 여럿이 떠들며 먹는 술은 하층의 단계이고 다정하게 둘이 먹는 술은 그 다음 높은 단계이고 최상 단계는 혼자 마시는 고주(孤酒)의 단계인데 윤선도는 시조 또한 상격이지만 주도에 있어서도 최상층에 있었다. 혼자 술잔을 들고 먼 산을 바라보는 윤선도의 술 잔 안에는 외로움을 어루만져주는 자연의 모습이 담겼을 것이었다. 또한 그의 마음 안에는 자연과 벗하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술과 벗하니 마음이 풍요롭고, 부귀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인 듯 하다. 술에 대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깃들게 하고 있으니 과연, 대풍류의 모습과 의연함을 읽을 수 있으니 세기를 뛰어넘는 기풍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조의 격이 높음을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조선의 문인 중에 그 호방한 기운을 돌아보면 임제 만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세상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다닌 풍류 선비라 할 수 있다. 기생 황진이의 무덤 앞에 찾아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시를 이리 멋들어지게 썼으니 과히 황진이와 맞먹는 시조의 자웅임에 틀림없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 임제林梯 -
임제는 임백호林白湖라고도 한다. 백호白湖는 그의 호이다. 시대와 시간을 초월하여 풍류거사로 삶을 누빈 사람이다.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술로, 죽은 황진이와 다시 교통(交通)을 하였다. 술에게 단 한 줄의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게, 임백호의 시조 속에 담긴 것을 읽을 수 있다. 술 자체에 어떤 의미를 강제하여 새기면 재미가 없다. 술은 술 자체로 즐겁고 기뻐야 한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아마 의협 지사나 선비들의 기개가 술과 담백하게 어울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초장부터 시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하면서 황진이의 무덤을 대하는 임백호의 모습이 능청스럽고 다정하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로 묻혔느냐며 중장에 와서는 죽음의 허무감을 담담하게 달래고 있다. 종장은 슬픔과 아쉬움으로 끝맺으며, 그리움의 모습을 지적 知的으로 그려내었다. 감흥을 연출해내는 글의 모양새가 빼어나다.
술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술을 먹으면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요즘 회식 자리에 가 보면 술을 잘 들지 않는다. 건배 정도를 한 후엔 식사하기 바쁘다. 술을 먹지 않는 이유를 물어 보면 건강문제를 이야기 하고 운전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요즘 많은 사람들은 술 맛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은 여유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술이 있어야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술은 즐거움을 주고 운치도 있다. 자신의 삶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폭주를 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술에 연관된 시를 쓴 현대시인 중에 김준의 시조 한 수를 보자.
술에도 길이 있어
김 준
술에도 길이 있어 고향같은 길이 있어
세간에 쌓인 먼지 한 잔 술로 씻어내니
세월도 시름도 말고 천하가 다 내 것이야
김준은 술에도 길이 있다고 한다. 그 길이 어떤 길인가? 고향 같은 길이라 한다. 술에 대한 친근함이 물씬 묻어난다. 쌓인 먼지는 술로 씻어낸다고 하였다. 술에 대해 이미 의미를 부여해놓았다. 그러면 흘러가는 세월도 근심 걱정도 없어지고 천하가 모두 자기 세상이라고 하였다. 세간에 쌓인 먼지를 한 잔의 술로 씻어내는 것은 고향 같은 길이 있기 때문이란다. 술로 인해 시름도 걱정도 잊어버리고 천하를 다 가진 것처럼 즐겁다고 하였지만 속을 살펴보면 술의 위대함을 노래한 글이다.
이제 또 봄이다. 안개 낀 산을 바라보거나 단풍 들고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에는 한 잔의 차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오늘처럼 매화 피는 이른 봄이나 복사꽃 피는 날에는 한 잔의 술이 더 흥겨움을 준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과수댁이 열어놓은 주점에서 먹는 한 잔의 탁주 또한 진미 중의 진미이리라. 졸시 ‘봄날 술을 들다’로 마무리 한다.
봄날 술을 들다
멍하니 붉어지고 가만히 흩날려 보세
세상 일 흥이 나면 기울어지기도 하지
여보게 이쯤에 오면 나무랄 일 뭐 있겠나
22 . 깊이를 없앤 고요와 도가의 미학(美學)
※ 선정주의 ‘겨울 思惟像’
지성찬의 ‘헌 책방에서’
계간 2011년 현대시조 봄호에 발표한 선정주 선생의 시조 ‘겨울 思惟像’을 읽다보니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동양 최대의 자연스러움, 즉 무위의 철학을 말한 노자이다. 고요와 사유(思惟)의 미학에 담겨있는 선정주 시인의 철학 또한 노자의 정신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환한 청동 빛처럼 그 색을 점점 진하게 한다.
고요와 곁들여, 노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노자는 BC 6세기경의 사람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제자백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말씀을 기록한 도덕경은 유명한 도가의 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자는 성은 이(李)요 이름은 이(耳)라고 하였으니 그 이름처럼 세상 만물 가운데 들리는 소리를, 마음의 소리로 듣고 이치를 깨우친 듯하다. 너무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라서 도교에서는 그를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신격화하여 부른다. 태상노군은 도교에서 말하는 삼청(三淸)의 한 분이다. 삼청은, 태초의 시작을 뜻하는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원시천존(元始天尊)과 영험한 보석으로서의 우주적인 존재인 영보천존 · 태상도군 (靈寶天尊 · 太上道君), 그리고 길과 덕으로서의 우주적인 존재인 도덕천존 · 태상노군 (道德天尊 · 太上老君)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노자의 이야기 중에는 도덕경을 지은 유래를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의 노자전(老子傳)에는 노자가 주(周)왕실의 사관이었다고 한다. 노자는 주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때 노자는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을 지나고 있었는데 함곡관지기 윤희(尹喜)가 이를 알아보았다. 그때 윤희가 노자를 알아보고 가르침을 얻고자 하였는데 그 책이 도(道)와 덕(德)을 말한 도덕경이라고 한다.
이제 다시 선정주 선생의 시조를 살펴보자.
겨울 숲을 거닐면
해맑아지는 영혼
表皮를 쓰다듬으면
숨소리가 들린다
추워라 思惟의 門이여
그 운치를 알것다.
- 겨울 思惟像 (선정주) -
겨울은 수렴(收斂)의 계절이다. 모든 것을 거두어 갇히게 한다. 그래서 겨울은 차겁기 때문에 몸은 얼어붙어도 정신은 오히려 투명하게 깨어있을 수 있다. 영혼의 맑음은 마치 겨울의 빙판 같은 것이다.
고요하면서도 투명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한 없이 맑은 우주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인위(人爲) 보다는 무위(無爲)를, 분주함 보다는 고요를 지극한 선(善)의 경지로 보았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물은 고요함과 낮음을 의미한다.
‘겨울 思惟像’의 시조를 통해 우리는 해맑은 영혼의 세계에 닿아있는 한 인간의 장엄한 모습을 읽을 수 있고 고요의 삼매에 들어 있는 겨울 숲의 모습에 그만 넋을 빼앗기게 된다. 그 겨울 숲은 여러 가지 시인의 자아 중에서 정제되고 거룩한 경지까지 닿은 또 다른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종장에서 ‘추워라 思惟의 門이여 / 그 운치를 알것다.’ 라는 구절을 읽으면 삶이란 얼마나 힘든 고뇌의 문(門)을 통과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여운을 주고 있으며 마지막 어절을 통상적인 용어인 ‘알겠다’에서 ‘알것다’로 쓴 것도 부드러움과 허전함의 묘(妙)를 살렸다고 보여진다.
‘겨울 思惟像’의 시조를 읽기 위해서는 환상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즐거움에서 벗어나 색다른 즐거움을 얻기 위한 하나의 문학적인 접근 방법도 될 수 있는 ‘환상’은 문학 뿐만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인지도 모른다. 사실과 엄격한 법만 존재하는 현실이라면 얼마나 답답하랴. 파격이 있기에 즐거움도 있고, 환상이 있기에 희망과 감탄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자연 자체를 거대한 환상의 무대로 여기고 그걸 즐기기도 하였다. 중국에 마약이 극성을 부려 아편전쟁까지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환상의 즐거움을 마약에 의존하려고 했던 일부 사람들의 ‘그릇된 환상’ 덕분이다. 그런데, 도가 사상 속에는 아름다운 환상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중국의 곤륜산은 환상의 옷을 입힌 산이다. 곤륜산은 황하의 발원이며 중국 신화와 역사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산줄기가 파미르 고원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청해성(淸海省)과 사천성(四川省) 서북부를 지나 신강과 티베트를 뚫는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는 요지(瑤池)와 선경(仙境)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옥(寶玉)이 나는 玉의 산지이다. 곤륜산에는 아홉 구비로 흘러내리는 유명한 구곡폭포가 있다. 그 신비한 폭포를 보면 절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다.
최고의 지리서라 불리고 있는 산해경에 보면, 곤륜산에는 불사수(不死水)가 있고 도가의 선녀인 서왕모(西王母)가 산다고 한다. 서왕모는 사람의 얼굴 모습에다가 호랑이 몸뚱이를 하고 무늬 있는 꼬리를 가졌다고 한다. 도가에서는 신선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신선은 좋은 곳에 살며 불로장생하는데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선약을 먹어야 한다. 불사의 몸으로 지극한 즐거움을 누린다면 이 말에 미혹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진시황조차 선약인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선남선녀 오백 명을 모아 동방으로 보내지 않았던가. 진시황의 환상과 낭만은 가히 우주적이다.
또, 중국 환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협지이다. 드넓은 중원을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의협들의 이야기가 화려하고 웅장하게 펼쳐진다. 하늘을 날며, 거대한 산이나 돌무더기를 장풍에 날려버리는 신출귀몰한 재주나 무공은 모두 뻥이다. 그런데도 그걸 보면서 즐거움에 빠져든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무술을 연마하는 무예의 독특한 기술을 전하는 문파도 생겼다. 무예의 문파는 주로 산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무당산을 중심으로 무당파가 생겨나고 숭산을 중심으로 소림파가 생겼다. 곤륜산은 무림 8대문파의 하나인 곤륜파를 창시한 곳이고 곤륜파의 문파 비법으로 전해 내려오는 내공과 외공의 수련방법은 실로 오묘하고 그 위력이 무시무시하다. 만년설을 끼고 있는 탓에 고온 건조하고 냉기가 있기에 이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혹독한 무예의 기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수련은 양생하는 법이 되기도 하는데 고대에 양생법을 익힌 도사들 중에는 수명(壽命)이 150살에서 200년을 산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해온다. 노자 또한 150살 이상 살았다는 소문이 전해온다. 노자가 오래 살았다는 것조차 아름다운 환상으로 이얏기거리가 되고 그의 행적이 묘연해진 것도 환상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맑고 고요하여 정적인 세계의 극치를 이룬, 비어 있음의 우주적인 충만이야말로 깊이를 없앤 고요라고 할 수 있다. 시조 ‘겨울 思惟像’은 이런 고요의 측면에서 도가 사상과 관련하여 충분히 음미해 볼 수 있는 시조이다.
또 10여년 전 나는 정선의 한 시골마을에서 고요를 벗하며 사는 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을 송하노인이라고 불렀다. 적적한 것을 삶의 지극한 낙으로 여기는 노인이었다. 소나무 아래에 빈옥(貧屋)이 있었는데 노인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나무 타는 향기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좋았다. 노인의 몸매는 좀 마른 편이었는데 검고 흰색이 알맞게 섞인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었다. 얼굴은 연륜을 엿보는 주름이, 오히려 편안함을 주었다. 산에서만 생활해서인지 눈빛은 깊고 그윽하고 피부는 아이처럼 윤기가 흘렀다. 노인은 일하다 쉴 참이면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혼자 않아 있었다. 그 모습이야말로 신선이었다.
내가 관심을 끈 것은 굴뚝 옆으로 길게 나무를 패서 쌓아놓은 장작 더미였다. 장작의 갈라진 부분은 한결같이 결이 고르고 반듯하여 대패로 밀어놓은 것 같았다. 크기 또한 짝을 맞춘 것처럼 모두 같았다.
나는 그 후 몇 개월을 그곳에서 기거하면서 남루한 시간을 보냈다. 노인의 도끼질은 예사 일이 아니었다. 도끼가 허공에 솟았다가 내리쳐질 때마다 소나무는 붉은 배를 드러내고 갈라졌다. 그때마다 허공에서 울리는 금빛 소리들이 적멸을 가득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 때 그 모습은 삼위가 일체였다. 도끼와 노인의 몸과 장작이 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어느 날, 소나무 아래에서 노인에게 실없는 질문을 하였다.
" 이 깊은 산중에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장작 패는 재미로 산다네."
"그대는 무슨 재미로 사우?"
나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되는 대로 중얼거렸다.
"숨 쉬는 재미로 살지요."
그러자 노인의 눈에서 잠시 번갯불 같은 것이 일었다. 그리고 이내 박장대소를 하였다.
"옳거니, 숨 쉬는 재미야말로 천하 일미이지."
말의 뜻을 넘어서서 만나는 곳, 거기에 노인의 도끼질이 있었고 시가 있었다. 그곳은 아주 평범한 일상 속이었는데, 자못 엄하기도 하고(나는 그걸 선정주 선생의 시조 종장 ‘추워라’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따뜻하기도 하였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참으로 허허롭고도 실한 날이었다. 그 송하노인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그 후 나는 다시 찾지는 않았다. 나는 가끔 그 노인의 장작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선정주 선생의 시조 ‘겨울 思惟像’에 담겨있는 영혼의 겨울숲을 정선의 송하노인에게서도 만났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조 21’(2010년 상반기분)에 수록된 지성찬 선생의 시조 ‘헌책방에서’를 읽으면 왠지 모를 허전함과 멸(滅)하여 없어지는 무(無)의 아름다움이 가득 차오름을 느낀다.
때묻은 책장에서 누렇게 바랜 세월
저렴한 값이지만 생각은 매우 높아
글자로 똑똑히 박혀 살아서 움직인다.
먼 훗날 지나는 과객, 허름한 헌책방에서
다 낡은 나의 시집을 뒤적여나 볼 것인가
굴곡의 낡은 역사를 기억이나 할 것인가
모두가 썩어져서 버려야 할 잡동사니
기억하든 남아있든 그 무슨 상관이랴
다시는 돌아올 수도 볼 수도 없는 세상
- 헌책방에서 (지성찬) -
첫 수를 보면 어떤 모습이 떠오른다. 누렇게 바랜 세월 속에서도 똑똑히 박혀 살아 움직이는 생각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을 사는 문인들의 모습도 되고 앞 서 말한 송하노인의 모습도 될 것 같다. 둘째 수에서는 자신의 시집을 먼 훗날 누가 봐줄까 하고 자문하고 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오래 되면 폐품처럼 쓸모 없다고 여기는 세상에 대한 아픈 노래이리라.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 세월만은 영원할까? 그래서 저 유명한 중국의 대시인 이태백은 그의 시 작품에서 세월이야말로 영원한 방랑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시조의 종장을 읽으면 인생의 허무감도 허무감이려니와 적멸의 고독을 엿보게 된다. 볼 수도 없는 어둠의 세상은 모든 것이 본향으로 돌아간 상태, 무(無)이다. 그 무(無)는 가장 큰 태극(太極)이 되고 태극은 다시 음양(陰陽)으로 나누어 오행의 기운이 서린 물질로 다시 태어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육신의 죽음은 우리의 육신이 무(無)로 돌아가는 하나의 이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시조를 읽으면 중요한 인생의 한 값어치 있는 부분을 만나게 된다. 젊을 때의 모습은 다 어디 가고 노쇠한 모습의 내가 그곳에 있는 나와, 죽어가는 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낡은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있기에 오늘의 삶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지 않을까. 늙어가는 모습이 있어서, 오히려 자랑스럽고, 병든 모습이 있어서 거룩한 생명의 화음을 들을 수 있고, 죽음에 임박하여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작년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36년의 벗이요, 반려자였고 내 삶의 전부였던 아내를 잃었으니 그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나는 여태껏 해 보지 않았던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들을 거의 일 년 간 빠지지 않고 해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방에서 아내가 쓰던 행주에 대한 생각도 달리 하게 되었다. 주방에서 처음 쓰는 행주는 참 깨끗하고 품위가 있다. 그러나 어느 시간의 문턱을 넘으면 행주는 낡고 구멍이 숭숭 뚫리고 때 절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할 일이 다 끝나면 행주는 걸레가 되고 걸레의 소임도 없어지면 그때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된다. 행주가 걸레가 되고,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행주는 거룩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누가 걸레가 되고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행주를 욕할 수 있을 것인가. 헌책방에 있는 시인의 낡은 시집이나, 깨끗한 행주가 걸레가 되는 것이나 다른 게 없을 것이다.
가끔은 추워도 맑아지는 영혼의 겨울숲에 서 보기도 하는 인생, 낡은 시집 같은 인생, 행주가 걸레가 되기까지의 인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적멸 같은, 무(無)의 세계와 닮았다. 그래서 더 숭고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노래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오늘 선정주 선생의 시조 ‘겨울 思惟像’과 지성찬 선생의 시조 ‘헌책방에서’를 되새기며 읽어보는 이유이다.
23
미늘 없는 시조의 낚시를 읽다
※ 서벌의 ‘낚시 心書’, 속사모곡,‘서울’, ‘어떤 경영’
우리 시조사(時調史)에서 가장 치열한 시작(詩作)활동을 한 사람을 들라면 그 중의 한분은 단연 서 벌 선생이리라. 그의 시조 작품을 읽다 보면 단단한 뼈대 같은 시의 줄기와 사리 같은 사유(思惟)의 열매를 느낄 수 있다.
내가 서 벌 선생을 안 것은 80년대 초 반, 한국시조시인협회 총회 때이다. 그 때 처음 뵈었는데 주위에서 그 분을 시조의 맹장(猛將)이라 칭하셨다.
그 후 내가 살던 정선으로 우연히 내려오신 일이 있었다. 나는 모교인 정선 문래국민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인데 전화가 왔다. 서 벌 선생이셨다.
반가운 마음에 정선 읍내로 나가 서 벌 선생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 정선문화원에서 산촌시인학교를 열었는데 그때 서 벌 선생을 모시고 함께 밤을 새운 추억도 있다.
그 때 선생께서는 등단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조 부문에 작품을 써서 투고하였다고 하셨다. 거기에서 당선되었는데 알고 보니 예심에서는 선생의 작품이 탈락되었다고 하였다. 본심을 맡았던 노산 선생이 예심 통과 작품을 모두 읽어 보니 당선작이 없다고 하면서 예선 탈락 작품을 모두 가져오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예심에서 탈락된 작품 ‘낚시心書’를 당선작으로 뽑으셨다는 이야기였다.
