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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김경연
(33, 성남시 거주)
“아버지께 편지 쓰기”
공모 대상작
“불가에서는
현세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천 겁의 연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거늘
그렇다면
부모님과의 인연은
전생에 몇억 겁의
인연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런데도
내 가슴에 각인된
불효의 죄스러움이
너무 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내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딸로 태어난 제가
남편과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식구들이 모인자리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부모님의 가슴에
처음으로 피멍을 들게
했습니다.
‘엄마, 아빠!
딱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결혼식장에서만큼은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철썩!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아있던 오빠한테 뺨까지
얻어맞았지만
저는 단호할 만큼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잖아도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부유한 시댁에 행여나
흉잡힐까 봐
잔뜩 주눅 들어 있었는데 꼽추 등을 하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은 손님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걱정 말래이~~~
요즈음 허리가
하루가 다르게 아파 오니 내~ 그날은 식장에도 못 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렇게 하그라~’
행여나
시집가는 딸이
마음에 상처라도
입을까 봐
거짓말까지 하신
아버지!
상앗빛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오신 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순간부터
북받쳐 오르기
시작한 오열로
결혼식 내내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덩그러니
골방에 홀로 남아
쓴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저는 또다시 용서받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
시집가자마자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어려운 시어머니께는
감히 내색도
제대로 못 하고
늦은 밤 친정집에
전화로 고통을
하소연하곤 했었죠.
잔정 많은
남편이 사다 주는
음식들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고,
친정어머니가
투박한 손으로
무쳐주시던 겉절이와
텁텁한 청국장이
먹고 싶어
흉내도 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햇볕 따스한 일요일 오후 화사하게 치장한 채 시어른들을 모시고
바깥나들이하기 위해
승용차에 몸을 싣고
골목 어귀를
빠져나갈 무렵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얼굴을
잔뜩 숙인 채 꼽추 등에 보자기를 들고서
건너편 슈퍼에서
두리번거리는 한 노인네는 분명 나의
아버지 같았습니다.
‘아버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으신데 설마~.’하면서 아버지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무렵,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후
슈퍼로 물건 사러 나갔던 남편이 슈퍼 아줌마가 전해 주더라며
조그만 보따리를
내밀었습니다.
‘야야!
너 거 어미가 올라 카 다가 일 나가서
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대이.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거절이 [겉절이]다.
배 골찌[배곯지] 말고
마싯게[맛있게]
먹그래이.’
맞춤법도 틀리게
어렵사리 쓰셨을
쪽지를 보면서
사돈댁에게 흠 잡힐까 봐 들어오지도 않고
전해만 주고 가실
생각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장인어른도 참!
여기까지 오셔서
왜 그냥 가셨지?’
남편도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만
올 수 있는 길을
언젠가 한 번
들린 적이 있는
큰 언니한테 묻고 또
물어서 찾아오셨던
아버지!
딸네 집이
눈앞이면서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렸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시집가서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 반이나
깨닫는다고 했던가요~
늦게나마 철이 든
저는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저지른 불효는
그 어떤 효도로도
깨끗이 치유될 수
없는지
날이 갈수록
한스러워집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남편 직장 때문에
따로 이사해서
친정과는 3백 킬로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니 느는 건
눈물뿐이랍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부슬부슬
가랑비라도
내리는 날엔
사진첩을 벗 삼아
뒤적이다가
아버지 없는
결혼사진을 대할 때면
황량한 바람이
몰아칩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날의
불효자식이
이제야 철이 들었나
봅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앞으로 잘 할게요~”
김경연(33. 성남시 거주)
'아버지께 편지 쓰기'
공모 대상
"후기"
서울 출판
문화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경연 씨(33, 성남시)
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그녀의 눈물!
수기를 읽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깊은 사랑 때문에 모두 말을 잃었다.
그녀는
‘몸이 편찮으셔서
아버지가
올라오시지 못했다.’라고 시댁에 둘러댄
핑계 때문에 지난 7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김 씨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울었다.
