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돌이켜보니, 이제 UX 분야도 충분히 성장했다고 당당하게 말해도 될 것 같다. Tobias van Schneider, Jennifer Aldrich, Chase Buckly(역: 저자) 같은 UX 에반젤리스트(evangelist)들이 이끌어가는 미래도 창창해 보인다. 구석구석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사소한 경험에서 새로운 자극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미래 말이다.
그럼 그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있을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이루어지는 인터랙션을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멀리, 2017년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있을 획기적인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다.
1. 실패 매핑하기 (Failure Mapping)
성공을 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실패로 얻는 교훈을 되새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Bill Gates
저니맵(journey-map)과 유저 플로우(user flows)는 UX 디자인의 필수 요소이다. 이들은 유저와 서비스/프로덕트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본적인 틀이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로덕트/서비스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이상적인 유저를 상정하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이지 않은 유저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초보 유저가 많아지면서 서비스/프로덕트를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급증할 것이다.
2017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 고연령자나 Global South(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개도국, 중동)의 사람들처럼 처음 인터넷을 경험하는 ‘디지털 초보자’도 무서운 기세로 늘어나고 있다. 이상적인 유저와는 달리 초보 유저들은 프로덕트/서비스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journey mapping이 아니라 failure-mapping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프로덕트를 어떻게 ‘잘못’ 사용할 것인지 예상해 보고 실패에 대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두어야, 점점 많아지는 초보 유저들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2. 마이크로-미니 인터랙션 (Micro-Mini Interactions)
2015년에는 마이크로인터랙션(Microinteractions)이 인터넷 여기저기서 화두였다. 마이크로인터랙션이란 하나의 태스크에 기반한 인터랙션을 뜻하는 말이다. ‘알람 맞추기’, ‘코멘트에 좋아요 하기’, ‘로그인 버튼 누르기'— 이런 것들이 모두 마이크로인터랙션의 예이다. 무심코 페이스북을 할 때에도 우리는 수많은 마이크로인터랙션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만 사소한 행동들이기에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앱/서비스는 점점 더 세세하고 구체적인 것이 되고 있다. Yo를 보내는 용도의 'Yo', 6초 비디오를 공유하는 'Vine', 친구를 사귀는 데 쓰는 'Knock Knock'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마이크로인터랙션도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각각의 인터랙션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는 것이다. 이렇듯 마이크로인터랙션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여러 개의 미시적인 인터랙션에 나는 ‘마이크로-미니 인터랙션(Micro-Mini Interaction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7년에는 폰을 꺼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수천 개의 마이크로-미니 인터랙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인터랙션: 블루투스를 이용해 두 개의 디바이스를 연결함
마이크로-미니 인터랙션: 토글하여 블루투스 세팅을 켬
마이크로인터랙션: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컨트롤함. 이를테면 음량을 조절함
마이크로-미니 인터랙션: 볼륨을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함
마이크로인터랙션: 링크드인에서 누군가와 연결됨
마이크로-미니 인터랙션: 유저 프로필에 있는 'Connect' 버튼을 탭 함
Knock Knock 에서는 두 번 노크하는 마이크로인터랙션으로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럼 노크 한 번은? 마이크로인터랙션의 미시적인 부분이 추가된 것이다.
3. 날씨앱 전성기 (Proliferation of Weather Apps)
날씨는 이 세상의 일부이기에, 이를 우리 생활에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 변화에 대한 정보는 어떤 일을 계획하는 데 무척 유용하게 사용된다. 과거에는 날씨 패턴이 꽤 일정했기에 지속적이면서 동시적으로 날씨 정보를 업데이트받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기후 변화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에는 날씨가 아주 변덕스러워질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기상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 될 것이다. 앱 개발자들은 이제 막 이 트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허리케인, 이상 습도 등 기상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면 유저들은 휴대폰(devices)에서 최신 날씨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이미 2015년에 날씨 앱이 유례없이 흥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인기는 더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겨울에 엘니뇨가 실리콘밸리를 휩쓸고 지나갔으니 앞으로 더 많은 UX 디자이너들이 기후변화 문제와 그걸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멋진 모바일 앱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모나코에서부터 카이로까지, 멋진 날씨 앱이 있으면 궂은 날씨도 아름답게 볼 수 있다.
4. 다마고치 제스처 (Tamagotchi Gestures)
작가인 윌리엄 깁슨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기계식 손목시계 이야기를 하면서, Tamagotchi Gesture의 매력을 알려주었다.