서 벌 선생은 어릴 때 매우 가난하여 어머니는 고성 어물전에서 고기를 팔아 끼니를 이었고 부친은 술로 나날을 보냈으니 생활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서 벌 선생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얼마 동안 영현면 인근의 절에 들어가 한학과 시조 공부를 하였다고 들었다. 그 시절 가난 속에서 살아 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시조로 쓴 ‘속사모곡(續思母曲)’이 시조집 [角木集]에 수록되었다.
續思母曲
固城 장터 生魚物로 청춘 다 판(賣) 울엄매야
毒酒로 쳐져앉은 아버님 패망 때문에
모반은 늘 몇 천원어치 눈물 피땀이던가
눈만 뜨면 못산다고 벼랑치던 우레소리
사는 길 지름길이 그다지도 천리던가
무서운 그 울부짖음 뉘 山 메아리 됐노
한 세상 건너다니기가 녹녹치 않은 세상, 눈만 뜨면 못산다는 이야기는 그 옛날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요,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런 한숨과 고통의 슬픈 역사를 지녔기에 오늘날의 부국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가난은 서울에 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지금도 시를 써서 먹고 살기 힘든데 그 당시에야 더 말해 무엇 하리.
시조 한 자루를 검처럼 마음의 등에 꽂고 서울에 올라와 보니 주위 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 방도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명함 한 장을 건네는 것이 끝이다. 이 쓸쓸함과 적막강산을 어찌하랴.
서울
내 오늘
서울에 와
萬坪 寂漠을 산(買)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부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名啣…
서울살이가 각박하고 힘든 것임을 주고 간 벗의 명함 한 장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얼마나 기가 차고 힘들었으면 만평 적막을 사서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막 흩 뿌리고 싶다고 했을까. 내심에는 삶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까지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 벌 선생의 삶은 어렵고 가난하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고 문학정신의 꼿꼿한 끈 하나를 시조라는 나무 기둥에 감으며 시의 곧은 뼈 하나를 뽑아내는 인생의 대패질을 계속 하였던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지조는 곧 선비정신이며 대숲에서 부는 청청한 바람소리 그 자체였다.
어떤 經營 - 壹 -
木手가 밀고 있는 속살이 환한 角木
어느 고전의 숲에 호젓이 서 있었나
들어난 생애의 무늬 물젖는듯 鮮明ㅎ네
어쩌자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톱밥 대패 ㅅ 밥이 쌓아가는 赤字더미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
시인은 시 한 편을 얻기 위해 수없이 허기진 채 쓰러지는 글의 대패밥을 버린다. 그런 인생의 적자더미에서도 한 편의 시를 깎고 다듬어 뽑아낸 시인의 기쁨은 우주의 열반만큼이나 기쁘다.
서 벌 선생은 생애에서 시가 삶의 과정이며 목적 그 자체였다. 시를 각목에서 건지는 곧은 뼈에 비유하기도 하고 마음 낚시에 걸려나오는 임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삶은 겉 모습은 비록 다르나 그 곧은 정신은 중국 제나라의 제후 여상이나 청나라 순치 황제에 행동에 비유될 만하다.
순치 황제는 18년간의 만승천자라는 황제의 위(位)를 헌신처럼 버리고 누더기 가사를 입고 행치(行治)대사라는 법명으로 불도를 구하며 출가시를 남겼다.
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 )
不及僧家半日閒 (불급승가반일한 )
인간의 백년 삶이 삼만육천일이라해도
절집의 한나절에 미칠 것인가
百年世事三更夢 (백년세사삼경몽)
萬里江山一局碁 (만리강산일국기)
일생은 하룻밤 꾸는 꿈이요
천지는 한판 바둑판 놀음이네.
古來多少英雄漢 (고래다소영웅한)
南北東西臥土泥 (남북동서와토니)
예부터 나온 많은 영웅호걸들아
동서남북 사방에 한줌 흙으로 누웠구나
口中吃的淸和味 (구중흘적청화미)
身上願被白衲衣 (신상원피백납의)
내 이제는 선(禪)의 맛에 입맛 들이고
몸에는 누더기 한 벌이 친구라네.
불경 원각경(圓覺經)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진여열반유여작몽(眞如涅槃猶如昨夢)’
부처님은 ‘진여와 열반조차 한조각 꿈이다’ 라는 말을 하셨던 것이다. 하물며 만승천자 순치황제의 ‘버림’내지 ‘내려놓기’는 더 이를 말이 없을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태공은 원래 이름이 여상(呂尙)이다. 그도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고초를 겪으며 80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았다. 늘 위수의 강가에서 민낚시로 세월을 낚았는데 나이 70대 후반에서야 그가 기대한던 인물 서백(후일 주나라의 문왕)을 만나 대업을 이루게 된다.
서백은 은나라의 귀족이었는데 원래 이름은 창(昌)이고 서백이라는 명칭은 은나라의 직위였다.
서백과 그의 아들이 은나라를 위협하는 일이 생기게 되자,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에게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혔다. 서백은 3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8괘를 지었는데, 이는 태호복희 8괘에서 연유한 8괘로 ‘문왕팔괘’라 불려졌다. 서백은 옥에 갇히자, 미녀 1명과 좋은 말 한필 그리고 4대의 전쟁차를 지불하고 풀려났다.
서백이 위수에 갔을 때에는 은나라가 어수선할 때라, 새 인물을 찾던 때였다. 서백은 이날도 사냥을 가기로 하고 사관에게 명하여 점을 쳐 보게 하였다. 그러자 점괘는 ‘大物得’괘가 나왔다. 위수 부근에서 큰 인물을 얻는 다는 것이다. 위수(渭水)는 감숙성의 위원현 서북쪽 조서산에서 발원하여 섬서성을 거쳐 낙수(洛水)와 합쳐진 뒤에 황하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다.
서백이 위수에 가니 과연, 낚시를 하는 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낚시가 재미 있으십니까?”
서백이 묻자, 노인 왈, “ 군자는 그 행동에 뜻을 얻는 것을 기뻐하고 소인은 고기를 얻는 것을 기뻐하지요.” 하고 말하였다. 가만히 보니 낚시가 민바늘이다. 서백은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렇게 하여 여상은 서백을 만나고 나중에 서백의 아들 무왕이 여상을 군사(軍師)로 삼아 은나라를 멸하였다. 은을 멸한 후 여상에게는 강씨성을 하사하고 제나라 태후로 봉하였다. 여상을 강태공이라 부르는 것은 무왕의 조부가 태공이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뜻에서 ‘태공망’이라 하여 나중에는 강태공으로 불러지게 된 것이다.
강태공은 70이 넘은 나이에 서백을 만나 제나라 왕이 되어 부귀영화를 부렸으나 그의 70평생은 가난과 고초로 쓰디 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서 벌 선생 또한, 가난 속에서 시조 하나를 낚시로 삼아 無虛의 임을 낚는데 한 세월을 보냈으니 더욱 귀감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찰진 시조가 어찌 배부른 자의 입에서 흥얼거리는 음풍농월 속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가난을 벗 삼으며 미늘 없는 시조의 낚시로 세월을 낚는 천금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의 삶이 거칠었기에 작품도 거칠 것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그의 ‘낚시심서’ 등에서 보여주는 언어의 절제미와 서정성은 가히 눈을 씻고 보기에도 부족한 명시조이다.
낚시 心書-
서 벌
냇가에 나와 앉아 낚시를 드린 날은
하늘도 하나 푸른 못으로나 고여 내려
임생각 올올의 줄은 千의 낚시 되는가
느닷없이 찌가 떨어 잡아 채는 잠깐 사이
비늘 빛만 눈을 가려 아득한 天地間을…
임이여, 그렇게 들면 내 마음은 대바구니
저승도 내 먼저 가 설레는 물무늬로
이제나 저제나 하고 이리 앉아 기다리리
法悅의 꽃수레 몰아 목넘어 올 그때꺼정
시조를 사랑하고 시에 대한 열정이 누구 보다 컸던 서 벌 시조시인! 사골을 우려낸 물 같은 진한 시심으로 글을 썼기에 그의 시조 편 편에서는 강렬한 생명력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
벌서 또 한해를 맞는 가을이다. 요란한 매미소리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가녀린 풀벌레 울음소리가 대신하고 있다. 활활 붉게 타던 정선의 가을빛을 서 벌 선생과 함께 보던 때도 수십년이 흘렀다. 사람은 가고 사리만 남았나. 이제 고인이 된 서 벌 선생에게 어리석은 내 마음의 시조 한 수를 띄우며 글을 접는다.
단풍에게 묻다
남진원
이제는 어리석음도 한데 모아 태우느니
몽매한 지난날도 더러는 환희로움이니
생애를 저리 달구고 나면 사리 몇 알 남으려나.
24.
눈(雪). 달(月)
이승은 ‘하늘이 첫 눈을 낳고’
정혜숙 ‘달빛 문장’
1. 눈(雪)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늙고 병들어 죽는 이치는 하늘의 이치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고도 한다.
생(生)은 태어나는 것을 뜻하고 장(長)은 성장함을 말한다. 염(斂)은 거두어 들이는 것이고 장(藏)은 저장과 휴식, 죽음을 가리킨다.
인간의 삶은 이렇게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성장하다 보면 늙고 병들어 다시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어디 이런 일들이 인간뿐이랴. 모든 만물이 생장염장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 순환을 하고 식물은 씨앗이 발아하여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며 다시 흙속에 묻히는 것 등이 모두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사철(四喆)이라 하고 사철을 잘 터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철부지 같다고 한다. 이때의 철부지(喆不知)는 ‘철을 모르는 사람’이다.
요즘은 사람 뿐만 아니라 식물도 철을 모른다. 며칠 전에는 남쪽 지방에서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하고 엊그제는 월대산 연산홍의 꽃이 깜짝 놀란 듯 피었다. 인간의 무지한 탐욕이 빚어낸 결과는 환경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고 그로 인해 식물도 속고, 사람들은 이익 앞에서 수치를 모르는 생체 변화를 가져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하던 그 시절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누려야 할 행복과 즐거움의 권리를 인간이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는 자연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는 ‘자연과의 감성 소통’이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평범한 일에서 얼마나 행복한 감성을 느낄까 의문이다. 새로 피어나는 연한 나뭇잎에서 봄의 즐거움을 느끼고 무성한 녹음의 향기에서 여름의 맛을 알고 가을엔 청백한 달빛의 아름다움을 벗하고 겨울엔 눈송이의 매력에 한 번 쯤 빠져 보는 그런 감성을 우리들 대부분은 잊고 산다.
봄은 죽음의 부활이며 뭇 생명이 새로이 사물의 옷을 입고 태어나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다시 죽음이며 쓸쓸함이며 적멸의 계절이다. 이제 겨울이 왔다. 저장과 휴식을 통해 에너지가 축적되는 겨울!
‘생장염장’의 ‘장(藏)’인 사철의 끝 ‘겨울’에 관한 시조를 찾아보았다.
봄과 겨울의 감성을 그리움과 사랑의 완성으로 일구어 내려던 조선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시조 대가(大家) 황진이였다.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작품을 에너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허리를 들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한국고전문학전집 2권 시조)
황진이는 겨울이 갖는 에너지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동짓달 긴 밤의 한 허리를 들어내어서 따뜻한 봄의 이불 밑에 넣었다가 임이 오시는 날 밤 굽이굽이 펴리라고 한다. 겨울이란 저장의 에너지를 봄이라는 희망의 에너지로 재생시켜 사랑을 이루려는 삶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그려볼 수 있다.
이처럼, 겨울 감성이 주는 결빙 속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시적 에스프리를 좀 더 만나보자.
겨울눈은 차가움을 연상시키지만 하얀 포근함을 동시에 주기도 한다. 엊그제 서울 나들이 길에 강릉은 눈이 내렸다. 그것도 50Cm가 넘는 폭설이었다. 온 산천과 도시가 눈을 맞으며 휴식에 들어가는 듯 했다. 땅에서는 조용한 잠, 은밀한 꿈이 부풀고 하늘에선 신들린 무색의 율려, 아름다운 출산이었다.
하늘이 첫눈을 낳고
이 승 은
잔뜩 웅크린 채
한나절을 돌아앉더니
아프다 말하지 않고
풀풀 날며 숨죽이며
하늘이 첫눈을 낳는다
순식간의 출산이여
오래 전 산고를 끝낸
중년의 여자 몇이
김장배추 절여놓고
양념을 버무린다
문밖이 부러운 눈치,
김치 속은 하마 붉다
(2010 개화 19집)
겨울 첫 눈이 날리면 사람들은 기쁨에 넘친다. 왜일까? 메마르고 건조한 마음을 백색의 눈으로 덮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눈을 기쁨의 생명체로 읽는다. 날리는 눈발은 하늘의 자식이다. 산고의 아픔을 안으로 다스리다가 순식간에 출산을 한 침묵의 여인!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겨울 하늘이 미쁘다.
어디 그 뿐인가. 김장 배추를 절이던 여인들은 부러운 눈치로 눈내리는 풍경을 본다. 김치 속이 붉다. ‘부러운’과 ‘붉다’는 형용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의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12월 9일 강릉에 첫 눈이 내린다. 2009년 첫 눈이 내리던 아침, 첫 눈 소식을 알려주고 세상 밖으로 무한의 여행을 떠난 아내, 나는 아내를 생각하며 한 잔의 술을 마셨다. 좋다, 참 좋다. 내 마음이 하얗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마저 온통 희구나.
눈 잎은 하늘의 律呂 어질도록 슬픈 맑음
세상 고뇌 다 덮어라 투명한 혼만 남게
먹물 든 우리네 옹이, 안 아프게 싸면서...
누가 뜯는 설금(雪琴)인가 휘몰이로 안겨온다
너로 하여 아득해라 시름 잠시 내려놓고
둥기둥, 억 만 송이로 마음 환히 버는 가락
- 남진원의 ‘雪琴’ -
나는 눈이 내릴 때면 눈 잎 사이로 번지는 하늘의 음률을 듣는다. 흩날리는 눈은 음악으로 흩날리며 우리네 마음에 박힌 아픈 옹이를 감싸 안고 용서와 자비의 말을 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2. 달(月)
해와 달을 일월(日月)이라 한다. 해와 달이 낮과 밤의 변화를 주도하며 시간을 이끌기에 세월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한다. 예부터 시인들은 해와 달을 노래하였다. 예술성으로 승화시킨 점에서는 해보다는 달이 우뚝하다. ‘해’에 대해서는 임금이나 황제 등 권력자를 상징하는 시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달’은 순수한 인간의 서정을 노래할 때 사용하였다. 그만큼 민중적이고 국민적이었다.
봄에 보는 달은 희망과 설렘이 있고 여름의 달은 시원함을 전해주고 가을의 달은 풍요로움을 준다. 겨울의 달은 서리 맞은 국화의 싱싱함처럼 냉한 멋과 기개를 지닌다.
어젯밤엔 달의 ‘개기월식’이 있었다. 완전한 개기월식은 11년 만에 처음이다. 보름이 하루 지난 때여서 달은 차가운 겨울 밤 하늘에 눈부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점차 지구가 달을 야금거리며 먹어 들어가자 사람들은 황홀한 탄성을 자아냈다.
달빛과 궁합이 잘 맞는 것은 아무래도 오래된 사찰이거나 매화 핀 밤일 것이다. 오래 된 사찰 댓돌이나 탑의 옥개석 위로 미끄러지듯 비치는 달빛은 생각만 해도 신비로움에 황홀해진다. 폐사지에서는 귀기까지 더해져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달빛 문장
정 혜 숙
적막한 폐사지, 귀 닳은 옥개석에
꽃잎 지듯 고요히 달빛이 내린다
조도를 한껏 낮추며
봉인을 풀고 있다
별후에 닿은 편지처럼 물기가 묻어있는
무문의 언어로 어둠을 버혀낸다
달빛엔 지문도 없어서
꽃잎 지듯
속절 없다
(2010 개화 19집)
달 비치는 밤의 묘사를 이렇듯 조용하고 은은하게 풀어내기가 쉬운 일이던가. 소리 없이 흐르는 물의 자태이고, 불지 않는 바람이 다가오는 듯하다. 달빛을 직접 맞는 것 보다, 이시를 읽는 것이 한층 더 달빛 속에 서 있는 듯 정감어린 느낌이 든다.
겨울에 보는 달과 매화는 ‘감춤과 저장’의 계절인 겨울이 주는 선물일 것이다. 겨울의 달은 매화와 어울리면 제격이다.
매화 향기 짙은 밤, 고목에 둥실 걸린 한 채의 달을 만나면 그게 바로 신선이 노니는 선경(仙境)이요, 자연과의 감성을 소통하는 길일 것이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 붉은 밤, 내 오늘은 붓이 되어 그대의 화지에 겨울 달 한 덩이를 낙관으로 펑 찍어 넣는다.
내 오늘 붓이 되니 당신은 畵紙로다
울컥 묻어나는 향, 내긋고 휘몰아치다가
어스름, 달 한덩이를 낙관으로 펑 찍었다
- 남진원의 ‘매화를 얻다’ -
25. 시조 속에서의 사랑
이근구의 『노둣돌』
조동화의 『영원을 꿈꾸다』
시조 속의 사랑을 말하려고 하니 가장 원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우리의 태극기에서 찾아볼 수 있기에 태극기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하려고 한다. 태극기의 뜻은 태극 문양이 있는 기(旗)라는 의미이다. 태극기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크고 밝고 강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다. 태극기 안의 원에 있는 붉은색과 청색은 태극의 음양으로, 지극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뜻한다.
태극기에는 태극 뿐 만아니라 ‘건곤감리’라는 4개의 괘가 그려져 있다.
태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의 태호 복희씨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삼황오제에서 시작되었다고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십팔사략에 의하면 삼황은 태호 복희(太昊 伏羲), 염제 신농(炎帝 神農), 황제 헌혼(黃帝 軒轅)을 말하며 오제는 소호 금천(少昊 金天), 전욱 고양(顓頊 高陽), 제곡 고신(帝嚳 高辛), 제요 도당(帝堯 陶唐), 제순 유우(帝舜 有虞)를 말한다.
중국은 처음에는 심황오제를 역사적 사실로 본 것이 아니고 신화적 인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부터 삼황오제를 역사적인 인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 중에 태호복희라는 인물은 약 5천년 전에 나라를 다스렸던 인물로 추정되는데 오덕(五德) 중에 나무인 목덕(木德)으로 정치를 하였다. 오행 중에 목(木)은 어짐과 인자함을 상징하고 팔괘에서는 巽(손 ☴)괘로 바람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복희씨의 성은 풍(風)씨로 전해져온다.