딸의 수기 당선
소식을 모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김춘생 씨 (60세)
(경북 성주군 성주읍)는
‘아비의
마음 아픔은 말로는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시집간 딸자식이
행복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며
혹 이 일로
딸의 시댁에
누를 끼칠까 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아버지는
태어나실 때부터
꼽추는 아니셨어요.
제가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로 자주 뵙지 못하던
85년경 허리에
물이 차는 늑막염과
심한 열병을 앓아 등이 굽어버렸지요.’
김 씨는
‘어버이날’을
전후해 틈 나는 대로
남편과 함께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김주영 씨는
‘딸의 수기는
골방 한 구석 편에
누워있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그 위대한 부성애에
정당한 이름표를
달아준 것’이라며
‘우리들의
모든 아버지가
이와 같지 않더냐’라고 반문했다.
먼저 김경연 씨의
'아버지께 편지 쓰기'
공모 대상 입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제 자신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한없이
울었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자식들이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께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다해
드리고 싶지만
이런저런
주변 제반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해
마음 한 편으로는
늘 죄지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은
비단 저뿐의 생각은
아니 겠지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날에
오늘 이 글을 잃으면서 시골에 계신
우리 어머님
만수무강 하시라고
전화 한 번 해 드려야
겠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느 아버지의 마음
구본무-회장
"안타깝지만 가슴 찡하고 감동적인 글을 전해드립니다.
"얼마전 육군 모사단의 상병이 사격장의 유탄에 맞아 죽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부모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군대에 간 아들이 전투하다 죽는다 해도 원통할 터인데
느닷없이 사격장의 유탄에 맞아 죽다니 얼마나 억울하랴?
"그 유탄을 쏜 병사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 않겠는가?
*당장 찾아 엄벌을 하라고 하지 않으랴?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병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셔서
우리를 놀라게하고 또 감동케 하는 것이다.
“그 유탄을 쏜 병사를
찾지 말라.
그 병사도 나처럼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느 부모의 자식이 아니겠느냐?
그 병사를 알게 되면 나는 원망하게 될 것이요,
병사와 그 부모 또한 자책감에 평생 시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 아버지의 바다같이 너그러운 마음
이 각박한 사회에서도 이런 분이 계시던가?
나는 옷깃을 여미었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나같았으면 어떻게 하였을까?
사격장을 그렇게도 허술하게 관리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고,
국가에 대해서도 아들을 죽인 데 대한 배상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게 정의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전혀 나 같은 소인배와는 달랐다.
참으로 어진 분이셨다.
죽은 내 자식은 이미 죽은 놈이지만,
산 사람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병사의 부모에게까지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우러르고 싶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이어져 더욱 감동을 준다.
이 기사를 읽은 LG의 구본무 회장이 감동을 받아
그 병사의 유족에게 사재 1억원을 기증하였다는 것이다.
구 회장에게야 1억원이야 큰 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없으면 어찌 단 돈 1원 인들 내놓으랴?
그분도
그 아버지의 사려 깊은 뜻에 감동을 받았다.” 는 것이다.
갖가지 나쁜 기사들로 우리를 짜증나게하여 신문 보기가 겁나는
요즘에
이런 기사를 보니 참으로 따뜻하다.
그리고 훈훈한
마음이다.
나도 이런 마음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하건만 바탕이 덜 되어 안타깝다.
다시한번 우러러 두 분에게 감사하고,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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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애(慈愛)로운 얼굴 / 재탕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강 입구 리버티 섬에 세워진,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다.
우리는 흔히 '자유의 여신상'으로 부르고 있다.
동(銅 구리)으로 만든 여신상의 무게는 총 225ton이며 횃불까지의 높이는 46m다.
받침대 높이가 47.5m이므로 지면(地面)에서 횃불까지의 높이는 93.5m에 이른다.
집게 손가락 하나가 2.44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며,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발 밑에는 노예해방을 뜻하는 부서진 족쇄가 놓여있고,
치켜든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을 상징하는 횃불이,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1876년에 미국에 선물하기 위하여
1875년에 제작을 시작했으나, 1884년에 완성되었다.
1885년에 350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214개 나무상자에 포장하여 선박으로 미국에 운송하였다.
