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주막 / 임연규
白湖 林悌의 시편을 새벽에 읽다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잘 아는 후배 부인의 전화라 예사로 늦은 술 먹고 또 심심찮은 부부 싸움 이려니 하였다. 그 시간만 지나면 지나가는 일이니 하고...
‘원수대 앞엔 바다가 하늘과 닿았으니,
일찍이 붓과 칼을 지니고 군진의 요에 취해 누웠네.
음산은 팔월에도 늘 눈이 날리니
때론 큰 바람을 타고 술자리에 떨어지니.
백호가 ‘경성 판관에 부임하는 황경윤을 보내며’쓴 씩씩한 기상이 넘치 는 백호다운 시다. 백호는 약관 39세의 나이를 살다간 450년전 시인이다.
백호는 시재만이 아니라 기개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평안도 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송도의 한 길가에 있는 황진이의 무덤에 시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가 벼슬하는 양반이 기생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다고 큰 비난을 받은 일화는 널리 회자된 이야기다.
그가 병으로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아들들이 슬피 울자. 그는 말했다.
“사해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황제를 칭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오직 우 리나라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렇게 비루한 나라에 살았으니, 죽는 다고 서러워할게 못된다. 내가 죽거든 哭을 하지 말아라.”
마치 작금의 우리나라 핵문제로 세상의 이목에 흔들리는 지금, 우리나라 가 딱히 할 일이 없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외세의 틈바구니에 부평초 같이 바람에 몸을 맡기듯 하니 어쩌면 그 비루한 역사의 연장인가.
새벽에 온 전화의 기억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병원에를 가다가 다 시 받은 문자에서는 청천벽력같이 후배 화가의 주검을 알리는 문자다.
그 시간 그 전화는 남편의 주검을 알리는 다급한 전화였던 것이다.
속절없이 가난하게 그림과 삶에서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화가였다.
그라고 왜 눈물이 없으랴. 삶이란 게 충주에서 일정한 직장없이 기간제 교사로 이어가는 삶의 끈이 하루하루 얼마나 비루했으랴.
어드덧 그는 현 민예총 충주 지부장을 나름 열정을 쏟고 있어서 가끔 여 러 장소에서 조우했다
젊은 부부가 삶의 한 방편으로 어렵고 의지가지 할 곳 없는 가난으로 부 부의 연을 맺어 삶의 터전으로 만리산 허리 개인고개에 ‘하늘주막’이란 조 촐한 술집을 열었을 때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어 하늘주막 만큼 번창하라고 다음과 같은 시를 커다란 광목천에 써서 걸었었다.
하늘주막
저 산으로 가랴하랴
전설 속에 먼
만리산
만리산 너머로
해지는 어스름을 깔고
내일의 약속을 묻는
희망처럼
개인고개를 오르네.
‘목숨을 재촉하는 북소리 둥둥
저승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성삼문이 찾으랴 하던
천상의 주막
만리산 귀때기에
하늘주막 들어서면
오늘도 주모는 소탈한
눈 웃음 치네.
우리가 돌아갈 저 길
초승달을 물어뜯는
소쪽새가
하늘주막에 내려와
술잔을 재촉하네.
- 하늘주막 전문 -
그 후에 학업 등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몇 년 후 다시 법원 뒤에 ‘하늘 주막’을 열었을 때 몇 년의 떠돌이 생활 중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위 시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동안 부인은 도예가로 변신해서 가마에 불을 살리고 남편은 맑은 영혼 의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고 차도 바뀌었고 조금의 여유가 생긴 듯 했는데 아득하고 먹먹한 청천벽력이다.
십 몇 년 전 돌아가신 고 김창선 화백의 애제자로 가끔 그분이 체취가 풍 겨서 좀 병약해 보이는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오갈 때 못내 아쉬움 에 속내를 썩였다. 이제 그림도 한창 물오르고 나름 한 독특한 세계가 틀이 잡혔다 했다.
시도 한 운명을 타고 나는가 자꾸 시야가 흐려온다.
근래 몇 개월 찾아보지도 못하고 윗 시가 그를 하늘주막으로 떠나보냄을 예견하는 운명을 타고 난 십년 전의 시인가?
“어찌할꼬!...
발걸음이 엉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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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 임연규
둘(2)이라는 숫자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숫자다
사찰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불이문(不二門)라는 숫자.
‘2’를 대표하는 경우다.
‘不二門’은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門이다. 不二’란 둘이 아닌 경계로 절대 차별이 없는 이치를 상징적으로 보 여준다.
이는 僧俗이 둘이 아니며, 世間과 出世間이 분리 되어있지 않음을 말한다.
不二門에 들어서는 순간 일체중생이 ‘서로 분리 되어 있지 않음’을 둘이 지만 둘이 아닌 세계.
우리의 젓가락 - 11 - 처럼 하나이나 둘이 되어야하는, 둘이나 하나로 되어 있다.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우주의 생성이후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루이 지만 추의와 더위를 어찌 피하랴 그것이 없는 세계로 가는 수밖에.
당장 그들과 마주설 수밖에. 합이 되어 만나나 분리 될 수 없는 밤과 낮 이 무엇이랴.
‘바르다’
이 판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 그림자가 된 것일까?
그림자만큼은 바르게 나를 따라 왔으나 나는 아직도 얼마나 더 그림자를 끌고 어지러운 미로를 가야하나.
‘바르다’ 우리가 스스로 自性佛임을 깨달을 때 他人이 지옥이 아니라 他人이 우리에게 다가온 부처임을... 절이 마음 닦는 곳이라면 그곳에 가면 마음 닦는 공간이나 마음 닦는 기술자라도 있는 것인가?
부처님이 출가한 목적은 최상의 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수행한 것. 깨 달음이란 행복으로 가는 길을 깨닫는 것이지 깨달음 자체가 아님을 알게 한다.
불교에서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행복’이다.
그것이 ‘不二’로 .. 2.2 영원한 無量心으로 立春을 기다려 본다.
겨울 산이 그렇긴 하나 이렇게 짧은 시간 그리움으로 맞서야 하나 겨울 눈이 주는 순백의 서정도 좋기는 하나 몸도 마음처럼 붓 가는 대로 살아 움 직이는 선재동자 같은 소식을 기다리는 立春을 앞두고....
밥 찾아오시는 선재
겨울이 깊어진 마애불 헌식하는 자리에
새들의 모이로 놓아준 쌀 몇 톨이
오늘은 나비처럼 분분하게 내리는 눈 속에 묻혀가고 있다
나는 홀연 한 낮 선잠에 들었는데
꿈속에 나는 높다란 나무에 새집을 짓고 있었다
지붕을 올리면 자꾸 바람에 날아가는 새 집
지붕과 씨름하다 새 소리에 홀연히 깨니 어제 그놈인가?
쌓인 눈 속을 뒤지고 있다
눈을 쓸고 새롭게 차려준 밥상에 선재동자인가?
한 놈 한 놈 찾아와 먹은 만큼
모락모락 따끈한 戒를 남기고 가며 밥값을 하란다.
“내가 지붕을 짓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 줄 테니.”
- 밥 찾아오시는 선재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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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규 수필가 프로필
충북 괴산 출생, 계간 시와 산문에 조병화 시인 추천 등단, 현대시인협회, 불교문인협회 회 원, 중원문학 회장 역임. 사람과 시 회장.
시집 「제비는 산으로 깃들지 않는다」 「꽃을 보고 가시게」 「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노을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