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캠핑은 사실 급하게 결정된 일정이라 장소에 대한 고민이라던지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본래 이번주의 일정은 일기예보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정보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고, '빗속에서의 한판 승부를 제대로 해보자!'라는 컨셉이었으나 아쉽게도 날씨가 바뀌는 바람에 빗속에서의 삽질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아무튼, 나야 묶여있지 않은 몸이라 2주 연속 캠핑을 가던 말던 상관이 없지만 친구는 와이프에게 회사 워크샵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짜 공문까지 만드는 "쑈'를 연출한 뒤 떠날 수 있었다.
게다가 사진기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되어서 부랴부랴 회사 사람 카메라를 빌려서 찍는 바람에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많이 찍지도 못해 다른 후기보다 사진을 많이 남기진 못한 것 같다.
이런 저런 일들을 뒤로 하고 친구와 나는 토요일 아침 7시에 만나 양수리로 떠났다.
열심히 달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중 적당한 산길을 발견.. 짐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주변에 펜션촌이 많아서 좀 깊이 들어가야 한다.
좁다란 길을 주욱 따라올라간다. 꽤 깊이 들어왔지만 길이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사람이 지나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라가는 길에 벌통도 만나고.. 난 벌이 제일 무섭다.
좁은 길을 지나가니 갑자기 탁 트인 평지가 나타난다.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왔더니 넓은 개활지가 시원하게 찍히지 않아 조금 아쉽다.
이 근처에 괜찮은 곳을 잡아 캠핑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풀들이 꽤 높게 자라있어 아무데나 자리를 펴기는 힘들 것 같다. 일단은 풀이 적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뒤쪽으로는 산과 들이 펼쳐쳐 있고,
정면에도 보이는 건 산 뿐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에 스쳐 쏴아아~ 하는 소리가 나 상쾌한 기분이 든다.
보라, 이 녹음진 숲을.. 이 곳이 오늘 우리의 하룻밤을 보낼 곳이다.
마침 풀이 거의 없는 곳이 보인다.
이 곳에 자리를 잡아 돌을 고르고 그라운드 시트를 깔아 지면 습기를 차단한 후, 텐트를 세운다.
위의 것은 미군 군용 매트리스..
텐트 안에서 침대 역할을 할 녀석들이다. 이 놈으로 바닥의 한기만 잘 차단해 주어도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서 편하게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판쵸우의이다.
US.ARMY라 써 있지만 군용품은 아니고.. 사제품이다. 군용에 비해 무게는 반 이하인 것 같고, 고무재질같은 군용품의 느낌과는 다르게 약간 까끌거린다.
개활지에 자리를 잡았더니, 생각보다 낮에 내리쬐는 태양이 뜨거워 햇볕을 차단할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판쵸를 차양막으로 쓰기로 했다.
우선 텐트의 입구쪽으로 그늘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길다란 나뭇가지를 주워 잔가지를 쳐내고 폴대로 사용한다.
그 다음 판쵸의 좁은 쪽 면은 아일렛 처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 묶어줘야 한다. 작은 돌을 주워 판쵸를 싸서 줄이 걸릴 곳을 만들고, 파라코드로 묶어 나뭇가지에 묶어준다.
양 옆은 구멍에 직접 줄을 이은 뒤, 끝 부분은 나뭇가지나 남은 텐트 팩을 땅에 박아 묶어준다.
대략 판쵸우의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은 뜨거운 낮이라 텐트 플라이를 씌우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 매우 더울것이다.
내부는 미군 매트리스 두개를 펼쳐 넣으니 딱 사이즈가 나온다. 그 위에 모포를 깔고 가장자리는 밑으로 말아 넣어 고정시킨다. 군대에서 3단 매트리스에 모포를 끼우듯이 말이다. 안쪽 끝에 가방 등을 밀어넣고 정리를 해준다.
텐트의 정면.
안에서 밖으로 바라본 모습. 괜히 믿음직스러운 그늘이 되어 줄 것 같다.
멀리서 바라본 모습. 아주 먼 곳에서는 잘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풀도 높고, 위에다는 위장무늬까지 덮여 있으니까.
뒷모습. 바람구멍은 열어두고, 뒷면 팩에 줄을 연결해 판쵸를 고정시켜주었다.
