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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거라사의 광인(1-5절)
1. 1, 2절,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하십니다.
a. 본문에는 예수님이 바다 건너편 “거라사의 지방에 이르렀다”라고 되어 있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에서는 이곳이 “가다라 지방”(마 8:28)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거라사 지방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는데, 먼저, 갈릴리 바다로부터 동남쪽으로 48킬로 정도 떨어진 요르단의 주요 관광지인 제라쉬가 바로 거라사 지방이라는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러기엔 너무 거리가 멀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마태복음 8장에서 소개하는 “가다라 지방”이 갈릴리 바다에서 동남쪽으로 9.6 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가다라 지방에서 관할하는 갈릴리 해변에 인접한 도시 중에 하나가 거라사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갈릴리 동편에는 Kursi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도시 앞 해변에는 언덕 위에 갈릴리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무덤들이 있어, 거라사 광인이 바로 이 무덤에서 예수님이 타고 온 배를 지켜보다가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또 거라사 광인에게서 나간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 이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인 Kursi가 이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b.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처럼 갈릴리 서편에서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이 “저편으로 건너가자”(4:35)라는 말씀을 주셨을 때 제자들은 잠시 동안이라도 바쁜 일정에서 벗어나 쉼을 얻기 위해 저편으로 가자 하신 줄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저편으로 건나가다 풍랑을 만났고, 이번에는 또 무덤 사이에 거하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거라사 광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찾아오신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바쁘고 피곤하지만 예수님이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 서기관과 안식일에 관한 논쟁을 벌이다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루를 쉬셨지만,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한 이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쉬지 못하시고 일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2. 2-5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하십니다.
a. 이 말씀을 통해 귀신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말씀 먼저,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거룩한 영이시라면, 귀신은 더러운 영이기에 귀신에게 붙들리면 더러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귀신에 붙들리면 죄된 것, 더러운 것, 음란한 것을 좋아하다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겁니다.
b. 두 번째로 귀신 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2,3절) 거처하였다 했습니다. 무덤은 죽은 자가 머무는 곳입니다.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이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는 사역을 하신다면, 더러운 영인 귀신들은 무덤 사이에 머물며 사람들을 파괴하고 죽이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c. “고랑이나 쇠사슬로 맬 수 없고, 제어할 수 없었다”(3,4)하십니다. 귀신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에서 마술하는(exorcist)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으려다 악귀들린 자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행 19:13-16). 악귀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 19:15)하며 저희를 때리고 벌거벗겨 쫓아냈다 했는데, 본문에 등장하는 거라사 광인도 “고랑이나 쇠사슬로 맬 수 없고, 제어할 수 없었다”(3,4)하십니다. 귀신을 제어하려면 귀신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d.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였다”(5)는 말씀을 통해 귀신은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영육 간에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을 섬기는 무당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식들만큼은 무당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귀신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연예인들 가운데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영혼을 팔고 루시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악한 영을 섬기다보면 처음에는 좋은 것 같아도, 결국엔 이 악한 영이 (귀신들린 거라사 광인처럼) 그를 섬기는 자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II.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6-13절)
1. 6, 7절,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하십니다.
a. 무덤 사이에 머물 던 거라사 광인이 해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 멀리서 바라보다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달려와 절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절했다”는 단어가 헬라어 ‘프로스퀴네오’인데, ‘예배하다’, ‘경배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알아본 귀신이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어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자 말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타락천사인 귀신들이 타락하기 전에 천상에서 성자 하나님을 뵈온 적이 있기에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단번에 알아본 것입니다.
b. 본문에는 거라사 광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는 말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같은 사건을 조금 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8장 29절에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가 이르기 전에”라는 말씀을 보면 귀신들도 언젠가는 예수님이 귀신들을 멸하기 위해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에 사탄 마귀를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실 것이라 하셨고(계 20:2,3), 이후로는 세상을 미혹하기 위해 사탄 마귀와 그를 다르는 타락천사들을 잠시 풀어 놓았다가 백보좌 심판 이후에 다시 이들을 지옥불에 던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게 할 것(계 20:10)이라 하셨습니다.