태호복희는 황하에서 용의 머리를 한 말이 나타나 그림 하나를 전해 받았는데 그것이 하도(河圖)이다. 이 그림은 용마의 몸과 등에 있는 55개의 점으로 만든 수로 된 무늬이다. 55개는 천지의 이치를 그려놓았는데 천1 지2 천3 지4 천5 지6 천7 지8 천9 지10이 되어 모두 합하면 55수가 되고 천지에서 천은 양을, 지는 음을 가리키는데 양수는 25 음수는 30이 되어 총55수이다. 이 55수 속에 천지의 이치가 다 포함되어 있다.
태호복희는 여기서 8괘를 만들었는데 이를 복희 8괘라 부르고 있다. 이 괘는 북쪽에 곤괘(☷) 남쪽에 건괘(☰) 동쪽에 리괘(☲) 서쪽에 감괘(☵)를 두었고 그 사이로(북쪽에서 서쪽을 중심으로) 진괘(☳), 태괘(☱), 손괘(☴), 간괘(☶)를 배치하였다.
중국인들은 태호복희가 중국의 시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태호복희의 8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태호복희의 선천 8괘의 4괘를 태극기에 담았고 음양의 모습을 원에다 제시하여 태극을 새겨놓았다. 이로 보면 오히려 태호복희가 중국의 조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선조였으리라는 추정도 가능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태극기에는 음양이 배치되어 있고 음양의 만남은 최상의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태극기에는 크고 밝은 힘과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태극에 그려진 음양의 결합으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것을 한자로 쓰면 즐거운 ‘호(好)’자이다.
‘자(子)’는 양(陽)인 남자를 뜻하고 ‘여(女)’자는 음(陰)인 여자를 뜻한다. 이 둘이 만나면 좋을 ‘호(好)’자가 된다. ‘호(好)’자의 배열이 여자가 앞에 나오고 남자가 뒤에 있다. 여자인 음이 앞에 나오고 남자인 양이 뒤에 있는 것이다, 이는 양이 밝고 강하나 실질적인 힘을 갖는 것은 음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자인 음과 남자인 양이 만나면 가장 즐거운 사랑이 샘솟는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지 않는다면 인류 역사의 시작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즐거움의 시작이 남녀의 만남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사랑을 에로스라고 부르고 있다. 에로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인 단군도 웅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고조선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단군신화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아담과 이브가 만나서 나눈 사랑이나, 단군이 웅녀를 만난 것이나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적 사랑이다.
에로스적 사랑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핵심이고 그 시작이었다. 무한한 이타적인 사랑, 아가페적 사랑도 에로스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는다. 그때부터 여인은 어머니란 새 이름을 하나 더 얻으며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인 아가페적 사랑을 한다. 이런 사랑은 가족을 이루고 가족은 또 다른 가족과 이웃이 되고 거기에서 친구간의 사랑인 필리아적 사랑도 이루어진다.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본질적인 사랑이고, 위대한 사랑의 출발지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진실로 사랑하는 남녀 간의 애정은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완의 사랑은 옛날부터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그려지곤 하였다. 따라서 사랑의 문학은 엄밀하게 말하면 미완의 사랑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잉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사랑을 이루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렇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이루지 못해 애태우는 허전함과 은근한 그리움이 있어야 가을 밤 구름 뒤로 숨는 달처럼 은밀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도학자인 화담 서경덕 선생도 황진이에 대해 초연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허전함을 다 지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 서경덕 -
봄이면 춘정을 이기지 못해 사랑은, 화려한 꽃잎의 색채처럼 눈부시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사랑은 호수에 어리는 별빛만큼이나 엷고 쓸쓸해진다. 높이 뜬 달은 밝을수록 더 허전하고 계곡의 물소리가 맑을수록 쓸쓸함은 더해 간다. 바람에 한 잎 두 잎 날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지나온 세월의 추억이 나뭇잎처럼 스러지는 것 같아 서글픔마저 들 터!
도학의 대가 화담 서경덕 선생조차 가을의 고적감과 외로움을 어쩌지 못 해, 가을 날 산중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떨어지는 나뭇잎 모습에, 마음 안에 품었던 사람이 찾아오는 게 아닌가 하고 고개 돌리는 외로운 심사를 느낄 수 있다.
시가(詩歌)의 출발은 이렇게 그리움과 기다림에서 절망적인 사랑으로 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비감(悲感)’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시가 중에 <가시리>나 <만전출 별사>의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등은 모두 이별의 아픔과 애정의 극한을 열어 보인 수작(秀作)들이었다.
이처럼 사랑에 관한 시가는 그 절망의 강도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깊은 맛을 자아낸 것이다. 마치 부유한 자는 깨우침의 도를 얻기 힘든 것처럼…
그날 절벽 같은 너의 죽음 앞에서 / 다시는 안 열리는 석문을 붙들고 / 아무리 불러 호곡(呼哭)한들 / 내 소리 네가 들으랴? / 네 소리 내게 들리랴?
이 시는 현대시 유치환의 ‘죽음 앞에서’라는 작품이다.
유치환의 시 ‘죽음 앞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 극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안타까운 이별의 단절을 죽음으로 상징하여, 호곡하는 괴로움을 피를 토하듯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절박하고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
사랑의 느낌은 겉으로는 즐거워보여도 실상은 괴로움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의 경우, 그 어원을 보면 서양은 달콤함을 뜻하지만 동양에서 사랑을 뜻하는 또 하나의 글자인 ‘애(愛)’ 자에서는 괴로움이 포함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영어로 사랑은 러브(Love)라고 하는데 이 말은 ‘기쁘게 하다’라는 루브에르(Lubere)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 말로만 보면 서양의 사랑은 고통 없는 달콤함을 뜻한다. 오늘날 젊은이들 또한 대부분 달콤한 사랑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어디 남녀의 사랑이 달콤하기만 한 것일까. 그래서 동양의 사랑은 한자 애(愛)를 파자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애(愛)’자의 윗부분은 ‘손톱조(爪)’와 ‘덮을멱(冖)’과 ‘마음심(心)’이 합해져 있다. 손톱조자와 덮을 멱이 합해진 글자는 목이 메일 ‘기’자이다. 그리고 아랫부분은 뒤쳐져 올 ‘치’자(字)이다. 이 글자는 한자의 어원을 밝혀놓은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중심으로 해석을 보완한 중문자보(中文字譜)에 나온 글이다.
이 한자의 뜻을 헤아려 보면 사랑이란 목이 메일 정도로 아픔이 있고 그리움과 상처로 인해 빨리 갈 수 없음을 뜻한다고 한다. 즉 진정한 사랑 속에는 아픔이 따른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사랑의 아픔을 재미있게 그려낸 옛 시조가 있다.
사랑이 거짓말이 임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닷 말이 긔 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 김상용 -
조선시대 선조, 인조 임금을 모신 문인 김상용(金尙容)의 시조이다.
임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한다. 속으로는 더욱 절실히 믿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이라고 했다. 임은 꿈속에서 찾아온다고 하였는데 그건 더욱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종장을 보면 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라고 한탄을 하였다. 아픔과 미련, 원망이 은근히 뒤섞인 글이다. 꿈에 와 뵌다고 한 임의 말은 거짓이 아닌데 내가 잠을 못 자니 꿈을 꿀 수 없기에 임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 한 것이다. 임을 사랑하는 마음을 점층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는 백미(白眉)이다.
【* 백미[白眉] -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마량에게 관직을 주어 촉한의 창업을 도왔다. 그의 눈썹에는 흰털이 섞여 있었는데 마량의 5형제 중에 재능이 제일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량의 백미가 가장 좋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백미(白眉)는 같은 무리에서 뛰어난 인물이나 같은 종(種)에서 뛰어난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랑 중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이다. 이타적인 사랑은 에로스적 사랑의 연장선에서 출발하지만 그 자체로 독립성을 가지고 새로운 사랑의 영역을 확보하며 그 가치를 높고도 넓게 펼쳐온 사랑이다. 그곳에는 끝없는 자비와 용서가 있다. 이근구 시인의 시조 ‘노둣돌’에는 그런 자비의 사랑이 담겨 있다.
노둣돌
이근구
수종사 요사체
하얀 고무신 한 켤레
댓돌 위
백자처럼
부시게 앉아 있다
한사코
받들며 사는
성자 같은 노둣돌
내 언제 남을 위해
저리 참고 견뎠던가
비우고 베푼다 하며
남 위해 살자함도
노둣돌
무심한 봉사 앞에
고개 숙여 집니다.
첫 수에서는 노둣돌 위에 앉아 고무신을 보며 노둣돌에서 보여지는 봉사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한사코 받들고 사는 삶은 아무나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삶이다. 노둣돌과 노둣돌 위에 조용히 놓여있는 하얀 고무신의 모습을 보며 헌신적인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둘째 수에서는 자신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담았다. 남을 위해 베풀고 봉사한다 해도 무심한 봉사를 하는 노둣돌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는 하심(下心)의 마음을 보게 된다.
이제 사랑의 정점을 알아보아야 겠다. 사랑의 시작은 기다림, 미련, 그리움이다. 그것은 아픔과 절망의 사랑으로 치닫기도 하고 그런 사랑에서 거룩한 이타적인 사랑으로 변화해 가기도 하였다.
그러면 사랑의 정점은 어디일까? 사랑이 없는 자리, 과학으로 말하면 절대 영도의 자리일 것이다. 모든 분자들의 활동이 정지되었듯이 사랑의 부피도 제로, 사랑의 분자 활동도 제로, 사랑의 시간도 소멸하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불가에서 구하고자 하는 최고 절대의 진리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만유의 법을 초월한다. 그 자리는 생사가 없는 자리, 영원의 자리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절대영도의 자리가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하고 높은 최상의 사랑은 역시 깨우쳤다는 자체도 없는 무자리의 자리가 아닐까. 조동화 시인은 시간이 소멸한 그 자리, 영원의 자리를 말한다. 영원은 아무 것도 없지만 어디든 열리지 않은 곳이 없이 무한하다. 시조 ‘영원을 꿈꾸다’에서 조동화 시인은 세상에 남아서 영원의 꿈을 꾸고, 빛이 되는 꿈을 꾸는 위대한 사랑의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조동화 시인의 시조 ‘영원을 꿈꾸다’를 선보이며 글을 맺는다.
영원을 꿈꾸다
조동화
세상에선 꿈으로나 존재하는 절대영도
모든 분자활동이 정지되는 거기에서
부피는 제로가 되고
시간은 소멸한단다
수백 미터 막장에도 예외 없이 시간이 가고
대기권 벗어나 봐도 역시 시간은 간다
시간이 소멸한 그 자리
바로 영원 그 자리
동서남북 위아래가 영원으로 둘린 곳
영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
왕께서 영원이기에
백성 또한 영원인 그곳
나 아직 세상에 남아 그 나라 꿈을 꾼다
우주를 담은 그릇, 까마득한 물층 너머
낮과 밤 다 끝난 그곳
빛이 되는 꿈을 꾼다
( 조동화 시조집 [영원을 꿈꾸다] )
26. 허구의 아름다움
한분순의 ‘청(靑)’
김일연의 ‘겨울 아침’
김기옥의 ‘달팽이’
인류는 즐겁고 행복한 것을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다. 그러나 인생살이는 허구이다. 실제로 무엇이 참(眞)다운 인생인지 어느 것 하나를 단정하여 드러낼 수가 없다. 인생살이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그 노력조차 허구에 그치기 일쑤이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나가 버리고 만다. 참다운 내 자리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미래의 삶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내 것이 아니고 과거의 삶은 이미 지나갔으니 내 것이 아니고 현재의 삶은 ‘현재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지나가니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서 내 것을 만들고 내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게 사람들이다.
명리학에는 도충격이라는 게 있다. 오행의 기운이 같은 것끼리 모여 있는데 그 친구들은 쓸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같은 오행이 저들끼리 힘을 모은다. 그러니 힘이 강대해져서 반대쪽에 있는 친구를 불러오는 것이다. 오행의 허구, 즉 허구의 오행 하나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더운 여름이 지겹도록 계속되면 추운 겨울을 그리워하는 이치이다. 불 볕 더위에 냉장고나 에어컨이 많이 팔리는 이치이기도하다. 더위의 족속들은 더위 속에서 불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힘을 모으면 모을수록 열기는 뜨거워지고 끝내는 시원한 소나기를 뿌리듯이 쓸모 없는 것들이 쓸모 있는 것들을 불러오는 것이 도충이다.
현실은 무료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일이 안 풀려 짜증이 날 때가 종종 있다. 이때 허구의 세계를 불러오고 싶다. 일상적인 삶에서 문학적인 삶을 도충해 오는 것이다. 문학 속에서는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힘이 있다. 허구의 세계이지만 거기엔 진실의 힘이 있고 멋스러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현실의 삶이 탐탁치 못하면 아름다운 허구를 생각한다. 안델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이야기도 허구를 도충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 속에 떨면서 성냥불을 긋는다. 소녀는 불빛 속에서 허구의 세계를 그린다. 따뜻한 방안에서 촛불을 켜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 장면을 꿈꾼다. 너무 춥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따뜻한 것을 불러온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현실이 힘겨울 때엔 허구는 역동적인 힘을 불러일으킨다. 허구적 삶이나 현실적 삶이나 비슷하다. 꿈속의 삶이 허구라면 꿈에서 보면 현실의 삶이 허구이다. 어찌되었든, 견우가 직녀를 그리워하듯 반대편에 있는 것끼리는 서로 적대적인 것 같아도 서로 그리워한다.
겨울에는 무더운 여름이 그립고 여름엔 시원한 겨울이 마냥 그립다.
겨울이란 놈이 도충하여 목 메이게 부르던 여름이 실제로 코앞에 다가왔다.
나는 여름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운이 펄펄 난다. 모기를 쫓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강냉이를 찌고 호박을 삶고 장칼국수를 먹던 그 여름의 진미! 더위가 심할수록 매미소리는 시원하게 귀를 간질이고 반딧불이가 날던 동화 같은 시골의 밤은 한 폭의 수묵화였다.
시원한 계곡에서 간간이 들리는 폭포수, 그리고 밤하늘에 떠있는 초롱초롱한 별을 바라보며 잠이 들던 강원도 양양의 깊은 산골 절간의 추억도 그리워진다.
무성한 여름의 이미지는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다. 여름을 대표할 수 있는 ‘푸름’의 이미지는 늘 마음속을 싱그럽게 해주는 활력소이다.
이번에는 여름에 관한 좋은 작품을 살펴보고 여름이 도충하는 겨울의 작품도 더듬어보려고 한다. 또한 주제에 맞는 작품 한 편을 더 골라 보았다.
먼저 여름에 대한 신선한 시조 한 수를 소개해 본다. 시전문지, 『한국현대시문학 』 2012년 여름호에 한분순 시인이 신작 시조 10편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의 한 편 ‘청(靑)’이라는 시조이다.
청(靑)
한분순
여름은
내 곁에
아직 무성히 있네
깊숙한 골짜기에서
한잠 자고
이내를 건너
더러는
빠뜨리고 더러는
또 손에도 들었네.
짧고도 간결한 단시조이다. 그러나 내용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초장에서, 여름은 아직 무성하게 있다고 했다. 인생의 어느 가을 허리쯤이나 겨울에 서 있는 작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을 꿈꾸고 있다. 가을 길이나 겨울의 입구를 들어서도 마음 안에는 무성하게 여름이 있다. 푸른 빛 삶이 내재되어 있다.
인생사에서 신명나는 일들을 꿈꾸고 있을 때 삶은 늘 푸르게 이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신나고 멋있는 말인가. ‘여름은 내 곁에 아직 무성히 있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푸름을 간직해야 할 멋진 활구(活句)가 아닌가.
그 여름의 꿈틀댐이 중장에 오면 장엄하다. 깊숙한 골짜기에서 한잠 잔다고 했다. 천연덕스러움이다. 편안함이다. 그리고 이내를 건너고 있다. 이내는 여기서 목적어로 쓰였다. 여름이 이내를 건너다고 했으니, ‘이내’는 ‘해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한 기운’을 뜻한다. 여름이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곳을 지났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종장에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 얻은 결과물을 말하고 있다. 더러는 빠뜨리기도 하고 또 한 손에는 들었다고 했다. 역시 종장에서는 여유와 너그러움이 신선하게 풍겨나는 풋풋한 맛이 있다.
젊은 사람이 반드시 젊은 인생을 산다고 말할 수 없듯이 나이 들었다고 기맥이 빠진 삶을 산다고만 볼 수 없는 일이다. 정열과 젊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풍만한 생명감이다.
중국 제나라의 시조 강상은 강태공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나이 70에 문왕을 만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인생을 가장 젊게 산 역사의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조를 읽으면서 강태공의 삶처럼, 늘 푸름을 간직하고 살 책무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주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인생의 푸른 날은, 지난날에 대한 이름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을 아름다운 허구로 만들어 삶을 윤택하게 해 내는 영상미이다.
봄이 무성해지면 봄은 이미 가을로 건너 뛰어 단풍과 열매 맺음의 풍성한 결실을 도충한다. 그런데 그 준비를 여름이 하고 있는 곳이다. 여름이 무성하면, 여름이 도충해 오는 것은 겨울이다. 겨울의 준비를 가을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겨울은 또 여름을 도충하고, 그 사이에 봄은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사계절은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과 다음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는다. 얼마나 기묘한 일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여름이 도충해 오는 겨울은 결빙의 아름다움, 맑은 생명감이다. 추위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이 있으니 눈을 맞고 선 소나무들의 우직한 생명력! 그래서일까, 소나무는 옛날부터 신선들이 사는 나무로 살고 있다. 신선이나 도인들은 소나무 밑에 앉아있다. 소나무의 향기가 좋고 소나무 잎이 청풍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눈을 머리에 인 소나무는 그 기상이 늠름하다.
여름이 여름을 견뎌내는 비법은 겨울을 도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겨울의 모습을 시로 형상화한 시조 한 편을 소개해 올린다. 월간문학 2012년 1월호에 실린 김일연 시인의 시조 ‘겨울 아침’이다.
겨울 아침
김일연
창 밖
눈 산은
화선지를 펴고
붓 지나간 소나무는 꿈틀꿈틀 용틀임
정신의 묵향이 날까
먹을 가는
내 문서.
이 시조를 읽으면 써늘한 냉기가 감도는 가운데 뜨거운 정신의 불길을 볼 수 있다.
