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동영상 - https://youtu.be/MmIomMaTRKY
성경 - 마 6:5-13
20220515 순복음사직교회 주일오후예배
할렐루야 오늘은 주기도문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한 번 수요일 저녁시간에 주기도문에 대해서 강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때 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주기도문 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선생들과 그들을 따르는 여러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각 무리들 마다 각자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에게 자기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를 대표하는 기도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기도문은 지금 이 천년이 지나서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고 우리가 자주 암송해서 기도하'.는 중요한 기도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기도문의 내용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고 기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략하게 주기도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우리가 기도할 때 또 올바르게 이 주기도문을 기도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주기도문 강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에서 7장까지는 산상수훈이 나와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율법과 십계명이 있었다면 이제 새 언약의 백성의 삶을 대표하는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특별히 주기도문이 나와 있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기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부터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6장 5절에서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 남에게 나를 드러내기 위한 기도는 합당치 않다는 것이죠. 바리새인들이 남에게 보이려고 길에 서서 외식하는 기도를 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18 :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렇지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부끄러워 하면서 기도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과 세리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6장 6절 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한마디로 떠벌리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죠.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 대해서만, 하나님을 향해서만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7절 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원부원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는 이라."
8절 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7절과 8절에서 우리는 이방인과 기독교인 사이에 신관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기도하게 될 때 정성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불교에서는 108번 제사를 그려야하고, 천주교에서는 착한 일을 많이 쌓아야 되고, 더 심지어 무당한테 가서도 지성을 들여야 하고, 복비를 많이 내야지만 신이 감동을 해서 기도를 들어준다고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요구해서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그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방인들은 정성을 다해기도해야 됩니다. 정성이 부족하면 신이 저 먼 곳에 누워 있기 때문에, 잠자고 있기 때문에 그 기도를 못 듣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큰 소리로 하고, 정성을 다하고, 돈을 내고 그렇게 신을 감동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먼저 알고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신관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오며." 이제 본격적인 주기도문 내용입니다.
먼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이 땅에 있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충분히 들으실 수 있는 분이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입니까? 창조주 하나님, 조물주 하나님, 우리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친밀감 있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죠.
그리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거룩히 여김을 받습니까?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신 분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통치가 믿는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것은 미래 시제로 되어 있지 않고 부정과거 시제로 되어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삶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도록 기도하지 않고 우리의 뜻이 관철되도록 기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내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암에 걸렸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하나님 이 암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렇게 물어봐야 되는 것이죠. 나의 뜻과 나의 소원대로만 기도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시편 106 : 14 - 15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었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요구를 아뢰게 될 때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를 못먹는다고 불평하였을 때 하나님은 고기를 먹게 하였지만 한 달 동안 고기가 질리도록 먹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를 발하여 죽게까지 되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깨닫도록 그 왕을 이스라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있게 된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 그들이 조공을 내야 되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우리의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응답 하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네, 이것은 우리가 평소 때 생각할 때 '우리의 몸이 필요한 음식을 주십시오.' 라고 해석을 해도 뭐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더 근본적인 의미를 우리가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이 주기도문은 당시 공용어인 아람어로 돼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오랫동안의 노예 생활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원래 언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때 당시에 공용어는 헬라어와 아람어였는데, 일반 사람들이 쓰는 용어가 아람어 였습니다. 이 주기도문도 예수님이 아람어로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오늘'은 원래 아람어 뜻은 내일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은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떡이 라는 것이죠. 그래서 내일의 양식인 예수님, 오늘의 양식이 면서 내일의 양식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옵고 이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나타내는 것이죠.
12절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것도 우리가 해석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죠. 우리가 죄를 사해 준 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가?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 다른 것이죠. 여기서 이것도 아람어로 보면 우리가 죄를 사해 주는 게 먼저고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주는게 나중이고 이런 것이 아니고, 동시 시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해석하면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와 동시에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겠나이다.' 이런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ex)기독교인의 용서. .
13 절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다음에 우리가 이미 이제 구원을 받은 존재이고 하나님 나라 갈 때에 구원의 완성을 경험하게 되는데. 사단은 자꾸 우리에게 그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를 자꾸 시험에 빠뜨릴려고 합니다. 이전에 설교할 때도 설명드렸듯이 우리말에는 시험 한 단어이지만 영어로는 시험이 테스트(test)와 템테이션(temptation) 두개가 있다 그랬죠.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 하시는 분이 시지 템테이션, 유혹에 빠뜨리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의 기도를 하고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