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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누리 산악회
삶의 지혜를 얘기하려니 ‘삶’은 무엇이고 ‘지혜’란 과연 무엇인가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삶의 지혜를 터득할 만큼 충분히 살지도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 제가 모셨던 안경모(安京模) 장관께서는 연세가 많으신 대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셨고 ‘나이가 많아서 좋은 점이 하나 있지.’ 하시고는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혈당관리는 스스로 하는 것이며, 약물, 식사, 그리고 운동의 삼박자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의지력을 갖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을 못하니 분명히 아직 지혜로워지지 않았고 따라서 나이나 철이 제대로 들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삶’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만이 ‘지혜’를 얘기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므로 ‘어리석은 자의 삶의 지혜’를 얘기하고 더불어 ‘병과 건강’ 얘기도 들려 드리겠습니다.
당뇨병과의 만남
1980년 2월 어느 날, ‘당신은 당뇨병이오!’하는 의사의 선언을 들었을 때 ‘내가 잘못 들었나?’,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이럴 수가’ 등등 최초의 충격에서 벗어난 후에는 왜 내가 이 병에 걸려야 하는가?, 나는 곧 죽는 것일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수없이 밀려 나왔습니다.
1979년 1월, 저는 미국 중서부지방, 일리노이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눈병이 났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하는데 무슨 못 볼 것을 보았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빨개지고 눈곱이 잔뜩 끼어 눈이 떠지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학교보건소(Mckinley Clinic)에 가서 의사(Dr. Wachter) 선생님을 뵙고 그 후 1년 가까이 치료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NeoDecadron(Neomycin-Sulfate-Dexamethasone-Sodium phosphate ointment)으로 시작하여 Vasocidin(Sodium phosphate-Sodium sulfacetamide-Phenylephrine Hcl solution), Sulfacetamide 10 % solution 등을 썼으나 계속 효과가 없자 11월에 NeoDecadron과 Dexamethasone을 같이 쓰기 시작했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12월에는 Dexamethasone만 썼는데 아주 강력한 약이므로 1일 3정씩 2주간 먹고 난 후 하루걸러 4정씩 1주간, 다음에는 하루걸러 2정씩 1주간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 체중은 95 kg 정도로 매우 뚱뚱했고(키 176 cm에 표준체중은 68 kg) 많은 스트레스와 실의에 차 있어 몸과 마음이 모두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터널모형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연구비 지급이 중단되었습니다. 다른 연구과제에 주 20시간씩 일해 주는 대가로 장학금을 받아 생활하면서 나머지 시간에 강의도 듣고 혼자서 제 실험도 계속하고 실험결과를 정리하여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12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는 식욕이 왕성해져서 엄청나게 먹고 마시는데도 점점 힘이 없어졌습니다. 12월 21일부터 30일까지는 하루 마시는 물의 양이 2갤런까지 되는 듯 했고 소변이 자주 마려워 하룻밤에도 5, 6회 화장실에 다녀오려니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도 중간에 오줌을 싸게 되면 어쩌나 걱정되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마르고 입안이 말라 말하기도 어려워지는데 피부가 너무나 건조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특히 손과 발이 너무 건조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물에 적셔야 했습니다. 79년 12월 31일부터 Dexamethasone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휴가철이어서 병원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고 좀 쉬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약을 끊자 12월 31일과 1월 1일 이틀간은 식욕을 잃었습니다. 물맛이 너무 고약해서 마시기 곤란했습니다. 그 대신 단 것이 너무나 먹고 싶었습니다. 설탕물에 넣은 복숭아 통조림을 순식간에 먹어치웠습니다. 꿀을 물에 타지도 않고 스푼으로 떠먹었습니다. 80년 1월 2일엔 오줌이 덜 마려워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추웠다가 갑자기 더웠다가 하였습니다. 너무나 힘이 없고 끝없이 졸려서 낮이나 밤이나 잠만 잤습니다. 1월 4일 배가 고파졌고 왼쪽 눈이 다시 빨게 졌습니다. 5일에는 눈이 간지럽고 약간 부어올랐습니다. 