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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李惠仙) 시인의 시세계
불이(不二)와 운문호일(雲門好日)의 詩學
신용협(시인 충남대 명예교수)
서론
이혜선(李惠仙)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정주 시인 추천에 의해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하여 그동안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정지용 문학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중진 시인이다.『神 한 마리』(1987),『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1996),『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새소리 택배』(2015), 『운문호일』(2017)등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나 그중 제3시집을 구하지 못한 채 우선 제1, 제2, 제4, 제5시집을 대상으로 시인론을 쓰려고 한다.
시집을 낼 때 시집에 붙이는 해설은 독자를 위한 해설로도 충분하나 그의 현재까지의 문학적 업적을 평가하는 시인론은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해설보다는 평론으로 기울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이루어 놓은 다섯 권의 시집과 1985년 세종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2012년 평론집『문학과 꿈의 변용』을 출간, 2013년『이혜선의 명시산책』(이 새의 나무, 전자책), 2014년 영역시집을(공저) 출간했다. 또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진단시 동인으로 동인지 제 25집에서 제 35집까지 참여했고 1989년 한국문인협회 회원 가입 이래 2003년 한국문인협회 해외 심포지엄(타쉬겐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스웨덴, 핀란드) 참가, 2004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2004년 한국현대시인협회 운영위원장에 위촉되고 동년 8월에는 현대시인협회 여름세미나에서〝역사의식의 시, 생태시, 그리고 우는 시〞로 주제발표, 2017년 한국문인협회 해외세미나(중국 연변시)에서 주제발표를 했으며 2008년부텨 2011년까지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현재는 지도위원) 역임,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장, 2015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문학인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명실공히 여류문인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직업인으로서는 마산제일여고(상업과)를 일등으로 졸업하고 농협 등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77년 동국대 국문과를 입학, 졸업 후 동국대 부속여고에 교사로 근무하고 1985년에 세종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문학석사) 1996년에는 세종대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수득하고, 신구대학과 2000년부터는 동국대 출강을 하였다. 2007년 송파공업고등학교 교감으로 명예퇴직 이후 문학에 정진하고 있다.
이혜선 시인은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길러준 은사님이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조병무 시인이다. 학보 기자를 할 때부터 문학적 재능을 길렀던 일과 문학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졸업 후 농협에 근무하다가 중단하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하고 서정주 시인의 지도를 받고 마침내는 본인의 재능이 인정되어 은사님의 추천으로 1981년 <시문학>지를 통하여 등단하였다 특히 대학을 다니면서 국문과 강좌의 학습을 통하여 훌륭한 은사님으로부터 좋은 공부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영향을 받은 외국 시인은 T.S 엘리어트 였다고 회상한다.〝전통은 첫째 역사의식을 내포하는데 25세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필수불가결의 것이라 할 수 있다〞(엘리어트의「전통과 개인의 재능」최종수역『문예비평론』박영사,1974) P13)라는 엘리어트의 글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본인은 말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서정주 시인도 시집『신라초』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에 역사의식이 투영된 시를 썼다는 점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194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어트는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문학이론도 탁월하여 20세기에 가장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T.E. 흄의 사상을 실천하여 주지주의를 창안하고 직접 리더로서 20세기를 이끌어낸 거인이다. 그런데 이혜선 시인은 대학시절에 읽은 T.S. Eliot의 논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고 진술하였다. 그리하여 초기부터 역사의식의 시를 쓰기 시작했고 또 엘리어트가 제시한 형이상시形而上詩를 쓰기 시작했다. 이혜선 시인이 우리 시단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지즘을 넘어서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에서는 그 기법에 있어서 좀더 다양하게 엘리어트가 말한 바〝서로 상이한 경험을 통합하는 통합적 감수성과 컨시트(conceit)라는 문학 기법을 적용하여 효과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이 시인의 첫시집『神 한 마리』에 대한 평으로 서정주 시인은 詩「갔다왔다뱅이」「새벽明沙」「강가에서」「꽃병 속의 꽃뱀」등 네 작품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李惠仙 女士의 처녀시집『神 한 마리』속에는 군데군데 시의 감각과 이해와 데프로마시옹이 꽤나 잘 살아서 숨 쉬고 있다.
고 격려하고 이어서 「많이 노력하여 大成의 날이 있기만을 바랠 뿐이다」
라고 했다.