결국 1886년 미국에서 축조(築造)한 받침대 위에 합체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자유의 여신상' 얼굴은 누구를 model로 하여 만들어졌을까?
자유의 여신상 얼굴 모델 선정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프랑스 정부는 당시 자국(自國)의 유명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 에게 자유의 여신상 제작을 의뢰했다.
그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의뢰받고 작품을 구상 하면서,
이 여신상의 얼굴을 누구를 모델로 삼아야할지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물망에 올랐다.
아름다운 여배우, 유명 정치가, 엄청난 재벌 등 사회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추천되었다.
하지만 바르톨디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떠올리고 자유를 수호하는 자애로운 여신의 얼굴을 조각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결국 바르톨디는 많은 고심 끝에 자신을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를 가장 적합한 모델로 결정했다.
바르톨디에게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얼굴은 바로 그의 어머니 얼굴이었던 것이다.
제작 과정에서 연로하신 어머니가 오래도록 같은 포즈를 취하는데 힘들어하자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여자를 발굴, 모델로 채용하여 최선을 다해 작업하였다.
그리고 작품 완성 후, 바르톨디는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바로 그 모델과 결혼했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시대와 형편에 관계없이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애로움이 배어있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것은 참다우며 참다운 것은 아름답다.
그러므로 14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자유(自由)의 여신상(女神像)"을 보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진(眞), 선(善), 미(美)를 모두 갖춘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며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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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에의 법칙
(Coue's Law)
프랑스의 약사인 에밀 쿠에(Emile Coue)는 1950년 위약효과(僞藥效果 Placebo Effect)를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쿠에가 잘 아는 사람이 의사의 처방전 없이 찾아왔다. 몹시 아파 죽을 지경이니 약을 지어달라고 했다. 쿠에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시간이 늦어 병원 문도 닫혔고 지금 당장 아파 죽겠는데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하소연했다.
쿠에는 위법행위는 할 수 없고 당장 딱하기는 하고 그래서 약간 하얀 거짓말을 하였다. 즉, 그 사람이 하소연하는 통증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인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포도당류 알약을 지어주면서 우선 이 약을 먹으면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내일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며칠 후 쿠에가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그거 무슨 약인지 참 신통합디다. 다음 날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그 약 먹고 말끔히 나았어요. 참 고맙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이 환자는 좋아질 것이라고 한 약사의 약에 대한 믿음과 그리고 그렇다면 낫겠구나 하는 정신적 확신으로 인하여 그 병이 나았던 것이다. 훗날, '위약효과(僞藥效果 : Placebo Effect)'라 불리는 유명한 이 치료법은 이렇게 발견되었다.
쿠에는 이 우연한 발견을 더욱 발전시켜 정신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법칙 하나를 도출했다. 그것은 포도당 알약이 아니라 몇 개의 간단한 단어로 만들어진 법칙이다. 이 법칙은 곧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치료효과를 주었다.
"쿠에의 법칙"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좋다. 날마다 나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오늘이 일생을 통해서 가장 좋은 날이다.’라는 "자기 암시"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자기 암시를 유도하는 말 한마디가 "쿠에의 법칙"이다.
쿠에는 이 법칙을 하루에 스무 번씩 큰 소리로 외치라고 권유한다.
이 법칙의 핵심은 자기암시를 통한 자기 확신으로 자기암시의 황금률은 반복이다. "쿠에의 법칙"이 효과를 얻으려면 매일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 가장 좋은 시간은 잠들기 직전, 혹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직후가 가장 효과가 있고 강력하게 작용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자기 확신"이 들 때까지 "쿠에의 법칙"을 실생활에 적용할 것을 선포합니다!
샬롬!!!
첫댓글 가끔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어려운 환경에 학교를 못다니고 공장생활을 하면서 술,담배를 일찍 배웠는데 술마시고 들어오면 "책 좀봐라"
하시던 그맘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돌곤 합니다.
집에가서 아버지 모시고 열심히 약사러 가고 뱡원가고 있을때 잘해드립니다.
가슴 찡한 글이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