“쓸모는 없는데 묘하게도 필요성이 느껴진다. 신경 쓰고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프로덕트가 익명화되고 자발적으로 사용되며 자동화와 균일화가 진행될수록 유저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기계식 손목시계의 예시처럼) 유서 깊은 UX 커뮤니티에서는 오브젝트가 나름의 개성을 갖고 작동하던 초기 상태를 유지해 왔다. 기능과 정확도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유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유저의 대변인인 만큼 그들의 피드백을 주의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Tamagotchi Gesture를 활용하고 있다. 프로덕트에 일부러 진부하고 미완성인 부분을 넣어서 개성과 매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로 트위터와 아마존이 있다. 한때 이 서비스들은 더 단순했다. 완벽하게 작동하지도 않았으며 보기에 아주 멋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저의 관리가 필요했고 바로 그 점이 쾌적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2017년까지는 UX 디자이너들이 작업 전반에 Tamagotchi Gesture를 적용할 것이고, 미래의 프로덕트에서는 충분히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원래 Tamagotchi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애완동물이다.
5. 햅노틱 피드백 (Hapnotic Feedback)
햅틱 피드백은 촉감을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키를 눌렀을 때 촉각 반응을 주는 가상 키보드가 그 예이다.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모바일 디바이스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이에 적용되는 햅틱 기술도 더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전기활성 고분자 엑츄에이터(Electro-Active Polymer Actuators, EAPs) 가격도 하락하고 있어서, 햅틱 기술은 앞으로 2년 동안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발전에 힘입어 인터랙션 기술자들은 미세한 햅틱 피드백으로 유저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이를테면 유저가 특정 제품 페이지를 보고 있을 때 약한 맥박과 진동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지금 바로 구입' 버튼을 누르도록 유도할 수 있다. 또는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게 하여 현재의 화면에서 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랙션 디자이너들은 이 새로운 촉감 인터페이스를 햅노틱 피드백 (Hapnotic Feedback, Haptic+Hypnotic)이라고 부른다. 햅틱 피드백으로 유저 행동이 바뀌는 것을 미약한 최면상태(Hypnosis)에 비유한 셈이다. 어떤 심리학적인 요인 때문에 햅노틱 피드백이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디자이너들은 이것이 지닌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몇 달 뒤에는 햅노틱 피드백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의 연구자들은 가상 표면의 깊이(depth maps of virtual surfaces)에 따라 촉감을 느끼게 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였다.
6. 탈-선형성 (De-Linearity)
매년 UX 디자이너들은 사용성을 측정하는 기준을 새롭게 내세우곤 한다. 2015년에는 그 기준이 단순함(simplicity)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 단순함이 사용성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2015년에는 앱과 서비스를 단순화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다 보니 내비게이션 메뉴는 좁아지고, 인터랙션은 단계별로 쪼개졌다. 유저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쭉 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저가 한 방향으로만 가도록 제약하는 방식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예시로, 우버를 들 수 있다.
픽업을 정한다.
- 도착예정시간을 받는다
- 드라이버에게 요금을 지불한다.
- 드라이버를 평가한다.
또 다른 예시로 Instacart가 있다.
- 식료품점을 선택한다.
- 물건을 선택한다.
- 물건을 구입한다.
- 배달을 평가한다.
지금 당장은 유저가 이처럼 단순한 방식을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UX 에반젤리스트인 Ian Feen가 한 말을 되새겨보자.
실력 없는 디자인 팀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UX를 제공한다.
반면 실력 있는 팀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UX를 제공한다.
이런 일방향적인 경험에 아쉬움을 표하는 유저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유저들은 소몰이당하듯이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떠밀려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유저가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조절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유저의 대변인인 UX 디자이너들은 최소한의 제약만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면 유저는 다양한 경로로 서비스를 탐색할 수 있고 단계마다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되며, 각 터치포인트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2017년에는 유저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일방향성에서 벗어난(de-linearity) 디자인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7. 최적화된 틈새 경험 (Optimized Interstitial Anxiety)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용어 중 ‘틈새의 초조함(interstitial anxiety)’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하나의 액션(action, 예: 버튼 클릭)과 그에 대한 반응(response, 예: 다음 페이지로 이동) 사이에 유저가 느끼는 잠깐 동안의 긴장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액션-반응 사이에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초조함은 커진다. 틈새에 낀 그 순간 동안은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기에 유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한 느낌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는 곧장 불쾌한 경험이 되고, 유저는 프로덕트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
다행히 디자이너들은 이런 긴장감을 장점으로 바꾸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것임을 암시하는 전환 요소들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유저들은 잠깐 동안 미리보기를 할 수 있으며, 다음 화면에 무엇이 나올지 초조하게 맘 졸이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게 된다.
