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Musical의 중심에
DIMF가 있다! - 여성 전문공연기획자 1호 DIMF 이유리 집행위원장
제7회‘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이 오는 6월 15일부터 7월 8일까지 24일간 대구시내 주요
공연장 등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동안‘모비딕’,‘ 스페셜 레터’,‘ 식구를 찾아서’,‘ 날아라 박씨’등 딤프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뿌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올해는‘미라클 뮤지컬, 미라클 딤프(Miracle Musical, Miracle DIMF)’라는 제목으로 10개의 공식초청작과
5개의 창작지원작, 6개의 대학생뮤지컬로 특별한 뮤지컬 성찬을 차린다.
딤프의 수장인 이유리 집행위원장은“올해는 미국, 중국에 이어 일본 공략에도 나서 케이뮤지컬(K-Musical)의
중심에 서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 넘치는 포부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공자가‘하늘의 뜻을 알게 된
나이’라고 한‘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도 30대 못지않은 동안 외모를 자랑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키가 컸고,
가녀린 몸매에 눈웃음이 인상적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 꿈과 미래까지. 대한민국 여성
전문공연기획자 1호인 이 위원장의 삶을 샅샅이 들여다봤다.
새로워진 딤프, 세계로의 비상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뮤지컬 축제인‘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이 일곱 번째 시즌을
맞았다.
그동안 딤프는 현재 뮤지컬계 최고의 배우로 평가받는 이들을 한 단계 성장시킨 것은물론,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들이서울에서 흥행할 수 있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딤프는‘Daegu International Musicalestival’의 약자인데요. 말 그대로 대구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뮤지컬 페스티
벌입니다. 이런 큰 축제에 서울지역 뮤지컬 기획자인 저를 부른 건 딤프를 지역 축제를 넘어 전국적이면서 국제
적인 뮤지컬 페스티벌 인식하고, 명실상부한 결실을 맺고자 하는 장익현 신임이사장님과 대구시의 의지라 생각
합니다. 축제 3개월을 앞두고 집행위원장이란 막중한 역할을 맡아 시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잠이 없는
체질인데, 요즘 새벽마다 깨서 온갖 할 일들을 구상하느라 수면이 부족하죠. 또한 공연 참가단체 대부분이 서울과
해외가 많아 서울과 대구를 오가느라 물리적인 체력전도 치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10년 간대학에서 교육자로
살다가 10년 만의 현장으로의 외출이고, 목표가 분명한 일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딤프 이유리 집행위원장은의 각오는 대단했다. 과연 그녀와 딤프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시작됐을까.
“8년 전 쯤, 대학에서 산학협력으로 어린이뮤지컬 한 편을 만들어 공연을 올리는 공연장에 대구시 공무원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현재 대구시 김대권 국장인데, ‘무조건대구시가 뮤지컬도시를 표방하고 국제적인규모의 뮤지컬
페스티벌을 만드는데 도와 달라’고 하셨죠. 그가 전국을 다니며 일일이한국 뮤지컬 전문가들을 만났을 그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1회부터 지금까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대구시민의 뮤지컬에 대한
열정적인 호응에이끌렸고, 지금은 대구가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올해 딤프는 공식 초청작으로 총 8작품을선보인다. 이 중 외국작품으로 우리나라 고전‘심청전’을 재해석한 한미
합작 프로젝트‘썬피쉬(Sunfish)’를 비롯해‘스트릿라이프’와‘카페인’등을 쓰고 연출했던 성재준이 일본 아뮤즈와 손
잡고 만든‘뮤직박스(Music Box)’, 체코 프러덕션의‘카사노바(Casanova)’, 영국 아카펠라 그룹이 선보이는‘삼총사
(The Three Musketeers)’등 4작품으로 구성됐다.
국내 초청작으로는 지난해 창작뮤지컬 수상작인‘샘’이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고,딤프가 두 번째로 자체 제작한‘
아리랑-경성 26년’, 지난겨울 초연 10주년을 맞아 큰인기를 끌었던‘인당수 사랑가’, 지난해40%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원작 드라마를뮤지컬로 재구성한‘해를 품은 달’, 4회 딤프 공식초청작이었던‘1224’의 두 번째 이야기‘오!미스리’,
가족뮤지컬‘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가 연달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경쟁작인‘창작지원작’으로는 총 5개 작품이 오른다. 이혼 과정의에피소드를 오페라에 접목시킨‘소프오페라’, 안데
르센동화의 인물들을 로맨틱 코미디와 접목시킨‘룩 앳 미(Look at me)’, 한국전쟁 속에서 꽃핀 사랑이야기를 옴니
버스 형식에 담아낸‘사랑꽃’, 심장이식을 소재로 사랑과 성장과정을 이야기할‘유앤미(YOU&ME)’, 중종과 조광조를
중심의 시대사가 동서양 악기의하모니와 함께 어우러질‘왕을 바라다’이다.