1월 16일, 제 서른 일곱번째 생일날까지는 계속 힘이 없고 졸리며 피부가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발바닥에서 열이 났습니다. 1월 16일부터 1월 31일까지 다시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따라서 소변을 자주 보았습니다. 너무 물을 많이 마셔서 방광에 부담이 갔는지 방광에 약간의 통증이 왔습니다. 2월 1일부터 9일 사이에 발바닥의 피부가 벗겨졌습니다. 2월 15일 식전혈당이 240, 식후 2시간 혈당이 285였습니다. 2월 15일부터 1,500 kcal 기준의 식이요법을 시작했고 2월 16일부터 다이아비네스 250 mg을 매일 먹기 시작했습니다. 80년 2월 27일(수) 아침식사 기록을 보니 야채 1컵, 계란 1개, 빵 1쪽, 마가린 1 tsp, 우유 반 컵, 파인애플 1온스라고 적혀 있고 곡류 한 단위, 육류 한 단위, 지방 한 단위, 우유 반단위, 채소/과일 1.5단위로서 모두 309 kcal라고 계산하였습니다. 3월 3일 점심으로는 밥 1공기(곡류 2단위), 만두 4개와 닭다리 1개(육류 4단위), 그리고 야채 2컵을 먹어 360 kcal를 섭취했습니다. 체중을 2주에 1 kg씩 줄이라는 처방이었는데 79년 11월에 95 kg이던 체중이 80년 1월에는 88 kg, 3월에는 84 kg, 5월에는 82 kg으로 내려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79년 12월에서 80년 2월 중순까지의 두 달 반은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마치 청룡열차를 타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어쩌면 당뇨병은 내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해 주는 축복일지도‧‧‧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도 큰 병에 시달렸습니다. 온몸에 종기가 나서 그의 살에는 구더기와 흙이 옷처럼 입혔고, 그의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졌습니다(욥 7:5). 그의 피부와 살은 뼈에 붙었고(욥 18:20), 너무나 고통스러워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였습니다(욥 3:3). 욥을 통해서 성경은 ‘악인도 번성할 수 있으며 선인도 고통 받을 수 있고 고난과 재난은 죄의 결과가 아니며 악인에게 내린 심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보다 심오한 영적 통찰력을 갖게 하기 위해’, 즉 우리가 ‘보다 현명해지도록’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린도후서 12:7).’ 하였고 ‘약한데서 내 능력이 온전해진다.(고린도후서 12:9)’ 하였습니다.
최현배 선생의 아들이시고 청량리 뇌병원장을 지내셨던 최신해 박사님은 ‘인생에서 약간의 병과 약간의 빚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랴!’고 쓰셨습니다. 참으로 멋진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IMF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자고 얘기들 합니다만 어쩌면 당뇨병은 우리들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해 주는 축복인지도 모릅니다. 내 고통을 통해 남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삶의 한 순간, 순간들이 보다 귀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삶을 즐기는 것이 삶의 지혜
‘지혜’의 뜻을 찾아보니 ‘지식과 그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어 지혜의 뜻을 알아도 한 치도 슬기로워지지 않은 듯합니다. 성경 속에 지혜가 있을 듯 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은 지혜를 금, 은, 마노, 산호와 같은 보석에 비유하고 지혜를 발견하는 일을 채광이나 제련과정에 유사하다고 했습니다(욥 28:1-28:19). 따라서 지혜를 얻기가 매우 어렵지만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완전한 지혜(마가 6: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송사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여 ‘그 이전에 그와 같은 자가 없고 그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도록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받았던 솔로몬 왕은 ‘지혜는 생명을 보전하게 한다(전도서 7:12).’고 하면서도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 하느니라(전도서 1:18).’ 하였고 ‘지나치게 지혜 자가 되지 말라(전도서 7:16).’고 경고합니다. 솔로몬의 말이니 가장 지혜로운 말이겠지요. 그러니 너무 지혜롭지 못하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나 봅니다. ‘다만 나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욥 41:34)’ 된다고 합니다.
중국인 린 위탕(林語堂) 선생은 ‘생활의 발견(The Importance of Living)’에서 지혜 또는 예지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꿈, 즉 이상과 유머감각을 조화시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지 = 현실 + 꿈 + 유머
복잡한 현실을 꿈과 유머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삶의 지혜’란 얘기입니다. 즉 ‘필요치 않은 것을 배제하고 삶의 여러 문제를 “가정의 즐거움”, “자연의 즐거움”, “인류문화를 접촉하는 즐거움”으로 단순화시키고 다른 일체의 적절하지 못한 과학적 훈련과 무익한 지식추구를 몰아내 버리는 것’이 인생의 예지라고 했습니다. ‘삶을 진정 즐길 줄 아는 것’이 삶의 지혜란 얘기입니다.