맑음과 비움은 동류인 것 같다. 정신의 묵향을 얻고 싶어 하는 시인의 시정신이 치열하다 못해 눈부시다.
논 온 겨울 산이 화선지 한 장을 펴놓았다. 붓 지나간 소나무가 꿈틀대며 용틀임을 한다고 하였다. 시의 세상을 열어가는 필법이 말끔하여 향기가 날 정도이다.
위의 시조에서 핵심은 정신의 묵향이다. 그 옛날 중국, 기산의 영수에서 소부와 허유가 나눈 문답이 떠오른다.
요임금이 기산에 살고 있는 현인, 소부를 불러 임금 자리를 줄 테니 받으라고 하였다. 소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귀가 더러워졌다고 영수에서 귀를 씻고 있었다. 그 때 친구인 허유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왔다. 소부가 귀를 씻는 연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허유는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소를 몰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고사이다. 부귀와 명예 대신 무한 자유의 걸림이 없는 세상을 소유한 소부와 허유의 삶에서 정신의 묵향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태어나신 대현 이율곡 선생께서도 항상 선비정신으로 정신의 묵향을 간직하고 사신 분이다. 율곡 선생께서는 부귀영화에 대하여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으셨다. 선생은 벼슬의 맛을 닭의 갈빗대와 같다고 하시고, 명예란 토끼털로 만든 옷과 같다고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사는 것은 현대문명의 편리함에서 벗어나 불편하게 살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500년 전 문명이 발달되기 전에 태어난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문명천지인 오늘의 세상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인간의 삶속으로 파고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찬란한 문명이 한갓 덧없음의 문화 거품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신의 먹을 갈며 묵향을 내려는 시조 작품 한편을 더 만나 보았다. 2012년 현대시조 봄호에 발표한 김기옥 시인의 시조 ‘달팽이’를 보자.
달팽이
김기옥
집 한 채 등에 지고 온갖 세상 헤쳐가며
오감의 촉각으로 만져보고 느끼면서
우주의
가장 멋진 길
나를 찾는 생각의 길
촉촉한 삶 찾아가요 끈끈한 사랑으로
더 값진 것 보기위해 더 값진 것 듣기위해
섣불리
파악할 수 없기에
눈 귀 닫고 더듬이로.
소부와 허유가 세상의 화려한 모습을 닫고 산속에 은거한 것은 세속적인 눈을 닫기 위한 것이고, 물에다 귀를 씻은 것은 물질에 대한 탐욕의 줄을 끊기 위한 것이리라. 여기, 달팽이 하나가 거대한 집을 짊어진 채, 눈을 닫고 귀를 닫고 오로지 더듬이 하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본다. 김기옥 시인은 그것을, 우주의 가장 멋진 길, 나를 찾는 생각의 길이라고 하였다. 더 값진 것을 보기 위해 눈을 감아야 하고 더 값진 것을 듣기 위해서는 정작 귀를 닫아야 한다. 오로지 더듬이 하나로 촉수를 세워 나아가는 달팽이에게서 경건함을 느끼지 않는가. 달팽이처럼 눈귀를 닫고 묵묵히 삶 속에서 정진해 나가며 정신의 먹을 갈며 묵향을 내려는 김기옥 시인의 ‘달팽이’를 읽으며, 나 또한 잃어버렸던 내 정신의 묵향 하나를 찾는 신명난 길에 서야겠다고 다짐했다.
여름은 길고 무덥다. 우리의 인생길도 길고 무더운 날이 한두 번일까. 그러나 더위 속에서는 시원한 그늘도 만나고 푸르게 우는 매미 소리도 벗할 수 있고, 찌는 뜻한 더위를 이겨낼 때 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 않는가. 청명한 달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마음 두근거리는 일이 아니던가. 모두 뜨거운 여름이 있기에 신나는 일이다. 그래도 너무 더워 못 견딜 지경이면 겨울을 도충해 오자. 미끄러질 듯 얼어버린 결빙의 청기(淸氣)를 불러들여 허구의 아름다움 속에서 노닐면 될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진실을 가까이 할 수 없으면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현실의 반대편, 좋은 것 행복한 것들을 마음껏 욕심낸다. 나도 그렇다. 이 여름에 허구의 낯선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도충을 통해 몇 작품을 껴안아보았다. 여름에 관한 한분순의 시조 한 수와 여름이 도충하는 김일연의 겨울 시조 한 수, 그리고 정신의 묵향을 떠올리는 김기옥의 ‘달팽이’작품이 그것이었다.
27. 사색의 깊이에 빠지다
- 최도규의 ‘장독대’
- 홍준오의 ‘낙엽의 사색’
- 송길자의 ‘섬이미지’
- 김희선의 ‘뉴도자키 절벽에서’
벌써 가을이 왔다. 가을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선 뜨거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있어야 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위가 심했다. 35도에서 36도를 오르내리는 날이 많았다. 매미들은 극성을 부리다시피 울어대며 여름 속에 푸른 음색을 나뭇잎처럼 깔아놓곤 하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여름이 떠나갈 날이 멀지 않았음을. ‘그래봐야 앞으로 열흘정도인데!’ 이렇게 중얼거리며 여름을 만끽하였다. 방에서 그 흔하게 트는 선풍기조차 돌리지 않고 부채 하나로 더위를 보내며 찐득한 여름을 맞이하였다. 더러 더러 저녁 무렵, 서늘한 바람이라도 불면 시원함의 참다운 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가을이 슬그머니 찾아왔다. ‘가을!’ 내게는 듣기만 해도 설렘을 주는 말이다.
높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소리, 계곡에서 굴리는 청아한 물소리, 점점이 산을 붉게, 노랗게 물들이는 나뭇잎들의 변신, 가을밤에 둥실 떠오른 달을 벗삼아 뜰을 거닐며 듣는 풀벌레의 소곤거림! 이 모두가 나를 설렘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가끔 산방에 들러 밤을 보내곤 한다. 금년부터는 아예 산방에 눌러 붙어 살 심산이다. 그곳에서 차(茶) 물을 데우며 가을 하늘에 뜬 달덩이와 마주 하고 있으면 적막한 강산마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무릎걸음으로 다가 앉는 듯하다. 이런 정감은 온통 절망처럼, 깊은 그리움으로 채워지는 미색(美色)이다.
무심산방 茶물처럼 무심무심 맑아질 때
문지방 넘나드는 풀벌레소리 수수해지고
달빛에 청산은 마-악 俗을 벗고 떠오른다
( 남진원의 ‘가을 산방에서’)
가을이면 나를 설레게 하는 게 또 있다. 박넝쿨이 여기저기 감겨 올라가며 하얀 꽃을 피우고 달덩이 같은 박을 여기저기 만들어 걸어놓던 정겨운 모습! 가을에 만나는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골의 장독대는 얼마나 포근하고 아름다운가. 가을에 보는 시골 장독대는 헝클어진 마음까지도 삭게 만들고 거기에 외로움의 하늘 냄새가 보태지곤 하였지. 장독대 옆에 있으면 정갈한 시골 색시 같은 소박한 맛이 묻어나곤 하였다. 이런 가을을 어찌 사색 없이 그냥 떠나보낼 것인가.
벌써 세상을 등진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최도규 시인의 시조 <장독대>가 오늘은 내 생각의 가을창가에 머물렀다.
장독대
최 도 규
박넝쿨 엉킨 틈새 한줌 볕살 서성이면
돌방석 깔고 앉아 달콤히 삭혀가던
소박한 초가 뒤란에 맛의 고향 장독대
싸리울 넘나들며 해종일 어우르다
고추장 된장 내음 붉게 타는 고추짱아
어머니 마음까지도 함께 삭던 항아리
흙 묻은 세월 함께 이어진 숨결소리
크게는 못살아도 갈 볕 빌려 웃던 아낙
장독대 돌아선 옷자락 물씬 배는 우리 맛
(시조문학 제24호, 1980. 가을 천료작)
박 넝쿨이 엉킨 틈새로 가을 햇볕이 내리쬐고 소박한 초가 뒤란 양지쪽의 장독대는 마냥 꿈에 잠긴 평화로운 모습이다.
가을이 묻어나는 한 폭의 풍경화!
장독대 주위로는 고추잠자리들이 이리 저리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유년의 삽화처럼 그려진다.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조상님의 숨결을 위안으로 삼으며 흙 묻은 세월을 살아가던 시골 아낙네의 마음도 장독대 안에 된장 맛으로 닮아 있다. 구수한 정이 담긴 항아리, 한국인의 고유한 맛의 정서가 녹아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을 산방에 들어가니 감나무 잎이 주위를 온통 장식해놓았다. 각양 각색의 무늬가 나를 유혹한다. 낙엽을 밟아보기도 하고 몇 장은 주워 책갈피에 넣어두기도 하였다.
불현듯 낙엽 태우는 냄새가 맡고 싶어졌다. 감나무는 하나 둘 잎을 날리며 호젓이 서 있다. 나무는 잎을 떠나보내며 홀로 남아서 오히려 떠나가는 것들에게 ‘위로의 미학!’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로!’
누가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위로 받는 것은, 그런 상황이나 경우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힘들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정작 위로 해 줄 대상도, 위로 받을 그 누군가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름다운 위로의 방법은 ‘눈물 나눔의 소통이다. 함께 웃어주는 것은 누구나가 같이 할 수 있다. 함께 어떤 대상을 미워해주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울어준다는 것은 좀처럼 하기 힘들다. 함께 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 속에 들어와 누군가가 함께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 여적으로 세상 떠난 아내의 벗이 생각난다. 아내는 살면서 아픔이 많았다. 아내는 내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나약한 내 모습을 언제나 달래주고 감싸주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가 갖고 있는 외로움은 얼마나 컸던 것인가. 서울에 사는 동생뻘 되는 여인이 찾아오면 밤늦도록 누워 서로를 안고 울었다. 둘은 그렇게 마음이 통했고 그 모습에 감동되기도 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누가 나와 함께 울어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거대한 산처럼 쓸쓸함이 몰려왔던 것이다.
홍준오 시인의 시조 <낙엽의 시샘>은 그런 의미에서 작은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낙엽 진다 우수수 남루한 꿈의 입성
벗으며 가는 이의 적멸보다 짙은 수심을
달래며 나무는 외려 초인처럼 서 있다.
( 홍준오의 ‘낙엽의 시샘’ 첫 수, 한국시조큰사전. 1985)
홍준오 시인은 낙엽이 지는 나무에서 오히려 나무의 의연함을 보았다. 나무는 잎을 떨구면서도 초연한 모습이다. 어디 그 뿐인가. 나무는 낙엽들의 적멸보다 짙은 수심을 보고 오히려 달래준다. 진정한 마음의 위로는 잎을 떨구는 나무처럼, 본인이 스스로 아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 아픔을 껴안았을 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시조를 읽으면 몇 줄 읽다가 읽고 싶지 않아 던져두고 싶은 시조들이 있다. 별 감동이 없는 무감각한 시조들이다. 또 어떤 시조를 대하면 한참을 생각하며 읽다가 덮어두는 시조도 있다. 난해한 표현으로 작자의 의도가 매우 궁금해지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조를 읽으면 우둔한 머리를 명쾌하게 때리는 시조가 있다. 활달함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시조! 그런 맛나는 시조를 대하면 정말 인생에서 큰 의미를 발견한 것처럼 흥분되고 기분이 좋다.
송길자 시인의 시조 <섬 이미지>는 이런 시조 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섬 이미지
송 길 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지구가 별이 듯이
저승에서 건너다보면 이승 또한 섬 아닐까
밀물과 썰물의 사이 떴다 잠긴 나날도 섬
가까운 듯 멀리만 앉은 너와 나도 섬이라서
네가 나를 바라보듯 나도 너를 바라만 본다
한 바다 차고 이우는 그 부침(浮沈)의 사이사이.
(여성시조 14번째 작품집. 2011)
사유(思惟)의 깊이가 물씬 묻어나는 시조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하늘과 지구, 이승과 저승, 밀물과 썰물이란 상대어를 이용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가볍게 다져넣은 솜씨가 돋보인다. 비유가 순수하고 적절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지구 또한 초록별이다. 그것처럼 저승에서 건너다보면 이승 또한 섬이 아닐까 라는 성찰적인 표현은 압권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초록별인 지구의 아름다움이나, 저승에서 건너다보면 이승 또한 섬일 것이라는 사유는 어느 노스님의 깨달음보다 더 활달한 해탈의 언어로 다가온다.
시조의 삼장구조가 거대한 우주의 물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으로 귀결되는 귀납적 형태를 보이고 있어 종장에 오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밀물과 썰물 사이 떴다 잠긴 나날도 섬’이라 하여 ‘섬’의 이미지가 그윽하고 깊은 사리처럼 빛난다.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관계가 사람들의 관계이다. 한바다 차고 이우는 그 부침의 사이처럼 인간의 관계는 참으로 미묘하다. 그 미묘함을 표현한 행간의 호흡은 신비한 율동처럼 다가온다.
김희선 시인의 시조 <뉴도자키 절벽에서>를 읽으면 ‘절벽’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절벽’이란 소재는 시에서 가끔 등장한다. ‘죽음’ 또는 ‘단절’의 상징처럼 말이다. 유치환 시인은 ‘죽음 앞에서’라는 시를 통해 단절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그날 절벽 같은 너의 죽음 앞에서
다시도 안 열릴 석문을 붙들고
아무리 불러 호곡(呼哭)한들
내 소리 네가 들으랴?
네 소리 내게 들리랴?
(유치환의 시 ‘죽음 앞에서’)
청마 유치환! 그의 삶은 시인의 삶이었고 사랑의 삶이었고 아픈 열정의 삶이었다. 어느 후인이 있어 또 청마와 같은 열정으로 시를 쓰고 노래하며 사랑을 불태울 것인가. 죽음보다 더한 절망을 호곡으로 노래하는 청마의 절규는 비통하다 못해 장엄하다. 한 인간의 지극한 시어는 혼을 엮어 사랑을 소통하기 위한 치열한 몸짓이었다고 보여진다.
유치환시인은 절벽을 통해 죽음과 사랑, 이별을 노래했다. 김희선 시인은 시조 <뉴도자키 절벽에서>라는 작품에서 절벽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청마처럼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깨달음의 정수리를 관통하고자 하였다.
뉴도자키 절벽에서
김희선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온몸으로 버텨가며
바다 등진 벼랑 끝에
그대 서 보았는가
손잡아 주는 이 없는
고독의 그 끝자락.
금세라도 날아가버릴
극한의 눈보라 속
외려 더 밝아오는
의식을 보았는가
되돌아 구하지 못할
깨침의 그 정수리
(여성시조 14번째 작품집. 2011)
김희선 시인은 묻는다.
온몸으로 버텨가며 바다 등진 벼랑 끝, 절벽에 서 보았는가? 라고…
아무도 손잡아주는 이 없는 고독의 그 끝자락에 서 보았느냐고 묻는다.
처절한 고독이 아니면 그 고독은 사치에 불과하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을 온 몸으로 견뎌내는 그 벼랑의 끝에 서 보았을때 고독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힘들고 힘들어 사는 것이 막막해졌을때 그 고독의 깊이를 더듬어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극한의 눈보라 속에서 외려 더 의식은 밝아오고 활달한 깨침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두렵고 힘든 절벽 위에 당당하게 서길 거부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선희 시인은 뉴도자키 절벽에서 고독의 끝자락을 더듬어 내었다. 또한 극한의 눈보라 속에서야 깨우침의 면모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시조의 첫 수를 읽으면 생의 무게가 만근 정도의 무게로 다가온다. ‘바다 등진 벼랑 끝에 온 몸으로 버텨가며 서 보았는가?’ 라고 조용히 묻는다. 그러나 이것은 묻는 것이 아니라 절규에 가깝다. 삶의 극한에 치달아서야 홀연히 얻을 수 있는 깨우침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삶의 모습,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라는 붓다의 말씀이 떠오른다. 처절하게 자기 수행으로 깨달음에 정진하는 시인의 구도적인 사유는 독자들에게 감동의 물길을 내어주고 있다.
동서 고금에 변한 적이 없는 진리가 ‘시를 써도 돈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시를 좀 더 잘 써 보기위해 끊임없이 시도하는 일상의 나날들은 어찌 보면 저 고구려 온달의 모습처럼 바보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어디 돈으로 따질 수 있으랴. 나는 시를 잘 쓰지는 못해도 시를 쓰는 배짱으로 이 세상을 산다. 내가 왕산면 방터골로 이번에 이사를 오면서 주위에 몇 억 자리 호화스런 주택을 지어 별장처럼 쓰는 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호화스런 주택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내 시가 별로 좋은 시는 아니라 할지라도 누가 나의 시 한 편과 그 주택을 바꾸라고 한다면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도 난 내 작품과 그런 집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시 작품과 허망한 물질의 주택 한 채를 비교했다는 것부터 부끄러운 짓거리일 것이다.
이 가을에 나는 가을 때문에 아름다운 죄, 사색의 깊이에 빠질 수 있는 시조 작품, 황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조 몇 편을 읽어보았다.
28. 매화를 품다
- 두향 ‘이별이 하도 설워’
- 신흠 ‘산촌에 눈이 오니’
- 안민영 ‘매화사’
- 이색 ‘백설이 잦아진 골에’
매화의 매(梅)자 생김새를 보면 나무 옆에 어미를 뜻하는 모(母) 자(字)가 있다. 여인이 아기를 갖게 되면 신 것을 찾는다. 매화의 열매가 매실인데 매실이 신맛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되는 것을 알리는 나무가 매화이다. 모든 꽃 중에 먼저 피기 때문에 ‘화형(花兄)이라고도 부른다. 또 매화는 대나무와 함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되어 왔기에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중에서도 유독 매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도 이 중에 한 사람이다. 퇴계의 매화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은 젊은 유학자 고봉 기대승에게 보낸 글에서도 알 수 있다.
퇴계가 4단 칠정론으로 고봉 기대승과 논쟁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때 퇴계는 매화에 대한 시(詩)도 고봉에게 선사하며 답글을 받았는데 고봉에게 준 제6수에서 보면 퇴계의 매화에 대한 인식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我是逋翁換骨仙(아시포옹환골선)
君同歸鶴上遼天(군동귀학상요천)
相逢一笑天應許(상봉일소천응허)
莫把襄陽較後前(막파양양교후전)
나는 포옹으로부터 환골한 신선
그대 또한 요동에 돌아온 학으로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서로 만나 크게 웃는 것 하늘의 허락이 있음이여
양양관의 일로 전후를 비교하지 마시게나
이 시에서 퇴계는 자신을 포옹이 환골하여 다시 태어난 신선이라 칭한다. 포옹은 송나라 때의 시인 임포이다. 임포는 일생 동안 중국 서호라는 아름다운 호수 안에 있는 고산(孤山) 속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장가를 가지 않고 매화를 기르며 매화를 처(妻)라 여기고 살았다. 또 학을 기르며 그 학을 자식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이름이 붙었다.