대학생들의 패기 넘치는 무대가 꾸며질‘대학생페스티벌’에는 총6개 학교 학생들이 끼를 펼칠 예정이다. 대진대 연
극영화학부의‘오! 당신이 잠든 사이’,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스쿨의‘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목원대 성악뮤지컬학부
의‘캐치 미 이프 유 캔’, 서울종합예술학교 연극과의‘피핀’, 계명문화대 생활음악학부의‘맘마미아’, 대경대 뮤지컬과의
‘렌트’까지 눈과 귀에 익숙한 공연들이 관객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이밖에도 페스티벌을 즐기러 대구를 찾는 관객들을 위해서 대구경북디자인센터를 비롯해 곳곳에서 열리는‘뮤지컬
전시회’, 시내에서 진행되는‘스타데이트’, 딤프 참가작의 갈라콘서트, 다양한 재미를 선사할 거리축제‘딤프린지’,
무대 뒷모습을 개방하는‘백스테이지 투어’, 거리 곳곳에서 분장체험 및 소품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뮤지컬 체험
이벤트가 진행된다.
이 위원장은 이번 축제에서 특히 대중들이 함께할 수 있는 즐길 거리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올해는 공연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은 물론, 대중적인 시민축제로거듭나기 위해 참여를 유도하는 부대행사를 강화
했습니다. 대구경북디자인센터에서 이뤄지는 뮤지컬 체험존이 대표적인데요. 온가족이 와서 뮤지컬 소품을 직접
만들고 분장과 의상도 직접 해보며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된 듯 뮤지컬을 체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까지 한국 최초로 중국과의 교류를 주도해 온 딤프가 올해부터 일본과의 교류를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일본 관광객
들을 끌어 들이는 뮤지컬 콘서트도 전야제 행사로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외 공연도 단순한초청이 아닌,
공동 제작 형태의 적극적인 해외 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로 이번에 미국과 체코 작품은 세트를 한국에서 만드는 합작
형태를 취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은 현재진행형
이어서 그녀는 딤프의 역사에 대해설명했다.
“말씀드렸듯이 준비단계에서 저를찾아온 것처럼, 서울의 여러 뮤지컬전문가들이 참여해 함께 만든 딤프는 처음
부터 지역 축제를 넘어 전국적인 행사로 출발했습니다. 그동안‘마이 스케어리 걸’, ‘스페셜 레터’, ‘모비딕’‘식구를
찾아서’등한국 창작 뮤지컬의 지형을 바꿨다고 회자되는 창작뮤지컬들을 배출하며 큰 역할을 해왔죠. 또한 텍스트
심사부터 공연실연 심사,다음해 축제 공식초청까지 2년간에 걸친 여러 단계의 지원을 하는 딤프만의 지원 제도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2회 축제 때 중국 최초의대형 창작 뮤지컬인‘버터 플라이’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고, 딤프가 직접 대형 창작뮤지컬‘투란도트’를 만들어 중국으로 초청공연도 몇 차례 다녀온 것도 중요한
과정인것 같습니다.
이밖에도 뉴욕뮤지컬페스티벌과 협약 관계를 맺고 작품을 교환해 공연한점, 또 딤프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은
김호영, 정성화, 김무열, 정선아, 박은태 등이 현재 한국 최고의 배우로 성장한 것도 딤프의중요한 역사입니다.”
이 위원장에게 딤프의 현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좋은 해외 공연을 많이 찾아 관객들에게‘앞으로 딤프가 선보이는 해외공연을 놓치지 않겠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명실상부한국제뮤지컬페스티벌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가 뉴욕시와 런던시의 경제에 기여하는 것처럼, 딤프가 관광산업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딤프가 대구시를 진정한 뮤지컬도시로완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올해축제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내년 축제의 방향성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연 딤프 책임자로서의 그녀의 바람은 무엇일까.
“뮤지컬산업은 관객들에 의해 성장합니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렇기에 딤프가 아무리 푸짐한 잔칫상을 차렸다 하더라도 손님이
찾아주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손님은 선택하고 누릴 권리가 있기에, 관객과 시민들에게 선택되는 밥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딤프를 대구지역 축제가 아니라, 한국 뮤지컬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국제규모의 뮤지컬 페스티벌로 만들어
내실 있게 발전시키겠습니다.