두 번째로 신세훈 시인은『神 한 마리』해설의 제목「신과 자연과 인간의 실체 감각」에서 다섯 갈래로 갈라
첫째, 역사의식 플러스 토속미는 전통 정신
둘째, 불교 세계 플러스 범신적 토속 신앙 세계는 종교시
셋째, 인간 관계 플러스 슬픔과 이별은 생활 애환미,
넷째, 인간 실존과 사물의 위치 파악은 존재론적 시를 낳게 하는 현상학의 아름다움이다. (존재시→현상미)
다섯째, 천지 교감과 수직, 평형 감각시로 원세계 언어 상징 긴축 제정법을 쓰고 있다.
고 나누면서 「나는 혜선의 시를 역사신 존재를 파악해 낸 시로 보고 싶다」고 신세훈 시인은 말했다.
세번째로 조병무 시인은 제2시집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의 해설인 「화두 푸는 언어 탐색」에서 「이혜선 시인은 서구적인 사고의 영역보다는 한국적인 사고와 한국적인 습속이 더욱 짙게 깔려 있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네번째로 문덕수 시인(예술원 회원)은 이 시집(「새소리 택배」)에는 현실의 세공(細工)과 우주적 차원의 초월적 대공(大工)이 비교 대조되어 이른바 역설(逆說 Paradox)의 미학이 빛난다고 하였다.
다섯번째로 박제천 시인은 제4시집 『새소리 택배』의 해설 제목을 「불이와 화쟁, 화해와 연민의 화엄 시학」이라고 하여 해설했다.
그리고 이혜선 시인 역시 시집 후기에서 「이상주의자의 꿈꾸기」라는 제목의 글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김종희(문학평론가, 경희대)교수는 다섯째 시집 『운문호일雲門好日』의 해설인 「운문호일의 시와 언어의 통어력 」에서 「그의 이 시집을 관류하는 중심 줄기는 정신과 영혼의 조화로움을 지향하는 언어의 통어력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고 했다.
2. <중도비평>과 <중도시론>(맹물시론)
나는 평가기준으로 <중도비평>과 <중도시론>을 말하고 싶다 19세기의 비평이 이뽀릿뜨 떼느의 역사주의 비평이라면 20세기의 비평은 엘리어트의 형식주의 비평이다. 역사주의 비평가 떼느는 문학의 삼대요소를 종족 시대 환경(race, milieu, moment)이라고 했다, 떼느는 작가를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형식주의 비평을 제창한 엘리어트는 그의 논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최종수 역 『문예비평론〟18쪽)에서 「정직한 비평과 예민한 감상은 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에 대해서 주어진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형식주의 비평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양자는 각각 장점과 단점이 다르다. 서로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역시주의 비평은 작가(시인)를 중시하기 때문에 의도의 오류가 발생하고, 형식주의 비평은 언어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언어유희에 떨어질 수 있다. 이 양자의 결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도비평>이다 이 용어는 내가 독자적으로 쓰는 용어다. 나의 비평 방법은 형식주의비평을 위주로 하면서 역사주의 비평도 원용하자는 것이다
르네웰렉과 오스틴 워렌은 그들의 공저인 『문학의 이론』(백철 역, 신구문화사)에서 「문학의 학문적 연구에 있어 자연적이며 현명한 출발점은 문학작품 그 자체의 해석과 분석이다.」라고 선언했다. 엘리어트와 같은 형식주의이다.
