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011년 5월 7일), 네번 째 울릉도 산나물 축제행사의 하나인 건강걷기 대회에 참가하여 행남 해안산책로를 걸었다. 이 걷기대회는 울릉산악회가 주관했는데 인솔자는 사무국장님이었다. (사무국장님은 2년 전 산나물축제 때 성인봉 산행 인솔자였는데. 지금도 산악회 국장일을 맡고 있겠지. 본인에게 그런 것을 물어 볼 수도 없었고.) 산악회장님은 뒤에서 따라오면서 사진을 찍어 주시고. 참가인원은 12명 정도. 신도리코사 직원분 3명, 나, 울릉산악회 회원님들. 단출했다.
집에 올 때 마다 빠뜨리지 않고 이 해안산책로를 걷는다. 참 아름다운 길, 꿈에도 그리운 길이다. 이 길은 ‘울릉도 관광의 묘미를 2,3배 증가시킨 곳’(매일신문),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산책로’(울릉군청 문화관광과 발행, <울릉도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부족하거나 적절하지 못해서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 ‘울릉도 관광의 묘미를 족히 12,13배 증가시킨 곳’, ‘세계 최고의 해안산책로’로. 이곳 보다 더 나은 곳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 조금도 없다. 특히 ‘세계 최고의 해안산책로’라는 표현에 대해서 양보할 생각 추호도 없다. 이것이 비록 착각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이 해안산책로가 나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 온 것은 작년(2010년) 10월 19일 오후, 중학교를 졸업한지 38년만에 만난 여자동기생과 이 길을 걸은 귀한 체험 때문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는 달랐지만 대구에서 열리는 어떤 대회 준비를 위해 그녀와 20일 쯤 같이 지낸적 있다. 나는 그때 그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도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했다. 그 당시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고. 도동에 있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녀도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우리는 9개월만에 중학교 교정에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중학교에 같이 다니면서도 마음은 있었으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고 가슴 두근거렸지만 신호 한 번 보내지 못했다. 그후 38년만에 만났을 때 몰라보게 달라진 그녀를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에 있었던 것은 오래 전 소녀시절 그녀의 모습이었으니까. 긴 단절의 시간 때문이었으리라. 끊어진 38년 세월은 이내 우리에게 사라졌다.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보는 느낌, 늘 같이 지냈는데 잠깐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중학교 때 같이 걸어야 했을 길을 38년을 미루었다가 걷게 된 셈이다. 감격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왜 그때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에 너가 있다'는 말을 용기있게 하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이 길을 3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걸어야 했던가. 그녀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때 그녀와 이 길을 함께 걸은 것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동행’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아니 그렇게 우기고 싶다. 어쩌면 그녀와 이 길을 걸을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 체험,그 추억이 안타깝도록 소중해서 그 체험,그 추억의 빛깔이 조금이라도 바래질까 두려워 그 체험,그 추억을 마음 속 깊숙이 간직한 채 이 길을 걸었다. 우리의 추억이 곳곳에 살아 숨쉬는 해안산책로를.
도동-행남 해안 쪽은 파도가 있었는데 소라계단을 지나 저동-촛대암 해안 쪽에는 파도가 잔잔했다. 행남등대를 좀 지나면 전망대가 나타난다.이 전망대는 대섬 깍새섬을 아우르는 북면 쪽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 서면 눈 가리는 것 없이 탁 펼쳐진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북면 쪽 울릉도의 비경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자 사진발 끝내주는 ‘사진 포인트’이기도 하다. 레드카펫을 밟는 영화배우는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지점 즉 ‘사진 포인트’에 선다. 이 전망대가 말하자면 그런 ‘사진 포인트’ 같은 곳일지니 누구라도 전망대 난간 앞에서 북면 쪽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최상의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미심쩍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시험해보아도 좋다. 실제로 그날 어떤 관광객 부부가 사진 찍어주기를 부탁해서 북면 쪽 바다를 배경으로 두 분의 상반신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중에 사진이 나오면 그 부부는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의 실력에 감탄할 것이고 작품에 가까운 사진에 다시 한번 놀랄 것이다. 이 해안산책로의 클라이막스는 아무래도 저동 쪽 해안길이다. 촛대암, 기암괴석, 기암괴석과 어울린 바다, 뒤쪽으로 보이는 등대, 무슨 외국의 어느 다리를 연상시키는 멋진 다리들. 글솜씨 부족해 이것을 글로 다 표현할 길 없어 아쉬울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곳을 그저 ‘절경’, '비경'이라고만 표현하고 지나가자.
