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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성녀’ 걸었던 그 길에서 ‘완전한 사랑’을 만나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수석 주교좌성당인 톨레도 주교좌성당 내부. 세계교회의 거룩한 학문과 영성을 발전시킨 곳은 바로 수도회다. 16세기 스페인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한 데레사(Teresa) 성녀가 오늘날까지 교회사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도미니코회, 예수회 등 스페인 영성가들이 탄생시킨 수도회들은 수많은 성인·성녀, 선교사, 학자를 배출했다. 가톨릭 교회의 ‘맏딸’ 역할을 했던 스페인 교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다. 스페인을 찾는 많은 이들이 순례를 통해 영적 깨달음을 얻는 길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값지다.
8세기부터 400년 가까이 이슬람인들이 점령했던 땅이라 독특한 이슬람 건축양식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도 접할 수 있다. 스페인 수십 개 교구를 대표하는 수석 주교좌성당은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알무데하 주교좌성당이 아닌, 스페인 최고의 건축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톨레도 주교좌성당이다. 그만큼 톨레도에 대한 스페인의 신앙적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1562년 톨레도에 도착한 성녀는 곧바로 수녀원 창립에 몰두했지만 주교좌성당 참사위원들이 극구 반대해 난항을 겪었다. 창립 초기에는 생활비가 모자라 수녀들이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모든 어려움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나간 것이다. 1575년 ‘맨발의 가르멜회’로 불리는 ‘원시 규율파’ 탁발수사들과 ‘신발을 신은 가르멜회’로 일컬어지는 ‘완화된 규율파’ 수사들이 관할권 분쟁을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가르멜회 총장이 개혁사업을 포기하고 수도원 정주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성녀는 이를 발판으로 교회사에 길이 남을 명작인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을 저술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작은 면 사무소 소재지 정도 규모인 말라곤은 허허벌판 같은 곳을 고속도로로 내달려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지역이다. 데레사 성녀 시절에는 이보다 더 했을 것이다. 수녀원 창립 당시 마을 사람들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수녀들의 생계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고 알려진다. 수녀원이 건립될 당시 데레사 성녀는 건설 현장을 수시로 직접 방문해 진행 사항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봤다고 한다. 불모의 땅에서 어렵고 힘들게 창립하는 수녀원이기에 성녀의 애착심은 더욱 강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은인들로부터 연금을 받아 수녀원을 창립하는 경우도 생겨났지만 물질적 가난을 통해 영혼을 구원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녀원 앞에서 미소 짓는 데레사 성녀 동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불모지에서 ‘성령의 마을’을 탄생시켰던 500년 전 영성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스페인 관광청에 따르면 스페인을 찾는 한국인은 지난 2014년 16만여 명에서 지난해 31만여 명으로 급증했다. 스페인 관광청 이은진 부장은 “종교를 초월해 스페인 순례길을 찾는 한국인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며 “스페인 순례길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표기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된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la)가 최종 목적지다. 스페인과 프랑스 경계지역에서 출발하는 약 800㎞ 구간 등 7개 코스로 이뤄진다. 16세기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의 고향인 바스크 지방 로욜라(Loyola)에서 카탈루냐 지방 만레사(Manresa)까지 이어진 코스로 약 650㎞이다. 30대 초반의 로욜라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단하고 걸어갔던 바로 그 길이다. 말라곤 맨발 가르멜 수녀원 앞에 세워진 데레사 성녀 동상. 데레사 성녀가 세 번째로 창립한 말라곤 맨발 가르멜 수녀원. 데레사 성녀가 다섯 번째로 창립한 톨레도 맨발 가르멜 수녀원 성당. |
출처: 평화와 착함 원문보기 글쓴이: 착한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