임포가 서호 속의 고산에서 쓴 시 중에 유명한 작품이 있는데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시이다. ‘산원소매(山園小梅)’ 중에 다음과 같은 시구는 음미해 볼만한 명구라 할 수 있다.
疏影橫斜水淸淺(소영횡사수청천) 얕은 호수엔 비스듬히 꽃 그림자 드리우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은은한 향기는 어스름 달빛을 머금고 떠 있네
매화의 꽃 이미지와 향기를 서호와 달빛에 결부시켜 뛰어난 걸작이 되었다.
이런 임포를 존중하여, 퇴계는 자신을 임포가 환골하여 나온 사람이라 여겼으며 서로 만나 웃는 것은 하늘이 이미 허락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유학자이면서도 여유와 멋을 지닌 격조 높은 풍류객이 아닌가.
퇴계는 인생 후반기에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 ‘두향’이 있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해 왔을 때 관기인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기녀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남정네에겐 정을 주지 않았고 시와 가무에 뛰어난 여인이었다. 이때 퇴계의 나이 48세. 50을 바라보는 퇴계와 18살 두향과의 로맨스, 30년이란 나이 차이를 깨뜨리고 그곳에서 9개월 동안 깊은 사랑이 이어진다.
그 후 퇴계는 풍기군수로 떠나오고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 번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별할 때에 두향은 퇴계에게 매화분(梅花盆)을 선물하며 정한(情恨)의 시조 한수를 읊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제,
어느덧 술 다하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진실한 자신의 감정을 시조로 전했다. 이런 두향이기에 퇴계의 마음을 죽을 때까지 붙들고 있지 않았을까. 이 시조의 종장은 울림을 준다. 종장에서는 슬픔을 직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꽃지고 새우는 봄날’이라 표현한 것이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 되면 즐거움을 뜻하지만 ‘피고’를 ‘지고’로 하니 천양지차이가 난 것이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대단한, 참으로 멋진 표현이 아닌가.
그 후 퇴계는 고향으로 내려온 뒤에 두향이 선물한 매화나무를 지성으로 가꾸고 보살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마지막으로 한 말이 ‘매화에 물 주거라!’ 라는 말이었으니 매화와 두향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극진하였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다. 퇴계가 세운 도산서원에는 지금도 매화나무가 제 철을 맞으면 고결하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두향은 퇴계와 이별 한 뒤에 풍기 관아의 기적에서 나오게 되었고, 남한강 가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퇴계와 그곳에서 함께 지냈던 날들을 추억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퇴계가 저세상으로 간 것을 알고 남한강 강선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졌으니 그의 정절이 매화의 지조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은가.
퇴계가 또한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던 시 한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상촌(象村) 신흠(申 欽)의 문집 <야언(野言)>에 매화와 오동나무, 달과 버드나무를 소재로 한 한시이다.
棟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오동나무는 천년을 지나도 노래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지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느니,
달은 천 번을 기울어도 그 본질이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로운 가지가 돋는다.
신흠(1566-1628)은 조선시대 이정구, 이식, 장유 등과 함께 4대 문장가의 한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문장에 능할 뿐 아니라 청렴하기로도 널리 알려졌다. 선조 임금의 셋째 딸 정숙옹주와 신흠의 장남 신익성이 혼례를 할 때 선조는 집이 누추함을 알고 단장할 것을 권했으나 신흠은 “소신의 집이 화려하지는 않으나 예(禮)를 갖추기에는 충분하옵니다.” 라고 하며 기둥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신흠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수많은 장서가 있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책을 통해 세상 보는 안목을 기르고 대문장가의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문학에서 그는 이미 시가 문(文)보다 위에 있다는 식견을 가짐으로써 사물에 대한 뛰어난 직관과 감성의 세계에 대해 깊이 터득하였던 것이다.
그의 한시 (桐千年....)에서 보듯이 사물에 대한 깊이가 서늘할 정도로 폐부를 찌름을 보게 된다.
일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음이야말로 선비들이 조선을 지킨 힘이 아니겠는가. 달이 천 번을 지나도 그 본질이 남아 있다는 시구에서,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은 지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새롭게 닦여 빛나게 됨을 읽을 수 있다. 정치가이면서도 역사의 향기로 남아있는 위대한 문인 신흠의 시는 매화의 향기처럼 지금도 진하게 다가오고 있다.
신흠은 인목대비 폐비사건으로 잠시 강원도 춘천에 유배생활을 하였다. 유배 생활 중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눈과 관련된 시조 ‘산촌에 눈이 오니’도 마음을 차(茶) 향기처럼 고요하게 하는 작품이다.
山村에 눈이 오니 들길이 무쳐셰라
柴扉를 열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이시리
밤중만 一片明月이 긔 벗인가 하노라
산촌에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밤에 온 사위는 정적에 쌓여 있다. 들길이 눈에 묻혔으니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다. 그래서 아예 사립문을 열지 말라고 한다. 자신을 찾을 이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던 눈이 그쳤다. 온 천지가 새하얀 밤이다. 홀연히 뜬 달이 신흠의 초옥을 비추고 있다. 오직 밝은 달이 찾아와 벗해 준다. 겨울밤, 눈 내린 산촌의 마을에 비치는 달과 벗하며 고적함을 달래는 시조를 음미해 보았다.
현대에 와서도 많은 시인들은 눈이나 매화를 소재로 한 시(자유시)를 썼다. 조지훈의 매화송은 시조에 가까운 시 작품이다.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위의 자유시는 시조의 율격면에서 아주 비슷하다. 1행과 2행은 나무랄 데 없는 시조의 초장과 중장을 연상하게 한다. 3행과 4행은 시조의 종장에 가까운 글이다. 형식면에서도 보면 운율의 흐름이 시조를 닮아 있다.
달 밝은 밤에 핀 매화꽃, 정인을 보내고 난 외로운 마음을 정제된 언어로 나타내어 담백하고 깨끗한 정감을 흘러 보낸다.
위의 시가 매화꽃과 달을 소재로 하여 썼다면 눈과 매화를 소재로 한 시조에 인민영의 [매화사(梅花詞]가 있다.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히니
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매화를 침노한다
아모리 얼우려하인들 봄뜻이야 앗을소냐
안민영은 꽃을 노래하고 서경을 읊은 조선시대 최고의 가객이다. 스승인 박효관과 함께 가곡집인 <가곡원류>를 편찬하여 고시조를 전한 공로자이기도하다.
매화의 아름다움에서 한걸음 더 딛고 나가 매화를 통해 꿈과 희망을 노래한 점이 돋보인다. 겨울의 북풍이 몰아쳐도 매화가 품고 있는 뜻을 꺾을 수는 없다고 노래하며 꿋꿋한 기상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이에 비해 고려 말의 문신 이색은 정치적인 우울함과 한탄을, 매화를 소재로 노래하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호올로 서서 갈곳 몰라 하노라
새 정치의 기운이 다가오는 때에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안타까운 노(老) 정객의 심사가 어려 있고 그러기에 구슬픈 비애가 깔려 있다. ‘매화’와 ‘눈’이라는 같은 소재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안민영의 작품은 거침이 없고 기개가 활달한 반면 이색의 작품은 애처러움과 서글픔마저 든다. 자유분방한 사상의 자유로움 속에 살아간 사람과 유교의 정치제도 틀 속에 갇혀 옛 왕조를 지키려는 노(老) 정치인과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매화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보자.
매화는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준다고 하여 일지춘색(一枝春色)이라고도 한다. 춘한(春寒)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지키며 자신의 품위를 지켜내는 매화는 단순히 봄을 먼저 맞는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추위 속에서도 자신의 향기를 피우기에 앞에서 보았듯이 선비들의 기개에 한 몫을 했고 남녀 간의 연정에 끼어들기도 했다.
드물게는 일지춘(一枝春)이란 말과 관련하여 벗에 대한 우정을 대신하기도 했다. 중국의 형주기(荊州記)에 나오는 일화가 있다.
중국 강남에 사는 육개(陸凱)가 북쪽에 사는 친구 범엽(范曄)에게 매화를 선물했는데 시를 함께 써서 보냈다.
折梅逢驛吏 ( 절매봉역리: 역관에 있는 관리를 만나 매화 한가지를 얻었네)
寄與隴頭人 ( 기여농두인: 농두 사람 편에 전하네)
江南無所有 ( 강남무소유: 마땅히 가진 것이 없어서)
聊贈一枝春 ( 료증일지춘: 매화 한 가지로 강남의 봄을 전하려네 )
육개는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으로 고을의 태수를 몇 차례나 지낸 사람이다. 태수라는 직책이면 꽤나 부를 축척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벗과의 사이에 순수한 정을 유지한 것을 보면 청렴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아무것도 선물할 것이 없기에 매화 한 가지를 보낸다고 하였다. 물질만능의 시대를 맞아 돈이나 귀중품이라야 선물의 가치를 크게 여기는 사람과 달리 순수한 정표를 마음에 새기는 뜻이 갸륵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하다. 오늘날 이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해 지겠지.
고금을 막론하고 매화는 선비, 가인(佳人), 눈(雪), 달, 가야금, 술, 차(茶)가 있으면 제격이다. 밖에는 겨울 찬바람이 분다. 궂은 눈보라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선비들의 기개를 닮아보려는 작은 바람이 있었기에 난필로 매화와 눈에 얽힌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모아 보았다.
이 겨울에 매화 한 가지는 마음에 품고 살아야 맛이 있지 않을까.
29 . 소인배는 체념을, 군자는 달관을…
- 이원익과 그의 시조 ‘녹양이 천만사 …’
-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1.
이태극이 엮은 [우리의 옛시조] 책에는 오리 이원익의 시조 ‘녹양이 천만사’와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가 수록되어 있다.
‘녹양이 천만사’ 는 읽고 나면 생각할 여지를 준다.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작품을 쓴 작가의 깊이 있는 정신세계도 작품 속에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리(梧里)는 그의 호이다. 호는 이름 대신으로 쓰는 또 다른 이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호를 지을 때에 산이나 나무, 물, 달 등 자연물을 넣어 짓거나 집을 넣어 지었다. 이은상의 호는 ‘노산’이고 정완영은 ‘백수(白水)’이다. 이원익은 벽오동나무를 넣어 호를 지었다. ‘오리(梧里)’ 즉 시골에 사는 벽오동나무라는 뜻이다. 벽오동(碧梧桐)은 청색을 띄는 오동나무를 뜻한다. 호를 통해서도 이원익의 인품과 정신을 알 수 있다.
호에다 리(里)자(字)를 넣은 것을 보면 뽐내지 않으려는 겸손함의 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벽오동 오(梧)’를 쓴 걸 보면 벽오동처럼 살겠다는 선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벽오동은 푸른색을 띄는 오동나무로 단단하고 결이 곱다. 이러한 특징이 있어 악기나 나막신, 가구 등에 쓰인다. 전설에 의하면 60년 만에야 꽃 핀다는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옥돌에 담긴 이슬이 아니면 목을 축이지 않는다는 봉황! 그 봉황이 깃을 내리는 곳이 벽오동 나무이다. 벽오동나무의 잎은 넓어 믿음과 덕을 나타내고 줄기는 곧고 색은 변하지 않기에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또 벽오동은 상서롭고 아름다운 나무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뜻할 때에는 용으로 표시했고 제후나 왕을 뜻할 때에는 봉황으로 표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통령을 상징하는 데에 봉황무늬를 사용하고 있다.
벽오동의 껍질은 섬유용으로 쓰이고 나무의 진은 종이를 만드는 풀로 사용한다. 그 열매는 식용으로 쓰이고 잎과 꽃과 줄기 뿌리는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 벽오동 종자는 단백질과 지방의 함유량이 높다. 그래서 구황식물로도 사랑받았다. 이처럼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나무가 벽오동나무이다. 이원익, 그는 일생 동안 벽오동과 같이 백성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정직하고 청렴한 관리로 살다 갔다. 그가 얼마나 청렴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오리 이원익이 퇴직을 하고 시골에 내려와 살 때이다.
이원익은 비바람을 가리기도 힘든 초가집에서 살았다. 옷은 남루하였고 부서진 갓을 쓰고 생활하였다. 그 주위에 살던 사람들은 그가 여섯 번의 영의정을 지내고 40여년 재상을 지낸 이원익 대감인 줄을 아무도 몰랐다.
또한 인조 임금이 가난하게 사는 이원익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인조는 이원익이 가난한 초가집에서 산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서 집 한 채를 하사하였다. 그러자 이원익은 사양하면서 “폐하, 이 집을 받으면 백성이 힘들어 하고 원망을 듣습니다.” 하며 사양하였다고 한다. 그런 강직하고 청렴한 신하를 위해 인조는 부탁 같은 왕명을 내려 겨우 집 한 채 만은 받게 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청렴하고 곧고 욕심 없이 살았으면 이렇게 지냈으랴. 욕심 없이 살고 분수를 지킨 덕분인지는 몰라도 정치인으로는 오랜 수명을 산 인물이었다. 가난하게 살아도 청빈의 멋이 있었고 최고의 벼슬자리에 올라도 뽐내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일관하였으니 가히 만세에 우러러보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그의 시조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손자에게는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글을 남겼는데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관리들에게도 마음의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글귀이다.
“관리가 되어서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만큼 보배로운 사랑은 없고, 몸을 다스리는 데에는 욕심을 버리는 것만큼 큰 다스림은 없다.”
그는 또 선비정신을 지키면서 정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이순신이 원균에게 모함을 당할 때에도 분연히 일어나서 이순신을 옹호하였다. 또 광해군 때에는 인목대비 폐비사건에서 반대하다가 홍천으로 유배를 가기도 하였다. 그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 정치판이 바뀌어 지자,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는 그의 시각은 천리(天理)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조 ‘녹양이 천만사’에서도 그런 시각은 찾아볼 수 있다.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 ㄴ 들 가는 춘풍 매어 두며
탐화봉접(探花蜂蝶) 인들 지는 꽃을 어이 하리
아무리 사랑이 중한들 가는 임을 어이 하리
- 이 원 익 -
푸른 수양버들이 천 갈래 만 갈래 드리우고 있는 모습 만 봐도 아름답다. 봄바람이 다가와서 버들잎을 흔들면 그 아름다움은 혼을 빼앗길 만큼 클 것이다.
봄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들의 모습은 상상만 해보아도 활동적인 이미지가 생명감을 불러일으킨다. 기화요초(琪花瑤草)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의 모습은 음양의 조화 속에서 완성미를 보여준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어우러지는 모습처럼 즐거움을 주는 게 있을까. 우리들에게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아픔의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장에서는 식물과 무생물인 바람과의 만남과 이별을, 중장에서는 식물과 동물의 만남과 이별을, 종장에서는 사람의 만남과 이별을 담고 있다. 병렬적인 기법을 동원하였지만 점층적이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대목은 종장에 드러난다. 아름다운 봄과 꽃과 나비 등을 표현하였지만 사람의 사랑과 이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조 속에 등장하는 춘풍과 꽃과 임은 모두 절실한 사랑의 대상이다. 천만사 녹양은 춘풍이 있어야 빛나고, 벌 나비는 꽃이 있어야 즐거움을 더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임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기쁠 때이다. 하지만 인생사, 자연사 모두 만나면 이별하기 마련 아니던가. 만남의 즐거움처럼 이별 또한 자연의 순리이니 담담하게 보내며 삶의 지혜로움을 성찰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별 앞에 너무 애타하지 말고 만남의 즐거움이 있었으니 초연하게 지내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담담하게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사는 것! 이것이 그의 사상이고 정치 철학이 아니었던가 싶다. 물이 흐르면 흐르는 길을 따라, 바람이 불면 바람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보내는 삶의 이치가 이 시조 속에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자꾸 자꾸 읽고 있으면 소인배는 체념을 배우고 군자는 달관을 배우게 된다.
2.
봄이면 그냥 즐겁고 기쁘고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이원수의 동요에도 나오지만 살구꽃 복사꽃 아기 진달래 피는 고향의 봄은 그야말로 낙원의 모습이요, 그래서 우리들 마음까지도 낙원에 사는 듯하다. 어디 그 뿐이랴, 이호우의 시조에 나타나는 마을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싶다고 했으니 반가움이 여기서 더하랴!
그러나 기쁨이 온 뒤엔 슬픔이 다가오고 밝음이 지나면 어둠이 오는 법, 그러기에 외로움 또한 없을 수 있으랴. 꽃들이 만발하고 각계각층의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드는 것을 보면 홀아비나 과부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짝 없는 청춘 남녀 또한 울적한 심사를 어이하랴. 특히 벚꽃 만개한 고적한 밤이면 더욱 그 심사가 외로움에 젖을 것이다. 이러한 심사를 잘 나타낸 시조 작품이 고등학교 시절 줄줄 외웠던 시조,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一枝)춘심(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 조 년 -
이화(梨花)는 배꽃이고 월백(月白)은 흰 달빛이다. 은한은 은하수를 가리킨다. 삼경은 새벽 11시에서 1시 사이, 즉 자시를 말한다. 뭉뚱그리면 시간적 배경이 깊은 밤이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휘영청 떠 있고 은하수가 길게 펼쳐진 봄밤이다. 나뭇가지에서는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데, 두견새가 어찌 나뭇가지의 춘심을 알 수 있겠느냐? 모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글 속의 작자)는 춘심이 깃든 나뭇가지 보다 더 심하게 다정의 병을 앓고 있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화조월석(花朝月夕:꽃피는 아침과 달 밝은 밤을 뜻하니 좋은 봄날을 말 함) 춘삼월이면 이조년의 시조를 되뇌어 본다. 아련한 향수에 젖기도 하고 괜스레 아지랑이 같은 봄날의 그리움에 젖어 보기 위함이다.
작년부터 이곳 방터골 산방에 살면서 새로이 봄을 맞이하고 있다. 역시 꽃피고 새우는 봄은 그 정서가 화려해도 여백엔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어찌 한잔 술이 없을 소냐. 그래서 봄날은 술의 계절이고 가을은 마음을 차분히 생각 속에 잠기게 하는 차(茶)의 계절인 듯하다.
