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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기드온용사 훈련 후
"이제는 당신 기도를 믿고 당신 기도를 의지해"
남편은 공부는 싫어하고 몸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남편은 참 공부하기 싫어한다. 몸으로 때우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한다.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스크린 설치며 앰프 전기선이며
오디오장 쪽으로 가보면 얼마나 전기선들이 수없이 얽혀있는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남편은 이것을 잘 보고 만지고 바꾸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원리를 생각하면서 고치고 만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남편은 모든 것을 고쳐달라고 갖다 주면 거의 다 고친다
어렸을 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다.
바보는 없다. 어려서 환경이 나빴던 것이다.
나는 공부하기는 좋아하는데 몸으로 하는 것을 안 좋아하고 잘 못한다.
이런 궁합은 찰떡궁합(?)이다.
나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성구사에 다녔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각종
연장을 좋아하고 집을 지을 수 있는 연장들을 다 사놨다. 나 몰래 카드로.
나는 카드를 점검하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이 나를 속이기는 좋았다.
그렇다고 큰 일을 저지를 만큼 허황된 것은 아닐지라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비하면 씀씀이가 컸다. 아무리 취미생활이라고 해도 CD이며 DVD이며
BLUE LAY이며 스피커며 스크린에 앰프 등을 장만하려면 단위가 커서 몇 개월
할부로 끊고 했는데 나는 카드명세서 같은 것을 보아도 살필 생각을 안한다.
그런데 음악 종류들을 살 때도 클래식 종류로만 샀지 뽕짝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딸도 아들도 그런 아빠를 좋아했다.
집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오지 않는다고. 물론 다 교회를 다니니까 그렇지
교회를 안다니는 누군가는 찬송가나 클래식에 흥미 없을 수도 있다.
성격도 얼마나 긍정적인지 우울해 하는 것이 안 어울린다
성격도 좋은 것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밝은지 우울해 하는 것을 못 봤다.
반찬은 못하지만 집안 살림도 잘한다. 술은 안하는 것이고 담배는 못한다.
담배는 꽁초를 만지거나 냄새를 맡는 것도 싫어한다. 노래방도 가기 싫어한다.
나이트나 카바레는 문 앞에도 안 가봤다. 무섭다고 한다. 화토도 못한다.
게임도 못한다.
회사 동료들도 "넌 모하고 사냐?" "무슨 재미로 사냐?" 그런댄다.
'집-교회-회사' 밖에 모르고 어쩌다 용산에 간다.
"무슨 싱싱한 거(새로운 영화 등) 나왔나?" 하고 가는 것이다.
발품을 많이 판다. 그런데서 많은 정보를 얻어 와서 이제는 혼자 스크린도
설치하고 제품들도 업데이트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쉽지 않은 것인데,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그런 것은 잘한다.
아이들도 처음에 컴퓨터를 배울 때 게임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공을 하기 위해서 학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의가 채팅을 하려고
하다가 컴퓨터를 배우고 한다. 자기 취미생활을 통해서 빨리 배우는 것 같다.
남편도 그랬다. 컴퓨터의 컴 자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시스템을 공부하고
업데이트 하기 위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니 컴퓨터도 조금 배웠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스크린 설치를 빨리 배우게 된 것이고.
아이들이 게임을 찾아줬고 내가 '열심'을 전염시켰다
나도 내가 해야겠다고 찜한 것은 빨리 배우는데 사람마다 다 그런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배운다.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게임에 푹 빠져버리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잊게 되어서 PC방에서 며칠을 게임하다 죽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나도 한번 게임을 하면 중독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을 안다. 기드온용사훈련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점수를 갱신하는 게임에 몰입한다. "원수가 집안식구이리라" 라는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죽일 원수가 아니라 죄를 짓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원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자식일지라도. 내가 그토록 몰입했던 아이패드에 있는 'Bird' 게임은 나의 딸이 "엄마 이 게임 재미있는데 보니까 딱 엄마 스타일이야" 하고 갖다 준 것이다. 아이패드 이전에 핸드폰의 Boollee Boollee라는 게임도 사실은 딸이 하던 것이 나에게 전염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해도 나처럼 몰입하지는 않고 잠깐씩 했다. 나는 게임이 어느 것이 좋은지 찾지를 못한다. 나의 아이들이 하는 것 중에서 내가 할만한 것을 고른다. 그런데 나는 게임일지라도 '열심'을 전염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재미있었던 게임도 '지옥의 소리'를 듣고 그날로 단호하게 끊고 지워버렸다. 딸 아들까지 사는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 구제가 필요한 가난한 가정이 있다 큰 딸 어렸을 때 남편이 갑자기 허리디스크가 와서 돈도 못 벌고 꼼짝없이 둘이 기도생활에만 전념할 때가 있었다. 임신은 해가지고 직장도 안다니고 그러나 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딱 낙태수술 못할 때 우리 부부를 그렇게 몰아가셨다. 지금도 어떤 연단 속에 들어가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외형적으로 볼 때 사는 것이 괜찮은 것 같은데 가난한 가정이 있을 수 있다. 먹을 것이 없는 가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겉만 보기 때문에 그런 가정을 모하러 돕느냐는 교인들의 반발에 우리도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어느 성도도 그렇게 집도 있는 상황에서 어려웠는데 교인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교회에서 돕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엄마는 결국엔 돌아가셨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아버지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돕는 손길을 붙여 주셨다. 한 것이라고는 죽어라고 기도만 드렸다. 교회는 교인들이 정보망, 세상은 통·반장이 정보망 우리는 교인들끼리 겉은 괜찮은 것 같은데 속이 어렵다고 하면 십시일반 도와주는 마음자세였으면 좋겠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렇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교회에서는 주의 종들이 교인들에 대한 정보망을 잘해놓아서 누가 갑자기 어려움을 당했는지 보고체계를 잘 갖췄으면 좋겠고, 심방을 가야하는지 물질로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잘 살폈으면 좋겠다. 안 믿는 자들의 삶도 하나님아버지께서 통치하시고 살피시고 계시는데 반장이나 통장들이 이런 일을 감당해서 기아상태에 빠진 아이들이 있다든지 겉은 괜찮은 것 같은데 속은 죽을 지경까지 가는 사람들을 살피는 것이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아닌가 싶다. 내가 현재 겉 모양으로 사는 것을 보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연단으로 몰아가시니 속은 썩는다. 그렇다고 먹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너무 힘들다. 우리는 우리도 힘들면서 우리처럼 사는 성도가 있으면 못도와줘서 난리다. 하나님아버지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다. 나는 내가 어려워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남들은 모른다. 오직 하나님아버지만 아신다. 죽어라고 기도드리는 것밖에 없다. 술도 어른한테 배워야 하듯 운전도 베스트 드라이버에게 배워야 남편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운전을 배웠는데 무슨 운전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면허를 대형까지 금새 따버렸다. 그것도 목사님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니까 회사 사장님이 면허 따라고 돈을 주셨다. 하나님아버지께서 돈까지 주시면서 따도록 하신 것이다. 대형면허까지 쉽게 따고 석유회사를 들어갔다. 운전을 혼자 배우고 누가 간섭해 주질 않아서 그런지 험하게 몰았다. 그런데 이때가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온수연립 독채로 이사오게 하신 하나님아버지께서 빚을 전부 갚게 하시고 나서였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아버지께서 자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교회든, 주의 종이든, 장로든, 집사든, 권사든 소용없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해서 막 봐주시지는 않으신다. 계산하실 것 다 계산하신다. 무섭게 몰아가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무서운 하나님이셔도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랑은 너무 좋다. 원래는 자상하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끝이 없으시고 좋으신 분이시다. 우리가 인생에서 너무 고집스럽고, 말도 안 듣고, 내가 해보겠다고 설치고, 잘난 척 하고, 조금만 잘하면 바로 교만해지고, 자칫하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하고, 내 주먹이 하나님보다 더 세다고 하기 때문에 무섭게 육시키셔서 그렇다. (열왕기하 18: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아멘. 남편은 격주로 예배를 드렸다 다른 예배는 제대로 못드렸다 그렇지만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신다. 이때는 남편은 주일을 격주로 쉬었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도 한 달에 두 번 드렸다. 수요예배나 철야예배나 새벽예배도 못 다녔다. 