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반 학생들과 운악산 현등사를 다녀왔다.
영익이가 전날 내 잔소리를 심하게 듣고 마음이 상했었다. 사실 가깝다는, 가장 오래 만나왔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다가(내가) 실수를 했다. 본의 아니게 영익이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영익이는 호기심이 참으로 많다. 접하는 것마다 평생의 업으로 삼을 듯이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면 여수에서 배낚시를 딱 한 번 하고,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여 사시미 뜨는 걸 배우더니 평생 바닷가에서 고기잡이 어부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건 애교지~하고 넘어가는데, 바둑은 애교 수준을 넘었다.
여수에서 일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바둑을 두고 싶다, 직업으로 삼는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고 심각하게 고충을 털어놨다. 작년 겨울방학에 약간의 검정고시 공부말고 종일 바둑판을 끼고 살았다. 머리 속에 흑백 바둑알이 돌아다닌단다. 현승이 부모가 여수에 방문해서 오동도를 같이 걸을 때도 아름드리 오동나무나 소나무를 보면서 수십 개 바둑판을 만들 수 있겠다며 침을 흘리는 모습이 나이 꽤나 자신 아저씨들이 지나 가는 강아지를 보며 '장 발라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결국,
프로기사가 되겠으니 이해하고 도와달라는 것이다. 어쩔 것인가?
"네 나이에 시작해서 프로기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아는 한 서봉수9단만 유일한 경우다.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더더욱 안된다. 불가능해. 차라리 지금부터 축구 연습을 해서 멘유에 입단하겠다는 결심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절대 안된다"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쐐기를 박는 거겠지' 그렇게 말했는데도
대학을 포기하고 가출을 해서라도 바둑의 길을 가겠단다.
"네가 널 속이는 경우다. 현실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기 위해 너도 모르게 네 무의식이 바둑으로 현실도피하려는 것이야"
심리학 좋아한다는 놈이니 심리학적으로 설득했다^^
아니란다. 자기의 결심은 도피가 아니며 용기 있는 도전인데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한다.
결국,
여수 시내를 뒤져서 이슬아(국가대회 프로기사, 21살)를 배출했다는 바둑교실을 섭외했다.
"이 아이를 문하생처럼 받아주십시오. 청소도 시키고 심부름도 시키면서 하루종일 머물며 바둑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호랑이처럼 엄하다는 사범님께 신신당부를 하고 초등학생 회원들 비용보다 2배를 지급하기로 하고 허락을 받았다.
영익이는 아침 일찍 스스로 일어나서 아침은 바나나로 대충 때우고 여수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탔다.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 밤 8시가 됐다. 혼자 늦은 저녁을 먹고 잠들 때까지 기보를 보거나 외운 기보를 복기한다. 하루 12 시간 정도 바둑공부만 하는 것이다. 주로 프로기사의 기보를 암기하는 것이 공부 내용이란다. 기보 1천 개를 외우면 프로기사가 될 기본을 갖추는 것이라고 사범님이 말씀하셨단다. 힘들지 않냐는 걱정반 격려반 질문에 충분히 감당할만하다나~
그렇게 꼬박 한 달을 다녔다. 심지어 일요일도 갔다. 화분 밑의 열쇠로 바둑도장에 가서 혼자 프로기사 기보를 보며 복기하다가 오곤 했다. 그래도 수요일은 성공회대에 청강가느라 도장을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청강을 포기하고 싶다고 해서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바둑으로 인해 영익이는 테니스, 배드민턴, 하이킹, 가까운 지역 여행, 낚시, 사우나, 외식, 노래방 등 다른 팀원들의 일상사를 함께 하지 못했다. 낚시의 즐거움을 말로만 전해듣거나 무한리필 고기부페집, 여수의 유명한 간장게장집, 감자탕 집 외식을 후기로 전해들을 때 무척 괴로워하더니만 바둑도장에 다닌지 한 달 되던 날, 다시 면담을 요청한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대학진학을 그토록 원하시니까 일단 대학에 진학하기로 할 거구요, 바둑은 진학 후에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여수의 경험은 다시 하기 어려우니 남은 기간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겠습니다. 바둑도장에 그만 다닐게요"
"바둑 정진을 계속하겠다면 대학 진학을 하지 말아야하는 거 아니야? 등록금으로 부모님 골탕 먹일 일 있냐?"