조금 더 멀리서 본 모습.
언덕 아래쪽으로 좀 더 걸어가니 아예 보이질 않는다.
이제 할 일은? 간단하게 요기를 해 주고 주위 경관을 바라보면서 낮잠 한 숨 때려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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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시간 낮잠을 잔 후 일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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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고, 이젠 일어나서 저녁의 식사와 술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땔감을 모으고, 역시 작은 가지부터 굵은 가지 순으로 모은다. 손으로 부러뜨릴 수 있는 건 부러뜨리고, 힘으로 좀 안되는 굵은 가지는 나이프로 가장자리를 깎아낸 뒤 발로 밟아 부러뜨린다.
매번 고생하는 나의 Gerber Big Rock Camp. 나무도 자르고 쪼개고, 고기도 자르고, 땅도 파고 이곳 저곳에 모두 사용한다. 사진에선 잘 안보이지만 이가 많이 나가 있다. 한번 또 갈아줘야 하는데.. 자꾸 그냥 넘어간다. 이번에는 꼭 갈아두어야겠다.
불을 다 피우고 은근한 불이 되면 이제 간장소스에 재워둔 닭다리를 불에 올린다.
원래 계획은 닭봉을 굽는 것이었다. 내가 가입해 있는 서바이벌리스트 카페에서 참나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닭봉이 좋다고 하여 먹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장보는 곳마다 닭봉이 없어 할 수 없이 다리를 선택했다.
닭은 닭이니까.
닭다리는 익히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한 불보다는 은근한 불에서 굽는게 좋다. 그래도 겉은 좀 타지만.. 미리 칼집을 넣어서 재워두었기 때문에 잘 익을것이다.
닭다리가 익는 동안 콩 통조림을 안주로 음주를 시작한다.
아는 형이 나보고 자주 하는 얘기가 "넌 먹으러 캠핑가냐?" 라는 것인데, 난 이렇게 얘기한다.
"그럼요~ 서바이벌이란게 다 먹고 자는 스킬 아니겠어요?"
사실 서바이벌이라고 하기엔 풍족한 장비와 먹거리들이지만, 난 장비가 충분할 때 여러가지를 경험해 보아야 위급한 상황에서도 응용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껏 여기까지 들어와서 맛있는 고기와 술을 먹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닭이 슬슬 익어간다. 피가 배어나오고 있지만 20분 가량 구워 핏기가 사라지면 양념에 한번 더 굴렸다가 10분 정도 더 익혀준다.
술을 마시며 하늘을 보니 어느덧 달이 떴다. 구름이 많이 끼어 별은 보지 못했지만, 캄캄한 숲 속에서 바라보는 달도 운치가 있다.
친구는 마누라와 통화하며 있지도 않은 워크샵 일정을 줄줄 외고 있다. 주변에서 들리는 새소리는 어쩔겨?
이번의 캠핑은 여기까지이다. 다음번에는 바다나 강으로 가서 낚시를 해볼까 한다.
참, 뜨거운 여름에 개활지에 자리를 잡는 것은 최악이라는 것을 이번 캠핑에서 느끼게 되었다. 더워서 쓰러질 뻔 했으니 말이다. 으하하!!
첫댓글 요리를 잘하시나봐요 닭을 양념에까지 재우시는거 보니 입니다
ㅎㅎ 그냥 흉내만 내는 정도죠 뭐..^^ 이왕 먹는거 맛있게 먹자! 라는 신념으로..ㅋㅋ
매번 느끼는거지만..부럽습니다.ㅠ.ㅜ사진과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판쵸우의로 근사한 타푸를 만드셨네요.. 다리를 나무로 하니 서바이벌 분위기도 나고요. 데이워커님이 지금 하시는 캠핑이 우리카페 컨셉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 역시 재미있는 후기 즐감했습니다. 언제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창피해서 제가 몸둘바를 모릅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달빛이 고고합니다! 그리 깊어가는 어둠속 친구와의 무언의 대화가 그립네요~~~
네 저도 벌써 그리워집니다. 리플 감사합니다.^^
위장이 대단 합니다. 정찰기가 지나가도 못 찾겠읍니다. 하하하하. 마음 맞는 친구와 같이 있다는 것 자체로 모든 것은 대변 할 수 있지요.
ㅎㅎ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리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