그때는 그런 것이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주일학교 성가대 지휘도 하고 대예배 성가대도 하면서 각종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성경공부도 열심이었다. 남편은 석유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후에 내가 버스회사라도 가보라고 했는데 이때는 나의 신앙상태가 남편이 온전하게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돈을 못버는 남편이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데 생각나는 것이 버스회사라도 가라는 것이었다. 이 때도 나는 신문사를 다니고 있었다. 남편은 어떻게 하다가 버스회사를 들어갔다. 이때도 격주로 주일예배를 드렸다. 다른 예배도 제대로 못드렸다. 퇴사할 때까지 십몇 년을 다녔다. "주일예배를 못 드린다면 회사를 그만 두겠습니다" 남편이 버스회사를 다녔는데 버스회사는 주일마다 쉬기가 어렵다. 명절날도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마음속에 "남편도 주일예배를 한 달 온전하게 다 드리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남편이 베이스 파트를 했는데 예배를 못 드리고 회사를 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나는 정신은 씩씩한 편이라서 남편이 없어도 잘하고 있었는데 어느 주일날 내 모습에서 남편이 회사를 가고 없으니까 날개가 없는 독수리 같았고, 이빨 빠진 호랑이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힘이 빠졌다. 나는 나 혼자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아니다. 예배를 드릴 때 남편이 없다는 것이 사별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간 것이었는데도 내 마음이 그러니 정말 남편이 없는 여자들은 얼마나 힘이 없고 외롭고 어려울까를 생각하게 됐다. 혼자 교회 오는 것도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서 혼자된 집사님이나 권사님이 무언가를 남편에게 부탁해 올 때는 서슴없이 가서 도와주라고 했다. 그때는 내가 신문편집 프리렌서로 일하면서 지방일간지를 통째로 맡아하면서 수입이 괜찮았었다. 그래서 이럴 때 남편이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회사에 가서 "나는 교회를 가야 하기 때문에 주일날 쉬었으면 좋겠다" "쉬지 못하면 그만 두겠다"고 하라고 했다. 솔직히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모험을 한 것이다. 내가 벌어서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결단'을 해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그 주일부터 바로 매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다. (에스라 7: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나라(이방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하나님을 믿는 자들) 중에 '예루살렘(교회)'으로 올라갈 뜻(결심)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아멘. 그 뒤 몇 년을 주일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면서 지냈다. 그 대신 휴가 때나 명절 때는 우리는 '주일을 꼬박꼬박 쉰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이 다 좋은 날 챙기도록 하기 위해 좋은 날짜를 요구하지 않았다. "큰일이야! 목요일에 쉬는 당번이 되었어!" 가슴이 철렁 그러다 어느 해에 남편이 이번에 회사 시스템을 전부 바꾸는데 쉬는 날도 바뀔 수 있다고 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했다. 기도를 드린다고 드렸는데 딸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는데 쉬게 해주시겠지" 라고 말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쉽게 생각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전화로 "큰일이야! 목요일에 쉬는 당번이 됐어!" 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목사님께 달려갔다. "목사님 큰일났어요! 기도해 주세요! 남편이 목요일에 쉬는 당번으로 바뀌어서 주일예배를 제대로 못 드리게 될 것 같아요" 라고 말씀드리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주일부터 바로 쉬면서 예배를 드리도록 되었는데 대체근무를 하도록 하면서 바꿔줬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골치 아프다고 하면서도 배려를 해주었다. 그 후로 어쩌다 사정이 있어서 주일날 하루만 나와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출근하면 동료들이 "너는 교회를 가야지 회사는 왜 나왔어?" 그런댄다. 그 회사에도 교회다니는 사람이 몇명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집사라고 인정을 안해주었고 주일에 쉬는 당번으로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게임을 통해 배웠다 하더라도 빨리 절제를 하면서 살면
남들이 봤을 때는 부부가 젊지, 안 아픈 것 같지, 여자는 이럴 때 왜
그곳에서 사고도 내고 하다가 몇 년 후에 해고됐다.
그리고 2012년 3월 31일 딸 결혼 때문에 퇴직금을 타기 위해서
회사에서 배려를 해준 것이다.
회사에서도 별명이 "할렐루야" "아멘" "목사님" "집사님" 이다.
하도 만나는 사람에게 "교회 다녀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고,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라고 전도를 하고 다녀서이다.
식사 기도도 일부러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기도를 드리면 앞에 같이
앉아서 먹으려고 하던 동료들도 기다리다가 끝나면 같이 "아멘" 하고
먹는다고 한다.
회식자리도 피했다. 가면 술 먹고 담배피고 쓸데없이 수다 떨고 한다고
그 시간 있으면 교회 가서 기도드리고 봉사한다고 그냥 왔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볼 때는 잘 한 것이지만 회사 직원들이 봤을 때는
나빴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고도 안내고 잘하고 있으니까 뭐라 하지는 않았다.
"빚을 지는 한이 있어도 예배를 못 드리는 회사 못 보냅니다"
그러다 딸이 결혼하게 되면서 돈이 없다보니 퇴직을 하게 됐다.
재입사가 될 줄 알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 전의 삶이었다면
재입사가 됐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때가 기드온용사 훈련이 끝나고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많은 트러블이 있었는데 나의 훈련과 맞물려서 하나님께서
재입사를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재입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중에 하루는 결단기도를 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아버지, 남편이 재입사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꼭 되도록
도와주세요. 하지만 만약 이번에 되지 않더라도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회사로 남편을 보내지 않겠습니다.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요.
그 대신 제게도 능력을 주셔서 신문사 편집부국장을 하도록 해주시고
일할 것도 항상 하나님아버지께서 주셨으니 이번에도 일간지 하나만
허락해 주시면 남편은 놀더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제가 벌어서
먹고 살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남들도 그렇고 남편도 자기가 벌어야 된다고 그런다.
남편이 주일예배를 못 드리고 회사를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재입사가 탈락됐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두 번의 결단기도와 공고와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와 맞물려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안다.
"너희 근신이 풀렸다"는 말씀과 함께 평택신문에서 전화가 왔다
3월 30일 이후로 7월 말까지는 수입이 우리 둘 다 없었다.
그러다 기도 중에 "너희 근신이 풀렸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바로
평택신문사에서 전화가 오게 하시고 8월 초부터 일을 하게 하셨다.
딸 결혼 때문에 어떻게 하다가 안 가게 됐었는데 내가 자존심이 있어서
다시 가서 일을 하겠다는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필요하다고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정말 "당신이 필요해, 당신이 없으면 신문사 문을 닫을거야"라고 했다.
나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관리를 못하시는 줄 알았다.
아니다. 다 하나님아버지께서 관리하시는데 '나의기도'를 가지고 나의
기도를 이루시도록 하시기 위해, 남의 마음을 움직이시기도 하시고, 나에게
어떤 말을 하도록 지시하시고, 나에게 전화하도록 명령하시기도 하시고,
나를 도우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남편은 성경에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되어있는데 당신이 일을
안 찾는 거 아냐?" 라고 한다. 자기의 일이 안되니까 나라도 어떻게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일을 했어도 나를 찾는 전화가 오도록 기도를 드리면서
살았지 내가 이력서 써들고 전화로 일자리를 부탁하고 살지를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하나님아버지만 믿고 있었다.
나는 일을 그렇게 했다. 자존심을 내세워 가면서, 안 믿는 사람에게 덕이
안 된다는 생각에 누구한테 나좀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아버지께 기도드리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심 속에 회사도 다니고
알바도 하고 했었다.
그래서 평택신문 연결도 하나님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셨다는 것을
정확하게 안다.
물론 그 때는 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배짱부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만약 내가 혼자가 되었을지라도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남편은 직장이 없다. 거의 1년 동안 남편 수입이 없다.
그래도 나는 '예배'를 붙잡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혼자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버틸 수
있고 다른 방법으로 이끌고 가실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평택신문은 격 주간 신문이지 일간지가 아니었다.