<중도시론>은 나의 시론으로 나의 제3시집 『물가레 앉아서 』(문학예술사,1985)에서 이를<맹물시론>으로 명명한 바 있다. 좋은 시란 <쉽고도 어려운 시>를 말하며 표현은 쉬우나 의미는 심장한(깊은) 시를 말한다. 김소월의 「산유화」같은 시를 말한다. 좋은 시는 시정신이 풍부한 시라고 할 수 있다. 꽃으로 비유하면 가화(假花)가 아니라 생화(生花)를 말한다. 만든 꽃은 생명이 없고 향기도 없다. 인공으로 만든 꽃처럼 체험이나 시정신이 없는 시는 가짜시에 불과하다. 그래서 니체는 그의 저서『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피로써 쓰라」(최인제 역 휘문출판사, 1962. 42쪽)고 외쳤다. 이 말은 체험을 통한 시정신을 피라는 말로 한 것이 아닐까. 말장난은 가짜시라는 것이다. 박용철의 「시적 변용에 대하여」는 릴케의 체험적 시론에 바탕을 둔 시론이요 하우스만의 조개 속의 진주가 시라는 이론인 반면 김기림의 시론은 모더니즘 시론으로 시는 만드는 것(자인/sein이 아니라 졸렌/sollen)(김기림 저 『시론(詩論)』백양당 107쪽)이라고 주장한다. 「自然發生的 詩는 『자인』(存在)이다. 그와 反對로 主知的 詩는 『졸렌』(當爲)의 世界다.」(김기림) 나는 니체나 또는 릴케나 박용철이나 하우스만의 체험적 시론을 따르겠다. 나는 나의 논문 「현대 한국시의 시정신 연구」(고려대 대학원 1989)에서 논술한 시정신의 정의를 여기서 항목만 열거해 보겠다.
첫째로 시정신은 시의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로 시정신은 시의 주제가 아니다. 셋째로 시정신은 시의 사상이 아니다. 넷째로 시정신은 살아있는 정신이요, 깨어있는 정신인 것이다. 다섯째로 시정신은 진실성 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미적 감동상태인 것이다. 여섯째로 시정신은 불멸하는 시인의 혼이다. 일곱째로 시정신은 체험에서 얻어지는 현실의식이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여덟째로 시정신은 생명 있는 정신이다.
시정신이 풍부해야 감동을 준다. 시정신은 시에 함축된 정신 즉 엘리어트가 말한 것처럼 사상이 장미의 향기로 형상화 되었을 때 비로소 시정신으로 살아나는 것이므로 이를 문학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시는 시정신에 달려있다.
3, 역사의식과 향토적 서정
이혜선 시인은 대학생활에서 문학에 대해 확실한 방향이 섰던 것 같다. 우선 한국문학의 거목이신 미당 서정주 시인 밑에서 시를 배우니 그 당시에는 으레 그런 저런 불만도 있겠으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시인의 길을 탄탄하게 걷고 있었다. 진로에 대한 방황이 없었던 것 같다. 오직 문학의 길 그중에도 시인의 길에서 미당을 비롯하여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다. 시인 자신의 말에 의하면 대학 시절에 엘리어트의 문학이론을 공부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T,E 흄과 함께 T,S 엘리어트 에즈라 파운드는 20세기 모더니즘을 창시한 거인들이다. 그중에도 노벨문학상을 탄 엘리어트의 문학이론을 붙잡아 역사의식이 있는 시를 썼다는 술회는 이 시대를 올바르게 걷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첫 시집『神 한 마리』에서 읽어보자. 서정주 선생은 첫 시집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인용한 다음
참대나무 귀에 핀 피아골의 새
-詩 「갔다왔다뱅이」에서
꽃밭은 날려서 붉은 종소리
-詩 「새벽明沙」에서
아이 서듯 무지개 서는 하늘 아래,
-詩 「강가에서」에서
이파리마다 실핏줄 군데군데서
박넌출에 매달리는 달덩이
-詩 「꽃병 속의 꽃뱀」에서
「李惠仙 女士의 처녀 시집 『神 한 마리』속에는 군데군데 시의 감각과 이해와 상징과 데포르마시옹이 꽤나 잘 살아서 숨쉬고 있다.--이런 성공한 세부 표현들을 종합하는 시의 전체 구성에서 오는 잘 된 암시 함축미의 창출에 달린 것이니, 이 점이 시인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것이라, 李 女士도 이 점만큼은 이어서 많이 애써야겠다.」고 한 다음
산등성이로 언뜻언뜻
아이들 옷자락이 보인다.
神 한 마리가 눈을 뜬다.
새는 밤꽃으로 피어 있다.
밤숲에선 늘 한두 잎씩
노래의 잎이 지고
내일은 장승 한 마리가
돌門을 열것다
-「돌문」전문
이 작품 전문을 인용하고 「이 작품만큼은 그 전체 구성에서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하였다.