욕심 버리기
이제 50대 중반에 이르러 돌이켜 볼 때 저는 평생 자주 아팠습니다. 고 2때였던 1960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늑막염으로 3개월간 입원하였고 대학 1학년 때인 1962년 6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년간은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1979년 12월에 당뇨병이 발병하였고 1981년에는 요로결석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1982년 3월에는 십이지장 궤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1991년에 왼쪽 폐에 폐결핵 증상이 나타났으며 1992년 12월에는 서울내과병원(담당의사 김경석)에 입원하여 인슈린 주사를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온갖 근심걱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도 일단 입원하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병원에 누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내 몸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남방에서 병을 땅 속에 단단히 묻어놓고 그 속에 오렌지를 넣어 놓으면 원숭이가 와서 오렌지를 움켜쥐고 놓지 않기 때문에 손을 병에서 뺄 수 없어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오렌지뿐만 아니라 사과와 배까지 한꺼번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욕심 많은 사람들입니다. 원숭이처럼 신세를 망치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리고 절제할 줄 아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1992년 12월 혈당치가 높아 입원했다가 3개월간 병가를 내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때 1967년 이래 25년간 즐겼던 담배를 끊고 술도 끊었습니다. 19세기 초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은 술, 노래, 사랑(zur trinken, singen, und lieben)을 즐겼다는데 저는 친구들에게 여기에 담배까지 덧붙여 모두 끊었노라고 농담 삼아 선언하였습니다.
내면적 가치의 우위를 지켜야
1993년 2월, 병가기간이 5일쯤 남았을 때, 저 때문에 3개월간 실장 대리 근무를 하던 손준익 박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보다 15년 정도 젊은 나이에 역시 젊은 아내와 어린 남매를 애처롭게 남겨둔 채 너무나 어이없이 가 버렸습니다.
이때 받은 충격에서 서서히 깨어나면서 인생관, 가치관이 좀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매우 중요하고 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돈, 명예, 지위, 체면 같은 것도 약간 우습게 보였습니다. 반면에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라는 말이 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욕심을 버리고, 줄이고 무슨 일을 하던지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하며 가능하면 일을 일단 미루기로 하였습니다.
김태길(金泰吉) 교수님에 의하면 ‘가치’에는 외면적 가치와 내면적 가치가 있는데 외면적 가치란 그 가치의 실현이 외적요인에 의해 주로 결정되는 것, 예로서 재산, 권력, 지위 등이며 내면적 가치란 그 가치의 실현이 자신의 내적요인에 의하여 주로 결정되는 것으로서 인격, 사상, 예술, 사랑, 우정, 건강 등이라고 합니다. 김태길 교수님은 건강의 핵심은 균형과 조화로서 이것이 깨어지면 건강을 잃게 된다고 하십니다. 또 행복의 실현을 위한 지혜는 ‘내면적 가치의 우위’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술, 우정, 사랑과 함께 건강하십시다.
자신을 아껴야‧‧‧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몸은 비록 머리털이라도 부모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효도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자중자애(自重自愛)’라는 말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해외출장을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돌이켜 보니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선물사기에 늘 많은 생각과 시간을 보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들, 그리고 직장의 상사와 동료 직원들에게도 작은 선물을 하나씩 하려고 애썼는데 정작 제 자신에게는 추억과 사진 외엔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집안에 먹다 남은 음식을 처분한다거나 먹기 싫은 음식도 남기기 아까워 먹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식구들이 없이 혼자 있을 경우엔 식은 밥 한 그릇에 고추장 한 종지나 라면 한 봉지로 한 끼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내 스스로를 대접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대접해 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장을 갔을 때는 제 자신에게 줄 선물부터 챙기기로 하였습니다. 또 혼자서 식당에 가야할 경우에는 제일 멋진 식당에 들어가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냉장고 속의 먹다 남은 오래된 음식은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습니다. 물건사기를 즐기지 않지만 무언가 살 때는 꼭 마음에 드는 것을 사기로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늘 ‘나는 귀중한 사람이야, 내가 대접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지!’ 하고 말합니다.