앞서 이야기 했던 이원익의 시조 ‘녹양이 천만사’에서처럼, 하늘이 거두어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이 봄날에 울적한 심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박주 몇 잔에라도 취해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운 사람이 더욱 절절하게 생각나는 오늘 같은 봄밤엔 이조년의 시조를 읊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단소 가락에 마음을 실어보기도 한다. 여기서 그칠 것인가. 술잔 속에 매화 한 잎 씩 얹어 술을 마신다. 아니, 그리움을 취하도록 마시는 것이다.
30. 평범해 보이는 듯 하지만‥‥
- 이상룡의 ‘여름 고향’
나는 가끔 시(詩)를 쓰면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욕심을 부려왔다. 그럴수록 좋은 시는커녕 골머리만 아프고 시는 졸작에 머무르고 말았다.
신앙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전을 찾는다. 그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거나 성취할 욕심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열심히 믿으며 기도를 하는 중에 자신의 일이 잘 되면 기도발을 받았다고 하며 더욱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러나 이중에는 아무리 기도를 하고 부지런히 쫒아다녀 보지만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이 많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에 대해 점점 불신하거나 발길을 끊기도 한다. 이런 일은 모두 자신의 이익이나 욕심을 앞에 세우고 다니기 때문이다. 욕심이 성취되면 믿음을 더 강하게 갖고 욕심이 성취되지 못하면 불만에 차서 신앙심을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종교라는 곳이 어디 사람들의 욕심덩어리를 채워주는 곳이던가? 신전이라는 곳은 욕심을 채우는 곳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고 오는 곳인 줄을 모른다.
시 쓰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시(詩)라는 한자를 보면, 말이라는 뜻의 언(言) 자와 사찰이라는 뜻의 사(寺) 자가 합해진 말이다. 즉 신전에서 쓰는 언어인 것이다. 신전에서 쓰이는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아주 정제되고 순수한 깨달음의 언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시(詩)’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소리인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참, 좋은 시를 쓰는데 욕심이 앞 선 내가 어찌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겠냐고 자책을 해 보았다. 시 잘 쓰겠다는 욕심을 덜어내고 비워낼 때, 어둠 속에 둥근 달이 빛나듯 둥실 시의 향기가 빛나게 될 것이란 걸 알았다.
요즘 잘 썼다고 알려진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내면에는 이런 욕심덩어리의 언어들로 차 있는 걸 알 수 있다. 손끝으로, 머리로, 재주나 재치로 쓰는, 1회적이고 가벼운 맛을 내는 작품들이 많다. 왜 이런 시들이 많이 생산되겠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욕심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는 그런 작품을 보고 신선하다느니, 새롭다느니, 자기만의 개성이 있다느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과대포장 칭찬을 늘어놓다 보니, 시는 충만한 허기의 모습이 아니라, 가여운 허기의 몰골로 앉아 있다. 또, 평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나오면 시 잘 쓰는 작가가 된 듯 착각하는 마음가짐도 문제이다. 왜들 그리 민감한 눈으로 눈치를 살피며 작품을 쓰는지 ‥‥.
청사에 이름을 빛낸 임제의 시조나 황진이의 시조를 보면 아예 눈치 같은 게 없다. 오히려 세상을 덜 익은 조롱거리로 생각하고 우주를 비웃고 있는 기개를 느끼게 한다.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충무공의 말을 되뇌이지 않더라도, 무릇 작가는 그 무엇에도 눈치를 안 보고 누가 뭐라고 하든 형형한 정신의 붓을 들고 진리와 감동 앞에만 무릎 꿇는 당당한 시인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환경오염이 더해 가면서 인간의 몸뚱이 뿐 만아니라 영혼마저 오염되어 가는 것 같다.
자동차, 빼곡한 건물, 기계의 소음과 매연 속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사람들의 정서는 때 묻고 낡을 대로 낡아간다. 시골을 찾고 자연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대한 꿈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원래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많은 것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재주를 숨기고 있다. 큰 에너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향이나 자연을 배경으로 그려진 원형이 담긴 작품들은 현대 감각에는 무딜지라도 힘찬 삶의 에너지를 분출해내는 인간의 심장과 같은 작품이다. 그런 예로 이상룡 시인의 [여름 고향]을 소개한다.
여름 고향
이상룡
지금 쯤 고향 뜰엔
짚멍석 깔렸으리
그 위를 빗질하고
저녁상이 놓이고
풋고추 매운 입 다시며
가뭄 걱정 할 꺼야
박꽃이 별이 되어
지붕에 피었으리
토담집 어둠 속에
소쩍새 울음소리
모깃불 시름시름 피는 곳에
도란도란 말소리.
이상룡 시인은 1934년 경북 청송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시조 동인지로 유명한 ‘낙강(洛江)’의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5년 세종문화사에서 <소나무골 아이들>이란 시집을 상재하였다. 이 작품은 그 시집 속에 있는 동심의 시조이다. 39년 쯤 전에 쓴 작품이지만 언제 읽어 봐도 감동을 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따스하고 정겨움이 다가오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읽고 있으면 편안한 서정의 물결에 안겨 푸근해진다는 점이다.
시골에서 자란 작가는, 지금 쯤 고향 뜰엔 짚멍석이 깔렸겠다고 상상한다. 짚멍석은 시골에서 큰 일을 할 때 마당에 깔던 짚으로 만든 자리이다.
나도 어릴 때 멍석 위에서 저녁도 먹고 엎드려 여름방학 숙제도 하고 삼촌과 팔씨름도 하다가 할머니 옛날이야기를 듣던 기억이 난다. 또 밤이면 지붕위에 핀 하얀 박꽃을 보기도 했다.
작품의 시작을 ‘지금쯤’이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시어로 시작한다. 첫 수를 읽고 나면 이 말에는 도시 생활의 답답함과 분주함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도시 속에서 시골의 향수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종장에서 알 수 있듯이 고추를 찍어 먹으며 매운 입을 다시는 가족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작가는 이런 한 폭의 그림을 짚멍석 위에 펼쳐 놓은 것이다.
나는 작년 가을부터 이곳, 목계리 산방에서 지낸다.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심심산골에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에 시골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봄 초에 집 뒤에 박을 심어놓았더니 제법 자라서 줄을 뻗는다. 덕을 올려 주었다. 창문을 열고 보면 박의 잎과 줄기가 보인다. 좀 있으면 소담스런 박꽃이 피지 않을까. 설레고 기대가 된다.
이 시조의 둘째 수는 박꽃이 별이 되어 지붕을 오르고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풍경이다. 마당가엔 모깃불이 시나브로 타오르며 연기가 퍼진다.
모깃불 시름시름 피는 곳에
도란도란 말소리
아주 졍겨운 대목이다. ‘시름시름’과 ‘도란도란’은 호흡이 잘 맞아 여름 풍경 한 채를 떠받들고 있는 느낌이다.
시골의 아름다운 정경만을 묘사했더라면 감동이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뭄을 걱정하는 소박한 농부의 심정까지 읽을 수 있어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 시조가 끌리는 점은 ‘ 평범해 보이는 시조의 내면에 순진무구라는 비범함을 간직하고 있음’ 이라 할까?
내가 이따금 가는 양양 산속에 절이 하나 있다. 절이라기보다는 암자이다. 암자라기보다는 시골 촌로가 기거하는 옛집이다. 그곳에서 수행하는 거사 한 분을 만났다. 그 분은 가끔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 암자를 찾았을 때에 놀랍게도 그 나무는 인자한 부처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거사님, 재주가 용하시네요! 부처님을 손수 만들어내다니요‥‥” 나는 놀라서 말했다.
그 거사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부처님을 만들어내겠소이까? 나무 속에 원래 깃든 부처님을 찾아낸 것 뿐이라오,”
‘아!’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글이란 본시 순수하고 안정된 바탕에서 비롯된다. 생각 속에 욕심이나 망상이 떠 있으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글이 나오지 않는다. 좋은 시는 그 거사가 나무를 깎아 부처님을 찾아내었듯이,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원래의 시를 찾아내는 것일 것이다.
시인은 맑은 영혼을 그려내는 화가이다. 시인의 마음 그릇 안에 진리와 진실에 대한 신념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자연과 인간, 사물의 모습을 생명감 있게 그려내기가 어렵다.
시조 ,<여름 고향> 은 읽는 사람에게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한다. 시인 자신의 마음 안에 진실을 사랑하는 순수 무구한 자연에 대한 원형의 눈이 없었다면 이런 소박하고 정겨운 삶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어둠 속에서 평온을 머금고 선 토담집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해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듯한 작품이면서 아름다움의 원형적인 모습을 내포하고 있기에 비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31. 가을에 생각나는 월산대군의 시조
- 추강에 밤이 드니 -
자연과 사람이 같은 뿌리라는 데에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동식물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비슷하다. 특히 식물은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그 질서가 일정하다. 봄이 되면 싹이 돋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다가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죽어간다. 시든 뿌리 식물은 겨울이면 동면에 든다. 사람도 태어나서 자라고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며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늙고 병들면서 죽어간다.
그런데 자연과 사람이 좀 다른 것이 있다. 사람에게는 정서가 있어 느낌이 있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필링이 있는 것이다.
봄에 맞이하는 필링은 탄생과 성장의 아름다움이 있고 여름의 필링은 열정과 낭만이 있다. 가을은? 가장 강렬한 의로움이 있는 반면, 깊고 섬세한 외로움과 쓸쓸함의 필링이 있다.
사람의 일생도 가을이 오면 정리할 단계이듯이 자연도 마찬가지로 거두어들이는 수렴의 계절이 된다. 풍요로움과 강인함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가을이지만 그 두 배로 허전하고 쓸쓸함이 많은 것도 가을이다. 봄의 설렘 대신에 가을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거두고,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벌써 또 2013년의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은 여름이 있어서 그 진미를 더한다. 맹위를 떨치는 폭염으로 잠 못 들어 하다가 서늘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역학(易學)적으로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원래 상생의 기운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것은 상생이 아니라 상극의 기운이다. 여름에서 바로 가을로 넘어가면 가을이 뜨거운 여름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타버린다. 그래서 가을에서 여름 사이에 흙 기운을 넣어 불을 다스린 후에 가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름 열기를 식힌 기운이 가을을 조절하여 서늘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또한 풍요와 함께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깃들어 우수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인생의 풍요로움과 당당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도 가을이지만 서글픔 또한 가을처럼, 농도가 진한 계절은 없다. 이슬이 내리는 가을, 한가위 보름달을 가족과 함께 맞는 사람은 마음의 풍요로움이 어느 때 보다 클 터이지만 객지에서 달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서글픔이 앞 설 것이다.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 침상 앞에 밝은 달빛이 비친다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같구나
擧頭望明月(거두망명월) 고개 들어 바라보는 밝은 달이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그만 내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당나라의 시인 이백의 ‘靜夜思(정야사)’이다.
어느 객잔에서 잠을 자다가 깨니 문득 침상 머리에 달이 비친다. 커튼을 들추고 밖을 내다보니 서리가 내린 것처럼 뜰이 온통 희다. 희디 흰 달빛을 보니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여 잠을 이룰 수 없다.
달빛을 바라보는 여객(旅客)의 심사를 알만하지 않은가. 깨달음을 구(救)하는 선객(禪客)이라면 달빛을 보며 희열에 찬 소식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서정시인 이백은 한 사람의 정감어린 인간으로 돌아와 옛날의 그 호탕함도 잊은 채이다.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고향을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회한과 뼈저린 고독을 외치는 내면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끝 연에서 이백은 고향을 생각한다고 하였지만 어찌 그것이 고향뿐이겠는가. 소중했던 일상과 고달프고 괴로웠던 것들을 모두 ‘고향’이라는 주머니에 채워 넣고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 받는 당나라 때의 대표적인 시인 이백은 이처럼 진솔하게 삶의 가을을 노래하였으니 지금도 풋풋한 감성으로 우리들의 곁에 벗처럼 와서 속삭인다.
가을이란 절기를 맞이하는 것은 입추지만 가을의 절정은 상강(霜降)이다. 상강 무렵이 돼야 가을은 제 멋을 드러낸다. 상강은 여덟 번 째 절기로 한로와 입동 사이에 있다. 한로에는 이슬이 내리고 상강에는 서리가 내린다. 상강에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밤의 기온이 낮아 서리가 내린다.
옛날 중국에선 상강을 셋으로 나누어 상강 초입에는 승냥이가 산 짐승을 잡는다고 했고 중입에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조락의 기간으로 보았고 말입에는 벌레가 모두 잠을 자기 위해 땅 속으로 기어들어간다고 했다. 상강 무렵은 달이 꽉 차는 보름 전후 무렵이다. 상강의 달빛은 더욱 투명하고 깨끗하다. 한가위의 달빛이 풍성함을 나타낸다면 상강의 달빛은 맑은 물에 세수한 처녀의 얼굴이다. 담백하고 차갑고 그래서 더욱 고혹적이다. 달의 참맛을 보려면 상강의 달빛을 봐야 한다. 물소리 또한 어떠한가? 숲은 축척된 물을 눅눅히 익히고 익혀서 가장 정화된 물을 흘러 보낸다. 가을 풀벌레만큼, 청아한 물소리를 느낄 수 있다.
가을은 오행 중에서 금(金)의 계절이다. 금은 쇠나 황금을 뜻하지만 검(劍)이라고도 한다. 여름에는 식물의 기세가 강하여 검을 쓰면 검의 칼날을 상하게 한다. 그러나 가을에는 생장을 멈추기 때문에 검을 사용할 수 있다. 식물의 가지를 알맞게 잘라내어 쓰임에 맞는 재목으로 만드는 것은 가을의 검이다. 그래서 가을은 숙살(肅殺)의 기운을 갖는 정화의 계절이다.
또한 가을의 덕은 의(義)이다. 검을 쓰는 사람은 의로움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검사나 검객처럼 검자가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의로움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믿음의 친구를 말할 때에는 관포지교나 문경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믿음 보다 그 내면에는 의로움이 있었다. 만약 대의(大義)가 없었다면 관포지교나 문경지교라는 말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포숙아가 관중을 비호한 것은 관중이 소백을 도와 나라를 부강하게 하도록 하려는 포숙아의 의로운 뜻이 숨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인상여가 자신의 국가 조나라를 위하려는 큰 뜻이 없었다면 염파와의 우정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정과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단순한 정이 아니라 의로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구를 사귈 때에도 이익에만 급급하여 믿음을 갖는다면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강은 가을을 대표하는 절기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냉기는 의로움이다. 의로움이 있어야 친구 관계도 오래 가고 국가의 장래도 기대가 된다. 죽음을 초개 같이 여기고 나라의 혼맥을 세운 선인들의 살신정신은 바로 그 분들이 서릿발 같은 기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가을에 성삼문의 절명시가 돋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삼문의 절명시는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지며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선비의 기개를 읽을 수 있다.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西風日欲斜 서풍일욕사
黃泉無客店 황천무객점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황천길 가는 길에 북소리 재촉하고
바람결 해 저무니 장부 목숨 덧없어라
주막이 없는 길이란다 뉘 집에서 머물 건가
(성산문의 절명시를 필자가 시조로 번역한 글)
성삼문은 죽음 앞에서 처연한 심정을 대담하고 활달하게 시로 남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바르고 정대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선비 정신은 거슬러 올라가 저, 고려 말의 포은 정몽주 선생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아까워하지 않은 선비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지금도 국가를 떠받치는 대들보가 되어 온 것이다. 오늘날 국운이 신장되고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조상들의 선비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보여 진다. 강직한 성품과 지조는 나라를 위할 때엔 불굴의 정신으로 민족혼의 수호자가 되었던 것이다.
가을 서릿발 같은 성삼문의 절명시는 우리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해주며 나를 일깨우는 心劍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자신의 이익이나 직장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자들이 투쟁하는 그 모습과는 너무 대조를 이루지 않은가.
이처럼 가을은 서늘한 검기와 의로움을 상징하지만 그러기에 고독하고 쓸쓸함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이 우리 곁을 찾아왔을 때 우리는 내 안의 쓸쓸한 서정성을 가을 속에서 꺼내어든다.
쓸쓸함과 허전함이 가을 강에 비치는 달빛 같은 아름다운 옛 시조를 읽어본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홀로 오노매라
- 월산대군 -
월산대군은 누구인가? 왕의 적자였지만 정치세력 집단에서 가려진 아웃사이더였다. 정치적으로 지지리 운이 없는 사람이다.
수양대군인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등극하였다. 세조는 맏아들 의경세자가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의경세자에게는 월산대군과 동생 성종이 있었다.
의경세자가 죽으니 당연히 그의 아들 월산대군이 왕위에 올라야 했으나 그때 그의 나이 4세 밖에 되지 않으니 세조의 둘째인 예종이 왕통을 잇는다. 예종 또한 1년 남짓 왕노릇을 하다가 애석하게 죽으니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왕통을 이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양자를 들이는데, 그 양자가 의경세자 덕종(추증)의 둘째인 성종이다. 그러니 월산대군은 이래저래 왕권에서 제외된 인물이었다.
왕의 아들인 적장자로 태어나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았지만 세조 사후 정치적으로 소외된 인물이었기에 그가 가진 외로움의 무게가 족히 만근은 넘었을 것이다. 삼촌이 자기 대신 왕에 오르고 나중에는 동생이 왕위에 오르니 그때까지 신변에 위험도 얼마나 많이 느꼈을 것인가. 월산대군이 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풍류객이 되는 것이다. 쓸쓸함과 외로움에 사무친 세월은 울분과 비분마저 감자 썩듯이 썩었을 것 아니겠는가. 많은 조선의 왕들이 여인의 치마폭에서 단명으로 마친 것과는 달리 월산대군은 술과 스트레스로 꿈 낳은 생을 포기한 채 삶을 접었을 것이다.
시조 ‘추강에 밤이 드니’는 그의 미학과 인생이 담긴 한 편의 시조라고 여겨진다.
가을밤의 강물은 물결소리에서부터 고적함이 몰려든다. 찬 물결처럼 온통 세상이 춥고 비어있는 모습이다. 낚싯대를 드리워봐야 한 마리의 고기조차 물리지 않는다. 강물을 현실이라 놓고 보면 월산대군 주위에 정치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무심한 달빛만 빈 배에 가득히 싣고 오는 젊은 풍객(風客)의 쓸쓸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많은 고시조가 천편일률적으로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여 정치적인 색채가 짙었다. 그래서 시조의 격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위의 시조는 자신의 심정과 현실을 정조(情調)있는 가락으로 표현하였다. 2013년 지금에 와서 봐도 잔잔한 감동이 전해오지 않는가. 시조로서의 문학성 짙은 작품으로 크게 성공한 것을 알 수 있다. 시조 종장은 얼마나 의연하고 처연하고 멋들어진 표현인가. 가히 가을 강물에 반짝이는 서정의 금빛 비늘이다.