또한 국제뮤지컬 페스티벌은 공연 프로그램으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초청
작들도 지속적인 리서치와 전문가, 심사위원 평가를 통해수준 높고 가능성 있는 작품들을 보여주기위해 노력하겠
습니다.”
이렇듯 이 위원장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된 지금도‘무(모)한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로 나이 오십을 맞으면서 제 속의 불길이 잠들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딤프가 손을 내밀자 제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요동을 치더군요. 평생을 여러 갈래 길에서 언제나 제 내면의 본능적인 명령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어느새 새로 셋업 하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거는 기대 또한크다. 1986년에 한국에서 가장 혹독한 집단훈련 생활을 하는 레퍼토리
극단‘연희단 거리패’창단 멤버로 시작한 이 위원장은1989년에 한국 최초의 민간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은 동숭아
트센터의 초대 기획사업부장을 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기획홍보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꾸렸다.
1997년 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한 대형 창작뮤지컬‘눈물의 여왕’을 시작으로 창작뮤지컬‘발리’, ‘태풍’, ‘페퍼민트’,
‘겨울연가’등을 프로듀싱 및 제작하면서 한국 창작뮤지컬 기획에 개척자 역할을 담당해왔다.
또한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그녀는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뮤지컬연기전공 책임교
수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뮤지컬 발전을 위한 기반 연구와 뮤지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킬 때 일탈처럼 박상원, 이문세 선배와 함께 엔
터테인먼트 회사셋업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당시 SES의 바다를 캐스팅해대형 창작 뮤지컬‘페퍼민트’를
만들었죠.
그래서 요즘 한창인 아이돌스타 캐스팅을 본의 아니게 국내 최초로 했답니다.(웃음) 사실그때만 하더라도 창작
뮤지컬을 제작한 여성 프로듀서는 없었죠.
또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과도 셋업했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뮤지컬을 만드는 작업을 할 때가 가장 행복
합니다.
저의 집요하고 본질을 파헤치는 기질이 학생들과 함께할 때, 그들에 대한 애정이 긍정적으로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식 같은 그들에게서늘 순수한 에너지를 얻죠. 이렇듯 저는 평생 셋업만 하면서 산 것같습니다. 딤프 역시
직원들을 새로 뽑고 행사별 매뉴얼을 만드는등 조직을 재정비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살면서 가장 많이 쓴 글이설립
취지와 방향성인 것 같습니다.”(웃음)매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 위원장에게 특별한 이유가있을까.
“20대 때 하루 1시간씩 자면서 부산에서 방송국 구성작가와 FMDJ를 하면서 연극과 문화 <무크지> 편집을 했습니
다.당시 일에대한 편력이 너무 심했죠. 한 순간이라도 스스로를 불태우지 않으면 제가 가치 없이 죽어 있는 듯 했습
니다. 또한 기질상 익숙하고안정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여고 시절 서영은 작가의 <먼 그대>를 읽
으며‘나랑 닮은 자아가 있구나, 사막의 낙타처럼 고행의 길을 끝없이 가며 깨달아 가는 게 운명이구나’하고 생각했죠.
전‘체 게바라’를 좋아하는데, 그가 혁명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과 기질을 하늘로
부터 형벌처럼 받았다 여겨져서 동병상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공연기획자, 교육자, 뮤지컬 평론가, 연극 연출가
등 다양하게 불리는 저를 스스로 진단하자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탐험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을 위한 삶
어렸을 적 그녀는 전형적인 문학소녀였다.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듯 허무와 염세에 빠져 있었다.
“비오면 비 맞고 운동장을 걷는, 요즘 말로 왕재수였죠. 지금은그 찬란한 청춘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하고 후회를
합니다. 중학교 때 <좁은 문>과 <독일인의 사랑>을 신봉했는데, 생각해 보니 책의 영향을 잘못 받았던 것 같습
니다.”(웃음)알면 알수록 양파 같은 매력을 가진 이 위원장의 성격은 어떨까.
“10대에는 내성적인 허무주의자, 20대와 30대에는 성취욕구와 자기 확신이 강한 완벽주의자, 40대에는 긍정적이고
빈틈이 많은 낙천주의자로 살아온 듯한데, 50대 이후의 삶은 어떨지 저도 궁금하네요. 전 평생 제 기질을 끊임없이
자각하고바꾸려고 노력하며 살아 왔습니다. 앞으로도되고 싶은 기질과 삶대로 살지 않을까요.”
이어서 그녀는 공연계에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현실적 지원을 당부했다.