위의 예시처럼, 두 슬라이드 사이에 전환 애니메이션을 넣으면 액션과 반응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모달의 일시정지, 바운스 모션을 통해 페이지 전환에 유저가 무의식적으로 적응하기 때문이다.
8. 디자인적 사고의 보편화 (Migration from Design Evangelism to Design Proselytism)
디자인 에반젤리스트들은 원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측면에서 좋은 디자인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을 디자인적 사고를 가진 사람(design-thinkers)으로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디자인 문외한에게 디자인적 사고의 장점을 알림으로써 개인 삶이든 업무에서든 최선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디자인 에반젤리스트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좋은 디자인이 더 많이 나오게끔 하는 그 모든 활동들도 지지한다. 그러나 좋은 디자인의 장점을 알리는 것만으로 디자인적 사고를 실천하게끔 만들기는 어렵다고 본다. 너무 많은 업계에서 각종 에반젤리스트(기술, 마케팅, 영업 에반젤리스트 등등)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서, 디자인적 사고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힘을 발휘하거나 현장에 적용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메시지는 이득이 될만한 부분만 남기고 추려져서 불렛 포인트와 슬라이드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
다행히도 디자이너들이 스스로의 영역을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온/오프라인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디자인 중심적인 사회야말로 강력하고도 섬세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제는 좋은 디자인의 장점을 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자인적 사고가 주변 사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2017년에는 이들의 메시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단호하고 통렬하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9. 연령 맞춤형 디자인 (Age-Responsive Design)
반응형 디자인(responsive design)의 핵심은 환경에 따른 변동 가능성(adaptability)이다. 유저가 사용하는 디바이스에 따라서 콘텐츠가 재구성되는 것이 그 예이다. 물론 이것은 기본에 지나지 않으며 유저의 상황에 딱 맞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더욱 많다. 그중 하나는 나이이다. 디바이스의 가로폭에 맞게 웹사이트 레이아웃을 조정했듯이, 앞으로는 연령대에 맞게 콘텐츠와 구조가 조정될 것이다.
온라인 광고는 이미 꽤 오랫동안 유저의 관심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 왔다. 이제는 광고뿐 아니라 웹사이트도 그렇게 될 것이다. 여덟 살과 여든 살은 읽는 책이 다르고 보는 TV 프로그램도 다르다. 그렇다면 웹사이트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즉, 웹사이트 역시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제공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인터페이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17년에는 메타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나이에 맞게 조정되는 웹사이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가능하다
추정된 능력에 맞게 내비게이션 메뉴가 많아지거나 줄어든다.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이미 익숙한 몇몇 기능들만 제공하는 간소화 된 인터페이스를 보게 될 것이다.
고연령자의 시력에 맞게 폰트 사이즈가 자연스레 커지고 자간이 넓어질 것이다.
색상 조합이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젊은 유저들은 좀 더 강렬한 색을, 나이가 든 유저들은 차분한 색상의 디자인을 보게될 것이다.
10. 신뢰 디자인 (Digital Trust Design)
실력 있는 UX 디자이너가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프로덕트에 신뢰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CEO, 마케팅 담당자, 세일즈맨, 디자이너 등, 누구에게든 비즈니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같은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신뢰’가 제일이라고. 이는 유저와 프로덕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프로덕트에 신뢰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프로덕트에서도 신뢰가 무척 중요하다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데이터와 보안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면서, 온라인에서 신뢰감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워졌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인터넷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이 때문에 프로덕트 오너들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
일련의 데이터 유출 사건들 때문에 유저와 프로덕트의 신뢰관계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그런 만큼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2017년에는 디지털 상에서 신뢰를 쌓기 위한 경쟁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뢰감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들이 등장하여 그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11. 유저 하차: 마지막 순간 (User Offboarding: Sunset Moments)
좋은 프로덕트는 잘 만든 영화와도 같다.
유저 탑승(User Onboarding)이란, 꼭 필요한 경험을 일찌감치 제공하여 새로운 유저를 가두는(locking in) 과정이다. 지금까지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프로덕트 디자인을 진행하였다. 반면 탑승과 대조되는 하차(User-Offboarding)의 과정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더 이상은 하차의 과정을 무시해선 안된다. 좋은 프로덕트는 마무리까지 멋진 명작 영화 같은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덕트 사용단계를 영화의 흐름에 맞추어서, 다음과 같이 한번 살펴보자.