32. 천년 학이 춤을 추고…
겨울이 왔다. 옛시조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옛적의 겨울이 떠오른다.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어 정적(靜的)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동적(動的)인 계절이다. ‘노동으로 단련된 억센 남성의 근육과 찬바람, 눈보라 속을 헤치며 달리는 말, 허리에 비껴 찬 커다란 장검’ 이런 것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약간 벗어난 이곳, 얼음골에도 겨울이 왔다. 나는 밤에 홀로 앉았으면 저 변방에서 칼바람 섞인 북소리를 듣는 듯하다. 얼어붙을 것 같은 달빛에 날이 선 검의 칼날도 그려보고 있다. 낮에는 찬바람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배추 시래기가 제 맛을 내고 있다. 이 겨울, 눈과 함께 바싹 마른 예리함과 금속성의 울림을 즐기고 있다.
‘북풍, 눈, 소나무, 시래기’ 등은 겨울과 낯익은 것들이다. 여기에 관계된 시조 몇 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세상에 살다 보니 사람이 몸을 움직여 열심히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정신은 나약 할대로 나약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저 북쪽 변방을 지키던 김종서 장군의 기개 넘치는 시조 한 수를 읽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지지 않을까.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에라
- 김종서 -
하얗게 눈이 내려 얼어붙은 밤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어대고 밝은 달빛이 눈 속에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도성에서 만리 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북쪽 변방의 성에 올랐다. 큰 칼을 힘껏 짚고 서서 적의 침입을 눈여겨보고 있다. 휘파람 한 자락에 겁날 것이 하나도 없구나. 이런 내용의 시조이다.
혹한의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변방을 지키는 장수의 늠름한 모습이 다가오지 않는가. 그 믿음직한 모습은, 상상만 해도 추위가 가고 몸이 더워 옴을 느낀다. 김종서 장군은 몸집이 작았으나 날쌔고 민첩하여 별명이 호랑이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 땅을 넘보던 여진족을 평정하였다. 이 작품에는 여진족을 정벌한 장군의 기개가 넘치고 있다. 이러한 그가 어린 단종을 돕다가 수양대군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니 역사의 물길은 헤아리기가 실로 어렵다. 이 작품에서 ‘삭풍’과 얼음보다 찬 ‘달빛’, ‘일장검’에서 결빙의 아름다움이 살을 벤 것처럼 아리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는 눈, 소나무에 얽힌 시조를 보자.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獨也)청청(靑靑)하리라
- 성삼문 -
성삼문의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집현전 학사로 있으면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문장이 뛰어났다. 그의 시문은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다. 벼슬은 승지에 올랐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봉래산은 우리나라 금강산을 여름에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속의 산이기도 하다.
성삼문은 죽어서 봉래산의 낙락장송이 되겠다고 한다. 낙락장송은 소나무 중에 제일 키가 크고 가지가 휘휘 늘어진 노송이다. 즉 봉래산에서 제일 큰 소나무가 되었다가 흰 눈이 천지에 가득할 때엔 홀로 푸르게 빛날 것이라고 하였다. 단종 복위에 실패하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절개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충절을 노래하였다.
참으로 장쾌함이 깃든 멋진 시조가 아닌가.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기개와 절의를 지킨 충신, 성삼문의 치열한 정신은 결빙된 얼음보다도 더 강인하고 반짝인다. 또 다른 그의 시조에서도 이런 정신은 확인할 수 있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 진정 채미(採微)도 하는 것가
아무리 푸새옛 것인들 그늬 땅에 났더니
- 성삼문 -
수양산은 백이와 숙제가 들어가 은거한 중국의 산이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사람으로 주나라가 은을 멸하자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고 살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성삼문이 백이와 숙제에게 시조로 말한 것이다. 고사리도 주나라 땅의 나물이거늘 그렇게 절의를 지키려면 굶어죽는 것이 바르지 않았겠느냐 하면서 한탄을 하는 것이다. 즉 백이와 숙제의 어리석음을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선비정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소나무에 얽힌 시조 한 수를 더 보자. 아래 작품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의 시조이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임 계신데 보내고저
저 임이 보신 후에야 녹아지다 어떠리
- 정철 -
‘송림에 눈이 오니’의 시조에서 제일 멋진 대목은 초장이다.
송림은 소나무 숲인데 소나무 숲 위로 내리는 눈은 상상만 해도 그윽하고 힘찬 모습에 황홀하기까지 하다. 푸른 솔잎마다 흰 눈이 내리면 소나무는 우뚝한 겨울꽃나무가 되어 그 기품이 한결 돋보인다. 또 한편으론 수만 마리의 학이 날아와 앉은 모양을 하고 있으니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신령스럽기조차 하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이 초장 한 줄의 맛은 독립된 그대로 멋들어진 시 한 채이다. 앞의 시조 김종서의 시조나 성삼문의 시조는 기품이 있었고 정철의 시조에서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시조에서 초장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은 종장을 위한 것이기에 헌헌장부의 기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임금의 사랑을 얻기 위한 야심적인 의도가 있기에 권력의 야망이 내재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인 정철은 강직한 성품과 옳다고 여기면 임금 앞에서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면을 볼 때 인간적인 면모가 남다름을 알 수도 있다.
나름대로 남다른 지조와 절개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살맛을 내며 사는 사람일 것이다. 물질 또는 황금만능의 시대라고 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세워 지키고 사는 것’은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 만큼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바라며 세상 물결에 떠밀려 살다가 늙어버린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소회가 어떠할까.
세상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살아온 삶으로, 묵묵히 자신의 글을 써 온 시인! 이런 시인은 그 삶 자체가 최고의 작품이고 최고의 상(賞)이다. 오늘날 현대시인중의 한 분을 들라고 하면 이기라 시인이 그런 분이다.
배추시래기
이기라
고갱이서 밀려난 시퍼렇게 서러운 잎
항아리도 들지 못해 덧쌓이는 소외감을
줄줄이 타래로 엮여
뒷벽에서 달래는가.
젖은 몸 마르도록 떨며 보낸 추운 날들
만지면 바스러질 외로움만 남았어도
순수한 섬유질 뼈대
지켜내고 있음이여.
이 시조는 지난 9월 이기라 시인께서 낸 ‘지푸라기 한줌’이란 시조집에 실린 글이다. 그는 서두에서도 게으름 탓에 첫 시집을 내었다고 겸손해 하면서 겨우 환 됫박의 조밥을 지었다고 하였다. 요즘 먹거리에 조밥 엿볼 식객이 있겠느냐며 30성상 손에 쥔 것이 고작 한 줌 지푸라기 같다고 말을 줄이며 맺으셨다.
시조 ‘배추시래기’에는 선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배춧잎의 한 생이 매우 서글픈 색감으로 다가오지만 잘 읽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있다. 나름대로 삶에서 지조를 지켜내며 온 것에 대해 긍정적이다. 밀려난 삶, 그래서 겪어야 하는 서러움, 소외감 이런 것들을 안으로 품고 달랜다. 떨며 보낸 추운 인생길이었지만 순수한 섬유질 뼈대를 지켜온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다. 푸른 배춧잎 같은 인생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겨울철에 낯익은 소나무, 눈, 바람, 배추시래기 같은 재료의 시조 작품을 읽어보았다.
김종서, 성삼문의 지조와 기개, 정철의 시조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미학은 현금(現今)에 와서 이기라 시인의 시조 ‘배추시래기’에서 현대적 지조와 아름다움으로 다시 환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1976~7년 무렵, 류제하 시인이 손잡아 주셔서 내가 끼어들 수 있었던 삼장시 동인,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다. 그 때 선배 동인으로 활동 하시던 이기라 시인이었다. 얼굴을 직접 뵙지는 못하였지만 좋은 작품을 통해 시조를 배우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시집을 보내주시었다. 그 당시 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던 시조시인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유재영 시인이고 다른 한 분이 바로 이기라 시인이셨다. 그러니 이 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으랴. 여담으로 글의 말미에 보태었다.
오늘은 우리 집 산방에도 눈이 날린다. 멀리 커다란 노송 숲에 눈이 내려 앉는다. 송림에 눈이 오니 천년 학이 춤을 추고 ….
33. 봄빛 머금은 시조
- 김남환 ‘바람’, ‘자책’
- 김승규 ‘다시 봄 앞에’
- 김용태 ‘신록, 그 태초의 빛’
봄이다. 봄바람이 솔솔 분다. 봄빛 머금은 몇 편의 시조를 이야기하기 전에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보려고 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상의 기(氣)를 말하는데 바람이 분다는 것은 공기(空氣)의 이동을 뜻한다. 우리가 숨을 쉴 때는 공기를 들이마시고 뱉는다. 그러니 바람은 우리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생명의 요소이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연의 지리를 살필 때에도 우리는 풍수지리(風水地理)라고 하여 풍(風)자를 앞에 두었다.
성씨(姓氏)의 기원도 살펴보면 인류 최초의 성씨(姓氏)는 풍씨였다고 한다. 고대 문헌을 보면 인류 문명의 창시자라 여기는 동이족의 태호복희씨(太昊伏犧氏)의 성(姓)도 풍씨(風氏)였다고 한다. 문헌에서는 태호복희씨가 풍산(風山)이란 곳에 살았기에 풍씨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람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기에 아마 풍씨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호복희씨는 산동성에 살았으므로 오행 중에서 목(木)의 기운을 따랐는데 목(木)이 바람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풍(風)은 복희 8괘에서는 서남방의 오손풍(☴)에 해당한다. 손괘(巽卦)는 천지의 비밀이 새어나가고 흐트러지는 문이다. 맨 아래 초효는 음효가 앉았으니 음기는 탁하고 무거워 아래로 내려가는 상을 갖고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음효 위에 바로 양효가 앉았으니 음양이 조화되어 즐거움이 깃드는데 맨 위의 3효는 음효와는 거리가 멀어 서로 상통하지 못하니 떠돌아다니는 기운이 된다. 맨 위의 3효로 인해 바람이 흩날리게 되는 것이다.
오손풍에 들면 바람이 든다. 아래로 숨어드는 기운도 있다. 바람이 흙에 들면 무너지고, 화(火)를 만나면 불길을 거세게 하고, 물(水)에 들면 물결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엔 바람이 주위를 맴돌면 남녀 간의 연정을 솟게 하지만 몸속에 파고들면 풍병(風病)이 드는 것이다.
사계절마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은 ‘봄 춘’ 자(字)를 써서 춘풍(春風), 여름바람은 ‘더울 열’ 자를 써서 열풍(熱風) 가을은 맑음을 나타내는 청풍(淸風), 겨울은 눈과 차가움을 나타내는 설한풍(雪寒風)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봄을 뜻하는 ‘춘풍(春風)’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춘(春)은 봄을 뜻하지만 남녀 간의 정(情)을 나타내기도 한다.
바 람
김남환
어찌해 저문 가슴에
수상한 바람이 일어
깊이 잠든 불씨 하나 흔들어 깨우는가
폭포는 세월을 뚫고
세월은 나를 뚫는데
내가 언제 꽃이기를
바라고 살았던가
지는 가을을 주워 살 속에 심은 눈물
연분홍 바람이 되어
긴 적막 두드린다
- 여성시조 2013년 16집 -
황진이의 시조에 보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춘풍’의 ‘춘’자는 봄을 뜻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남녀가 그리워하는 연정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연정으로 가득 찬 이불’이라 할 수 있다. 김남환의 ‘바람’ 작품에서 수상한 바람은 춘풍임을 알 수 있다. 그 춘풍이 잠든 불씨를 깨운다고 하였다. 앞에서 바람이 화(火)를 만나면 불길이 거세어진다고 했다. 천년 고목의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피니 그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 수, 또한 잔잔한 봄날의 서정 같은 노년의 여심(女心)을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다. 첫 수 종장은 무릎을 칠 정도로 절장(絶章)이다. ‘폭포는 세월을 뚫고 / 세월은 나를 뚫는데’ 이 얼마나 장쾌하고 멋진 말인가. 혼을 빼내는 목소리다. 한 여인의 섬섬옥수로 빚은 시조라고 누가 말 하겠는가? 원로 시인께서 중후한 인생 감정을 다스려나가면서도 여성적인 섬세한 감성이 용의 비늘처럼 번뜩이지 않는가. 조선시대 황진이가 여성적인 미감(美感)으로 서정의 꽃을 피웠다고 한다면, 김남환은 여성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활달한 멋스러움도 함께 드러낼 수 있는 시인이다. 가히 천하일품이다.
시조미학 2014년 상반기에 발표한 단시조 ‘자책’도 명품이다.
자책(自責)
김 남 환
문득 정신을 켜니
겨울의 한복판이네
봄을 막 흩뿌리고 가을을 구겨버린 죄
그믐달 날 선 눈초리
정수리를 내려치네
- 시조미학 2014년 상반기호 -
오행 중에서 글자의 의미를 보면 금의 기운이 강한 시조이다. 시어(詩語) ‘켜니’, ‘가을’, ‘구겨버린 죄’, ‘눈초리’, ‘정수리’, ‘내려치네’ 등에서 감지할 수 있다.
봄을 막 흩뿌리고 가을을 구겨버렸다는 대목은 의욕 넘치는 삶으로 시작하여 잘 거두지 못한, 우리네 인생의 거대한 시간을 한 묶음에 표현한 명구(名句)가 아닌가. 참으로 눈을 씻고 다시 읽어야 할 구절이다.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는 시기이지만 정신은 푸른빛이 도는 빙판처럼 더 투명해진다. 원로 시인은 어느새 인생의 겨울에 들어서서 돌아보니 가을을 구겨버렸다고 자책한다. 어느 누가 있어, 감히 자신의 인생을 혹독하게 들여다보았을 때 잘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두려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에 대해 진정한 책임을 묻는 시인의 가혹할 정도로 냉철한 모습이 오히려 경건하기까지 하다. 왜냐?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조의 율과 격이 꽉 짜여진 단단한 매무새를 보면, 얼마나 치열하게 시 앞에 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대충 얼버무려놓고 시조라 발표하는 필자인 나를 비롯한 그런 부류의 시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김남환의 시조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활구(活句)이다.
진정 봄이 오고 있는 것인가? 강릉의 이곳 방터골은 2월 초부터 한 열흘간 눈이 억수로 내려 거의 2m나 쌓였다. 103년 만에 처음으로 많이 내리는 눈이라 하였으니….
작년에 5,000원 씩 주고 복사꽃 묘목을 세 그루 사서 집 앞 개울 옆에 심어놓았다. 2-3년 후엔 복사꽃이 피고 꽃잎이 흩날리면 우리 집 앞 작은 개울물 위를 동동 떠내려가는 상상에, 즐거운 마음으로 심어놓았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쓴 시조가 ‘도원(桃源)의 봄’이었다. 다시 한 번 옮겨 본다.
맑은 하늘빛이 멀어서 더 은은한 날
복사꽃 지고 나니 봄도 이리 풀려나네
물결에 떠가는 꽃잎 도원인 줄 알거나
그대 혹여 꽃잎 보고 내 집을 찾아들면
큰 박주 항아리에 세속을 띄우리라
근심도 맛들이기 나름, 함께 취해 보세나
- 남진원 ‘도원의 봄’ -
그런데 이번 폭설에 복사꽃 묘목이 꽤 자랐는데, 가지가 눈에 휘어지고 부러졌다. 눈을 파헤치고 두 그루는 바르게 세워놓았는데 한 그루는 가지가 기어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눈을 파헤치니 땅 속에서는 이미 파랗게 풀이 자라고 있었다. 그 눈이 오히려 포근한 이불 역할을 한 것 같았다. 봄이 왔음을 눈 속에서 알게 되었다.
봄은 늘 설렘을 주었지만 3년 전 아내를 떠나보내고 나서 이젠 설렘 보다는 조용히 봄을 바라보게 되었다. 함께 봄을 맞으며 즐거워하던 귀한 사람들이 하나 둘 곁에서 떠나가니 봄을 보는 것을 어찌 웃음만으로 대할 수 있겠는가.
다시 봄 앞에
김승규
나이 탓만은 아니려니 유난히 긴 겨울
죽은 듯 마른 가지 툭툭툭 망울 벌어
또 한 번 부신 봄빛이 문을 열고 있구나
해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눈뜨는 봄
겨우내 가꾼 아픔 불꽃으로 피어나
식은 피 잘잘 끓여서 가슴 설레게 하더니
다들 어디 갔나 봄을 함께하던 그들
왁자한 잔치 문전 하릴 없이 서성이는
그립고 서글픈 봄이 이제 몇이나 남았는지
- 시조미학 2013년 하반기호 -
나이 탓만은 아니라 해도 어찌 나이를 무시할 수 있을까, 나이가 무거워지니 겨울도 길어지는 느낌이리라. 마른가지에 눈망울이 트니 신기하고 새롭고 환상적인 일이 아니랴? 자연스런 이치이지만 자연스러운 게 가장 비범한 일이란 것을 알 것 같다. 김승규 시인은 봄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에 대해 얼마나 환희롭게 맞이하고 있는지 종장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둘째 수 종장도 감칠 맛나고 실감나는 대목이다.
‘식은 피 잘잘 끓여서 가슴 설레게 하더니’
‘식은 피’라는 대목이 평범한 글귀가 아니다. 나이 들어 맞이하는 봄은 환희의 즐거움보다 서글픔이 앞서는 것은 연륜이 깊어지는 모든 분들의 마음일 것 같다. 봄은 왁자한 잔치 문전인데도 하릴 없이 서성이는 서글픈 봄이다. 앞의 김남환 시인의 시조 ‘자책’에서는 ‘인생의 가을을 구겨버린 삶’에 대해 자책한 시조라서 서글픔이 컸는데, 이 시조에서는 생동감 있는 새 봄의 문턱에서도 봄을 맞이하는 서글픔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의 소재는 조금씩 달라도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봄의 즐거움을 서글픔으로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랜 인생살이에서 아름다운 것일수록 아픔이 크고 또한 급하게 떠나가는 것을 알았으리라. 득도(得道)한 듯한 삶의 경지에서 맞이하는 새 봄의 느낌이라고 여겨진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글귀이지만 거대한 바람을 몰아오는 잠력(潛力)을 알 수 있는 명시조이다.
신록, 그 태초의 빛
김용태
태초의 빛이라면 생명의 빛일 터
카오스의 제일성(第一聲)이 ‘말씀’이라 하셨다면
더불어 솟아나온 건 초록빛이 아니었을까.
손으로 그린 건 아니, 붓으로 칠한 것도 아닌
속에서 터져 나와 한꺼번에 뿜어 솟는
푸른 물, 저 떨림을 봐 너와 난 태초에 있다.