“경제 침체 현상의 여파를 가장 민감하게 받는 분야가 바로 공연시장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뮤지컬산업은 타
산업과 다르게25%의 높은 연 평균 경제 성장률을 몇 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뮤지컬산업의 미래가
긍정적이라 확신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가무악에 능하고 즐기는 우리민족의 성향과 잘 맞아 관객들이 좋아하고, 한국 창작뮤지컬의 저력이
일본과 중국등 아시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기에 내수시장의 극복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특히 대구시가 공연문화
중심도시의 꿈을 실현해 아시아 공연산업의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면, 한국 뮤지컬시장은 미국과 영국을 이어서 세
계 3대 뮤지컬시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뮤지컬시장의 미래를 위해 기여하는 삶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의 공연철학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바로 관객입니다. 관객을 위해 관객이 원하는 공연을 가치 있는 공연이라 생각하죠. 그대중성은 상업성과는 구분
되는데, 그렇기에끝없이 진화하는 관객의 눈을 존중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야와는 달리 공연계는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공연계의 종사하는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문이나 심사를 하러 가면제가 홍일점인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듀서의삶을 보류하고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한국 땅에서 여성이 프로듀서로 계속 살 수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작용했죠. 현장 기획자로서는
여성이 분명 힘과 감각을 발휘할 수있지만, 리더의 역할을 할 위치가 되면 벽이많습니다. 한국 특유의 비즈니스
문화가 공연계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가끔 한국 뮤지컬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여성 주자인 장유정감독과 장소영
작곡가가‘여성 선배로서 버텨줘 힘이 된다’는 말을 할 때 책임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에, 앞으로 점점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라
그녀는 자신의 멘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30대 중반에 동숭아트센터를 그만 두고 공연계에 회의를 느끼고떠날까 생각했을 때 연극 연출가인 이윤택 선생이
‘너 지금 몇 살이냐?’며 자신의 30대를 제게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너는그 나이 때 나보다 많은 사회적인 자산
과 재능을 갖고 있는데, 왜그걸 버리려 하느냐’며 저를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때부터어려울 때마다 주변 성공
한 어른들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스스로 동기를 만듭니다. 또한 서울예대 총장인 유덕형 선생께서 제게공연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렇듯 그녀는 힘든 시기를 잘 극복했다. 이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들려줬다.
“10년 전, 40세 접어들어 벼르고 벼르던 끝에 저의 프로덕션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서 성과도
좋았지만, 열악한 공연시장에서 대형 창작뮤지컬을 만들었던 상황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공동 제작사가
공연직전에 부도가 나서 개인적으로 파산하다시피 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겐 첫 자식이었던‘페퍼민트’를
아직까지 무대에 올리지 못해 속상합니다.”
언제나 바쁘게 살아온 그녀가 건강관리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의 유일한 운동은 산책입니다. 많이 걸으면 제 자신과 만나는몰아지경에 이르죠. 그 상태가 참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인데그게 저의 건강비결인 것 같습니다. 전 심심하게도 취미도 여가활용도 다 일입니다. 그런데 공연
이라는 것이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한창의적인 작업이기에 언제나 재밌고, 새롭습니다.”
이어서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동안 그야말로 개척자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도전하는 후배들은 뮤지컬시장이 산업화되고 성장
하는 시점이기에 훨씬 더 좋은 기회와 비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감사하며 쉽게포기하지 말고 끈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공연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자, 일상을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판타지
를 주는일이기에 늘 새로운 가치와 방식, 의식을 지니도록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콘텐츠를 창조하는창
조자로서의 자기확신을 가지고, 힘을 북돋아 줘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라’는 저의 인생철학처럼이 세상
에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뭐든지 할수 있고, 길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늘‘너는 기적이야!’라고 하는데, 그 긍
정적인자기 최면이 내적인 힘을 만들어 주는 걸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장은 우먼라이프 10주년축하와 함께 계획에 대해 들려줬다.
“집행위원장 임기기간인 내년까지 딤프의성공을 바랍니다. 그 이후는 글쎄요, 저도궁금합니다. 제가 또 어떤 제
내부의명령을따를지 말이죠. 우먼라이프도 올해 10주년이군요. 제가 학교로 가서 학과를 셋업한지10년째이고, 10년
만에 공연 현장으로 외출을 했습니다. 또 다시 새로운 출발에 서 있다는 점이 같네요. 또 다른 10년의 미래를위해서
우리 함께 잘 지내 온 시간을 자축합시다. 늘 스스로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저도 오늘부터 그러
겠습니다.”
행복한 작업을 마치고 딤프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 이유리 집행위원장은매우 들뜨고 기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이렇게 좋은 현장을 앞으로 또만날 수 있을까? ‘딤프’와‘이유리’의 만남은‘운명’이었음에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