1. 첫 번째 단계는 도입부(Opening Introduction)로, 유저 탑승(User onboarding) 단계이다. 이는 유저를 끌어들이는 덫(hook)의 역할을 한다. 프로덕트에서는 매력적인 애니메이션, 심플한 인터페이스, 심지어는 공짜로 보석상자 아이템을 제공하여 탑승 과정에서 유저의 마음을 움직인다.
2. 다음은 줄거리(plot), 즉 프로덕트 경험(the product experience) 그 자체로 이어진다. 영화의 줄거리에서는 주인공이 주어지는 상황에 어떻게든 대응하게 된다. 유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 재고가 있으면 카트에 넣고 주문을 진행할 것이다. 어쩌면 재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에 따라 주문을 포기하거나 다른 물건을 찾을 것이다.
3. 그다음이 절정(climax)으로, 피드백(the Feedback rush) 단계이다. 주인공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거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유저는 카트에 있는 물건을 구매한다.
4. 그리고 마침내 해결(resolution)의 장면에 다다른다. 프로덕트로 말하자면 유저 하차(User Offboarding)의 단계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거나 석양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나올 것이다. 프로덕트의 경우 구매가 끝났을 때, 메시지가 전송되었을 때, 또는 글이 ‘좋아요’ 되고 공유되었을 때 발생하는 어떤 일이 유저 하차 경험을 만들어낸다.
디자이너는 시작과 끝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영화적인 경험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그럴수록 유저가 태스크를 끝내고 하차하는 마지막 순간을 디자인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될 것이다.
12. 중개된 인공지능 네트워크 (Brokered AI Networks)
인간의 지성을 완전히 대체하는 인공지능은 여전히 SF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실용적인 부분에서는 가상 비서나 디지털 컨시어지 같은 AI가 실제로 우리 곁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Siri, Alexa, Cortana, Google Now, Jibo, M, Clara, Amy, S Voice를 들 수 있다.
이 똑똑한 도우미들이 정작 서로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 '똑똑한' 비서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고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AI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애플 Siri를 쓰는 사람이 아마존 Echo와 x.ai의 Amy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AI가 실생활에 활용되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이 똑똑한 도우미들이 서로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AI가 경쟁하고 있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태스크를 수행한다. 알람 맞추기, 리마인더 설정하기, 질문에 답하기, 스위치 제어하기 등 단순한 일들이다. 서로 협력하여 각 태스크를 분담할 수 없는 디자인이기 때문에 기능이 중복되고 충돌이 일어나며, 결국에는 전반적으로 AI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쉽고 단순하게 태스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가상 비서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경쟁적인 시장 상황에서 인공지능 회사들이 서로 협력하기를 바라기도 어렵다. 결국 인공지능들 간의 관계를 중개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몫이 되었다.
앞으로는 여러 인공지능 간 관계를 중개하는 일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각각의 인공지능과 가상 비서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분담하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위한 규칙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13. 텍스타일 디자인 (Textile Design)
Material Design은 펜과 종이를 들고 총싸움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차원적인 미래의 웹을 다루기에, Material Design은 근본적인 구조에서부터 턱없이 부족하다.
구글 Material Design는 2013년부터 여기저기서 언급되었지만, 2015년이 되어서야 웹디자인의 주류로 부상하며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뀔 조짐이 보이고 있다.
Material Design은 '양자 종이(quantum paper)'라고도 불린다. 실제 종이를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Material Design에는 종이의 특징에서 비롯된 시각적인 메타포들이 잔뜩 들어있다. 구글의 수석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Matias Duarte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실제 종이와는 달리 디지털 물질(digital material)은 상황에 맞게 확장되거나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경계선과 그림자는 물질(material)의 물리적인 표면과 테두리 역할을 하여, 어디를 터치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에서든 디지털 환경에서든, 종이는 매체의 본질이 아니고 궁극적인 종착지도 아니다. 이제는 끝낼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2016년 말에는 스큐어모피즘의 요소들이 다시금 보이기 시작하며 그와 동시에 플랫(flat)과 종이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른 시각적 메타포들이 등장할 것이다. 게다가 증강/가상현실이 주류가 되면 Material Design은 총싸움에 펜과 종이를 들고 뛰어들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역동적이고 다차원적인 미래의 웹에 사용되기에, Material Design은 근본적인 구조에서부터 턱없이 부족하다.
다양한 디자인 메타포, 미학, 기술, 그리고 차원이 서로 엮여가는 새로운 흐름에 디자이너들은 'textile desig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textile design'을 통해 웹 구조(fabric)는 다채롭고 참신한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rewoven)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