적어도 일간지를 해야 한달 수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택신문은
한 달에 이틀 일하고 60만원을 받기 때문에 일한 것에 비하면
큰돈이지만 우리 집 생활비로는 한참 모자라는 액수였다.
딸이 결혼하고 매달 30만원씩 생활비를 대주었다.
아들은 혼자 학비도 마련하고 생활하도록 허락해 주셨다.
올해 들어가는 대학원도 하나님아버지께서 학비를 다 해주셨다.
조교로 일하도록도 허락해 주셔서 자기 생활비도 해결됐다.
우리 부부만 묶으시고 딸과 아들은 풍성하게 도와주시고 계신다.
기드온용사 훈련이 하나님아버지께서 하신 것을 밝히신다
그렇게 2013년 2월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지은 죄야 많지만 그래도 기드온용사 훈련 들어갈 때 그토록 처절하게
회개 시키셔놓고 용서를 안해주시고 이렇게 생활을 묶어놓으시고
우리 부부를 몰아가시는 것이냐고 떼도 쓰고, 골도 부리고, 그러다
혼날까봐 애교도 부리고,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포개고 "주세요"도
하기도 하고, 거지처럼 도와달라고 구걸도 하고 정말 별 기도를 다
드렸다. 하나님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도 해주셨다.
남편이 일을 못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알려주셨는데,
나의 기드온용사 훈련이 하나님아버지께서 하신 것이라는 것을
밝히신다고 하셨다.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 들어가면서 성령하나님께서 가족 서로에게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영분별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게 하셨다.
그래서 가족들은 훈련이 끝나고 나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영분별을
철저하게 하느라고 하다가, 그래도 잘 모르겠어서 결국에는 나를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기를 시작했다.
우리 목사님께서도 들리는 소리나 꿈에 의지하지 말고 의심부터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천천히 알아가도 늦지 않다고.
내가 하는 행동을 주시하고 나를 의심하고,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아버지까지
의심했는데, 처음에는 나도 혼란스러워서 당황하다가 계속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가시는 하나님아버지를 나는 완전하게 믿게 되었다.
마귀가 세상 권세 다 쥐고 가나?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안하시나?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마귀가 세상의 권세를
다 쥐고 가고,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잡아먹고 지옥도
보내고 한다는 설교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안 하시고
바라만 보시는 줄 알았다.
우리는 마귀가 다 우리 삶을 다 조작하고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이나 그런 단체들을 만들게 하고 세계를 주물럭 거리고, 666 사건에, 베리칩 사건에 지진에 화산에 전쟁에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마귀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문명도 마귀가 발전시킨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귀가 복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지옥도 마귀가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이 내가 받은 기드온용사 훈련이 마귀가 한 것이라고 했다. 그 뒤로 가족간에 분쟁이 있었고 다툼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휘청거렸다. 그렇지만 새벽기도나 각종 예배는 전보다 더 열심히 드렸다. 기드온용사 훈련 들어가기 전보다 신앙생활도 더 열심이었다. 훈련 들어가기 바로 전에는 남편도 약간의 시험이 들어 주일예배 말고는 교회를 돌보는 일에 게을러졌고, 나도 게임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마귀가 지옥도 보내나? 그렇다면 마귀가 하나님인 것이다 어항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있는데 마귀가 "오늘은 어느 놈을 잡아먹을까?" 하다가 "옳지 이놈을 잡아 먹어야겠다" 하고 꺼내서 잡아먹고 지옥을 보낸다는 설교에서는, 그렇다면 마귀가 하나님인 것이다. 전쟁에서도 보면 대장이 죽으면 전쟁도 끝나는데 그렇다면 마귀가 주의 종들부터 잡아먹지 않을까? 대장을 나두고 피라미인 성도들만 잡아먹을까? 주의 종들이 더 마귀로부터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주의 종들이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교회 무리에서 이탈이 되지 않을지, 그래서 마귀에게 넘어가지 않을지를 잘 가르치면서 정말 잡아먹히지 않도록 신경쓰고 도와주고 해야 할 책임성의 문제인 것 같다. 성경에는 분명히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고 했는데, "스올도 보내시고 스올에서 꺼내시기도 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 이시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자꾸 마귀가 보낸다고 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지옥에 갔다고 하면 이해가 된다. 주의 종일지라도 왜 자꾸 "그러면 지옥에 간다"고 할까? 정말 주의 종들은 지옥에 안가나? 안 갈 자신 있어서 그러나? 나는 내가 자신 없으면 장담을 못하겠는데, 우리 가족들도 뉴스를 보거나 할 때 "저러면 지옥에 가는데"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갔겠지? 했다. 지옥이 놀이터냐? 계속 지옥에 갔다고 하게? 얼마나 우리가 잘못됐는지. 훈련 받고 나서는 절대로 "누가 지옥에 갔다더라"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가야 한다"는 등의 소리를 못하게 했다. "당신이 하나님 할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심 속에, 지켜보심 속에,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고 넘어뜨리려고 하고 죄도 짓게 만든다는 것과, 하나님과 상관없이 마귀가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휘두르다가 지옥도 보낸다는 것은 차이가 엄청나다. 하나님의 존재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빠진 결론의 권세는 다르다. 세상의 모든 것(100%)은 하나님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시다. 마귀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다. 우리에게 느껴지는 존재성이 무서운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사고에는 하나님의 권세보다 마귀의 권세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기드온용사 훈련도 마귀가 했다고 가족이 의심하고 나의 방언기도며 기드온용사 훈련이며 다 없던 것으로 하라고 했었다. "게임하고 놀아도 좋으니 기도생활을 하지 말라" 강요 기드온용사 훈련을 마귀가 했다고 의심한 가족은 내가 하는 기도도 마귀가 하는 것 같은가 보다. 나는 분명히 내가 그동안 체험했던 하나님아버지, 성경에 나오시는 하나님아버지께 하는 것인데 말이다. 가족들은 나에게 중보기도도 드리지 말고 기도생활도 하지 말라고 했다. 게임하고 놀아도 좋으니 기도생활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왜 그렇게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때는 가족들 몰래 기도를 드렸다. 가족이 다 나가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 집에 들어올 때쯤에는 기도를 멈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하나님아버지께서는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너 잘 만났다" 하는 식으로 기다리셨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물론 아무데서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화장실에서의 느낌은 달랐다. 완전 1:1의 공간이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하는데 훈련 때의 상황을 재현하시기도 하시면서 웃기셨는데 너무 웃겨서 배를 쥐고 웃는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정말 하나님처럼 남성의 음성으로 말씀하시면 멋있고 두렵기도 하고, 위대하시고, 높으시고, 무섭기도 하시고 그렇다. 하지만 어느 때는 사람 같이 말씀하실 때가 있으신데 그때는 배꼽을 쥐고 웃는다. 별 말씀도 아니시다. 아무 뜻이 없는 그런 말씀인데도 나는 우스워서 죽는다. 울게도 하시고 웃게도 하신다. 가족들이 집안에서 가족들이 듣는데서 기도를 못하게 하니 하나님아버지께서 일부러 화장실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내가 대답을 하도록도 하시고 웃게도 하셔서 꼭 들키게 하셨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아버지께 투덜거렸다. "하나님아버지는 왜 가족들이 있는데 화장실에서 저에게 대답을 요구하시고 웃게하셔서 꼭 들키게 하셔요? 남편에게 이런 것들이 안 들리게 해주실 수 있으시자나요. 어떻게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데 그 소리를 듣는거죠? 라고. 하나님아버지께서 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남편의 귀에 넣어주시나? 송명희씨의 '표'라는 책을 읽는데 앞 부분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나 같이 사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데 나는 아예 속에서 말씀하신다. 천국까지 알려주시는데 나는 자꾸 안 믿으려고 한다. 그냥 천국 가서 확인하겠다고 한다. 나는 매일 새벽과 낮, 수시로 깨어 있을 대마다 주의 음성을 들어 귀찮고 시달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나 불안하거나 공포감은 없었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봐라 이야기좀 하자" "나 자야돼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아니 넌 들어야 한다" 화장실 변기에 앉았으나 소변은 안나오고 주의 음성을 듣고 있노라면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고작 그거 알려 주시려고 사람 잠을 못 자게 해요? 다 알고 있는 사실을요?" "화장실이라도 좋으니 골 부리지 말고 기도드려줘 부탁이야" 가족이 들을까봐 혼자 조용히 중얼중얼 대화를 하는데도 이상하게 남편은 귀를 화장실 안에다 넣고 있는지 내가 나오면 "화장실에서 모했어? 화장실에서 기도드렸어? 당신은 이상하더라. 왜 화장실에만 가면 기도를 드리냐?" 한다. 전에 자기도 "화장실에만 가면 기도가 더 잘돼" 라고 해놓고서. 그런데 이때는 나를 살피느라고 하는 말이라서 나는 엄청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상처까지 입고 있었다. 그러다 거의 다 알아가고 이제는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한다고 하는 때에 내가 또 화장실에서 조용히 하나님아버지와 대화를 속삭이고 나왔는데 또 남편이 나에게 "당신 화장실에서 기도했어?" 라고 물어본다. 그때, 전부터 받았던 상처가 올라오면서 "화장실에서 기도를 드리면 어떠냐?" "그럼 하나님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데 못들은 척 하냐?" 해가면서 조금 화를 냈다. 그랬더니 남편이 당황하면서 "아냐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신이 어디서 기도를 드려도 나는 좋아. 