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녀는 시샘이 많고 멋 부리기를 좋아하여 집에 오면 할머니의 화려한 옷부터 찾아 입고 나선다. 유치원에 다니면서도 그림 그리는 솜씨가 없기에 며느리는 다행이라 했다는데, 어설프게나마 혹 그림 솜씨가 있다면 예체능계를 지망하는 애물단지가 된다는 생각이어서 일 것이다. 손녀는 나더러 그림을 그려보라면서 나름대로 그리면 빵점을 주면서 얼레리꼴레리 할애비를 놀려댄다. 나는 멋쩍게 웃고.
손녀는 동생과 잘 어울리며 놀지만 毆縛구박이 심하고, 동생이 없으면 또 심심하다면서 동생을 그리워한다. 손주는 세 살 손위 누나에게 항상 恝視괄시를 받지만, 오히려 오빠처럼 군다. 누나에게 뺏겨도 이해하면서 그냥 저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손녀는 까다롭게 컸지만, 손주는 아무렇게나 던져놓듯 해도 없는 것처럼 혼자 잘 놀면서 컸다. 아이들은 다 까다로운 딸처럼 크는 줄 알았는데 아들을 낳아 기르다 보니 다 그렇지는 않더라는 아들 내외의 말이다.
헌데 수월하게 컸다는 손주는 왼손잡이이다. 외삼촌도 왼손잡이라 한다. 오른 손에 수저를 들게 하지만 이내 왼손으로 옮기고 만다. 누나하고도 잘 놀지만 누나가 없어도 혼자 잘 노는 것을 보면 집중력이 있는 것 같다.
내 형님도 왼손잡이였다. 왼손으로 망치질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했었다. 헌데 형님은 나쁜 쪽으로 머리를 써 집안을 망쳤고, 형제들과는 척을 지고 살았기에 友愛우애는 먼 얘기다.
오른 손은 좌측 뇌가 관장하는데 이성적 판단을 하고, 왼 손은 우측 뇌가 관장하는데 직관력과 합리적 감성을 판단한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왼손이 발달한 손주는 觀察力관찰력 直觀力직관력과 感性감성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데, 혼자서도 재미 있게 잘 노는 것을 보면 集中力집중력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뛰어난 왼 손 투수가 많고, 왼손으로 글씨를 잘 쓰는 서양인을 볼 것 같으면 기대가 되는데, 형님이 왼손잡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반대로 걱정이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그림이 있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死藥사약을 마시고 죽기 직전에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장면을 描寫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유혹한 죄’, 요즈음 말로는 ‘煽動罪선동죄’였다. 위정자와 젊은이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 질문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림 속의 내용으로 침상에 앉은 소크라테스는 웃통을 벗고 있는데 왼 쪽 어깨에는 수건인지 윗옷인지를 걸쳤고, 오른 손으로는 약사발을 받으려 하고 있으며, 왼손은 팔목을 세우고 다른 손가락은 쥔 채 검지만을 세워 천정인지 하늘인지 위를 가리키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오른손으로 독배를 마시겠다는 것이고, 감성적 사유는 왼손으로 진리가 하늘에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해된다.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고 소크라테스에게 약사발을 건네는 사람이 있고, 소크라테스 침상 옆의 침통한 표정을 지은 사람은 플라톤이라고 한다. 다들 안타까움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좀 떨어진 저 쪽 주방에서는 악처로 유명한 아내 크산티페가 설거지를 하면서 남의 일인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내용의 그림이다.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간수를 매수해 놨으니 당장 감옥을 나가 잘 모르는 섬이나 다른 나라 도시국가로 가서 선생의 이상을 펼치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말 ‘악법도 법이다.’며 ‘내가 달아나면 이제까지 추구했던 이상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며 탈옥을 거절했다는 내용으로 그림을 이해한다.
여기 그림에서 특징적인 것은 위를 가리키고 있는 왼 손 검지에 있다. ‘악법도 법이다.’고 말한 것은 자연스럽고 평범한 이성적 판단으로 왼 쪽 뇌에서 나왔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왼손잡이는 오른쪽 뇌가 발달한 사람으로 直觀직관과 感性감성이 남달리 銳敏예민하고 뭔가를 思惟사유할 줄 아는 사람, 속말로 좀 삐딱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眞理진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이 그 眞理를 알고 있거나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며, 그래서 眞理를 알고 싶기에 끊임없이 思惟하고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기득권 세력에게는 참으로 위험천만했기에 사형언도라는 중죄를 내려 소크라테스를 죽게 했다. 그럼 ‘絶對的절대적 眞理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그 답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일 것이다. 그래서 파고 또 파고 할 수밖에 없는 이치 탐구가 思惟이고 硏究연구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더욱 모르겠는 것이 世上事세상사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工夫하는 것이며, 學習학습으로 알게 된 지식만으로 진리를 터득한양 행세한다면 이는 矛盾모순이 아닐 수 없다.
易理는 哲學철학으로 분류된다. 哲學은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고 그 깊이를 더해만 간다. 그래서 學習에 그치지 말고 學問학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저께는 20년 넘게 철학관을 하는 선생이 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주풀이도 했는데 그야말로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으로 사주를 풀고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은 많이 하지만 한마디로 學習만 했지 學問은 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 느낌이 들었다. 사주 여덟 글자에 매달리면서 생극과 합 등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환경적 이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잠깐 風水地理풍수지리 강좌 동영상을 보여줬더니 이내 정색을 했다. 요즈음은 陽宅風水양택풍수와 玄空風水현공풍수를 공부하러 다닌다는데, 언제쯤이면 자기도 내 동영상으로 공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 참 걸릴 것이라 했더니 멍해 했다. 사실 동영상 내용은 별것도 아니었는데.
그 철학관 선생은 大學校가 들어선 곳이 大明堂대명당 陽宅地인 것으로만 알 고 있었는데, 대학교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과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처럼 수많은 小明堂 陰宅地였을 것이라는 말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있었을까?에 오히려 내가 의아해졌다. 명문대학교 경내는 거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많다. 이는 울퉁불퉁한 地勢지세 때문으로, 거기에 山所산소를 쓴다면 共同墓地공동묘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설명을 다른 선생으로부터는 듣지 못했다지만, 배우지 않았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일 뿐이던데.
나는 왼손잡이가 아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으로 특별하게 思索사색이나 思惟하는 능력은 없고, 直觀力이나 천재성도 없다. 그냥 욕심 없이 그럭저럭 살며 살아있다는 증거로 심심하지 않게 뭔가하면서 소일할 뿐이다. 다만 쓸 데 없이 놀지는 않고 능력 없음을 극복하려고 노력은 한다.
學問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목적과 욕심을 부리는 태도가 아니라 原理원리를 알고 약간의 疑問의문만 가질 뿐 그냥 無心무심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라고 본다. 覺각이 별건가요? 疑問을 갖는 가운데 無心에서 그냥 뭔가 떠오르고 깨달아지면 되는 것이지. 有心으로 보면 목적이라는 틀에 얽매이기에 좁은 안목일 수밖에 없지만, 無心으로 보면 어쩌면 疑問을 가질 필요도 없이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라 생각된다. 서두르지 않고 큰 목적도 두지 말고 그냥 마음을 비운 텅 빈 마음 부담스럽지 않은 생각으로 심심하고 무료할 때 시간을 떼우는 學習이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기고 연구가 될 것이며 나아가 覺을 하게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