나는 초기시(첫 시집과 둘째 시집)에 붙인 제목으로 「역사의식과 향토적 서정」이라고 불렀다. 엘리어트는 전통을 중시한 시인이다. 그는 『전통과 개인의 재능』이라는 강연에서 역사의식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모더니즘은 엘리어트의 주지주의의 영향보다는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한국 모더니즘 중심에는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그리고 이상 등이 있다. 李箱을 제외하면 모두 이미지스트라고 할 수 있다. 엘리어트는 역사의식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17세기 혈이상학파 존 〮〮〮〮* 던(John Donne)의 「고별의 노래」를 20세기의 모더니즘 시학의 한 전범으로 끌어냈다. 이혜선 시인은 이 형이상시形而上詩를 대학생으로서 일찍이 배워 역사의식의 시와 형이상시를 처음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18,4,7, 청주 특강). 형이상시는 통합된 감수성(엘이어트의 형이상시形而上詩 1921 최종수역 문예비평론 47쪽) 컨시트(conceit).펀(pun),풍자(satire).위트(wit),아이러니(irony), 역설(parodox), 텐션(tension), 등의 기법으로 쓰는 시를 말한다. 역사의식의 시로 시인이 예시한 작품은 「고조선 빗물」(제1시집)「돌 문」(제1시집)「철마는 달리고 싶다」(제1시집)「웅녀」(진단시 동인지)「치술령 돌머리」(제2시집)등이다. 역사의식의 시는 소재나 주제가 전통과 역사에 닿아있는 시를 말한 것이고 형이상시는 시의 창작기법상의 분류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혜선 시인은 형이상시를 쓰되 서구적 전통이 아닌 한국 전통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향토적 서정에 바탕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
하늘가슴팍에
강물 한 자락 펼처놓고 있다.
그리운 알굴들이
떴다가는 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넉넉한 품
그대 젖은 옷자락
손금안에 영겁의 세월 떴다가 지고
우리들 찰나의 아품도 떠서 흘러간다.
저 강물따라 흘러가는
가을종소리
-「서라벌을 지나며」전문
위에 예시한 시 「서라벌을 지나며」(제2시집)는 서라벌이라는 역사의식과 고향이라는 향토적 서정을 지닌 시다. 『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 까치,)의 저자 E, H. 카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저 강물 따라 흘러가는 / 강물소리」는 분명 현재이면서 과거요, 과거이면서 현재다. 시정신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다. 이혜선 자신의 자작시 해설인 강연(청주)이나 그 이전 발표(2005년 금요포럼)에서 한 시인의 주장을 참고하면서 말하면 이혜선 시인은 초기의 시부터 20세기의 위대한 시인인 엘리어트의 시론(최종수 역 『文藝批評論』박영사 1983)과 하이더거의 시론(소광희 역『詩와 哲學』박영사, 1978, 김광진 역『하이더거의 詩論과 詩文』탐구신서 210)을 자신의 창작원리로 끌어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뉴크리티시즘의 선구자인 랜섬의 형이상시 기법인 奇想(conceit) 등 현대시의 내용과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현대시의 내용과 방법을 먼저 간략히 정리해 보려 한다
4, 엘리어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랜섬
① 엘리어트의「전통과 개인의 재능」(1917)어서는 개성배제의 시론과 신비평(New Criticism)의 방향 제시 등을 내용으로 전개된다.
「시는 정서의 방출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다. 그것은 개성의 표현이 아니고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다.」「시인은 촉매에 불과하며 실지감정(경험하는 인간)과 예술감정(창조하는 정신)은 다르다」는「개성배제의 시론」과
「정직한 비평과 예민한 감상은 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에 대해서 주어진다.」
는 말은「신비평의 방향」밝힌 말인데 필자는 신비평 즉 형식주의 비병과 역사주의 비평을 겸하는 <중도비평>의 태도임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② 엘리어트의 논문인「햄리트」(1919)에서는 「객관적 상관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술의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특수한 공식이 될 수 있는 일련의 사물, 하나의 상황, 일련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③ 엘리어트의 「형이상시인」(1921)에서는 통합된 감수성을 주장했다.
「테니슨이나 브라우닝도 시인이며 그들도 사색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상을 장미의 향기처럼 직접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단에게 대해서 사상은 경험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감수성을 변화시켰다. 시인의 마음은 직업을 위해서 완전히 준비가갖추어 졌을 때, 언제나 분산된 경험을 통합하고 있지만 일반 사람의 결험은 무질서하고 불규칙하며 단편적이다. 일반 사람은 연애를 하거나 스피노자를 읽거나 간에 이 두 경험은 서로 아무런 관련을 갖지 못하며 또 타자기의 소리나 요리하는 냄새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속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새로운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는 것이다.