육지에서 매달 1,2번 내가 속해있는 산악회를 따라 장거리 산행을 다닌다. 2년 전 산나물축제 때는 집에 와서 울릉산악회를 따라 성인봉에 올랐다. 울릉산악회가 육지 원정산행을 할 때 한번 낄려고 한다. 산악회 카페에 자주 들린다. 거기서 고향소식, 산악회 소식, 산행사진, 고향풍경 사진을 즐겨 읽거나 보곤한다.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때도 있다. 카페에 등장하는 닉네임 뿌까, 석봉, feel, choi, 곤쥬별, 이뿐이, 동화, 우산목동, 울릉콘도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고 어떤 이유로 그런 닉네임을 지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번에 뿌까님, 이뿐이님을 만났고 그런 닉네임을 지은 사연을 들었다. 소라계단을 지나 2번 째 쯤 있는 다리에서 곤쥬별님이 “삼봉 아저씨, 사진 찍습니다”하면서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곤쥬별님 닉네임에 얽힌 사연은 물어보지 못했다. 곤쥬별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은 아니겠지. 어디서 온 별일까. 일행 중 안경을 낀 여성분이 있었다. 2년 전 산나물 축제에 와서 혼자 석포에서 내수전 고개까지 걸었다. 혹시 그 분이 내수전 고개에서 울릉도집인 저동아파트까지 나를 차로 태워주신 울릉산악회 회원 그 분이 아닌가 싶었다. 뭐 그리 바쁘다고 그 분이 그분인지 물어보지도 못했을까.
도동 여객선 부두에서 얼마간 회장님과 이야기하면서 걸었고 행남해안에서 등대까지는 이뿐이님과 걸었다. 등대에서 소라계단까지는 여럿이 섞여 걸었는데 길가에 뽈두나무가 있어 오랜만에 뽈두 맛을 보았다. 국민학교 이후로는 처음 맛본 것 같다. ‘병치(절벽)에 뽈두(보리수나무 열매)가 개락(참 많음)이다’할 때 그 뽈두를. 일행 모두가 뽈두를 따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라계단은 가볍게 통과. 많이 다녀봐서 우리 아파트 계단 정도이고. 나중 혹시 중학교 여자동기생과 다시 이 길을 걸을 기회가 온다면 소라계단에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내려 올 것이다. 해안에 설치된 다리를 건널 때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리라. 저동 쪽 해안길을 걸을 때는 사진 찍히지 않으려고 되도록 일행과 떨어져 걸었다. 누가 촌사람 아니라 할까봐 아직까지 촌티를 못 벗고 사진 찍어 놓으면 촌스럽게 나와 가지고. 그래도 사진 몇 방 찍혔겠지. 촛대암 쪽 통문에서 저동항 생선회센터까지는 사진 찍힐 염려가 없어 일행에 섞여 갔다.
저동항 생선회센터에 도착해서 보니 꽁치, 뽈락(메바리)이 많이 나있었다. 꽁치, 뽈락은 울릉도 지역 횟감의 지존무상. 일행은 간단하게 요기하려고 생선회센터에 들어가고. 나는 뽈락회 먹을 욕심에 눈멀어 일행에게 작별인사 했다. 뽈락회를 사가지고 집에 가서 맛있게 먹었다. 사람에 따라 입맛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울릉도 뽈락회와 꽁치물회를 회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옆에 있던 이뿐이님은 꽁치회를 샀고. 뽈락회와 꽁치물회는 막상막하다. 속으로 '저 꽁치회도 맛있는데' 했다. 하나를 선택했는데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같은 것이 있었다. 아참, 가을에 나는 방어는 어떻고. 방어회도 만만찮다. 육지 집에 있으면 이런 생선회가 눈에 어른거린다. 나이가 들면 고향에 돌아와 살 생각이다. 유년 시절 동무들도 있고. 노년에 고향에 와서 살려고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생선회 때문이다. 외출하셨다 오후에 돌아오신 어머니께서 “어 이것은 독도 뽈락인 것 같은데” 하셨다. (울릉도 사람들은 울릉도 뽈락과 포항 등 육지 뽈락을 엄격히 구별하고 육지 뽈락을 형편없이 낮게 평가한다. 또한 울릉도 뽈락에 비해 독도뽈락을 한 단계 낮은 것으로 평가한다.) 아까 먹은 회맛이 싹 달아나는 순간이었다. 분명 아까 먹을 때는 울릉도 뽈락회였고 맛있었는데. 잘 먹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 그러면 그렇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날 꿈의 해안산책로, 개인적으로 38년 만에 만난 중학교 여자동기생과 소중한 추억을 남겨 둔 도동-저동 해안산책로를 그렇게 걸었다. 울릉산악회 회장님, 사무국장님, 뿌까님, 이뿐이님, 곤쥬별님, 동행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즐거웠다.
첫댓글 와~ 좋은 추억 만드셨나봅니다..
지도 어떤분인지 궁금합니더~^^
이렇게 따뜻하게 댓글 달아주시니 오히려 제가 동화님이 어떤 분인지 더 궁금하네요.
안산,즐산하십시오.
삼봉님 성격이 좋으시고 대화거리도 많으셔서 오히려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사진은 아직 회장님한테 있을꺼구요~곧 올려주시겠죠.
닉네임 하나하나 기억해주시고 물어봐주시고...잘가셨죠?다음 고향방문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고 싶습니다.
마지막 뒤풀이 같이 못해 억수로 후회되네요. 즐거웠는데....그 부분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언제 울릉산악회
따라 산에 가서 뵐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그 때 못들은 닉네임이야기 들여주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