- 시조미학 2013년 하반기호 -
김용태의 시조 ‘신록, 그 태초의 빛’을 읽으면 장엄함을 느낀다. 봄 속에서 터져 나와 한꺼번에 내뿜는 신록의 빛 앞에서 우리는 그냥 놀라워 할 뿐이다.
봄은 방위로는 동방이요 색으로는 초록색이다. 해가 떠오르는 곳은 생명이 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록이 뿜어내는 신록의 떨림을 보고 태초에 있다고 한 시인은 김용태 시인이 처음인 듯하다. 봄을 맞는 현상을 우리 모두 태초의 자리에 있다고 한 싱그러움! 어린이 같이 기뻐하며 신록의 빛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노래하는 천진한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 시인의 마음에 찬사를 보낸다.
나이 들어 관조의 경지에서 보는 봄! 서글픔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역시 봄의 기운은 생명의 빛이다.
34. 바람소리와 흰 달빛
- 김광자 - ‘대관령 옛길’
- 정소파 - ‘죽풍사(竹風辭)’, ‘새안도(塞雁圖)’
강릉에서 그 옛날 한양으로 걸어 올라가는 선비들의 길이 있었다. 이름 하여 ‘대관령 옛길’. 신사임당은 대관령을 넘으며 ‘사친(思親:어머님 그리워)’이란 유명한 시에서 ‘언제나 강릉길 다시 찾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 것인가 何時重踏臨瀛路(하시중답임영로) 更着班衣膝下縫(갱착반의슬하봉)’라며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지금은 등산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오르내리며 심신을 달래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길이 되었다. 지역의 향토색과 서정이 교감하는 시조 작품, 김광자 시인의 ‘대관령 옛길’ 단시조 한 수가 눈길을 끈다.
대관령 옛길
김광자
깊은 산 계곡 바람
조는 봄 일깨울 때
돌 틈에 흐르는 물
얼음 속 문을 연다
봄볕에 버들강아지
춘삼월로 피고 있다.
( 현대시조 2014년 봄호 )
봄을 일깨우는 건 계곡의 바람이다. 춘풍(春風)은 겨울의 눈을 녹이고 잠들었던 식물의 잠을 깨운다. 생명의 기운을 틔우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의 근본이 되는 문왕 8괘에서 바람 괘는 동남 간방(艮方)에 있다. 바람이 비를 몰아오고 식물은 물을 빨아들여 고개를 쳐든다. 바람이 봄을 일깨우는 것이다. 물은 만물의 생명을 키우는 원소이다. 우주의 구성요소인 오행, 목 화 토 금 수에서 물을 뜻하는 수(水)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던 겨울 문을 열고 나와 힘차게 봄을 알리는 것이다. 이때 햇볕은 불의 기운을 보내주고 식물은 광합성작용을 하면서 세상의 모습을 초록빛으로 바꾼다.
위의 시조에서 보면 대관령 깊은 산 속 계곡의 바람인 춘풍이 봄을 일깨운다고 하였다. 강릉의 봄이 대관령에서 움트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대관령 옛길에서 자라는 봄의 기운도 물과 불의 조화로운 기운에 의해 비롯되고 있음을 시조로 보여주고 있다. 천지 만물, 계절의 변화를 미적(美的)인 안목에서 그려낸 작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담하고 조용하며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것 같지 않은가.
봄을 일깨우는 바람은 부드럽고 풀 향기가 난다.
이번에는 정소파 시인이 그려낸 ‘죽풍사(竹風辭)’의 대나무와 바람, 기러기를 소재로 한 ‘새안도(塞雁圖)’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대나무와 바람은 한적함을 주고 가을 하늘에 날아다니는 기러기는 외로움을 전한다. 동풍은 따뜻한 바람이고 남풍은 더운 열기가 포함된 바람, 서풍은 서늘한 바람, 북풍은 차가운 바람이다. 봄엔 동남풍이 좋지만 여름엔 서풍이 제격이다.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바람이 좋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나무 밭을 휘돌아 나오는 바람은 맑고 깨끗하여 청량감을 준다.
죽풍사(竹風辭)
정소파
찬 달빛 금물결 져 술렁이는 한 밤 대숲
맑은 꿈 깨어 일어 뜨락 바자니다
서걱여 부딪는 잎들 옥패(玉佩) 서로 닿는 소리
머언 하늘 둘레 영원 거기 아득한 데
굳은 절개로 선 기인 마디 굵은 대숲
스치어 빠져 나가는 옥소(玉簫) 끝에 지는 소리
내 잠시 멈춰 살다, 가는 뜻도 이렇듯이…
머물다 가는 바람 향도 맑은 그 내음새
하늘가 소소리치다, 옥쇄(玉碎)하듯 자는 소리
( ‘시조문학’, 1979년 겨울호 )
정소파(鄭韶坡)시인은 본명이 현민(顯珉)이다. 1912년 광주에서 출생하여 2013년 102살로 작고하였다. 이 작품은 정소파 시인이 1979년 시조문학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선생은 한국의 자연을 서정미 넘치는 정한(情恨)의 세계로 형상화하는데 힘을 쏟았다.
위의 시조 작품은 대나무와 바람이 짝을 이루어 풍경미와 서정미가 넘쳐나는 작품이다. 달빛에 비치는 금빛 물결 술렁이는 대나무 숲은 신비감마저 든다. 거기에 소슬한 바람이 불면 대바람 소리는 얼마나 은은하고 아름다운가. 그 비경의 소리를, 첫 수에서 옥패가 서로 닿는 소리로 표현하였다. 옥으로 만든 패물을 찼을 때 서로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맑고 향기가 나는 듯하다. 첫 수가 현상의 세계를 드러내었다고 한다면 둘째 수는 절개와 충절을 표상하는 대나무를 표현하였다. 둘째 수의 바람소리는 옥으로 된 퉁소 소리로 비유하였다. 선비와 예인(藝人)의 모습이 어우러져 고아(古雅)한 정취가 묻어난다. 셋째 수는 생의 마지막을 살다가는 모습을 그렸다. 옥쇄하듯 자는 소리로 고요히 떠나가는 삶과 죽음이 시조의 결구를 이룬다.
청풍(淸風)과 대숲, 옥패와 옥퉁소, 옥쇄는 서로 긴말한 관계를 맺는다.
옥패(玉佩)는 몸에 차는 패물이기에 존재에 대한 상징이라면 옥소(玉簫)는 사방으로 전하는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이다. 따라서 존재의 활동성을 의미한다고 보면 옥쇄(玉碎)는 옥이 아름답게 부서지는 소리인데 그것은 고요로이 자는 듯 떠나가는 죽음의 모습이다. 향 맑은 고요로움은 천상의 세계인 듯하다.
맑고 아름답게 댓잎처럼 일생을 살다가는 삶의 지향을 그려놓은 듯하다. 대나무는 속이 비었다. 현실의 물질에 대한 욕심을 비우고 삿되고 번거로운 생각들을 비운다. 곧게 뻗어나가는 것은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 또한 세상과 조화를 하지만 속세에 현혹되지 않는다. 바람에 유연하게 흔들리지만 그 곧음은 정직의 표상이다.
대나무를 보면 좋은 선비를 만난 듯하고, 인품 있는 사람을 대하고 있으면 푸른 대나무를 보는 듯하다.
선비의 곧은 모습처럼 대나무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맑게 해 준다. 대나무는 약초로도 우수한 효험이 있다. 대나무의 안쪽을 깎아낸 것은 위(胃)의 열을 내린다. 또한 기침이나 가래를 없애고 수면을 도와준다. 대나무 꽃은 죽화(竹花)라고 하여 60년이나 120년 만에 한 번 핀다고 한다. 대나무의 평균 수명을 20년으로 본다면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죽는 대나무가 얼마나 많은가. 선비들이 살아가는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에 급제하여 세상에 공헌하는 선비가 드문 것도 이와 비슷하다. 대나무 꽃은 잎이 나는 자리에서 피어난다. 그러고 나면 대나무는 잎을 피우지 못하기에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어린 순(筍)은 죽순이라 하는데 봄에 돋아난다. 죽순은 영양가 있는 식품으로도 이용한다. 비타민 E와 C 섬유소, 리그린, 펙틴 등이 함유되어 있고 고혈압과 변비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음은 죽순과 관련된 옛이야기 한도막이다.
옛날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에 맹종(孟宗)이라는 젊은이가 병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겨울날 맹종의 어머니가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이 겨울에 죽순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맹종은 대나무 숲에 가 보았다. 대나무는 흰 눈에 덮여 있었다. 맹종은 죽순을 구할 수 없기에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 눈물이 눈을 녹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죽순이 올라왔다. 맹종은 이 죽순을 캐어 어머니께 삶아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고 하였다. 이때부터 ‘맹종설순(孟宗雪筍)’이라는 말이 생겼다.
식물 중에서 충절과 절개의 상징이 대나무라면 하늘을 나는 새 중에는 기러기가 있다. 정소파 선생의 시조 새안도(塞雁圖)를 감상하기 전에 기러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고 싶다.
기러기는 가을에 찾아왔다가 이듬해 봄에 떠나가는 철새이다. 어린 시절 자주 부르던 동요가 떠오른다. (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 산 넘고 물을 건너 머나먼 길을 / 훨훨 날아 우리 땅을 다시 찾아 왔어요 / 기러기들이 살러 가는 곳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너는 알고 있겠지 )
위의 가사는 윤석중 선생의 동요로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약간은 외로움이 묻어나고 얼마쯤은 정겨움이 묻어나는 노래였다.
‘ 기러기’하면 외로움이 떠오르지만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는 새로도 알려져 있다. 일생을 함께할 신랑 신부 혼례상 위에는 기러기가 올라앉는다. 처음엔 혼례상에 살아있는 기러기를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사용하였다. 혼례상에 기러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 이유에서라고 한다. 첫째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기러기는 자신의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개가 강한 동물인 것이다. 둘째는 상하의 질서와 예를 잃지 않는다. 세 번째는 흔적을 확실히 남긴다는 것이다. 결혼하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기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러기는 쓸쓸함보다는 행복을 찾는 사랑의 요소를 지녔다고 하겠다.
그러나 ‘기러기’는 서러움, 쓸쓸함의 상징으로 더 많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기러기가 들어있는 글에는 대개가 슬픈 정조를 띄고 있다. 봄에 찾아오는 새들은 희망과 기쁨의 느낌이 든다. 그러나 가을에 찾아오는 새들을 보면 쓸쓸해진다. 봄과 여름은 따뜻하고 더운 양기(陽氣)를 머금었고 가을과 겨울은 서늘하고 차가운 음기(陰氣)를 머금었기 때문이다. 제비가 봄에 떠나가고 가을에 찾아온다면 제비는 슬픔의 새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기러기는 봄에 떠나갔다가 가을에 찾아온다. 그래서 서러움이나 쓸쓸함을 노래할 때에는 기러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기러기가 아름다움에 민감한 새라는 뜻으로 전해오는 고사성어가 있다. 침어낙안(浸魚落雁)이 그것이다. 침어(浸魚)는 고기가 물밑으로 가라앉는다는 뜻이고 낙안(落雁)은 기러기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월나라의 미인 서시가 강물에 그녀의 모습을 비추었는데 물고기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취해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 침어(浸魚)이다.
‘낙안(落雁)’은 한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 왕소군과 기러기에 얽힌 말이다.
한나라는 북방 흉노족의 침입으로 잠시도 편안하지 않았다. 원제는 흉노족과 화친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면 황실의 공주를 선우(흉노족의 임금)에게 시집보내야 했다. 공주를 이역만리 보내는 것은 걱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생각해 낸 것이 궁녀를 공주라고 속여 시집보내는 것이었다. 원제는 잠자리에 들 때 자신이 데리고 있는 많은 궁녀를 다 살펴볼 수 없어 화공에게 그림을 그려 놓으라고 하였다. 그것이 궁녀 화첩이다. 원제는 궁녀 화첩을 보고 제일 못 생긴 궁녀를 지목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공주라고 속여 선우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드디어 궁녀화첩을 보고 뽑은 궁녀가 황제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왔다. 그 궁녀를 본 원제는 깜작 놀랐다. 제일 못 생겼다고 뽑은 궁녀가 절세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무도 뛰어나고 교양도 뛰어난 궁녀였던 것이다. 그녀가 바로 왕소군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제일 못 생긴 궁녀를 보내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저렇게 아름다운 궁녀가 간택된 것일까? 원제는 사실을 알아보니 궁중의 화가(畵家) 모연수가 일부러 못 생긴 모습으로 그린 것을 알았다. 모연수는 왜 왕소군의 모습을 못 생긴 모습으로 그렸을까. 궁궐에 있는 많은 연인들이 황제와 잠자리를 하려고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고 그림을 잘 그려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왕소군은 전혀 뇌물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 모연수는 왕소군의 모습을 가장 추하게 그려놓았던 것이다.
왕소군은 북방의 길에 올랐다. 바람은 따뜻하고 맑고 푸른 날이었다. 얼마 쯤 가다가 보니 기러기 떼가 날고 있었다. 기러기의 모습을 보니 두고 온 부모와 고향 생각이 나서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녀는 말 위에서 슬픔이 담긴 노래를 비파소리로 그려내었다. 그때,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왕소군의 미모와 아름다운 연주소리를 듣고 날아다니는 것을 잊고 땅에 내려앉았다. 이때부터 ‘낙안(落雁)’이란 말이 생기고 낙안은 왕소군의 미모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왕소군이 흉노로 간 뒤부터 왕소군이 사망할 때가지 흉노의 침입은 없었다고 하니 한 여인의 힘이 천하를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미인이 권력’이라는 말이 아마 여기에서부터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당(唐)나라 측천무후 때의 시인 동방규(東方叫)와 대시인 이백(李白)은 왕소군의 비애와 슬픔에 대해 ‘소군원(昭君怨)’이란 유명한 시를 지었다.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왕소군이 옥 안장을 떨쳐내고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말 위에 오르니 붉은 뺨에 눈물이 어리는구나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의 궁녀이지만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내일 아침은 오랑캐의 첩이 되어 있겠구나
- 이백(李白)‘의 소군원(昭君怨) -
이백이 쓴 시는 왕소군이 떠나는 슬픔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면 동방규가 쓴 아래의 시는 흉노에 도착한 왕소군의 서러운 심사를 드러내는 시라 할 수 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흉노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春來不出來(춘래불출래)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저절로 옷의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허리의 몸매를 위함이 아니었구나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으니 몸단장을 할 일이 없겠다는 시를 쓴 것이다. 젊은 여인이 이국 땅 멀리에서 고적하게 고향과 부모를 그리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 그것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기러기의 외로움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기러기를 소재로 한 정소파 선생의 새안도(塞雁圖)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이다.
새안도(塞雁圖)
정소파
담묵(淡墨) 배어 번진 산영(山影) 누운 소등 휘움한 골
성긴 소나무들 늙어 듬성 빠진 머리
내 비춘 달빛을 받아 먼 하늘이 어린다
찬 달은 둥글어도 호젓한 변방이라
기러기도 소리 죽여 삼가 넘는 강둑인데
연옥빛 또 한 추명 하늘 밖에 멀구나
한줄기 그림자가 잡힐 듯 아슴한데
흰 달빛 한 밤 되면 강물도 출렁이고
오마던 그 사람마저 끊긴 소식 아득해라
( ‘시와비평 시조와비평’, 2014년 봄호)
정소파 선생의 ‘새안도’라는 시조 작품이다. 첫 수에서 골짜기의 모습을 그렸다. 산 그림자의 모습을 담묵(淡墨)이라 하였다. 담(淡)이란 글자는 ‘담담하다’, ‘묽다’는 뜻이다. 물과 불을 합성한 회의자(會意字)이다. 물과 불이 적절히 만나면 아주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이니 묽다고 한 것이고 담담하다는 뜻이다. 산 그림자를 이렇게 묽은 먹물의 색에 비유하였다. 시인의 정감이 참 포근하고 정겹다. 산의 골짜기는 누워있는 소등 같고 소나무도 듬성듬성 서 있어서 적막한 느낌이 든다. 산등성이로 달빛이 비추니 쓸쓸함이 어려 있다. 변방의 산과 강둑을 넘어 오고 가는 기러기의 모습이 보일 듯하다.
선생께서는 가을의 모습을 연한 옥의 색깔에 비유하였다. 앞의 시조 ‘죽풍사’에서도 ‘옥(玉)’에 대한 시어가 많이 나왔다. 대숲 술렁이는 소리를 옥패 부딪는 소리로 생각하였고 굵은 대숲을 빠져나가는 바람소리는 옥퉁소 소리로 나타내었다. 대숲에 머물다 사라진 바람소리는 옥쇄하듯 자는 소리라 한 것을 보면 더욱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맑고 깨끗함, 청아하고 고아함, 정갈함 등을 귀한 옥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보면 시인의 마음 또한 옥같이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수에 이르면, 온다던 사람들의 소식마저 끊겨서 아득하다고 하며 설움을 극도로 표출하였다. 우리민족이 고향을 등진 채 두만강을 넘는 슬픔의 역사를 그려놓았다. 또한 분단의 아픔을 한(恨)의 가락으로 새겨놓았다. ‘새안도’ 작품 발표 말미에 써 놓은 아래의 <시작메모>에서도 짐작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다지도 설워 오는 것이냐? 저 잃어버린 강둑! 두만강 너머로 울며 떠나가던 겨레붙이들이 하염없이 뒤돌아보며 못 잊어 울고 갔다. 그들이 떠난 뒤로도 산하는 말이 없고, 강물만 밤이면 목 놔 보채듯 흐느꼈다. 세월은 덧없이 가고 소나무도 늙어 쇠잔한 이파리들이 여위어 빠져간다. 저 슬픈 국경을 수자리하듯 몇 마리 기러기 떼가 조심스레 넘어가고, 넘어온다. 그것은 긴 어두운 시절의 일이라 치더라도 오늘의 분단은 그에 못잖은 우리의 통한으로 사뭇 가슴을 치는 것이라 할지니…」
글을 마무리할 차례이다. ‘바람’, ‘대나무’, ‘기러기’, ‘달빛’은 다정함과 쓸쓸함이 함께 섞여서 아름다움과 잘 어울리는 말들이다. 계곡의 봄바람, 대바람 소리, 흰 달빛, 기러기에 깃든 격조 높은 시조 작품을 만나보며 얽힌 주변 이야기도 꺼내 보았다.
‘대관령 옛길’, ‘죽풍사’, ‘새안도’ 등 청아하고 맑은 시조들은 감성을 자극하며 서정의 뜰에서 옥패 닿는 소리와 같은 울림으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하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