④ 하이데거(M,Heidegger)의 시론;「횔더린과 詩의 本質」(하이데거 저. 소광희 역『시와 철학』박영사,1978)
---예로부터(Ⅳ 135)
神들의 말은 눈짓이다
「시인이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눈짓을 포착해서 다시 자기 민족에게 눈짓으로 전하는 것이다」
라고 하이데거는 횔더린(Hoelderlin)을 인용하여 말했다
⑤ 랜섬의 형이상시(形而上詩)(이창배의 뉴크리티시즘 詩學)『한국영어영문학회 편 영미비평연구(민음사 간, 1981)pp 197~226』
「워렌이 순수시와 비순수시를 구분한 것과 마찬가지로 랜섬(John Crowe Ransom)은 형이상학파 시에 반대되는 시들을 물질시(physical poetry)와 관념시(Platonic poetry)로 구분하였다. 그러니까 워렌의 순수시를 물질시와 관념시의 둘로 구분하여 시의 이상적인 상태인 비순수의 형이상학파 시와 대조시킨 것이다. 랜섬은 물질시의 예로서 이미지즘의 시를 말한다. <이미지즘은 단순한 물건으로만 된 순수한 시이다---이미지즘의 동기는 사상의 체계적인 추상화(抽象化)를 싫어하는 데에 있다.>고 그는 말함으로써, 이미지즘의 시(詩)가 사상을 배제하고 하나의 이미지나 일련의 이미지만으로 독자의 주의를 지배하려고 한 것을 비난하였다. 랜섬은 형이상 시야말로 인간 경험의 완전한 지식을 전할 수 있는 시로 생각하였다. 관념시는 너무 이념적이고 물질시는 너무 사실적(寫實的)이어서 흥미가 없지만 <형이상학파 시는 과학을 보충하고 논의(論議)를 개선한다>고 그는 말한다. 랜섬은 형이상학파 시는 <가장 독창적이고, 흥미있고, 가장 지적인 풍미가 들어 있어서, 다른 문학에서는 그와 동등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의 정의를 기초로 하여 이혜선의 시세계를 점검하는 것이 이 글의 순서요 보람일 것이다. 제일시집 『신(神) 한 마리 』에 있는 시 「돌門」보자
산등성이로 언뜻언뜻
아이들 옷자락이 보인다
神 한 마리가 눈을 뜬다
새는 밤꽃으로 피어 있다
밤숲에선 늘 한두 잎씩
노래의 잎이 지고,
내일은 장승 한 마리가
돌문을 열것다.
-「돌門」전문 『神 한 마리』(1987)
시집 명칭 『神 한 마리』는 <神>에 대한 비하의 말이다. 神이 존경의 대상이기에 일부러 비하하여 이질적인 단어의 폭력적 결합을 시도하였거나 러시아의 형식주의자인 쉬클롭스키의 소위 「낯설게하기」의 효과를 선택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神은 기독교인의 경우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요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시작품의 성공여부는 독창적인 비유나 상징을 통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달려 있는데 다순히 시어의 폭력적 결합이라는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며 그 효과를 떨어뜨렸다고 하겠다. 「장승 한 마리」도 마찬가지다. <장승>과<한 마리>의 결합이나 <神>과 <한 마리>의 결합은 시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역효과라고 할 것이다. 훌륭한 시는 신에 대한 경건한 표현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독창적인 비유나 알맞은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엘리어트가 말한 「통합적 감수성」도 전통 즉 역사의식이 있는 훌륭한 시인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시정신이 없이 컨시트만으로 쓴 형이상시는 난해시로 추락하기 쉽다
5, 불이사상(不二思想)과 불교철학
불교철학의 중심은 삼법인에 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무상인(無常印)과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무아인(無我印) 그리고 열반적정(涅槃寂靜) 즉 열반인(涅槃印)이 삼법인(三法印)이다. 불교는 중도(中道)를 따르는 종교로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해탈의 길로 삼는다. 불교는 연기설을 주장한다 緣起란 因緣生起의 준말로 조건적 발생을 뜻하며 이는 梵語pratia 즉 말미암아(緣) 라는 말과 samupada 즉 일어난다(起)라는 말이 결합한 단어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기일 뿐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는 없다는 부처의 깨달음이다. 이것을 연기법 또는 인연설이라 한다. 연기에는 12연기가 있다. 부처는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 했고 사람마다 욕망으로 불타고 있는데 그 불이 모두 꺼진 상태를 열반(涅槃)이라 불렀다. 부처는 인류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구제하려고 출가한지 육년 만에 진리를 깨달아 해탈과 열반에 이르렀다. 인간은 번뇌(煩惱)와 탐, 진, 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을 꺼야 무지(無知)로부터 시작되는 연기(緣起)의 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탈에 이르고 욕망의 불이 모두 꺼져야 열반에 이른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특히 不二思想은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나 生死不二 梵我不二등 差別相을 平等相으로 보는 佛敎哲學이다
이혜선의 많은 작품들은 불교철학에 근원을 두었으므로 不二思想의 시학에 닿아 있다. 이제 작품을 보자
고속도로 달리다가
나무에 기대고 있는 산을 보았다.