건강은 행복의 필수조건이나 충분조건은 못돼‧‧‧
1995년 9월부터 1년 동안 태국 방콕에 있는 아시아공과대학(AIT)에 가서 1년간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의는 맡지 않기로 하고 방콕 제2국제공항부지(농‧구‧하오)에 시행중이던 시험성토사업, 단기과정(short course)과 세미나의 진행 등을 도우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1년을 보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학생기숙사 방 하나를 빌어 혈당치만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혈당치가 높으면 바로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섭씨 38도의 태양 아래 시험농장 주변을 돌았습니다. 야자수와 파초잎 그늘을 지나며 쟈스민 향내를 맡고 아침에, 한낮에 그리고 밤에도 자전거를 탔습니다. 병원에 가고 올 때도 무더운 방콕 시내를 한 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너무 더우면 백화점이나 은행 안에 들어가 땀을 식히고 또 걸었습니다. 어느 날은 여섯 시간쯤 걸어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기숙사로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제 수명을 70이라고 보고 매일 줄어드는 여생의 날 자수를 일기에 기록하면서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각을 팽팽히 살아보려 했습니다. 그 당시 약 6,900일 정도의 수명이 남았었는데 이제 이미 1,000일 정도를 더 살았습니다.
몇 달을 이렇게 보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렇게 혈당치만 생각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혈당치를 충분히 낮게 조절하며 살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면 왜 사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건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수단에 불과하고 건강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건강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김태길 교수님의 말씀대로 ‘건강도 돈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필수조건이지만 그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 길은 쉬엄쉬엄 가야‧‧‧
당뇨와의 삶은 몇 달 또는 몇 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유혹을 겪게 됩니다. 이 싸움을 1년 365일 한결같이 긴장해서 하기는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면 가끔 혈당치를 잊어버리고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길섶에 핀 들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에 놀라 눈길을 주듯이 취미활동이나 예술 아니면 무슨 엉뚱한 짓거리에도 가끔 푹 빠져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짧은 기간 동안 ‘외도’를 해 보자는 것이지요. 한동안 혈당조절이 잘 되었을 때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던지 하여 자신에게 ‘상’을 주라고 하시던 간호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히말라야 등반대가 중간 중간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두고 여기서 휴식을 취해 가면서 한 번에 한 단계씩 정상에 접근하는 것처럼 쉬엄쉬엄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뇨와 함께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 제게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 같이 높은 목표로 보입니다.
헛되이 살자 !
당뇨와 함께 살아가면서 가끔 쓸데없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합병증이 눈에 와서 인슈린 주사 바늘 끝을 볼 수 없게 되면 어쩌나‧‧‧’, ‘발바닥에 괴저가 와서 조금씩 잘려 나가다가 두 다리가 다 잘리면 어쩌나‧‧‧’, ‘신장이 나빠져서 매일 한 시간 이상씩 병원에 와서 투석기에 연결하고 구차한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면 어쩌나‧‧‧’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나빠져서 보이지 않게 되면 어쩌나--’등 입니다. 눈 걱정 때문에 가토릭 맹인선교회에 몇 년째 후원 회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입원 당뇨교육 프로그램 때나 혹 삼성서울병원에 와서 시간여유가 있을 때면 투석 실에 가서 그 빙빙 돌아가는 기계 옆 침대에 누운 환자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것이 모두 헛된 걱정인줄 잘 알면서도.
사람 중에서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은퇴하여 지리산 속에 자리 잡고 유유자적 생활하시는 어느 노학자 한 분과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분 말씀 중 ‘헛되이 살자!’ 라는 말이 깊이 가슴에 닿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너무나 애쓰는 모습을 안쓰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꼭 보람을 찾아야 하나요?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삶보다 특별히 훌륭해야 하나요? 내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 해야 하나요? 내 아이들은 모두 일류대학에 가야 하나요? 내 딸은 꼭 부잣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아야 하나요? 내 며느리는 꼭 예쁘고 착해야 하나요? 내 사위는 돈을 잘 벌어야 하나요? 우리는 모두 건강해야 하나요? 그래서 모두 오래오래 살아야 하나요?
차라리 ‘헛되이 살자!’ 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이만하면 ‘한 편의 시(詩)나 한 잔의 술, 또는 한 판의 바둑’처럼 그런대로 멋진 ‘한 바탕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맺으며
작년 8월 소백산 관광목장에 당뇨캠프를 갔을 때 숲이 우거진 앞산과 뒷산자락을 흰 구름과 안개가 스쳐 지나가곤 하였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은 ‘저녁이면 앞산자락에 아기구름들이 내려왔다가 밤이 되면 엄마 구름따라 하늘로 올라 가나봐요.’ 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하셨습니다. 등산 가서는 모두들 네잎 크로버를 찾았고 찾은 것을 서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자신들의 행복의 일부를 서로 나누는 것처럼. 또 한 분은 배우자에게 바라는 글에서 ‘이제까지는 우리만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앞으로는 남도 생각하면서 삽시다.’고 하여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이처럼 모두 슬기롭고 아름다우신 분들 앞에서 어리석은 얘기를 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