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得臣선생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부채글씨)
포항대학에서 성균관(포항4향교)주관 인성교육(7.20~7.21)강의시
우수학생인 제철중2년 김상협군에게 상품으로 줌.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선조 37)~1684(숙종 10)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구석산인(龜石山人).
진주목사 시민(時敏)의 손자이며 부제학 치(緻)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안풍군에 봉해졌다.
정두경·임유후·홍석기·홍만종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시와 술로 풍류를 즐겼다.
예로부터 학문을 많이 쌓은 사람은 책읽기를 많이 하여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책읽기에 힘썼는데, 특히 〈백이전〉을 가장 좋아하여
1억 1만 3,000[실제로는 11만 3천]번이나 읽어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짓기도 했다. 또한 시를 짓는 어려움보다 시를
제대로 평가해내는 어려움이 더 크다고 하고, 당시 사람들이 과거에만 열중하다보니
시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무시한 채 시가 오직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을
비판했다. 특히 5언·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문집인 〈백곡집〉에 시 416수가 전하며, 홍만종의 〈시화총림〉에 실려 있는
그의 시화집인 〈종남총지〉는 비교적 내용이 전문적이고 주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시학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교훈
어릴때 천연두를 앓았던 김득신은 10세에 이르러야 겨우 글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수만번 읽은 글도 자신이 읽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득신은 공부에 대한 열정의 끈을 한번도 놓지 않았고
그 결과 만번 이상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을 담아
[고문36수독수기(古文三十六首讀數記)]라는 명저를 남겼다
또 오늘날에도 믿기 힘든 59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풍군에 봉해지기까지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이 힘쓰는데 달렸 있을 따름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일까요?
남에게 뒤처지면 부모님의 입장에서 굉장히 화나고,
우리애가 뭘 더배워야 하나 고민하게 되죠. 그렇죠?
하지만 5분만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어요~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가가..김득신에 의해 잘 나타나져 있으니까요~
어느 독서광의 일기!
명문 사대부가家 정3품 부제학을 지낸 김치(金緻) 태몽에 나온 노자(중국 고대의 사상가)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그의 아들 김득신.
그러나 10세에 겨우 글을 배우기 시작하자, 우둔한 아들을 포기하라는 주위의 수군거림
"하늘 천 따지, 검을...검을..."
'쯔쯔..저렇게 아둔해서야 글을 제대로 익힐 수나 있겠나...'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치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련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대견스럽네."
나이 스물에 비로소 처음 스스로 작문을 하게 되었으나 좀처럼 늘지 않는 공부 실력.
그래도 아버지의 변함없는 가르침
"더 노력해라. 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선택한 노력은 다름아닌 읽고, 읽고, 또 읽기
그렇게 열심히 읽었건만...
하인과 길을 가던 어느 날 어느 집 담 너머로 흘러나오는 글소리
"저 글이 아주 익숙하데 무슨 글인지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구나."
"아니, 이 글귀는 나으리가 평생 읽으신 것이어서 괸네도 알겠습니다요...에그..."
그 글귀는 사마천의 역사책 사기(史記)의 한 부분.
그가 무려 11만 3천번 읽은 글...
그런가 하면.. 정자에서 친구들과 시를 나누는 자리
"이보게들! 내게 오늘 훌륭한 시구가 떠올랐다네! 들어들 보시게
삼산(三山)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지고..."
"아니 그게 어찌 김득신 자네의 시인가?"
그에게 떠올랐다는 시구는 당나라 최고시인 이백의 시 <봉황> 이었다..
수만번 외워도 잊어버리고 착각까지 했던 그는 특별한 기록을 하게 된다. 만번 이상 읽은 책들만 올린 <독수기 讀數記>
그 속에 담긴 35개 고서(古書)들에 대한 섬세한 평.
이것은 드넓고 변화가 많은 글이요.. 저것은 이치가 분명한 글이고, 다른것은 말은 간략한데 뜻이 깊은 글...
이렇게 글마다 다른 가치가 있으니
"무릇, 이들 여러편의 각기 다른 문체 읽기를 어찌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
드디어 59세 과거 문과 급제. 성균관 입학.
백곡 김득신(金得臣. 1604~1684) 옛글과 남의 글을 다독한 끝에 자기만의 시어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냈고, 마침내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존경받았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 있을 따름이다."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서
진정한 배움의 의미
김득신은 10세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고, 20세가 되어서야 글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니,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 알수 있겠지요? 그러나 김득신은 책에 미친 '독서광'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글 읽기를 열심히 한 끝에 훌륭한 시인이 되었어요. 자신의 재능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김득신의 삶을 되돌아볼때, 진정한 공부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남과 겨루는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책의 가르침을 깨닫고 새기면서 참다운 재미를 느낀는 데에,
공부의 진정한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목은 찬 구름속에 잠기고, 가을 산엔 소낙비가 들이친다. 저무는 강에 풍랑이니 어부가 급히 뱃머리를 돌리네.
-김득신의 시 <용호 龍湖> 중에서
어떠셨어요?
정말 김득신의 아버지인 김치도 대단하고,
김득신도 대단하지 않나요?
배우자는 열망이 막을수 있는건 단 한개도 없는것 같아요.
아이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기다려주고 인내해주는건 어떨까 생각되는데~
안그러시나요?
|
첫댓글 김상협군이 집에 가서 찍어 보내온 메일(사진)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