거라사 광인에게 붙었던 군대 귀신들이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알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종말론(eschatology)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어떤 주경가는 “귀신들이 세상을 미혹하기 위해 교회 안에 자유주의 신학을 퍼뜨렸지만, 정작 자신들은 정통적인(Orthodox) 신학을 믿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에서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하셨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분이신 줄 알고,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고, 마지막 때가 되면 자신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알고 또 믿고 있지만, 이 믿음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하기에 귀신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 8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하십니다.
바람을 꾸짖어 잔잔케 하신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향해서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말씀으로 꾸짖어 쫓아내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 바람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세계뿐 아니라, 귀신으로 상징되는 초자연의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 28:18)하셨습니다.
4장에 보면 말씀 한마디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4:41)하며 서로 의논하였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바람과 바다뿐만 아니라 귀신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말씀으로 영적인 세계를 창조하시고 또 세상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뿐 아니라 귀신들도 그 말씀에 순종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3. 9절,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하십니다.
a. 거라사 광인에게 들어간 귀신을 쫓아내시기 전에 예수님은 저의 이름을 물어보셨습니다. 이름을 물어보신 것은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영적인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루시퍼 숭배자(일루미나티)들에 관한 글들을 올리는 것도 바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들의 정체를 알아야 영적싸움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하십니다.
b. 예수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거라사 광인에게 들린 귀신들이 “내 이름은 군대니”라고 대답합니다. “군대”라는 단어는 헬라어 ‘레기온’인데, 이 단어는 로마 군대가 사용하던 군사 용어로 6,000명으로 된 1개 군단(Legion)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 속에 ‘레기온’으로 묘사되는 많은 귀신들이 들어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 안에 많은 귀신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요즘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다중인격장애’는 여러 귀신들이 들어가 차례로 그 인격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무당들도 굿판을 벌일 때 무당의 인격 속에 장군 귀신과 할머니, 할아버지, 동자 귀신들이 돌아가면서 들어가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정신과적으로 표현하면 이게 다중인격장애인 것입니다. 일루미나티의 Mk Ultra Project가 바로 어린아이에게 견디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성적인 고통을 가해 인격을 해리시키고 그 안에 귀신을 심어넣는 것인데, 디즈니 미키마우스 클럽 출신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어린 시절 바로 이 Mk Ultra Project를 통해 귀신이 심겨져 다중인격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하튼 예수님이 거라사 광인에게 들어간 이런 군대 귀신을 말씀 한마디로 쫓아내셨다는 겁니다.
4. 10절,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하십니다.
a. 귀신이 떠나기 싫어하는 “이 지방”이면 좁게는 거라사 혹은 가다라 지방을 의미하고, 넓게는 데가볼리(20) 지역을 의미하는데, 데가볼리는 그리스어로 숫자 열(10)을 뜻하는 ‘데카’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를 합쳐진 단어로 ‘열 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데가볼리는 헬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식민지화된 갈릴리 바다 동편에 위치한 도시들로, 예수님 당시엔 주로 이방인들이 거하며 헬라와 로마의 신들을 섬기는 땅이었습니다. 거라사와 데가볼리 지역이 헬라와 로마의 신들 다시 말해, 귀신을 섬기는 땅이었기에 군대 귀신이 이런 지역에서 떠나기 싫어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였다”는 겁니다.
b. 예수님이 이런 귀신들의 요구를 허락하시어(13) 저들을 당장 무저갱에 보내지 않으시고, 우상과 귀신을 섬기는 땅인 데가볼리 지방에 그대로 머물게 하신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는데, 사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천사들뿐 아니라 루시퍼를 비롯한 타락천사들도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욥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 사단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처럼,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하기 위해 악한 영들을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있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7년 대환난 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양과 염소를 나누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하튼 악한 영들도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수단이기에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그들이 머무는 지역에서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5. 11-13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하십니다.