그런 해프닝으로 여수 바둑 건은 마무리됐다. 서울로 복귀해서도 바둑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야심한 밤에 인터넷에서 온라인 바둑대결을 벌이는 것은 영익이의 일상이 되었다. 지는 일보다 이기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콧대가 점점 높아진 것이다. 그렇게 어제 일의 발단이 만들어졌다.
영익이 바둑의 단초를 제공한 솔바로가 학교에 와서 반 년만에 두 사람의 대국이 이루어졌다. 내가 솔바로에게 권했다. 영익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서다. 결과는 27집 대 27집. 솔바로가 백을 잡았으니 동네 복덕방 바둑 쯤은 바둑으로 여기지 않는 자존심에 덤을 계산하여 솔바로 승. 영익이는 자신의 반 집 패, 또는 무승부로 표현했다. 반 년 전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는 솔바로의 평가였다. 일본 유학을 앞두고 있어 백수로 지내는 솔바로는 요즘 스타크를 하거나 바둑TV를 보는 걸 주요 일상으로 하고 있다. 아마추어로는 강자로 통하는 솔바로다. 또 대국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날지 알 수 없다며 영익이의 일취월장, 상전벽해를 칭찬했다. 나는 짐짓 못들은 척했다. 그게 어제 낮의 상황. 밤에는 성공회대 수시 자료로 제출할 책작업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영익이가 바둑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저 대학 떨어지면 다시는 대학 문 두드리지 않고 바둑두며 살 겁니다"
"너무 늦었다고 했잖아. 넌 결코 프로기사가 될 수 없어"
"아닙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빠르다니까. 그만큼 불가능 해"
"선생님의 비유는 논리의 비약입니다. 제발 그런 엉터리 과잉 논리로 설득하지 마십시오."
'어쭈, 이 녀석이~'
"솔바로에게도 졌잖아. 솔바로는 아마추어에서도 찌질이인데, 결국 네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능력조차 없는 거야. 너야말로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마"
영익이가 발끈한다. 녀석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지만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제가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비긴 거라구요. 어쨌든 바둑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야 임마, 결국 프로기사가 되려고 바둑만 둘 거라면 대학을 뭐하러 가냐. 바둑기사에게 학력과 출신학교가 전혀 필요없는데, 단재학교는 뭐하러 다니냐. 지금 사용하는 선생님과 네 에너지는 아무 소용없는, 뻘짓을 하고 있는거냐? 프로기사는 네 길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 그럴려면 여기를 당장 떠나!!"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간다. "야~!" 부르는 소리에 "나가라며요!" 한다.
그후 상황은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다. 영익이는 한동안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던 일을 마저하고 자정이 넘어 학교에서 나갔다. 무척 힘들어했다. 택시로 집앞에 내려주고 나도 집까지 택시로 이동. 그리고 오늘 아침,
가평 운악산 현등사로 떠나야하는데 영익이가 오지 않는 것이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제 일이 무척 미안하기에 집에 가서 억지로 끌고 왔다.
10시35분에 출발.
1시간 20분 정도 걸려서 현등사 입구에 도착했다. 싸온 도시락은 송선생이 직접 만든 특제 김밥. 비는 내리고 유명한 현등사 두부부침을 외면할 수 없어서 들기름에 노릇하게 구운 손바닥만한 두부를 두 접시 시켜서 도시락과 함께 먹었다. 두부도 두부지만 곁들여 나온 묵은지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리고 50분 쯤 걸어서 현등사에 도착. 약간 비가 내리지만 등산로가 절반 이상 콘크리트로 정비가 되어 쾌적하게 걸었다. 아무도 없다. 우리말고는. 지훈이와 희수는 가지고 간 물총으로 놀면서 올라간다. 현승이도 잘 걷는다. 이 친구들은 산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산길이 아닌 좋은 공기맛을 아는가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 <觀音殿>인데 아무도 현판을 읽지 못한다. 여수 향일암에도 제일 높이 있던 건물이었다는 힌트도 필요없다.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란 뜻이야. 집중하지 못한다. 드디어 억눌렀던 선생기질이 터져나온다. 원래 이러지 말아야지 했었다.