당신이 하나님께 골 부리느라고 기도를 안 드리면 내가 불안해서 이제는 당신이 화장실에서라도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는 것이 좋아서 하는 말이야" 라면서 계속 기도드려 주기를 부탁했다. 화가 풀렸다. "나는 "당신이 화장실"이라는 말만 하면 상처를 받았어. 아무데서나 기도를 드리면 어때. 근데 꼭 화장실에 갔다 오면 신경이 곤두서가지고 나한테 쏘아대니 내가 너무 힘들었어. 상처를 받았어" 하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가족은 "놀아달라"고 하고, 하나님아버지께서는 계속 말씀하시고 훈련이 끝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느라고, 나의 몸은 가족과 있었지만 생각은 하나님아버지께 있었다. 그러면 가족들은 그런다. "엄마가 몸은 우리와 있는데 생각은 다른데 있다"고. TV를 보아도 나는 보고 싶지도 않고 보는 것도 아닌데 같이 보자고 얼마나들 강요를 하는지 하나님아버지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내가 가족들하고 잘 놀아주었다. 놀아주었다고 해도 나는 먹을 것을 사오라고 돈을 주고, 먹을 것을 만들어주고, 가족이 하는 말을 듣고, 하는 행동을 보고 웃어준 것 밖에는 없다. 나는 농담을 할 줄 모르니 말을 많이 안한다. 내가 없으면 각자 자기들의 할일만 하고 있다가도 내가 집에 들어오면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말장난도 하고, 엄마가 웃는 것을 보고 싶어서 개그맨들이 한 것 흉내 내고, 그러면 나는 입맛 크게 벌리고 소리 없이 웃고(정말 소리내서 크게 웃고 싶어도 기운이 없어서 크게 못 웃는다. 그것도 뒷골이 땡긴다 심하게 웃으면) 엄마 웃는 것 보려고 딸 아들이 춤도 추고, 히히덕 거리고, 시끌시끌하게 놀았던 가정이었다. 마트를 가도 다 같이 우르르 가고, 교회를 가도 다 같이 가고, 가족 중 누구를 데리러 가도 나머지도 다가고. 정말 거의 가족이 다 같이 움직인 것 같다. "무슨 이런 가정이 있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이라도 다른 집은 거의 따로 노는데 우리집은 어떻게 그렇게 가족이 같이 잘 노냐고 한다. 우리집 분위기를 좋아하면서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별거 아닌 일에 즐거워하고 별 말 아닌데 웃어대고. 하나님아버지께서는 계속 말씀하시는데. 나는 가족과 하나님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지쳐서, 가족들하고 놀아주려고 생각을 가족들에게 돌리려고 해도 내 머리 속에서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아버지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나님아버지께 나의 생각을 붙여놓은 것 같다. "당신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이 진짜 맞아?" 내가 받은 기드온용사 훈련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마귀가 한 것이 아니라는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통해서 밝히셔야 했기 때문에 남편이 일을 못하도록 하셨다. 가족이 아빠를 위해 재입사를 위해서 기도드렸는데도 안됐고, 남편이 혼자 취직을 위해 한참을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고,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도 안 되고, 그만둔 회사 동료가 다른 회사 소개를 시켜줘도 취직이 안 되고 하니까 그제서야 풀이 죽었다. 나는 남편을 회사에 취직을 안 시켜 주신다는 응답을 받은 상태였다. 나에게도 평택신문 외에는 허락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남편에게 말은 안했다. 혼자 알아보고 다니라고. 남편은 매번 "당신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이 진짜 맞아?" 라면서 끝까지 조금이라도 이상한지 지켜보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잘못하면 우리가 지옥에 가는 문제라는 생각에서 더 그랬다.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맞으신데 응답에 대한 현실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남아있었는데 워낙 마귀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하나님께!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드려!" 마귀가 하는 것이면 내가 죄를 짓고 다니고 교회에 시험이 들거나 목사님께 시험이 들어서 교회를 옮긴다고 하거나 안가고 싶다거나 하지 이렇게 철저하게 예배를 드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남편은 '광명의 천사'라는 마귀를 들먹거리며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나중에 하나님아버지께서 너희들이 알고 있는 '광명의 천사'라는 것은 '그런 척 하는 성도' 나 '그런 척 하는 주의 종' 이라고 하셨다.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해줘도 그래도 조금의 의심을 하고 있길래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 있으면 이제는 각자 기도드리자고 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나대로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테니 당신은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라"고 했다.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도 안 들리고 기도를 드려도 응답도 안 되고 하니까 자꾸 "당신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라고 하셔?" 라고 물어본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나를 휘두르는 그 마귀에게 휘둘리지 않을 자신 있지?" "아무리 마귀가 나를 휘두르고 당신도 같이 휘두를까?" 라고 말하면서, 이제부터는 당신이 믿고 기도드렸던 그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당신 마음대로 직장을 알아보고 다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안수집사가 되가지고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회사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정작 반대현상을 주신다 "전쟁이다" 하나님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무조건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라는 결단기도를 하게 하시고 "이래도 주일예배를 드리겠느냐?" 라고 몰아가신다. 처절하게 몰아가신다. 그나마 먹을 것을 주시면서 하시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하나님께서 어디가서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정작 반대현상이 일어난다. 남과 싸우든 나 자신과 싸우든 처절한 싸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전쟁'이다. 어느 전도사님 조차도 "그래도 회사를 다녀야 하지 않냐? 처음에는 제대로 예배를 못 드리더라도 다니면서 기도를 드리고 해서 전에 다니던 회사처럼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면 되지 않냐?"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 내가 요동하지 않는 것은 정말 하나님아버지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데, 그렇게 회사를 다녀야 했다면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그 회사를 못 들어가게 막으시고 격주로 쉴 수밖에 없는 회사를 가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너무 힘이 드니까 내 마음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생활비를 생각하면 막가자고 하고 싶고, 내 마음 속 깊이 들어가면 절대적으로 예배를 못 드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강력하고 해서 또 터지려고 하는 가슴을 쓸어서 내려놓는다. 남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거나 읽거나 할 때 "꼭 그렇게 주일에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야 돼?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간대?" 라든지 "하나님도 그렇지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돈을 벌러 나가야지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몰아가신다는 것이 이해가 안 돼" 라든지 "그저 하나님 뜻과 상관없이 취직이 안 되니까 자기 연민에 빠져서 그러는 거 아냐?" 라든지 "우리는 그렇게 안 살아도 잘만 살고 어떤 고난도 없는데 이상하다" 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슨 상황이든 직접 자신이 겪어봐야 아는 것이니까 그런 맨트에 대꾸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아직 나에게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겪지 않은 것은 자신 있게 말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누가 끼어들 수도 없는 나(주일예배)와 나(생활비)의 싸움인 것 같다. 영적인 처절한 전쟁이다. (이사야 56:1)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아멘. (이사야 59: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며,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요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아멘.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아버지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을 100% 믿는다. 내가 하나님아버지께 벌을 받아 죽는 것이 아니라면.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하나님아버지께서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세상적으로 욕심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그저 교회를 위해서 성가대를 위해서 기도드리면서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데로 살았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애교 부렸다가 골 부렸다가 떼썼다가 그동안 내 마음 속이 얼마나 요동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내 성격이 그래도 변덕스럽지 않고 기분의 변화가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제법 마인드컨트롤을 잘한다고 생각해왔었다. 남편도 남한테 나를 말하기를 "그 사람은 진국입니다" 라고 말한다. 아들도 딸도 나의 성격을 그렇게 알고 있고, 농담도 안하고, 허튼소리도 안하고, 한마디를 해도 진심을 말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믿는데... 나도 나를 그렇게 자부하고, 성격이 굳세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요동을 하는지 내가 참으로 변덕스러운 사람 같이 느껴졌다. 하나님께 울었다 웃었다 애교 부렸다가 골 부렸다가 나를 죽이시라고 떼쓰기도 하면서.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께만 그렇게 하도록 하셨고 사람에게는 예전과 똑 같이 하되 훨씬 더 좋게 달라진 언행으로 하도록 하셨다.
