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절을 보겠습니다.
1 데오빌로님, 나는 첫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2 나는 거기에다가,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지시를 내리신 다음에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하신 모든 일을 수록하였습니다.
3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를 두고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4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 본문은 사도행전 전체의 서론인데, 누가복음에서 밝힌 것과 같이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헌사입니다. 당시에는 저술가가 집필하는데 필요한 자금과 책의 보급을 책임지는 후원자들이 많았습니다. 데오빌로는 아마도 그런 역할을 한 후원자로 로마제국의 고위 관리였을 것입니다.
후원을 받는 사람은 후원자에게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래서 앞서 보낸 보고서, 즉 누가복음에 이어 후편인 사도행전을 보낸다는 것인데, 문제는,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날이 그날 당일로 되어있는데, 사도행전에는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9~53절을 보겠습니다.
49 보아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50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밖으로 베다니까지 데리고 나가서,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다.
51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냈다.
여기서 [ ] 안에 있는 내용, 그러니까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기록과 ‘예수께 경배하고’ 라는 기록은, 사본에 따라 있는 사본도 있고 없는 사본도 많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본에는 없었는데 아마도 누군가 나중에 추가한 본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원본에는 승천사화가 없었는데, 나중에 누군가 승천사화를 삽입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다고 말하는 기록과, 부활하신 그날 당일에 승천하셨다는 누가복음의 기록이 서로 상충되는 문제는, 누가복음 원본에는 승천사회가 없었는데, 나중에 누군가 승천사화를 삽입했다는 해석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됩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인데, 누가가 자기가 앞서 기록한 보고서에는 승천사화를 기록하지 않았는데, 사도행전에서는 승천사화를 전제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보고서의 저자 또는 저자들이 누가복음을 기록할 때는 승천신앙이 없었는데, 몇 년 후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는 승천신앙을 받아들인 걸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누가공동체 내에서 누가복음의 결론부를 기록한 사람과 사도행전의 서론부를 기록한 사람이 달랐고, 그들의 신앙적 견해 역시 조금 달랐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여기서도 우리는 성서가 문자 그대로 오류가 없다는 성서무오설이 얼마나 비성서적인 교리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기록한 책이라는 사실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6~11절을 보겠습니다.
6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주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10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서서
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이냐고 사도들이 물었답니다. 예수님이 구약성서에 예언된 메시야, 즉 다윗의 후손으로서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를 정치적 독립국으로 만들 것을 기대하는 유대교적인 시각에 사도들이 아직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선교명령을 내리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사도행전은 바로 이 경로를 통해 복음이 전파된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승천하셨고, 갑자기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제자들 곁에 서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증언했노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재림에 대한 약속이 되겠습니다.
이 본문은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혼란을 낳게 됩니다. 재림 예수를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 큰 혼란을 남기고 사라져간 일이 수를 셀 수 없이 많았으니까요. 오늘날에도 본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중에는 언젠가 예수님이 정말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역사의 기록의 아니라 누가공동체의 신학이 담긴 일종의 설교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는 그리스 로마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제우스가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번개와 천둥을 내리친다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제우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인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과 지상으로 왕래하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본문을 만날 때는 당시 그들이 살았던 세계관 아래서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서가 어떤 책인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비난이거나 억지입니다.
이어지는 12~26절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뽑아 사도로, 즉 예수님에 의해 직접 부르심을 받고 함께 생활해왔던 열두 제자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일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열둘을 다시 채웠을까요? 열한 명으로는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열둘을 기어코 채운 이유는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