허공에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배를 타고
청산도 가는 길에
물방울에 기대고 있는 물을 보았다.
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하늘을 보았다.
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
하루해가 기우는 시간
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 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 내려앉아
깊은 잠 들고 있었다.
「불이 不二, 서로 기대어」전문
싯다르타가 나이란자라 강가를 거닐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①헤르만 헤세 소설 박병덕 옮김『싯다르타』민음사, ②강건기 지음 『부처님 생애』,③ 보르헤스 후라도 공저 김홍근 편역 『보르헤스의 불교강의』여시시아문출판사 1998. ④이기영 지음 『석가』전집 제8권 한국불교연구원,1999) 들녘에는 추수하는 농부들이 추수한 곡식단을 묶어 서로 기대어 세워놓았다고 한다 비스듬히 서로를 받혀 세워 놓았다. 곡식 묶음을 서로 의지하여 세워 놓았는데 이것을 한 묶음 뽑아보니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싯다르타는 깨달았다. 이 세계는 서로 의지해야 설수 있다는 것. 이것이 상의성(相依性)이다. 싯다르타가 나이란자라 강가를 거닐면서 깨달은 진리다. 상대주의 존재론이다.「이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增谷文雄 지음 李元燮 옮김 『佛敎槪論』현암사, 96쪽 )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랭보는 보는 자 즉 견자(見者=voyant)라고 했다. 견자의 사상이다. 예언자란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이란 또 어떤 사람인가? 하이데거는 시인을 <신(神)의 눈짓을 포착해서 다시 자기 민족(民族)에게 눈짓으로 전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서로서로 기대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넌지시 전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장자(莊子)는「시(詩)는 천래지언(天來之言)」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물방울에 기대는 물><갈매기 날개에 기대는 하늘><허공에 기대고 있는 하늘><흙은 씨앗에 기대어 피어나고> <엄마 젖가슴은 아기에 기대어 자라난다><들녘 끝 잡초들이 서로 어깨 기대는 것을 보았다><그 어깨 위에 하루살이들이 내려앉아 깊이 잠들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은 평화롭고 따듯하다. 사랑과 연민의 시선을 느낀다. 이 얼마나 놀라운 표현인가. 끝으로 제5시집 『운문호일(운문호일)의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① 새해 새 아침에 떠놓은
정화수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해의 심장을 찔렀다
물의
심장이 불타오른다
「운문호일雲門好日 정화수」 전문
② 닭튀김을 먹고 남은 뼈를
뒷마당에 널어 말린다
맑은 가을볕손가락이 뼈들을 바짝바짝 말린다
길고 짧은 뼈들을 속속들이 말린다
제자들과 길을 가던 석가모니는
길가의 마른뼈 무더기를 보자 그앞에 절했다지
몇 생 전前 부모의 뼈인지도 모른다고
검은뼈 흰뼈 삭은뼈 덜 삭은뼈에 공손하게 절했다지
나는 오늘
말라가는 닭뼈에 마음으로 절한다
몇 생 전 부모님 뼈
몇 생 후의나의 뼈
굽이굽이휘어지는 강물의 흰뼈가 보인다
산비탈 오르며 미끄러져 주저앉는 뒷모습
굽어진 구름의 등뼈가 보인다
뒤틀린 바람의 무릎관절이 다 보인다
바람 든 이승의 무릎 꿇고 다시금
마른 닭뼈에 절한다
-「운문호일 雲門好日 마른 닭뼈」 전문
③ 뼈 하나로 꼿꼿이 눈 속에 서서
명상에 드는
성자
「운문호일雲門好日 겨울나무」전문