돈은 당장 필요하고, 남편더러 돈 벌어 오라고 할래도 주일예배가 걸리고,
돈 보다 직장보다 주일예배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나에게도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일하도록 해주셨던 하나님아버지께서 다른 일거리를 주시지 않으셨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느 날은 울었다가 어느 날은 웃었다가 하면서 지내왔다. 혼자 밤을 지새면서 울면서 기도를 드린다.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 않고 웃으면서 대해주는데 나의 속은 터진다. 그래서 남편은 내 덕분에 잠을 잘 잔다고 한다. 내가 기도를 드리니 안심이 된다고. "놀 시간이 어디 있냐? 빨리 가서 기도드려라" 한다. 남편이 나의 방언기도 소리를 들으면 엄마가 온 가족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슬픔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들린다고. 매 주일마다 예배를 다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은 좋겠다 주일마다 쉬어서 주일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겪는 일이 우습게 느껴질 수 있겠다. 왜냐하면 자기네는 쉽게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는 왜 그러나 하겠다. 남편이 이제는 버스운전이 제일 적성에 맞다고 다른 일은 싫다고 하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사무실 체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도 없는데 사업을 할 수도 없고 사업은 더더욱이나 하나님께 허락을 받고 기도를 많이 드리고 해야지 그냥 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는 생각도 못한다.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 해도 정년퇴직을 바라보는 나이기 때문에 나이도 많다고 그러고, 하나님께서 회사를 가려고 하는 마음도 안 주시나 이제는 어디 이력서 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하고,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문제가 있어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나는 남편이 주일예배나 각종 예배를 다 드릴 수 있다면 집에서 놀아도 좋으니 내가 벌어서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아버지께 조르고 있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예배를 드릴 수 있고, 회사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조건으로 바꿔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주는 대신 그런 배짱을 부린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이런 복을 주셨는지 모르겠다. 일 좀 해달라고 전화가 와서 내가 할 일을 고르고 있다. 왜 나는 이제 내가 돈을 벌어 생활하더라도 남편에게 예배를 드리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고 가는 것일까?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왜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것이 '예배' 일까? 믿음 좋은 남편 만나서 내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 나의 남편은 20대 초반부터 누가 전도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스스로 교회 다니는 '회사 직원'에게 나 좀 교회에 데려가 달라고 해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부에서 회장도 하고 아주 열심이었다. 그 '회사 직원'은 나중에 '목사님'이 되셨다. 교회가 멀어도 토요일에 퇴근하면 바로 교회에 가서 방석 깔아놓고 청소해 놓고 청년부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자고 주일날 저녁예배까지 다 드리고 교회에서 자고 월요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출근했다. 아무리 집이 멀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 그렇게 했다. 방석 깔아 놓고, 청소해 놓고, 교회에서 자고, 사택에서 밥 먹고. 교회 등록했을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열심이었다. 인천에서 성수동에 있는 교회를 다녔는데 토요일에 출근하느라고 아침에 나가서 월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도생활도 열심이었다. 믿음 없는 내가 들어도 은혜스러웠다. 어떤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조목조목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에 합당한 여자가 '나'였단다. 그때는 나는 기도드릴 줄을 몰랐다. 나는 그때는 성가대는 했어도 성가대 찬양만 끝나면 친구 만나러 나갔고, 주일날이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고 나이트도 다니고 하느라고 예배를 빠질 때도 있었고 세상과 양다리 걸치고 살았을 때다. 큰 오빠랑 집을 합치게 되면서 같이 산다는 것이 죽을 만큼 싫어서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어떻게 하다가 남편하고 결혼하게 됐는데 나는 왜 '내가 그 합당한 여자였는지'가 늘 불만이었다. 그것도 생활이 아주 어려울 때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생활이 나아진 것 같다가 다시 어려워 지고 나서 그런 생각도 하고 남편에게 장난삼아 말을 하곤 했다. "총각 때 왜 그런 기도를 해가지고 내가 불려가게 했냐"고. 남편은 하나님께도 '일편단심' 나에게도 '일편단심' 남편은 내가 원하는 남자 스타일에 하나도 안 맞았다. 남편은 정말 신앙생활만 잘했지 세상 향락적인 것은 할 줄 아는 게 없다. 현재도 아침저녁 상관없이 교회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다니고, 주차장 청소하고, 주차장 도색하고, 본당도 항상은 아니더라도 청소당번 없다고 하면 혼자라도 가서 청소하고, 청소할 사람이 부족해도 불려가고, 계단 청소하고, 로비 청소하고, 운전해달라고 부탁하고, 무엇이 안 된다고 도와달라고 하고, 무엇이 고장 났다고 고쳐달라고 하고, 어디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만들어 달라고 하고, 폐품도 성도들이 가져다 놓은 것에, 어디 다니다가 박스나 고철이 보이면 주워다 보태서 팔고 그것으로 이곳저곳 리모델링 하고, 눈 오면 수시로 가서 눈 쓸고, 교회 김장한다고 하면 나는 안가도 남편은 가서 도와주고, 여전도회 일도 도와줘야 하고, 남전도회 일도 해야 하고, 모든 것을 혼자 다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거의 다하고 있다는 것을 교인들도 안다. 남편은 내가 생각해도 무엇을 부탁하기 좋은 사람이다. 해준 일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으면 가끔 시험 들어서 그렇지.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청년 때도 혼자 방석 깔아 놓고 청소해 놓고 하더니 지금도 여전하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남편은 하나님께도 일편단심, 나에게도 일편단심 '일편단심 민들레'구나.