현등사의 역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조계종, 본사, 말사, 극락전, 관음전, 극락전의 싸리나무 기둥이 5백년은 됐을 것이란 것, 대웅전, 대웅전이 없는 이유, 적멸보궁, 부처님 진신사리, 삼성각, 지장전, 요사채, 보조국사 지눌 이야기, 현등사의 뜻, 마당에 있는 지진(地鎭)탑의 건조양식과 그에 따른 연대추정, 지진의 뜻 등을 일사천리로 풀어낸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현등사 안내판 내용을 읽어두었다. 실제 극락전 기둥을 만져보고 단청이 낡은 정도가 다른 건물하고 비교된다는 추가 설명도 이어졌다. 이렇게 떠들면(말로 강의하면) 아이들은 무엇을 건질까? 결론은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다. 교사가 열심히 떠들었다는 자기만족(나는 이만큼 알고 너희들을 위해 에너지를 썼다. 내가 아닌 너희들을 위해!!! 그러니 난 책임을 다했어!)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관성에 의해 설명질이 계속된다. 삼성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삼성각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나도 평소에 잘 보지 않았던 건물이다.
"삼성각이나 삼신각이 있는 절이 많다. 이 건물은 불교와 관련없다. 가운데 부처님과 양 옆에 앉아있는 그림의 주인공의 관계가 상징적이다. 불교가 우리 땅에 전해질 때 어쩔 수 없이 토속신앙과 결합하게 되는데 삼성각 좌우에 있는 산신령 그림이 증거다. 삼성각은 부처님과 관련 없이 신령님께 복을 비는 장소다. 이는 AD 313년에 로마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위해 유일신교인 유대교가 로마의 다신교와 결합하여(타협하여) 성부,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론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결국 지금 우리의 생각이란 수 천년을 흘러내려오면서 여러 지역의 여러 사람 생각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걸 분석하고 파악하는 것이 공부한다는 것이지"
내 얘기가 끝나니까 이런 아이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현승: 불교와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극락과 천국을 보면 말이예요. (현승은 모태신앙. 개신교)
지훈: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음~ 삼위일체. 뭔가 그럴듯 합니다. 만화에도 세 가지가 결합하는 얘기가 많습죠. (지훈이가 기분좋을 때 느물거리며 말하는 특유의 말투)
현승: 천주교에서도 예수님을 인정하나요? 성모 마리아만 너무 신격화하는 것은 아닌지....
영익: 그래서 개신교가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말하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지 (영익이도 모태신앙. 천주교)
이런 강연쇼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아이들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자신의 배경지식의 한계를 절대로 넘지 않는다. 선생님의 강연쇼에서 무언가 얻은 내용이 대화에 들어가지 않는다. 선생님 쇼가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대화이다)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를 했다는 것에 차별점을 두려고 했다.
사실은 풀리지 않는 고민이다. 위와 같은 짧은 강연쇼를 하기위해 내 자신의 수십 년 독서와 여행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그런 지식을 아이들에게 압축해서 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여 고민한다. 없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게 되는가? 선생 같이 되기 위해 선생만큼의 경험을 쌓아야한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어찌 수 천 년 인류의 지혜를 받아들이기 위해 무한정 시간을 소비해야한다는 말인가. 선배의 깨달음을 이어가기 위해 선배가 소비한 시간을 다 쓸 필요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내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내용이 있지만 다음 기회로 돌리겠다. 정답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