「운문호일 雲門好日」은 1135년 경에 만들어진 고전적인 선학의 문답 공안집『벽암록(碧巖錄)』의 제6칙에서 가져온 말이다. 운문화상이 대중들에게 설법하기를 15일 이후의 일에대해 묻고는, 스스로 〝날마다 좋은날 日日是 好日〞이라고 말했다. 날마다 좋은날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이 구절을 그대로 옮겨오면 운문일일호일(雲門日日好日)이 될 것이나 시인의 그 약어로 축약한 <운문호일>을 자신의 화두로 선택했다(김종희 교수의 시집 해설에서 인용함)
위의 시작품 ① 「정화수」는 새해 첫날 새벽에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정성을 다하여 두 손 모아 비는 아낙네의 그 정성을 쓴 작품이라고 읽을 수 있겠다,<물의 심장>에 <해의 심장>을 오버랩하여 일치시킴으로써 지극한 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심상은 토속적인 과거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전통적 삶이다.
그다음 작품 ② 의 「마른 닭뼈」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시로 재현하고 있다. 이승에서만 경험하는 우리로서는 전생이 있는지 믿기 어렵지만 불교는 그것을 믿게 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먹고 버린 닭뼈 무덤, 그것이 전생의 부모의 뼈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석가모니는 그 앞에서 절을 올린다고 시인은 썼다. 저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는 그의 소설 『알레프』(보르헤스 전집 ③)에서 석가의 깨달음을 소설화 하지 않았던가. 이는 불교의 윤회설이며 엠페도클레스, 피타고라스 보르헤스 등이 윤회설을 믿었다.
홀로 나무 아래 정좌한 싯다르타는 순간적으로 자신과 모든 중생의 수많은 전생을 보았다 한눈에 우주 구석구석의 수많은 세계를 전관(全觀)하였다 그뒤 인(因)과 과(果)의 사슬도 모두 보았다(보르헤스 지음`『보르헤스의 불교강의』 P21)
이 묘사는 보르헤스가 붓다의 성불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보르헤스는 소설로 썼고 이헤선 시인은 시로 썼다. 노벨문학상은 받지 못했지만 보르헤스는 위대한 문인이다. 이혜선의 시가 보르헤스에 견주어 불교의 진수를 전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이 작품을 보르헤스의 『알레프』에 견주면서 주목한다.
그다음 작품 ③「겨울나무」를 보자 불과 3행1연의 단시지만 나는 이런 시를 좋은 시라고 평하고 싶다. <쉽고도 어려운 시>가 좋은 시다. 한마디로 절창이다. 박수근의 그림(빨래터)이나 이중섭의 그림(흰 소)이나 장욱진의 그림(나무와 새)이 난해하던가. 우리의 시가 점점 난해한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을 시인들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6. 결어
이혜선 시인의 시세계는 지금까지는 역사의식으로 시작하여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시를 써 왔으며 그의 詩法은 엘리어트의 통합된 감수성 이론과 형이상시파의 이론에 따른 현대시의 기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생활체험은 시에 반영됨으로써 그의 시가 휴머니즘에 접근하여 있어서 따듯함과 함께 연민에 가득 차 있다. 초기에 다소 난해한 시도 있었지만 후기에 오면서 난해성을 벗어나 시정신이 충만한 시를 쓰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정신은 이혜선 시인의 말과 같이 이규보나 서거정의 시학을 비롯한 전통을 중시하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시는 오늘날 한국시의 방향을 제시한 점에서 크게 기대된다.
나는 이혜선 시인의 시작품들이 형이상시의 컨시트라는 시법 때문에 훌륭한 시가 아니라 시정신 때문에 훌륭한 시라고 평가하고 싶다. 만일 시정신이 없으면서 컨시트의 기법만 있는 시라면 비유컨대 생화가 아니라 가화에 불과할 것이다. 이혜선 시인의 시정신은 역사의식 즉 비판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