그런 남편을 만나서 내가 믿음의 생활을 전수받은 것이다. 남편이 나의 신앙생활을 잘 이끌어 준 것이다. 그렇게 믿음이 있다고 해도 남자로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하더라도 돈 벌러 나가야 한다고 한다. 생활도 어렵지 않으면서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이제는 전적으로 당신 기도를 믿고 당신 기도를 의지해" 11개월째 들어서니, 남편은 아무리 기도드려도 취직은 안 되고 어디 알아볼 데도 없고 하자 답답해하면서, 어느 날 이제는 전적으로 나의 기도를 믿고 나의 기도를 의지한다고 하면서 "당신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예언하셨느냐?"고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주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실 것이 없지 않나" 한다. 나는 30여년 신앙생활 해오면서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설교가 좋은지 찾아 다니지도 않았고, 어디 가서 기도 받고 예언 받고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기도 중에 예언 받고 살았던 것도 아니라서 지금 하나님아버지께서 예언해 주셨어도 나도 못 믿고 있다. 목사님이나 사모님이나 전도사님들도 우리의 사정을 알고 계시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으시다. "주일예배를 못 드려도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 할 수도 없고 "그냥 그렇게 잘 견뎌보라"고 하기에는 우리 삶에 돈이 너무 필요한 것이라서 말이다. 그래서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나만 지켜보시고 계신다. 남편이 집에 없으면 교회 간 것이다 "교회가 남편 놀이터다" 이제는 남편도 그 예언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교인들에게도 자기는 백수라는 것을 밝히고 나서는 당당하게 교회에 가서 산다. 그동안 자존심이 상해서 숨기고 있었고 교회도 남들 몰래 아침에, 밤에 가곤 했는데 이제는 아주 교회에 가서 산다. 집에 없으면 무조건 교회에 간 것이다. 교회가 남편 놀이터다. 연장들도 교회 지하 보일러실 한쪽에 공간을 만들어 진열해 놓고 흐믓해 한다. 자기 작업실이란다. 나는 그동안 써온 많은 글들도 내가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있다. 나는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줄 몰랐다. 바라던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래 제일 못했던 것이 '글짓기'었고 다룰 줄 안다는 것뿐인데, 이 글들은 내 지식으로 쓴 것도 아니고, 설교를 듣고 쓴 것도 아니고, 하나님아버지께서 나의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나의 수준에 맞게 알려주시면서 쓰게 하시는데 그냥 막 알려주시거나 하시지 않으신다. 그동안 신앙생활 해오면서 궁금했던 점,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사건 속에서 토론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하시고, 느끼고 생각하고 의문하는 부분을 자세하게 알려주시고 계신다. 오직 성경 속에서 말씀으로 찾아내도록 하신다. 하나님아버지가 정말로 보고 싶고 궁금하고 만나고 싶습니다 성경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아버지를 알아갈수록 하나님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다. 물론 이렇게 무섭도록 몰아가시는 것을 생각하면 야속하다가도 "하나님아버지의 형상이 어떻게 생기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보고싶어서. 기드온용사 훈련 받으면서 하나님아버지께서 사람이 창조되기 전 상황과 사람이 무엇인지, 마귀 귀신들은 무엇이고,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며,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며,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나님아버지께 가면 하나님아버지와 어떻게 살 것인지 등 글로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비밀스러운 것들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무슨 일에 쓰임 받기에 합당하다든지, 축복 받기에 합당하다든지 하는 큰 문제에 있어서는 '천국 청문회'가 열리는 것을 알게하시고 나도 청문회를 거쳤는데, 그것이 성경에 나온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수많은 천군천사들과 회의하시는 장면인 것 같다.(욥기 1장) (열왕기상 22:19~23) 하지만 지금은 성경대로 믿을 뿐이며, 성경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영적인 일이라 해도 밝힐 수 있는 것과 밝힐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밝힐 수 없는 것은 천국 가서 확인한다고 하고 있다. 기도시간에 손으로 하나님아버지의 모습도 그려주신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더 보고 싶고 더 빨리 하나님아버지께 가고 싶고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서 보고싶다. 이렇게 느낌으로 느끼는 것 말고. 어떤 이성과 편지로만 교제를 하다가 몇년 후에 만난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궁금할 것이며, 얼마나 설레고 다리에 기운이 풀릴 정도인지 그런 이성교제를 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정도의 사랑의 교제를 해본 적은 없다. 이렇게 글로 아는 것 말고, 글로 만나는 것 말고, 직접 얼굴을 보고 싶다. 나도 몇십년 후면 죽어서 하나님아버지 앞에 갈텐데 어떻게 볼까? 어떻게 만날까? 가슴이 뛴다. 이렇게 복받쳐 올라오는 사랑의 마음은 무얼까? 이렇게 내 속에 계시면서 항상 대화를 하고 살지만 얼굴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궁금하다.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아멘" ..............................................................................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돈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요새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돈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자신도 공부도 해야 하고, 자녀도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켜야 하고, 여행도 다녀야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하고, 노후를 위해서 재산도 축적해야 하고, 일단 돈이 없으면 사는 맛이 안 나고 기운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데 그 분이 남편에게 직장을 주시기도 하시고, 아내에게 직장을 주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동안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남편이 벌도록 하시고 아내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가족을 잘 챙기고 기도를 많이 드려서 남편이 잘되는 것이 그래서 가족이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 이라고 하시면서 여자들이 직장을 다니는 것을 반대하셨다. 하지만 성도들은 자기들의 삶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지를 않는다. 나도 그랬지만. 그래도 직장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으면 걱정을 덜하셨지만 직장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는 집사들을 보면 많이 걱정을 하셨다. 신앙을 버리면서 직장을 잡고 세상을 잡은 성도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신약에서 보면 루디아도 여자 사업가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같이 사업을 해서 하나님을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면 지금 여자들도 사업을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 아닌가? 아내가 사회에서 UP 되면 남편이 DOWN 될 수도 있다 여자가 잘 버는 가정을 보면 대부분 남자의 일이 안 돼있다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맞벌이 하는 가정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테스트를 하실 때 거의 남자의 직업을 치시고 경제권을 치시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훈련이었든 결과적으로 보면 나의 남편의 경제권을 없애신 것이다. 여자는 벌든지 안 벌든지 어떤 책임과 의무는 없으니까. 여자의 경제권을 쳐도 남편이 벌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에 남편의 경제권이 없어지는 것은 남자로서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과 권세가 바닥을 치는 것이다. 남들 보기 창피할 정도로. 그런데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돈을 벌고 있는데 당신은 그게 모냐?"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잘 버는데, 사회에서 잘 나가는데 남자는 회사를 못 다니는 가정이 되었을 때 이혼하는 사례가 너무 많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이 돈도 못 벌고 아프기까지 하면 아이들이고 남편이고 다 버리고 도망가는 여자들도 있다. 나는 안 그럴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몰아가시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안 믿는 여자들은 "무슨 이런 인생이 있나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도망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여자들에게 원하시는 뜻은 그래도 남편과 자녀들을 잘 보살피기를 바라시는구나, 그것이 그 여자에게 내리신 훈련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온다. 남자가 못나서 못나가고 여자가 잘나서 잘 나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벌고 나는 못 벌게 하실 수가 있으시고, 내가 벌고 남편이 못 벌게 하실 수가 있으시다. 남편이 못나서 사회에서 잘리고, 내가 잘나서 지금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사회에서 잘나가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견디기 힘드니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도움을 주실 수가 있으신데 혼자 해보겠다고 하니 그 인생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어도 일이 안 된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남편이 일어서도록 격려해주며 도와주고 참아주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을 믿을지라도 이런 마음자세가 부족한 가정은 이혼 하도록도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오냐 오냐 하시고, 안 믿는 자녀들은 막 때리시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이 오해들을 한다. 하나님을 믿으니 무조건 사랑만 받는 줄 알고 있다. 나도 남편 퇴사 1년을 맞으면서 적은 수입이지만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면서 각 예배를 다 드리면서 새벽기도를 놓지 않으면서 남편을 불쌍히 여기면서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해줘가면서 살아가도록 하신다. 수입은 별로 없는데 먹을 것은 많이 주셔서 먹을 것이 넘치고 있다. 다 떨어질 만하면 채워주시고 하신다. 나의 회개금식기도 날과 맞물려서 주실 때가 많으시다. 먹을 것을 앞에 놓고 회개금식기도 시키신다 하나님아버지는. 그러실지라도 사랑한다 하나님아버지를. 거의 다 와서 숨통이 트일 때 잘못하면 저주가 올 수도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숨통을 트이게 하시는데 그 때 잘못하면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는데, 아브라함이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첩으로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 아이로 대를 잇겠노라고 할 정도로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할 때가 있다.
그 일로 인해 지금까지 이스마엘 후손과 이삭의 후손이 전쟁을 치루고 있다.
모세는 물을 달라고 하는 백성들의 불평을 듣고 화를 내면서 반석을 한번 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안하고 홧김에 두 번을 내리친다. 그로인해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듣고 무언가 행할 때는 "내가"가 들어가는데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와 모세의 "내가 반석에서 물을 내랴?"가 대표적이다.
남들은 청년실업이니 구인 구직에 대란을 겪고 있는데 나는 왜
안 생겼지 돈 없지 못 배웠지 키 작지 기타 못 치지 노래 못하지.
편집부국장이라고 해도 신문계통에 오래 있다 보니 기사를 조금
참고문헌도 어디 다른 책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실 뿐이다.
벤자민 나무나 사람이나 꽁꽁 묶어 놓아야 한다
누구랑 벤자민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꼭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벤자민 어린나무가 너무 예뻐서 작으마한 것을 샀는데 여기
저기 가지마다 꽁꽁 묶어놨다고 한다.