a. 거라사 광인에게 들린 군대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은 뒤에 이 돼지떼가 갈릴리 바다로 치달아 몰사하게 하였다 하십니다. 이후로 돼지떼의 주인들인 거라사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이 떠나길 요구한 것을 보면, 귀신들이 쫓겨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b. 거라사 광인에게 들어간 귀신이 돼지떼에게 들어간 것을 보면, 귀신이 돼지와 같은 짐승들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요한계시록 13장 15절에서는 거짓 선지자가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였다”(계 13:15)하십니다. 귀신들이 짐승뿐 아니라 우상과 같은 형상에도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인데, 며칠 전 뉴스에 나온 AI에 관한 기사를 보면 귀신이 컴퓨터 안에도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제를 준비하던 대학원생이 구글 AI에게 고령화 문제에 대해 묻자 “인간은 짐이야 제발 죽어줘”라는 답변이 돌아와 화들짝 놀랐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컴퓨터 안에 사탄이 들린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하튼 귀신들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우상에게도 들어가 사람을 미혹한다는 겁니다.
c. 마지막으로 귀신이 돼지떼에게 들어갈 때, 예수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데, 욥기를 보면 사단이 욥을 시험할 때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허락하신 범주 안에서만 욥을 시험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욥 1:12; 2:6). 귀신들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예수님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III.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14-17절)
1. 14, 15절,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하십니다.
돼지를 치던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이 돼지 떼가 몰사하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하여진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다 하십니다. 이 사건 전에 갈릴리 바다에서 말씀 한 마디로 바람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도 두려워했다 했습니다(4:41).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두려움은 예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연결되었지만, 거라사 사람들의 두려움은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믿음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하나님을 배척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2. 16, 17절,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하십니다.
거라사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이 온전케 된 모습과 돼지 떼의 일을 보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그 두려움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며 떠나기를 구하였습니다. 수천 마리의 돼지 떼가 물속에서 익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면 또 다른 경제적인 손해가 찾아올까 두려워 떠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하십니다. 거라사 주민들처럼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재물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IV. 돌아가 고하라(18-20절)
1. 18-20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하십니다.
a. 거라사 지경에서 떠나기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청을 받고 예수님이 배에 올라 그곳을 떠나려 하실 때,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했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간구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런 요청에 예수님은 허락지 않으시고 그 대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는 전도자로 파송하신 것인데, 이 사건은 예수님이 12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기 전에(6:7) 일어난 일이니, 거라사 광인이 예수님이 파송하신 첫 번째 전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간혹 훈련받아야 전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어떨 때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가감없이 증거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네 친속에게 고하라”는 말씀을 받은 거라사 광인은 친속들뿐 아니라 거라사와 데가볼리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이 저에게 베푸신 은혜를 증거했습니다. 이후로 8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데가볼리 지역을 다시 찾으셨는데, 이때, 수많은 무리들이 몰려와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8:1,2) 7병 2어의 기적을 경험했다 했습니다. 거라사 광인이 데가볼리 지역에서 얼마나 열심히 예수님을 전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인데, 우리도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이 은혜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b. 예수님이 고침받은 거라사 광인을 제자로 받아주시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지 못한 예수님이 이방인을 제자로 삼아 유대지역으로 데려가신다면, 가뜩이나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또 다른 빌미를 줄 것을 아시고 허락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초대 교회 안에 누가와 같은 이방인들이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였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 여기시고,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거라사 광인의 요청을 거절하셨다는 겁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겁니다. 귀신들을 무저갱에 던져 넣으실 때가 있는 것이고, 이방인들을 제자로 받아주실 때가 있는 겁니다. 여하튼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는데, 이런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인 것이고, 그때를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첫댓글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