아주 불쌍하리 만큼 묶어놔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 풀어줬다고 한다.
그랬더니 얼마큼 지나자 산발을 하고 크는데 대책이 없더란다.
그래서 놀래가지고 어찌할까 하다가 천정까지 치솟는 나무를 양쪽으로
갈라서 꺾어놓으면 아래쪽을 향해 자랄까 하고 양쪽으로 나눠서 꺾었는데
나무 가운데가 찢어졌다고 한다.
그랬는데 찢어진 나무가 울기라도 하듯 하얀 진액이
흘렀는데 눈물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또 놀래가지고 붙여놓고 묶었는데 다행히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래도 하얀 진액이 흐르는데 눈물 같았다고 한다.
아팠나보다 나무가.
지금도 잘 자라서 산발을 하고 있는데 아파트 거실 창문을 다 가릴
정도로 자랐는데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키우고 있다고 한다.
가지치기를 할래도 몸의 일부를 자르는 것 같아 불쌍하고
미안해서 못잘랐다고 했다.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 하나님아버지께서 그렇게 꽁꽁 묶어 놓지
않으시면 저 잘랐다고 산발을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으셔서 묶어 놓으시면 불쌍하리만큼 되고,
잠깐 풀어놓으시면 산발을 하고, 꺾으시면 아프다고 눈물 흘리고,
다시 붙이시면 그래도 또 회복하느라고 눈물 흘릴지라도 다시
붙어서 살고 하는 것을 보니 꼭 벤자민 나무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나님아버지께서는 가지치기를 잘하신다.
"이래도 버틸 것이냐" 하시는지 일을 주셔도 버겁게 주신다
나는 이제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둔지 1년이 되는 3월달에 하나님께서
일간지 한번 일할 것을 주시면서 약간의 숨통을 트이게 하셨다.
6개월 정도를 90만원으로 살게 하셨는데, 예전부터 다른 사람의 카드까지
빌려 쓴데다가 우리집 카드값도 있는데다, 집 융자도 있는데다, 전기 요금에,
도시가스 요금에, 핸드폰 요금에, 자동차세에, 재산세 등 각종 공과금도
많아 가뜩이나 힘든데 숨통을 조이시면서 가시는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절망감을 느끼게 하셔서 더 그랬다.
전부터 빚을 지고 빚에 허덕이고 사는 나의 삶을 고치시기 위함도
있으셔서 그 조금의 수입에 카드도 안 쓰게 하시면서 그래도 겨우 겨우
카드값을 갚아나가게끔 하시면서 십일조도 드리게 하시면서 오게 하셨다.
빠져나갈 수도 없게 하시면서 하시는데
원망스럽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주셔도 "이래도 남편 안 내보내고 니가 돈을 벌래? 하시는 것
같이 주셨다. 두 가지 일을 맞물려서 버겁게 주셨는데 물론 결재는 선불로
주셨다. 30만원짜리와 40만원짜리.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 죽어라고 기도드리면서 살고 있다.
나는 바빠도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벌겠다고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매몰차게 앞으로 먼저 가버리는 엄마를 향해 죽어라고
울면서 쫓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살고 있다 하나님아버지와 함께.
성가연습까지 부지휘자에게 맡기고 출근하게 됐다
숨통이 틔어가는 시기에는 마음도 조금 평안해지나보다.
걱정이 덜 되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내게 두 가지 일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고
하셨다. 하나는 평택에서 하던 일과, 주일날 24면짜리 일간지를 나 혼자
마감해야 하는 일을 몰아서 주셨는데 20년 가까이 하던 일이라서 걱정은
안 되지만, 그래도 주일날 예배에, 성가대 연습에, 오후예배에 지장을 줄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이 꼬이는 것 같이 되면서 평택신문도
마무리가 늦어지고, 일간지도 내가 할 것은 다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빨리 빨리 하지를 못하고 열악한 조건의 신문사라 준비된 것도 미비하고,
토요일 밤 12시까지 종로3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준비를 해놓고 새벽까지
기사를 만들고 편집을 하고 준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일날 출근을 하게
생겼다.
그렇게 나는 찌끄러기 복이 오나보다. 이제는 새 복이 왔으면 좋겠다.
어짜피 오후예배는 빠질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은 성가연습까지 부지휘자에게
맡기고 출근을 했다. 선불을 받은 것이라서 예배 때문에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마감이 늦어져도 안 되겠기에 서둘러서 갔다.
성가연습을 누구에게 맡기고 출근하기는 처음이다.
출근하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깨달음이 왔다. 생활이 많이 조이던 가운데
이렇게 주시는 일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일로
예배를 드리는 일에 방해가 되고 내가 맡은 성가대까지 놓고 출근해서
돈을 버는 것이 결코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꾸 한걸음씩 뒷걸음 칠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 삶의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과거에 이런 비슷한 생활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교회 일이 전적으로 하고
싶어서 하나님께 주간지 두 개 정도나 일간지 하나 정도를 주시면 집에서
일을 하면서 전적으로 목사님을 돕고 교회 일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정작 일은 떨어지고 생활은 더 어려워졌던 것을 기억한다.
이때가 목사님과 교회 '일꾼의 삼겹줄' 대화가 있었을 때였다.
긍정적인 일은 혼자 하면 마귀가 방해하는 것을 이기기가 힘드니까
누군가하고 세 명이서 삼겹줄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때 내가 생각하고 골랐던 당사자들이 다 고난을 당했다.
그 대화 후에, 그 생각 후에, 나를 얼마나 뺑뺑이를 돌리셨는지 어디서
오라고 해서 갔는데도 회사 자체가 돌아가지를 않고, 다른 신문사에서
오라고 해서 갔는데 밤늦도록 고생만하고 열매는 없었고, 남들은 눈치
채지 않는 수준에서 나의 신앙생활은 신앙생활대로 엉망이었고,
죄 가운데 살게 되고. 이혼할 뻔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다르시고 방법도 다르시다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아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아버지, 지금 회사에 가서 다음부터는 주일날 출근해야 하는 일은
안하겠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처음 창간이나 마찬가지라서 책임감 때문에
가지만 평일 날 마감하는 일은 선불로 주고 부르되 그렇지 않으면 그 일조차도
안하겠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일도 하나님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일이십니다.
그렇지만 예배가 방해되는 일은 하나님아버지의 테스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절하겠습니다. 우리야 급하지만 하나님아버지께서는 급하시지
않아하십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다른 일을 주세요" 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일은 잘 마무리 해주고 주일날은 일을 안 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다.
남들이 보면 아직 배가 부르다든지, 아직 고생을 덜했다든지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나님아버지께서 나를 이렇게 경험시키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가신다. 그 후로 화요일에 마감하자고 전화가 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각자에게 원하시는 뜻이 다 다르시고
다루시는 방법도 다르시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정에 대해 흉을 보면 자기의 삶이 그대로 되는 것을 본다.
기도드려주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말일지라도 조심해야 하는데
"나는 안 그렇게 사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산다"고 정죄하는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바람 핀다고 정죄할 것도 없고, 누가 이혼했다고 정죄할 것도 없고,
누구 자녀가 못생겼다 못됐다 정죄할 것도 없다. 자기가 그렇게 당할 수도 있다.
나는 이혼하는 사람들을 좀 정죄한 것 같다. 누구랑 친했었는데 잠깐 소원해진
사이에 그 사람이 이혼을 했다. 그 뒤로 친구사이도 끊어졌다. 그냥 그렇게 됐다.
내 마음 속에서 정죄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멀어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도 이혼할 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남편을
통해 중보기도를 드리도록 하시고 나를 이혼에서 건져주시고 살려주셨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하는 대도 모르고 살 뿐이다.
그 일과 똑 같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눈치를 잘 못 챈다.
그냥 인생이려니,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 그런 것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가 없지 않을까 라고 하기도 한다.
어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고
내려왔으면 올라 갈 때도 있을 것이고 한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징계하심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살아야 한다.
기도드리면서 찾는 삶과 기도드리면서 기다리는 삶
기도를 드리면서 사는 삶에서는 몇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구하라 구할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라는 삶이 있다. 이런 삶이 우리가 사는 보편적인 삶인 것 같다.
기도드리면서 나도 알아보는 삶.
직장도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고 알아보고, 지인을 통해 부탁하고, 전화하고,
청탁도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찾아보고, 돈이 없을 때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도 해보고, 이리 저리 알아볼 수 있는 삶이다.
두 번째는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해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삶"이 있는 것 같다.
이때는 무조건 기도만 드리고 기다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주의 종들의 삶이 대부분 이런 것 같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삶.
하지만 주의 종들도 부유한 친척들이 있으면 친척들에게 전화도 하면서
의존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도 없다. 의지할 데가. 나 같은 경우는 직장도, 알바일도
그쪽에서 연락이 오도록 기도드리고 살았지 내가 전화하고 부탁하고 한 적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렇게 사느라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무슨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몰아가셨다.
기도드리고 기다리고, 일 하나 주시면 하고, 결재해 주시면 받고, 일 안주시면
기다리고. 결재 안 해주시면 기다리고. 힘들면 혼자 울고.
(예레미야애가 3:24, 26, 28)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
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아멘.
훈련은 무슨 훈련이야 원래대로 갔구만
야곱아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라
우리는 기드온용사 훈련 때 하나님과 함께 대화를 하고 살다가
끝나고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장을
주시지 않은 채 1년 3개월을 보내고 다시 버스회사를 들어가게 됐다.
남편이 버스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때는
소개가 들어와도 안 되더니 '감형'을 해달라고 기도 드린 후 일이
추진이 되었다.
남편도 그렇고 나도 기드온용사 훈련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완전 만난 것이기 때문에 무슨 큰 일이 벌어지는 줄 알았다.
남편이 중간에 "혹시 우리 이러다 다시 원래대로 나는 버스하고
당신은 편집하고 하는 거 아냐?" "설마~그럴라고" 그랬다.
그런데 원래대로 갔다.
"아~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하나님을 만나서 무슨 훈련인지
테스트인지 받고 무슨 다른 일이 생기는 줄 알았더니 결국은 원래 대로
되는 것이구나" 하면서 실망해서 내가 기록한 '기드온용사 훈련 후' 라는
글을 다른 곳으로 숨겼다.
창피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무슨 훈련이야" 하면서.
마음에서는 "어짜피 우리는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고,
되어 지는 대로 살 수밖에 없지"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일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나마 나에게 몇 가지
주셨던 일도 안 주신다. 어쩌라는 것인지.
내가 조금 잘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남을 정죄 한다
그런데 왜 주일을 잘 쉬었던 먼저 회사는 못 들어가게 하시고 이제는
한 주 건너 주일을 쉴 수밖에 없는 곳으로 가게 하셨을까?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나에게 일을 주시면 내가
벌어서 먹고 살겠다고, 남편은 주일을 쉬지 않는 회사로 보내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단기도까지 시키신 하나님께서 주일을 쉴 수 없는 곳으로
보내셨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먹고 살만큼 일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글을 쓰게 하시면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 아무에게
정죄할 권한이 없는데 우리는 많이 정죄하고 산다고 하시면서 내가 많이
정죄한 부분을 말씀해 주셨다.
나는 결혼 전에 동거 생활하는 것을 정죄했었고, 이혼 하는 여자를
정죄했었고, 회사도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을 데리고 입사하고 퇴사하는
것을 함부로 불륜 이라고 정죄했었고, 내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일 못하는 사람이 월급을 많이 타가는 것을 정죄했었고,
나 보다 일을 못하는데 상사로 있는 것을 정죄했었고,
일을 못하면서 월급만 축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내보내게 했고,
가만 보면 우리가 정석도 아니고 모든 것을 율법적으로라도 철저하게
지킨 것이 아닌데도 남보다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생활을 하고 봉사를
하고 하는 것에 대해 남들을 정죄했던 것 같다.
대성통곡 하고 나니 '울음' 이라는 존재가 나간 것 같다
나는 정말 율법적으로 철저하게 산 것도 아니면서 남편이 주일에
같이 가서 성가대도 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간절히 원했다.
그런 회사를 들어가고 주일을 매주 쉴 수 있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 회사에서 긍정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처음 맞는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는 토요일 밤에 혼자 기도드리다가
대성통곡을 하고 두어 시간을 그렇게 슬프게 울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서운하던지,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그 기도도 안 들어 주시다니.
한참을 정말 그야말로 동네가 떠내려가도록 서럽게 울었는데
어느 순간 울음이 그쳤다. 그냥 그쳐졌다가 아니라 가슴에서
'울음' 이라는 존재가 쑥 나간 것 같은, 그래서 가슴이 비고
깨끗한 것 같은,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됐는데 이상했다.
신기했다. 그런 체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기도를 마무리 하고 잠을 잤는데 정말 남편이
주일에 일을 갔어도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 주 일하고 한 주 쉬는 일이라서 한 주야 쉬는 것이 당연하지만,
못 쉬는 주일을 위해서 중간에 일을 더하자는 생각으로 회사 관리자에게
여러 번 조심스럽게 "나는 주일에 교회 가야 합니다. 그러니 중간에 일을
더 시켜주시고 주일에는 쉬게 해주세요" 라고 건의를 했는데
회사도 많이 협조적인 것 같았다.
철썩 같이 잘못 알고 있어도 철썩 같이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많이 정죄하는 것을 고쳐주셨다.
우리는 이래도 지옥 간다 저래도 지옥 간다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 간다고 그러고, 그런 환상도 보고 그런 지옥도 보고 왔다고 하는지
모르는데 하나님께서는 잘 못 알고 있어도 철썩 같이 믿을 때는 내버려
두시면서 더 그런 것처럼 보여주고 알려주고 하신다고 하셨다.
나도 하나님과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을 때는 그런 식의
이미지나 깨달음도 많이 주셔서 정말 더 그런 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시니까
너희들은 지옥이 있다 천국이 있다 싸우지 말고 이 땅에서 너희들끼리
정죄하지 말고 서로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사랑해주고
품어주고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누가 제사를 지내도 "너 제사 지내면 지옥 간다" 고 정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너는 다른 이유로 지옥 가니까 말이다.
"너 예배 빼먹으면 지옥 간다"고 정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너는 다른 이유로 지옥 가니까 말이다.
정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성경에 비록 그렇게 되어 있어도
"너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고 정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똑바로 살지 못하는 너는 다른 이유로 지옥 가니까 말이다.
주의 종일지라도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네가 천국 간다면 그것은 네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덕으로 가는 것이니까.
네가 하나님을 잘 믿니? 그러면 인격과 성품도 변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느냐? 예수님을 믿느냐? 그러면 인격도 변하고
성품도 변하고, 생활도 본 받을 만하고, 더 잘 살고 더 잘되는 모습을
겸손하게 보여주면서 삶으로 그냥 보여주라고 하신다.
입술로만 하지 말고.
그러면 말을 안 해도, 상대가 다 알고 느끼게 되면서 교회에,
하나님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되는데 어느 순간 어느 누구에 의해
하나님을 믿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누구든 무엇이든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잘난 척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는 네가 혼난다고.
생활로는 보여주지 못하면서, 인격과 성품으로는 보여주지 못하면서,
손가락질 받으면서, 쌈닭이다 욕쟁이다 못됐다 안하무인이다 욕을
먹으면서 살면서, 전도만 한다고 외치고 다닐 때는 오히려 상대가
반감을 사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면서 전도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라고 조심하라고 하신다.
계산은 나중에 죽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실시간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매 순간 잘하라고 하신다.
'정죄 죄'가 가장 크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정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무조건 사랑하라고 하신다.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멘.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마귀)를 덮느니라" 아멘.
그렇게 서럽게 통곡하고 울고 났더니 회사 들어가서 두번 주일예배를
못 드리고 그 다음부터는 회사에서 약속을 해주었다.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매주 쉬도록 해주겠다고. 그 대신 남편은 회사에서
해달라고 하는 대로 일을 다해주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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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5일 현재,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언을 똑같이 매일
매순간 주시지만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하나님아버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어요!"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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